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이 자신의 앨범 <뽕>과 자신이 만든 다른 아티스트의 곡들에 대해 가진 생각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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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이 자신의 앨범 <뽕>과 자신이 만든 다른 아티스트의 곡들에 대해 가진 생각

프로듀서 250은 7년의 시간이 걸린 앨범 <뽕>에 대해, 꼭 그만큼의 시간이 걸려야 나올 수 있었던 앨범인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의 '뽕'이라는 정서를 집요하게 탐구한 그 앨범을, 다시 태어나도 분명 또 만들 것 같다고도 했다.

오성윤 BY 오성윤 2022.09.26
 
셔츠 프리즘웍스. 팬츠 리얼페이크닷. 펄 네크리스, 골드 스퀘어 펜던트, 골드 네크리스 모두 로아주. 벨벳 재킷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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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의 사인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는데… 좋게 말해서 손목에 피로가 없을 것 같은 모양이다. 누가 흉내 내서 대신 해주기도 쉬울 것 같고.
(CD 케이스 위에 본인이 한 회오리 감자 모양 사인을 펜으로 가리키며) 이게 네임펜이라서... 두꺼운 매직으로 하면 좀 낫다. 약간 서예처럼 보이기도 하고. 매직을 하나 챙겨 다녀야 할까 보다.
앨범을 CD 포맷으로 발매한 이유는 뭐였을까? 요즘은 CD보다 바이닐 레코드를 택하는 추세고, ‘뽕’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하고자 했다면 카세트테이프를 고려했을 법도 한데.
일단은 음질의 문제가 가장 컸다. 사운드가 어떻게 들리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CD를 택한 거다. 테이프나 LP에 비하면 마스터 음원에 가장 근접한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매체이니까.
스트리밍 음원과 CD 음원의 마스터링을 따로 맡기기도 했다. (<뽕> 앨범의 스트리밍 음원 마스터링은 다프트 펑크의 곡 작업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CHAB가 맡았고, CD 마스터링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곡 작업으로 유명한 일본의 고테츠 도루가 맡았다.)
마스터링에 대해서도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지금 스트리밍되고 있는 버전의 소리는 영상으로 치면 아이맥스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풀로 꽉 채워서 쓸 수 있는 레인지를 다 쓰고, 베이스도 확실하게 들려주고, 위로도 쫙 뻗고, 스테레오 이미지도 양옆으로 확실하게 벌어져 있고... 반면에 CD로 낸 ‘고테츠 도루 리미티드 에디션’은 뭐랄까, 1970~80년대에 만들어진 고급 TV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양옆의 스테레오 이미지가 좁고, 위아래도 많이 깎여 있다. 그런데 눈앞의 딱 적당한 크기 안에 뭔가를 구현하고 나머지는 다 까맣게 가려놓으니까 몰입도가 굉장히 높아지는 부분이 있더라. 그래서 둘 중 하나로만 내야 하는 줄 알았을 때에는 정말 고민이었다. 결국 두 버전을 다 내게 되면서 자연스레 해결됐지.
한국의 ‘뽕’이라는 정서를 파헤친, 진담 같기도 농담 같기도 한 미묘한 뉘앙스를 가진 음악이니 어떤 소리로 구현되느냐에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것 같다.
결국 마스터링을 두고 오래도록 고민한 것 자체가 그런 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게 슬픈 음반인가 아니면 그래도 댄스곡 음반인가.’ 결과적으로는, 이게 슬픈 음반이라 해도 슬픔을 강조하지는 않아야겠다는 쪽으로 정리된 것 같다. 듣는 사람이 슬퍼야 슬픈 거지. 나는 그런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슬픔을 연출할 때도 우는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면 좀 깬다고 해야 하나. 이 사람이 울 거라는 단서만 안기고 저 멀리서 풀샷으로 잡는다든지, 실루엣이나 뒷모습만 보여준다든지, 그럴 때 느껴지는 게 있지 않나. 내가 <뽕>에 담고 싶었던 것도 그런 부분이다. 슬플 때 쿨한 척하는 게 더 슬프다는 결론.
나름의 답을 찾아서 곡을 다 만든 후에도 ‘뽕을 찾는’ 여정은 끝나지 않았던 셈이다.
그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뽕> 앨범 제작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형식의 시리즈)도 사실 약간 웃긴 톤이지 않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려는 부분이 있었다.
앨범의 태도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용할까 봐 걱정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오히려 이 앨범으로 인해 내가 너무 진지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더 걱정이다. 그냥 농담 따먹기 좋아하고 실없는 거 좋아하는 사람인데. 가볍게 보일까 봐 걱정하지는 않았다.
총 5부작인데 4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공개됐다. 그러면서 톤이 조금씩 바뀌기도 한 것 같다. 후반 에피소드로 갈수록 조금씩 유머가 빠지고 진지함과 경건함의 비중이 높아지는 식으로.
그러니까 초반부는, 사실 나는 그때만 해도 그 다큐멘터리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을 줄 알았다. 어차피 나는 집에서 혼자 마우스로 이리저리 클릭해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나머지 활동은 그냥 ‘뭐라도 해야지’ 하는 느낌으로 임했던 거다. 그런데 작곡가 김수일 선생님을 만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선생님 노래를 녹음하면서 아, 이거 내가 지금 진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뽕을 찾아서’라고 했는데 지금 진짜로 내가 이 속에서부터 뭔가를 찾아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김수일 작곡가 이전의 농담 같은 과정들도 좋았다. 동묘 악기상에서 매물을 고르면서 시장을 서성이는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영등포의 성인댄스교습소에서 ‘246 삼박자 리듬짝 댄스’ 같은 걸 배워보기도 하고, 해안 지방의 소규모 행사를 기록하기도 하고. 사라져 가는 비주류 문화의 면면이 담긴 훌륭한 사료(史料)인 것 같다는 감격이 몇 순간 있었다.
(웃음) 그런가. 우리 입장에서는 그냥 좀 당연하게 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는 20~30대의 댄스 음악 신이라는 게 명확하지가 않지 않나. 옥타곤을 얘기할 수도 없고, 케잌샵을 얘기하기도 애매하고. 그런데 찾아보니까 중장년층의 댄스 음악 신은 너무 확고하고 완벽하게 마켓이 구성되어 있었다. 그곳들을 찾아가 보면서 내가 받았던 느낌의 핵심은 ‘사람은 다 똑같구나’라는 거였다. 합천 바캉스 축제였나 그곳에 갔을 때도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온갖 것들이 섞여 있다는 부분이었다. 해변 특설 무대에 행사하는 디제이들이 있고, 양옆에 비키니 입은 댄서분들이 막 춤을 추고, 그 앞에서는 어떤 아주머니가 애를 안고 이렇게 춤을 추고 있고....
행사 MC는 자꾸 마이크에 대고 “스태프, 빨리 라면 갖고 와라”고 소리치고 있고.
그러니까. 누군가는 이 행사를 진행해야 하니까 어쨌든 하고 있는 거고, 물 뿌리는 사람들도 정말 일처럼 물을 뿌리고 있고, 그런데 그런 거야 어찌 됐든 거기 온 사람들은 물 쏘고 음악이 쿵짝쿵짝하면 신나는 거다. 원래는 같이 있을 이유가 별로 없는 것들이 다 섞여 있으니까, 그런 장면들이 좋았다.
지난주에는 종로 국일관에서 열린 ‘퓨쳐관광메들리’에서 직접 공연을 했다. 어땠나?
일단은 장소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콜라텍이라는 곳에서 음악을 트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바로 옆에 식당이 붙어 있고, 큰 홀이 있고, 스테이지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섹션이 있어서 여러 연주자들이 여기저기에 각자의 악기를 세팅해뒀다가 바로 이어받아서 연주를 할 수 있고…. 외국인들도 몇 명 와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장소가 주는 느낌을 너무 좋아하더라. 그게 사실 내가 알기로는 애초에 일반음식점과 유흥주점 사이의 법적인 한계를 피하기 위해서 그런 형태로 지어진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시작이 뭐였든 간에 이제는 그냥 문화가 되어 있는 거다.
국일관 사장은 반대로 행사를 보면서 놀랐다고 했다. 누가 들어도 뽕짝 음악인데 젊은 친구들이 열광을 하니까.
내 생각엔 이런 부분인 것 같다. 사람들이 음악을 들을 때 뭐가 요즘 거고, 뭐가 뒤처진 거고, 이렇게 음악을 속도전 개념으로 듣는 관습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냥 없어졌던 거다. 그런데 요즘은 옛것에 대한 자료가 너무 많다. ‘요즘 애들이 왜 옛날 걸 좋아해?’ 이런 구도 자체가 의미 없는 시대라는 뜻이다. ‘현재와 과거가 이어져 있다’ 이런 뜻도 아니다. 그냥 ‘좋은 건 좋은 거다’ 그런 시대가 된 것 같다.
2018년 연말에 연 단독 공연 ‘아직도 모르시나요’의 반응은 참담했다고 알고 있다. 공연 도중에 다 나가버려서 나중에는 관객이 거의 남지 않았다고. 4년 사이에 뭐가 바뀐 걸까?
내가 <뽕>을 만들기로 했을 때부터 뽕짝 음악을 계속해서 들었다. 사실 그전까지 즐겨 듣던 음악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한 2~3년 듣다 보니까 나중에는 뽕짝 음악을 틀어놓고도 내가 틀어놓은지도 모를 정도가 되더라. 그래서 ‘아직도 모르시나요’ 공연을 했을 때 잘못 생각한 거다. 뽕짝을 세네 시간 틀어놔도 나는 피로를 안 느끼니까, 남들도 그럴 거라고.(웃음) ‘250의 뽕짝’이 되어야 했는데 250의 함량은 거의 사라지고 뽕짝만 남은 음악들이기도 했다. 그 무렵에는 그랬던 것 같다.
관객이 아니라 250의 음악에 차이가 있었다는 얘기다.
내 생각에는 <뽕>이 발매된 이후라는 부분도 큰 것 같다. 클럽은 역시 아는 노래가 나와야 재미있으니까. 20대들이 그간 뽕짝 음악을 얼마나 더 친숙하게 느끼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은 잘 모르겠다. 그 사이에 트로트 열풍이 엄청나게 불었으니까 그 영향이 있었을 것 같긴 하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워낙 잘됐으니까 좀 더 친숙해진 부분도 있지 않을까.
트로트와 뽕짝에 대한 인식은 좀 다르지 않을까? 트로트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정도의 열풍이 불었다가 가라앉은 상황이고, 뽕짝은 아직 그런 입지를 차지해본 적 없는 마이너한 문화이기 때문에 여전히 ‘힙’할 수 있는 것 같고.
뽕짝이라는 장르는 대부분 기존에 있던 트로트 곡을 뽕짝 스타일로 다시 부르는 형식이다. 그러니까 원곡을 아는 중장년층에게는 그 슬픈 가사를 따라 부르면서 춤도 출 수 있는 음악에 가까울 것이다. 반면에 지금 20대가 뽕짝 음악을 듣는다면 아마 그냥 ‘미친 듯이 신난 음악’으로 들릴 것이다. 나도 그렇게 느꼈으니까. 너무 빠르고 너무 높고, 뭔가 미친 짓을 해도 되는 음악. 똑같은 가사를 들어도 사실 그게 와닿겠는가. 나이 든 사람이 향유하는 가사이기 때문에 웃기다고 오히려 즐기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하는 가사가 막 어딘가를 후벼 파지는 않겠지.
 
〈뽕〉 앨범 수록곡의 뮤직비디오. 순서대로 ‘뱅버스’ ‘이창’ ‘로얄블루’.

〈뽕〉 앨범 수록곡의 뮤직비디오. 순서대로 ‘뱅버스’ ‘이창’ ‘로얄블루’.

 
‘뽕끼’란 과연 뭘까?
나한테는 그냥 집에 있는 반찬 같은 느낌이다. 남한테 먹으라고 주지는 못하겠는데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있고. 맛있는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겠는데 매일 먹고 있고. 꼬릿꼬릿한 냄새도 좀 나고.
‘뱅버스’와 나머지 곡 사이에 차이도 있는 것 같다. 나머지 곡들이 한국의 ‘뽕끼’라는 뉘앙스를 재해석한 결과라면 ‘뱅버스’는 아주 직설적인 뽕짝이다.
처음 앨범을 만들기로 하면서 세운 목표가 ‘이박사 (스타일)만큼은 절대로 안 할 거야’였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런 콘셉트의 앨범에 그런 노래가 하나도 없다면 그게 더 엉터리인 것 같더라. 촌스럽고 유치한 것만 골라서 하겠다고 해놓고서는 막상 진짜 촌스럽고 유치할 것 같으니까 그건 피하겠다, 이런 거니까. 그래서 이박사님을 결국 직접 만나뵙고 ‘모든 것이 꿈이었네’와 ‘사랑이야기’를 작업했고, 가장 전형적인 뽕짝 곡도 만들었다. 그게 ‘뱅버스’다.
그 곡은 듣다가 실제로 섬뜩했던 적도 있다. 너무 좋아서. ‘혹시 내가 이런 걸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건 아닐까’ 하고.
(웃음) ‘뱅버스’는 짬뽕 같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드럼에 있어서는 완전히 전형적인 뽕짝. 뽕짝 드럼이 가지고 있는 힘이 분명 있으니까. 대신 베이스는 전형적인 베이스를 쓰고, 그 위에 올라가는 리드 사운드도 뽕짝 사운드의 악기지만 그걸로 멜로디는 뽕짝에 쓰이지 않는 코드 진행을 얹고. 그렇게 만든 거다. 그렇게 애매하게 요소를 벌려 놓으면 감상하는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뱅버스’는 뮤직비디오가 해외 영화제들에 초청되거나 상을 받기도 했다.
비디오는 사실 회사에서 다 아이디어를 내준 거라서... 내가 생각했을 때는 이런 느낌이었다. 일단 뽕짝은 달리는 노래니까 영상도 달리는 거. 그러면 달리는 남자가 나오면 되는데, 달려야 할 이유가 필요한 거고. 그 뮤직비디오에서 제시하는 (모텔 방에 화난 남자들이 쳐들어온) 상황이라면 충분히 달려야 할 이유가 되니까 그냥 달리는 거다.
사실 심오한 메시지가 있다거나 연출이 혁신적인 뮤직비디오는 아니니까, 그야말로 뮤직비디오의 본질인 ‘음악과 영상이 붙는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반응이 제일 좋았다. ‘뮤직비디오를 찍으려고 이 노래를 만든 것 같다’는 반응. 결국 완성도가 그만큼 높다는 얘기니까. 회사의 아이디어도 좋았고 감독님의 역량도 뛰어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창’의 뮤직비디오는 전국노래자랑 예선전에서 축구공 묘기를 하던 청년이 들려준 짧은 감상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구성이다. 그것도 비스츠앤네이티브스(250의 소속사)의 아이디어였을까?
맞다. 물론 내 의견을 묻기는 했는데, 나도 듣자마자 좋았다. 말 자체가 웃겼으니까. “그냥 얘가 한 얘기로 갑시다.”
(웃음) 차이가 있다면 뮤직비디오에는 청년의 묘사에는 없었던 관능의 이미지가 들어갔다는 점이다. ‘뱅버스’ 뮤직비디오도 굉장히 선정적이면서도 코믹한 베드신으로 시작한다.
아무래도 우리 세대는 ‘뽕’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1990년대 에로영화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마약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고전 에로영화 시리즈의 뉘앙스가 남아 있기 때문에, ‘뽕’ 하면 에로틱한 무드 같은 게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뽕〉은 이렇게 사회적, 개인적으로 축적된 문화와 조응하는 음악인데, 해외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더 가디언〉〈더 와이어〉〈DJ MAG〉 같은 유명 매체에서 인터뷰를 하거나 기사를 썼다.
<더 와이어>에서 <뽕>을 리뷰한 분은 그쪽에서 굉장히 권위 있는 분이라고 알고 있다. 한국의 뽕짝 음악과 서브컬처의 맥락에 대해서도 이미 빠삭한 상태였고, 그래서 본인이 굉장히 신이 나서 리뷰를 썼다는 게 느껴지더라. 그에 비하면 <더 가디언>은 한국 문화 맥락에서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재미있어 하는 쪽에 가까웠고. 사실 그 둘은 나를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황당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좋았는데, 〈DJ MAG〉의 리뷰는 내용이 굉장히 기분 좋았다. 이 앨범에 대해 ‘그냥 소닉 헤븐(sonic heaven, ‘소리의 향연’ 정도로 해석된다)이다’라는 평을 남겼더라. 정서적인 부분이나 문화적인 부분보다 사운드에 대해 얘기한 거다. 마지막까지 그 부분을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너무 좋았지. 〈DJ MAG〉이면 사운드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들일 텐데, 그 사람들이 들었을 때도 너무 좋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뽕〉 앨범 제작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 총 5부작으로 유튜브 BANA TV에 무료 공개되어 있다.

〈뽕〉 앨범 제작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 총 5부작으로 유튜브 BANA TV에 무료 공개되어 있다.

 
사운드 측면에 그렇게 집착을 했는데, 1번 트랙인 ‘모든 것이 꿈이었네’는 김수일 작곡가의 보컬이 이박사의 자택에서 그냥 한번 불러본 버전으로 들어가 있다.
사실 그것도 다시 녹음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선생님이 노래를 대충 불렀다면 다시 했을 거다. 그런데 정말 진지하게 부르셨거든. 그걸 이렇게 바로 옆에서 마이크 들고 듣는데, 후렴구에서 “모든 것이 꿈이었네” 하는 순간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 듣는 내내 ‘와 이게 뭐지’ 하면서 녹음을 했고, 그래서 그 순간에 내가 느낀 감흥도 그대로 담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내 앨범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야 하는 거니까.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여전히 그때 거기에 있던 순간이 떠오른다.
정황을 모르고 듣기에도 정말 좋은 곡이다. 처음 듣는 순간부터 매료됐다.
우리 어머니도 그 곡을 제일 좋아한다. 늘 ‘그 노래에는 뭔가가 있다’고 하신다.(웃음)
<뽕> 앨범은 ‘나오기까지 7년이나 걸렸다’는 식으로 많이 회자된다. 그런 식의 표현이 좀 부담스럽지는 않나?
아까 얘기했다시피 너무 심각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좀 걱정되긴 하는데.(웃음) 그래도 7년 동안 그 앨범이 머릿속에서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매일 작업을 한 건 아니지만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과정은 7년간 계속됐던 거다. 처음에는 사실 내 앨범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건지도 헷갈렸고, 그래서 어디까지 깡 좋게 들어갈 수 있는지 한발 한발 뻗어보는 과정도 길었던 것 같고. 결국 지나고 보니까 그 정도의 시간을 써야 나올 수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뽕〉을 낸 후 한 인터뷰에서 가장 춤추기 좋은 음악은 약간 슬픈 음악인 것 같다고 했다. 감정적인 움직임이 있고 그 뒤에 리듬이 받쳐주는 게 이상적인 것 같다고. 이전에는 생각이 좀 달랐던 것 같다. 〈One Night Stand〉같은 작업물에서는 아무 감정적 동요도 없는 댄스 음악을 추구했다고 했다.
그때는 사운드 차원에서 귀를 찢고, 부수고, 파괴하고, 듣는 사람이 ‘와 나도 모르겠다’ 하고 느끼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뭔가 좀 감성적인 요소가 살짝 들어갔을 때 스스로 만족스러운 부분은 있었던 것 같다. 딜레마였지. 그런 거 안 할 거야. 그런데 그게 좋기는 좋아. 아냐 근데 안 할 거야…. ‘뽕’을 모티브로 앨범을 만들자고 했을 때 오케이 한 것 중에 그런 이유도 있었다. 안 하려고 했던 걸 이제 쏟아부으면 될 테니까.
〈One Night Stand〉는 현재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 내려간 상태다.
그 앨범(〈One Night Stand〉)은 이름을 따라갔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사실 지금 들어도 ‘아 그래도 내가 깡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앨범이긴 하다. 하지만 ‘그게 내 음악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더 강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이것저것 다 보여준 쇼케이스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제 와서 보면 나는 〈뽕〉이 그냥 250의 1집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이호형(250의 본명) 1집이라고 해도 될 것 같고.
최근에 250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건 넓은 스펙트럼의 측면도 큰 것 같다. <뽕>을 만든 이 뮤지션이 이센스나 김심야의 비트를 만들기도 했고, 국내 최정상 K팝 아이돌의 곡들을 작곡하기도 하는 트랙 메이커라는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됐으니까.
그냥 운이 너무 좋은 것 같다.(웃음) 요즘은 사실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나’ 싶은 느낌이 가장 크다.
겸허한 표현이지만 자칫 자기 곡에 자부심이 없어 보일 수도 있는 표현이다.
뭐랄까. 음악을 계속 하면서 특히 요즘 느끼는 건, 음악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는 작업이라는 거다. 자부심은 있지. 연계 플레이에 의한 속공 득점에 비유한다면 내가 골을 넣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그 골로 연결되는 패스는 그래도 내가 만든 거지 않나. 내가 공을 뺏어서 찔러준 건 잘한 거고 저 사람이 잘 받아서 잘 전달한 건 그 사람이 잘한 거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결과물이 나와서 뮤직비디오를 처음 봤을 때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이 곡이 이런 장소에 놓이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고. 요즘에는 다른 종류의 자신감,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도 좋아하는구나’ 하는 마음도 좀 생긴 것 같다.
하긴 아이돌 업계는 워낙 다양한 요소와 전문가들의 공동 작업이니까. 그런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 불만족스러웠던 적은 없을까?
그럴 수도 있지. (이)센스랑 작업했던 ‘비행’ 같은 경우는 마무리를 내가 했지만 다른 곡들도 내가 마무리까지 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그냥 음악을 담당한 거고 최종적으로 ‘이렇게 해서 냅시다’ 하는 건 내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결과물에서 ‘이건 아닌데’라고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 부분이야말로 진짜 운이 좋은 거다.
워낙 유순한 성격이라서 그런 건 아닐까?
근데 내가 또 아닌 건 죽었다 깨어나도 아닌 성격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안 하고. 그래서 뭔가를 내놓고서는 ‘이건 잘못됐다’고 생각할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정말 운이 좋은 거다. 그렇게 생각이 드는 뭔가가 있었다면 말렸을 것 같다.
7년의 결실이 담긴 <뽕>보다 트랙 메이킹만 한 다른 뮤지션의 곡으로 250이라는 사람이 더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없다. 워낙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아이돌 업계는 잘되면 완전히 ‘폭발’하는 영역이지 않나. 그에 비하면 내 앨범은 이런 느낌이다. 마스터링까지 끝내고 앨범 발매하기 전에 오랜만에 앨범을 풀로 들어봤는데, 그때 좋았다. 물론 앨범 발매 이후 반응이 좋아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뽕>에 대한 내 안의 결론은 그렇게 다시 돌려서 들어봤을 때 끝났던 것 같다. ‘이게 내 앨범이고, 나는 자랑스럽다. 좋다.’
그게 결론이라면 <뽕> 앨범은 ‘운이 좋았다’고 할 요소가 없는 온전한 성취인 셈이다. 모두 250의 노력과 고민의 결과니까.
<뽕>은 조금 더 내 거지. 예를 들어 트랙 작업으로 참여한 뮤지션의 결과물을 보면서 ‘내가 인생을 다시 살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뽕>은 정말 그럴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 ‘다시 태어나도 이 앨범은 나올 것 같은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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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오성윤
    PHOTOGRAPHER 이규원
    STYLIST 박선용
    HAIR & MAKEUP 김환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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