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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심달기가 어설픈 위로를 싫어하는 이유
표독스럽거나 뻔뻔하거나 악에 받쳐 있거나. 세상에 등을 돌린 외톨이 심달기를 우리는 봐왔다. 그러나 단언할 수 있다. 그녀가 마음만 먹고 사랑스러운 척을 해버린다면 우리는 그녀에게 속절없이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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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모양이 수놓인 베스트 JW앤더슨. 레드 이너, 네이비 스커트 모두 푸시버튼.
<사람 냄새 이효리> 작업할 때 교환 선배가 제게 비슷한 얘기를 계속 했어요. 열일곱 살짜리와 60~70대 할머니가 제 안에 섞여 있대요.
(웃음) 아, 무슨 말인지 약간 알 것 같기도 해요.
좋은 말인지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저는 미성년의 시기, 특히 청소년기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왜요? 전 다시 돌려보내준다고 하면 전 재산을 줄 것 같은데요.
전 지금이 좋아요. 전 청소년기의 안 좋은 기억은 다 잊어버렸었어요. 저도 모르게 잊어버렸어요. 저한테 안 좋은 짓을 한 사람도, 그 일을 기억 못 하고 저와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단 말이죠. 그런데 연기를 하면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과계속 마주하게 돼요. 배역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기억을 끄집어내봐야 하는 거죠. 청소년기를 이제 다시 돌이켜보니, 행복하지만은 않았더라고요. 가끔 생각해요. ‘나는 그걸 어떻게 버텼을까? 저런 걸 어떻게 견뎠을까’라고요. 그때는 몰랐으니까 견뎠겠죠. 느끼지 않았으니까 견뎠겠죠. 근데 지금은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됐어요. 그래서 청소년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다시 돌아간다면 저는 견디지 못해요.
<최선의 삶>이 선생들의 체벌 장면으로 시작하죠. 저도 어릴 때는 맞는 게 당연한 줄 알았고 그다지 모멸감도 느끼지 않았어요.
어릴 때는 모르는 것 같아요. 내가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생각도 잘 못해내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그때의 기억들을 펼쳐봐야 하는 거죠?
<최선의 삶>을 찍을 때가 특히 그랬어요. 제가 아람(심달기 분)이만큼 고통스러운 삶을 산 건 아니었겠고, 또 아람이가 느끼는 고통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죠. 실제로 그런 일을 겪어본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아람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죄책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 죄책감 때문에 아람이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계속 아픔을 감각하는 상태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촬영하는 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힘을 좀 많이 썼고, 그러다 보니 건강하지 못했죠.
아… 정말 힘들었겠어요.
전 <소년심판>의 서유리(심달기 분)가 그간 제가 맡았던 그런 역할들을 졸업하게 해줄 배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유리를 연기할 때는 <최선의 삶>의 아람을 연기할 때만큼 파고들이 않았어요. 파고들지 못했고 파고들지 않았어요.
예전에 손석구 씨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범죄도시2>의 강해상은 1차원적이고 극의 목적을 향해 달리면 되는 캐릭터였던 반면,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는 연기할 때 ‘너는 어떤 사람이니?’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했다고요. 작품 특성에 따른 차이가 아닐까요?
그러게요. 서유리를 연기했던 방식에 대해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내가 초심을 잃었나’라는 생각까지 했거든요. 어쩌면 그냥 본능적으로 적절한 방식을 취했었나 봐요.

무지개색 아우터 잉크. 글리터 원피스 플랜씨.
현실에서도 울 때가 있나요? 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는 우는데, 실제 인생을 살다가 우는 경험은 잘 없는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하게 고민하는 지점이 있어요. 연기를 할 때보다 다 완성된 드라마로 제 배역을 볼 때 감정을 더 깊게 느껴요. 사실 연기를 할 때는 조금만 눈을 돌리면 그 상황이 허구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어요. 바로 뒤에 조명이 있고, 카메라가 있고 스태프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지요. 그에 비해 스크린이나 TV를 통해 볼 때는 허구라는 걸 알려줄 요소들이 훨씬 적은 거죠. 또 촬영할 때는 조각조각 찍거든요. 반면에 감상할 때는 연출자가 의도한 순서대로 장면들이 쭉 이어지잖아요. 연기할 때는 못 느꼈던 인물의 감정을 감상하면서 더 많이 느끼게 되고 결국 후회를 하죠. 저뿐 아니라 많은 연기자가 그럴 거예요.
해보지 않은 사람은 생각지도 못할 관점이네요.
그러니까요.(웃음) 예전에는 그 사실이 되게 창피했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것도 같고,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만 후회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래서… 실생활에서 눈물은요?
흘리죠. 배우란 그런 경험을 계속 해내야 하는 직업인 것 같아요. 눈물 연기를 할 때 오로지 그 인물에만 이입해서 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항상 그렇진 않거든요. 내 인생으로 눈물 버튼을 만들어야 해요. 그게 정말 힘들어요. 빨리 울어야 할 때, 내 인생에서 가장 비슷한 상황의 눈물을 찾는 거죠. 그래서 평소에 계속 다른 트라우마들로 눈물 버튼을 만들어둬야 해요.
‘우리 집 고양이가 죽었을 때’라는 버튼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너무 오래돼서 감정이 옅어지면 또 만들고요.
맞아요. 게다가 눈물의 종류는 배역과 상황마다 매번 달라요. 너무 힘들어요. 눈물 연기는 이제 더는 안 하고 싶어요.
‘배우는 고난도의 인류애가 필요한 직업’이라며 ‘비호감인 인물이라도 본인이 맡은 이상 이해하고 공감하고 애정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했지요. 그 인터뷰를 읽고 이번 화보의 콘셉트를 잡았어요. 그간은 관객들에게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일으키겠다는 의도로 연기한 배역이 하나도 없었으니, 이 기회에 사랑스러운 달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오히려 사랑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만 맡아왔죠. 사랑받지 못하는 캐릭터들, 사랑받기 어려운 캐릭터들요.(웃음) 그런데 이번엔 달라요. <말아>의 주리는 사랑스럽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겠다고 확신해요.
지금까지 선택한 영화들을 보면 서브컬처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요.
흠… 뭘 좋아하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뭘 안 좋아하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특정한 장르라기보다는 친절한 음악을 잘 못 들어요.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류의 밑도 끝도 없는 긍정의 노래들 말인가요?
맞아요. 거짓말 같아서 못 듣겠어요. 그런데 또 아예 착하기로 작정한 음악은 들을 수 있어요. 진짜 밝음의 끝을 보겠다고 작정한 음악은 들을 수 있지만, 어설프게 착한 척하며 나를 위로하려 드는 음악은 듣기 힘들어요.
‘우리 다 같이 열심히 노력해서 최고가 되어보자’ ‘힘들 땐 항상 내가 옆에 있어줄게’처럼 도덕 교과서 같은 가사들이 정말 많지요.
그런 문화가 좀 생긴 것 같아요. 나쁜 가사를 쓰면 욕을 먹는 문화가요. 제 친구 중에도 도덕적이지 않거나 윤리적이지 못한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는 못 보는 친구가 있어요. 너무 신기해요. 그래서 그 친구는 포뇨를 싫어해요.
포뇨요? 왜 포뇨를….
너무 자기 멋대로 한다고 포뇨를 싫어해요.
하하하.
철이 없대요. 그런데 그게 요즘 사람들 정서이기도 한가 봐요. 가사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이 있는 거죠. 착한 가사를 쓰지 않으면, 내가 납득할 수 없으면 나쁜 거야. 이상한 거야. 그런 윤리에 질문을 던져보기 위해서 영화, 음악, 예술이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저 역시 어려서부터 그렇게 생각해왔지요.
요즘은 호감 캐릭터밖에 없어요. 심지어 악역도 호감 캐릭터인 경우가 많죠. 악역도 너무 착해요. 알고 보니 다 그럴만한 사정이 다 있거나요. 그게 중요한 요소일 수 있겠지만 뭔가 아쉽달까요? 착한 걸 너무 응원하는 것 같고, 긴장감을 지나치게 불편해하는 것 같아요.
왜일까요?
평소에 긴장감이 너무 높아서가 아닐까요?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화 받는 걸 싫어한다고 하더군요.
그건 정말이에요. 저도 그래요. 왜 그런 걸까요. 침범당한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 민감함이 그냥 한 세대가 타고난 기질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원인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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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김시내
- STYLIST 이필성
- HAIR 조미연
- MAKEUP 서아름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최지훈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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