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낯선 땅에서 유튜버가 된 5명의 사람들 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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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
<꽃보다 청춘> 라오스 편이 방영된 이후 좀 더 많은 한국인이 라오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일 뿐이고 여전히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나라다. 라오스에서 수년째 거주하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물었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지난 7년 동안 이곳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제대로 된 인프라도 갖추지 못한 이 불편한 나라에 대체 뭐가 있길래 그렇게 오래 머물고 있느냐고. 이 질문에 나는 언제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비어라오’가 있다고 답한다. 고소하고 목 넘김이 좋은 비어라오는 큰 병이 한국 돈 1000원 정도다. 퇴근 후 메콩 강변에 앉아 노을을 감상하며 마시는 비어라오 한 잔의 행복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더운 지방이 그렇듯 이곳에도 여유가 넘친다. 시간 외 업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의 삶에는 밤이 아닌 저녁이 있는 게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삶을 꾸리는 방식에도 여유가 넘친다. 흔히 라오스를 ‘부처의 웃음을 가진 나라’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웃음은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웃음일 것이다. 라오스의 정식 명칭은 Lao PDR(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지만 PDR이 사실 ‘Please Don’t Rush(제발 서두르지 마세요)’의 약자라는 농담도 있다.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나는 처음엔 이 라오스의 여유로움에 적응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사실 지금도 완벽하게 적응하진 못했다.) 7년. 한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들의 여유에 발을 맞출 때 누리는 작은 기쁨들을 발견했다.
라오스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 중 하나는 ‘버뺀양’이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문제없어’ 혹은 ‘괜찮아’다. 그러나 경험한 바로는 ‘그럴 수 있지’에 가깝다. 타인으로 인해 내가 불이익을 겪게 되었을 때,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 잘못을 했을 경우에도 ‘그럴 수도 있지’라며 자기가 먼저 ‘버뺀양’ 하는 경우도 많다. 처음에는 후자의 경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잘못 해놓고 ‘괜찮다’니. 한국에서 점원이 손님에게 실수를 해놓고 자기 입으로 ‘괜찮다’라고 말한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실버 주얼리 브랜드를 운영한다. 사라져가는 라오스 전통 은공예 산업을 일으키자는 목표를 세우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한국과 라오스에서 동시에 사업을 시작했다. 매 시즌 새로운 라오스의 모습을 담은 에디션을 공개하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다 보면, 이방인으로서 바라보는 라오스의 모습이 지나치게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오스에서의 일상을 담은 유튜브를 시작해보라는 제안을 받은 게 그때쯤이다. 워낙에 업무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기에 늘 새로운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아다녔고, 라오스 곳곳을 여행했다. 그렇게 영감을 모으는 일이 너무도 즐거웠다. 내 평소의 생활을 찍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지는 아직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초보 유튜버지만 전하고 싶은 바는 확실하다. 라오스를 검색하면 낙후된 라오스의 모습이나 향락과 유흥을 주제로 한 소개 영상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모습들이 라오스의 전부일 수는 없다. 채널의 시청자가 많으면 좋겠지만, 내 채널의 영상을 참고해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에 잘 다녀왔다는 댓글 하나를 보면 가슴이 뛴다. 내가 경험한 라오스를 천천히 전하리라. 라오스의 속도에 맞춰서.




한은지
난 나의 첫 근무지가 보츠와나일 줄은 몰랐다. 사실 그때까지 내가 아프리카에서 일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보츠와나, 보츠와나의 수도 가보로네에서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보츠와나를 검색하면 화면에 코끼리만 가득했으니까. 그럼에도 한국을 떠난 이유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이 내가 늘 꿈꿔왔던 직장이기 때문이다. 세종학당은 보츠와나의 수도인 가보로네에 있는 국립 보츠와나대학교에 있다. 보츠와나대학교와 남아공 대사관이 세종학당을 공동으로 운영한다. 이곳 세종학당의 수강생들은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 아이돌을 좋아한다. 사실 그 이유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보츠와나대학교 학생들이 세종학당 수강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말로 BTS와 한류의 힘은 이 먼 곳까지 닿아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미래만 상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프러포즈를 받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이 남자와 소개팅 하는 날 다이아몬드를 왕창 줍는 꿈을 꿨고 1년간의 연애 끝에 프러포즈를 받았다. 올해 9월 우리는 한국에서 식을 올리고 그 순간부터 보츠와나에 정착할 예정이다. 이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난리다. 정말 이곳에서 평생 살 수 있겠냐며 걱정이다. 아프리카라고 하면 빈곤과 질병의 대륙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 넓은 땅을 하나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려 할까? 이곳에 살아보지 않고는 절대 모를 것이다. 보츠와나에 코끼리가 있긴 하지만, 인터넷 검색창처럼 코끼리로 가득 찬 나라는 절대 아니라는 걸.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기도 하다. 대학교에 혹멧돼지가 뛰어다니기는 하지만, 코끼리는 멀리 가야만 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음주 상태에서는 운전을 해도 적발되지 않기 때문에, 보행 혹은 운전 시에는 거리의 자동차를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비문명 국가의 흔적은 그 정도에서 그친다.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생산국이라 아프리카 대륙에서 부유한 국가에 속한다. 폭력이나 절도의 위협을 느끼는 일이 거의 없을 만큼 치안이 좋고, 복지제도가 잘되어 있다. 모든 아프리카 국가가 이런 것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보츠와나는 당신과 내가 상상했던 것과 확연히 다르다. 누군가 나에게 이곳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한국에서의 삶은 지금과는 달랐다.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했고, 항상 바쁘게, 이리저리 치이며 살았다. 사실 왜 그리 바빴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보츠와나에 왔을 때 이곳 사람들은 나와 많이 달라 보였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안정적이었다. 사회는 느리고 여유로웠다. 세종학당에서 막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항상 바빴다. 현지 동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물었다. 왜 매일 뛰어다니느냐고. 그렇게 숨을 돌리고 주위를 보니 뛰어다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충격이었다. 아직 행정 처리가 늦어질 때면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를 빼면 언젠가부터는 나 역시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물론 아직도 나는 문만 열면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찬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그리워한다. 가족과 친구들도 보고 싶고 가끔은 향수병으로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서울에 가서 지내다 보면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 금세 가보로네가 그리워진다. 그 그리움은 내가 이곳의 생활을 더 열심히 즐기고 기록하고 싶어 하는 이유기도 하다. 언젠가 다른 곳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에 가보로네가 그리워지면, 내 유튜브를 볼 것이다.




조연정
피라미드, 파라오, 사막, 호객 행위. 이집트에 대한 보통의 이미지는 이 정도가 아닐까. 이집트 1년 살이의 반절이 지나간 지금 내가 느끼는 이집트는 다르다. 이집트는 포근하고, 역동적이며, 다채롭다. 내가 사는 자말렉(Zamalek)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강에 위치한 섬이다. 지리적으로는 여의도와 비슷하고,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해 문화적으로는 이태원에 가깝다. 이집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오페라하우스, 스포츠클럽 등의 고급 문화 시설이 있고 세계 각국의 대사관이 위치한다. 당연히 치안이 좋다. 한마디로 카이로의 고급 거주지이며, 핫 플레이스다. 한적하고 조용한 작은 동네를 선호하는 나는 핫 플레이스에서의 삶이 꽤 고통스러웠다. 더운 낮에는 집에 머물다가 해가 진 후 밤 9시 즈음부터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가는 이집트 문화 덕분에 더 그랬다. 구도심이다 보니 교통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횡단보도는 고사하고 차선, 신호등도 없었다. 카이로와 기자를 잇는 다리가 자말렉에 있어 자동차 클랙슨 소리가 24시간 내내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양손으로 귀를 막고 다녔지만, 이제는 클랙슨의 집합 소음을 ASMR 삼아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처음 자말렉에서 살 집을 알아보게 된 이유는 단순히 직장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내가 공적개발원조 전담기관인 KOICA 해외 사무소 인턴으로 이집트에 파견된 기간은 1년이다. 오후 4시에 퇴근하면 나는 주로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편집하며 시간을 보낸다. 유튜브를 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 독특하고 유쾌한 경험을 오래 추억하고 싶어서.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를 위해 영상으로 남겨두려는 스스로의 배려다. 두 번째는 1년이라는 유한한 시간을 되도록 열심히 경험해보고 싶어서. ‘게으른 집순이’인 나를 집 밖으로 나가게 하는 동기는 오로지 기억하고 싶은 영상을 남기기 위한 욕심뿐이다.
그 욕심 덕분에 이집트에서 나는 ‘내 인생 처음’의 경험을 몇 가지 했다. 나는 ‘내 인생 처음’이라는 것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다. 그중 하나는 이슬람 국가인 나라에서 라마단을 보낸 일이다. 내 인생 첫 라마단을 겪기 전까지는 나는 사람들이 라마단을 힘겨워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권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며 설레어 하는 것처럼 이곳 사람들도 라마단 장식으로 거리를 꾸미며 들뜬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모슬렘이 아닌 자의 라마단 기간은 냉장고에 술만 미리 쟁여놓는다면 마냥 행복하다. 가장 큰 행복은 근무시간이 단축된다는 것. 라마단 기간에는 하루에 6시간만 일한다. 해가 진 후 이프타르(Iftar, 금식이 깨진 시간) 시간이 되면 모두 밖으로 나와 음식을 나눠 먹는다. 이 시간 동안 거리에서 들리는 건 사람들의 웃음소리뿐이다. 라마단에 대한 내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내겐 그리고 우리 모두에겐 이집트에 대한 수많은 편견이 남아 있다. 나는 우리의 편견을 깨기 위해 내가 이집트에서 많은 것을 겪고 남기기를 원한다. 다행히 나의 이집트살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 남은 반년 동안 최대한 많은 ‘내 인생 처음’을 겪고, 의미를 부여해볼 생각이다. 어째서인지 카메라를 잡고 나니 새로움에 대한 갈망의 에너지가 아직 차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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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송채연
- PHOTO 김형진/한은지/조연정
- ART DESIGNER 주정화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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