낯선 땅에서 유튜버가 된 5명의 사람들 Part.1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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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유튜버가 된 5명의 사람들 Part.1

박세회 BY 박세회 2022.07.25
꽤 오랫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것이 꿈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온갖 여행 장비와 식량을 잔뜩 실은 트럭을 같이 타고 매일 밤 캠프파이어를 하며 나미비아를 횡단해보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해왔다. 남들 다 가는 서유럽보다는 튀르키예가, 빌딩만 많은 뉴욕보다는 페낭에 관심이 가는 게 나의 성정인 것 같았다. 교통도 문화도 음식도, 모든 게 끊임없이 낯설고 불편한 곳,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나의 오감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곳. 이해되는 것보다 이해되지 않는 광경이 더 많은 곳으로 가보고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떠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갖춰졌을 때, 팬데믹으로 국경이 잠겼다.
먼저 국경이 풀리고 항공편이 여유롭게 드나들기 시작한 곳들은 서유럽과 영미권의 부국들이었다. 그때쯤 휴대전화를 들었던 듯하다. 유튜브를 통해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의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친절한 가이드에 따라 몽골에서 페낭으로, 페낭에서 아부다비로 떠돌았다. 아프리카, 이집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삶을 엿봤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좀처럼 접할 수 없는 낯선 땅들을 보며 갈증을 해소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영상을 찍는 이유는 유튜브 조회수나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생각. 어떤 채널의 영상 중엔 조회수가 100이 넘지 않는 것도 있었고, 1000이 넘는 영상들은 꽤 유명한 편에 속했다. 가족이 댓글을 단 영상도 있었다.
이들은 왜 낯선 땅에서 유튜브를 찍고 있을까? 대부분은 주기적으로 성실하게 업로드를 하고 있었다. 어째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시간만 버리는 영상 노동자의 삶을 선택했을까? 아주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다섯 명의 해외 거주 유튜버들을 찾고 내가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갖고, 멀리 떨어진 다섯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받은 이야기에선 신기하게도 비슷한 것들이 보였다. 그들이 비슷한 것을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섯 나라의 유튜버들이 보내온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이 비슷하게 이야기한 것들을 나 역시 갖고 싶어졌다.
 

 
(1)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유튜버
홍준기
2013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튀르키예에 있는 한 한국 기업에서 인턴 제의를 받았을 때, 내게 튀르키예는 분쟁 지역에 위치한 엄격한 이슬람 국가였다. 지금은 조금 더 복잡하고 입체적으로 이 나라를 이해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포털 사이트나 주변에서 얻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으니 당연한 얘기다. 막상 와보니 이스탄불은 내가 생각했던 튀르키예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예를 들면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모슬렘 복장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대다수 사람이 한국의 일상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옷을 입고 생활했다. 종교나 규율에 의해 절제된 금욕 생활을 할 거라 생각했으나, 튀르키예의 거리는 서울 이상으로 역동적이었다.
다만, 분명히 적응하기 힘든 점이 있긴 했다. 회사에서 제공한 숙소는 큰 야외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였다. 시설이 훌륭했음에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이유는 새벽 5시가 되면 울리는 기도 소리 때문이었다. 특히 라마단 기간이 되면 새벽 4시 반에 북을 치며 사람들을 깨웠다. 북을 치는 것부터 의식의 시작이었다. 자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깼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식사는 물론 물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에 있는 현지인 직원들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물론 금식을 하는 것은 본인의 의사이며,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금식 중인 사람들에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회사 내에서 다들 조심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튀르키예 식당에서는 음식을 다 먹으면 손님이 일어나기 전에 접시를 치웠다. 청결을 위해서라고 했다. 처음엔 다 먹었으니 나가라는 신호인지, 아니면 너무 적게 시켰으니 더 시키라는 무언의 압박인지 고민했다. 영화관에서도 독특한 튀르키예만의 문화를 만났다. 어떤 영화고 10분간의 인터미션을 지켰다. 처음에는 영화가 끊기고 다들 일어나니 영화관에 불이라도 난 줄 알았다. 지금은 한국에 가면 식사를 마쳤는데도 접시가 그대로 식탁에 있는 걸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대체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쉬는 시간도 없이 2~3시간 동안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가장 크게 변한 건 감정 표현이다. 한국에서의 나를 돌아보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을 때도 속으로 삼키며 겉으로는 감정 표현을 자제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 속 깊은 이야기를 터놓고 한 적도 별로 없다. 실리를 따지는 인간관계에 꽤 깊은 회의를 느꼈던 것 같다. 이스탄불에선 달랐다. 튀르키예인들은 서로에 대해 관심이 굉장히 많고 감정에 솔직하며 실리를 크게 따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상대의 가족까지 신경을 쓴다. 튀르키예에 와서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부담 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며, 좀 더 밝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과 깊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변한 내가 꽤나 마음에 든다.
팬데믹의 시계는 나를 다시 차가운 시절로 돌려보냈다. 근로자 통행증을 받고 외출금지령 속에서도 잠시나마 바깥 공기를 쐬기는 했으나, 쉬는 날 집에 있을 때가 힘들었다. 생각과 걱정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힘이 되어준 게 튀르키예 친구들이었고, 추억 삼아 우리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영상을 만들면서 불안과 우울에 허덕이고 있던 내가 다시 밝아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사실 나는 낯선 땅에서 유튜브를 시작하지 않았다. 두 번째 고향. 전 세계의 모든 나라 중 내게 한국 다음으로 소중한 나라에서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튀르키예에는 카이막 말고도 많은 것이 있다. 카이막으로만 튀르키예가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계속 영상을 만들 것이다.
 

 
(2) 말레이시아 페낭의 유튜버
서주형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이 막혔던 2021년,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쌍둥이 빌딩이 있는 나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와보니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곳이었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국가인 만큼 비교적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 쉽고 물가도 한국보다 저렴한 편이다. 한 끼에 한화로 약 4000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경제적 만족도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페낭 사람들의 삶은 대체로 여유롭다. 그들의 시간은 언뜻 보기에도 느리게 흘러가며, 꽤나 만족스러워 보인다. 어쩌면 내가 이곳의 생활에 만족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단 하나만 빼고. 말레이시아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약 60%의 인구가 모슬렘이다. 전에 살던 집 앞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는데 라마단 기간이 되자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는 소리가 울렸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슬람 기도 소리에 당황스러워 적응하는 데 조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말레이시아의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기업에서 콘텐츠 모더레이터로 일한다. SNS에 올라오는 각종 광고와 콘텐츠를 검열하는 게 주 업무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앞서 ‘삶은 여유롭게 흐른다’는 말은 아무 근거 없이 적은 말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매일 오후 4시면 퇴근한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일과 휴식의 균형 ‘워라밸’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야근에 주말 업무까지 소화하던 한국인에게 말레이시아의 회사 생활은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말레이시아인은 한국인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자문해보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출근하면 곧 퇴근이라는 생각에 즐겁게 일하고 있다.
퇴근이 빨라지면서 얻은 것이 말레이시아를 여행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아직도 바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시간에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 모든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휴대폰을 들어 영상에 담았다. 촬영하다 보니 내 갤러리에만 두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유튜버가 됐다. 유튜브 영상을 찍는 데는 여러 목적이 있지만, 목적하지 않은 효과도 있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건 유튜브를 통해 나의 삶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좀처럼 즐길 줄 모르는 성격이었던 나는 페낭에 살면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멋진 곳에서 먹는 맛있는 음식들을 예전에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어떤 것이 즐거운 일인지를 잘 알고 그 즐거움을 한껏 즐기려 노력한다. 유튜브를 통해 내가 정말로 즐기는 모습을 본다. 페낭의 풍경과 음식을 놓치면 먼 훗날 얼마나 큰 후회를 할지 알기에 매일매일 이곳의 작은 부분까지 최선을 다해 즐긴다.
유튜브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페낭 생활 영상을 자주 업로드하다 보니 곧 말레이시아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는데, 아마도 유튜버 영국 남자가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가끔 길에서 현지인들이 내 채널을 재밌게 보고 있다고 인사를 해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낯선 땅에서 유튜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낯선 땅이라고 말했지만, 이젠 이 땅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이제는 페낭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다. 이제 겨우 1부가 끝났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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