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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의 케케묵고도 가장 뜨거운 화두, 엘리트스포츠가 먼저인가 생활스포츠가 먼저인가

케케묵은 논쟁거리지만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화두. 엘리트스포츠가 먼저인가, 생활스포츠가 먼저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문가 모두 입을 모아 ‘이제 그런 질문을 그만 할 때’라고 말한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2.10.28
 
 
세계적 규모의 스포츠 이벤트를 앞둔 시기에는, 특히 거리 어딘가에서 흥분과 기대가 줄줄 흘러넘치는 듯한 뉘앙스의 광고를 맞닥뜨릴 때에는, 늘 언젠가 지인이 꺼냈던 서늘한 말을 떠올린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대한 예전 같은 사회적 열기는 이제 기대하기 힘들걸? 무엇보다 우리나라 스포츠 팀의 성적이 앞으로 쭉 하락세일 테니까.” 도쿄 올림픽 때 TV를 보던 지인이 무심결에 툭 던진 말이었다. 특정 종목의 성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스포츠 전체를 포괄하는 흐름이나 기조에 대한 견해였을 터. 그저 과한 애정을 품은 스포츠 팬의 흔한 사보타주적 태도(“우리 팀 망해라!”)이려나 싶었지만, 찾아보니 언론에서도 동일한 논지의 기사가 쏟아져 나와 있었다. 대다수의 기사가 꼽는 하락세의 원인은 ‘엘리트스포츠의 정책적 소외’였다. (엘리트스포츠란 소수의 엘리트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훈련시켜 국제 대회에서 메달 획득 가능성을 높이는 스포츠를 일컫는 용어로, 국민 전반의 스포츠 활동을 포괄하는 ‘생활스포츠’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도쿄 올림픽 폐막 당시 <경향신문>이 진행한 다자 인터뷰에서도 여러 체육 전문가가 저조한 성적은 국가 정책의 실패라는 견해를 펼쳤고(‘우리가 알던 그 올림픽은 끝났다’ <경향신문> 2021.8.14), 국제 대회 성적 비교를 넘어 급진적 정책이 엘리트스포츠의 근본부터 흩트리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다(‘학교 명문팀 ‘줄 해체’… 죽어가는 엘리트스포츠’ <경기일보> 2022.8.26). 최근에는 성백유 전 평창올림픽 조직위 대변인이 지난 정부의 지원 감소와 개입으로 엘리트스포츠가 추락하고 있다는 논지의 칼럼을 내기도 했다(‘추락한 한 엘리트스포츠… 그 뒤엔 문 정부 ‘정치 개입’ 있었다’ <중앙일보> 2022.9.22).
특히 성백유 전 평창올림픽 조직위 대변인의 칼럼은 지난 7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일본전 완패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가 교훈 사례로 내세운 건 바로 그 상대팀, 일본이었다. “1970년대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사회체육,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 저변 확대를 강조하면서 일반 대중의 엘리트체육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었다. 1984 LA 올림픽 7위, 1988 서울 올림픽 14위로 성적이 계속 부진했던 배경이다. 그랬던 일본이 2020 도쿄 올림픽 때 부활했다. 금메달 27개로 미국, 중국에 이어 다시 3위에 올랐다. 이게 가능했던 배경 역시 정책 변화에 있다. 일본은 1990년대 후반 국가 주도 엘리트체육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지원을 늘렸다.” 일본은 비슷한 논지의 기사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사례다. 일리가 있기는 하다. 2010년 일본 문부과학성이 내놓은 ‘스포츠 입국전략’은 ‘주니어부터 톱 레벨에 이르는 체계적 강화 체계 구축’ ‘주니어부터 은퇴 후까지 안심하며 경기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정비’ 등을 통해 세계 무대 입상과 메달 획득을 역대 최다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 천명했고, 2011년 제정된 ‘스포츠기본법’은 스포츠 입국전략 실현을 위해 ‘법제상, 재정상, 세제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계획을 명문화했다. 금전적 지원만 따져봐도, 2015년 문부과학성 산하에 스포츠청이 생기면서 ‘선수 경기력 향상 사업’ 예산이 40억 엔에서 100억 엔대로 뛰었고, 금메달 상금도 300만 엔에서 500만 엔으로 상향 조정됐다. 최근 일본 국가대표팀이 내놓는 실적은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다만 다른 관점도 있다. 2018년 아시안게임 당시, KBS는 일본의 선전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기초 종목 육성과 저변 확대 등을 위해 기존 엘리트스포츠 정책에 대한 근본적 변화’라고 봤다. 보도를 맡은 김기범 기자의 말에 따르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학교 체육 시스템과 지역사회에 단단히 뿌리내린 스포츠클럽 문화가 재도약의 발판이 됐다”는 것이다. 나는 곧장 김기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그 견해 차이가 어디에서 왔을까 하고. 그는 “기본적으로는 양쪽이 다 맞는 소리라고 본다”고 답했다.
“일본이 최근 들어 엘리트스포츠에 대대적인 투자를 한 건 맞죠. 하지만 그걸 ‘엘리트체육 위주의 정책으로 회귀했다’고 표현하는 건 호도에 가까운 이야기이지 않나 싶어요. 일본은 워낙 스포츠 기반이 탄탄한,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에 비견되는 스포츠 강국이니까요. 생활스포츠를 한 번도 놓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거죠.” 그는 전설적 고교 농구 만화 <슬램덩크> 이야기를 꺼냈다. 마지막 화에 북산고등학교의 서태웅이 주니어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북산고등학교 농구부는 운동을 본업으로 삼고자 하는 ‘엘리트스포츠’ 학생들을 위한 팀이었던 걸까? 아니면 첫 화에서 풍기는 뉘앙스대로 그저 방과 후 활동을 지원하는 동아리 개념의 ‘생활스포츠’ 팀일까? 김기범 기자의 답은 “그런 구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제가 일본 학교들 취재를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는 일반 고등학교에서 3학년까지 통틀어 70% 정도가 운동부 활동을 해요. ‘1인1기’라는 정책적 방향에 맞춰서 체육 활동, 나머지 20% 정도가 합주나 연극, 방송 같은 부활동을 하는 거죠. 그러다 거기서 한 번씩 강백호처럼 정말 잘하는 놈이 나오면 프로로 진출하고 국가대표가 되는 거고요.” 그는 스포츠 선진국이라 할 만한 곳들은 모두 마찬가지라고 했다. 생활스포츠의 저변 없이 엘리트스포츠에 갑자기 투자해서 잘된 사례는 찾기 힘들며, 오히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그런 구분조차 무의미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 전쟁 중인 거죠.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된 후로 줄곧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셈인데, 엘리트스포츠 쪽에서는 일본 같은 사례를 들고, 생활스포츠 쪽에서는 그들의 주장에 유리한 사례를 들며 프레임을 짜는 거라고 봐요.”
 
한국 스포츠계라고 그런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2016년, 엘리트스포츠의 총본산인 대한체육회와 생활스포츠의 총본산 국민생활체육회가 하나로 통합된 것도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인식 아래 성사된 일이었다. 다만 그렇게 하나로 통합한다고 해서 따로 돌던 톱니들이 착착 맞춰 돌아갈 리 만무했을 뿐이다. 김기범 기자는 오히려 그 때문에 이리도 해묵은 이슈가 이토록 첨예해진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지금 전쟁 중인 거죠. 통합된 후로 줄곧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셈인데, 엘리트스포츠 쪽에서는 일본 같은 사례를 들고, 생활스포츠 쪽에서는 그들의 주장에 유리한 사례를 들며 프레임을 짜는 거라고 봐요.” 그렇다면 언론 기사는 어째서 엘리트스포츠 쪽 주장이 대다수인 것처럼 보이는 걸까? “스포츠 기자들은 사실 엘리트스포츠 쪽에 치우쳐 있죠. 저희의 주요한 취재원과 출입처가 다 엘리트스포츠를 기반으로 하잖아요. 그쪽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저희가 다루는 스포츠라는 분야도 대부분 대한민국 스포츠인의 1%가 향유하는 스포츠, 프로스포츠니까요. 90%가 향유하는 분야인 생활스포츠에 대해서 자세히 취재해본 기자도 많지 않고 깊이 있는 고민도 별로 없죠.”
영국 러프버러대학교에서 스포츠사회학을 가르치는 탁민혁 교수 역시 유사한 견해를 내놓았다. 한국에서는 선수 출신이 중심을 이루는 ‘경기인’ 세력과 대체로 체육교육 배경을 가진 이들이 중심이 된 소위 ‘체육개혁’ 세력이 서로 반목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 각자의 주장을 위해 해외 사례가 자주 오독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 역시 일본만큼 엘리트스포츠지론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국가 중 하나다. 영국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로 종합순위 36위를 차지한 후 엘리트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폭발적으로 늘려왔다. 엘리트스포츠를 전담하는 ‘UK Sport’라는 기관을 발족했고 올림픽마다 2억3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금액을 투입한 결과 대표팀 순위는 껑충껑충 뛰어 결국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2위까지 차지했다. 엘리트스포츠 투자 효과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까? 탁민혁 교수는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엘리트스포츠’라고 할 때 지칭되는 범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직업선수가 되기 위한 진로에 오르는 순간부터 엘리트스포츠라 하죠. 반면 해외에서 엘리트스포츠는 첨단에 위치한 국가대표급 정도고, 그 아래는 경쟁 또는 퍼포먼스스포츠라고 부르죠. 그렇게 보면 영국이 국가대표급 선수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국제 대회에서 선전했다는 건 맞는 얘기예요. 반면에, 국가대표 이전 성장 단계에서 한국만큼 지원을 하느냐, 그렇게 보기는 힘들죠. 재능군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소위 풀뿌리라 부르는 단계는 어쨌든 여전히 클럽 같은 자발적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경기인 세력과 체육개혁 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이런 범주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해외의 성공 사례를 멋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경기인들은 엘리트스포츠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서 성공했다고 하고, 개혁인들은 저변이 넓어서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식으로. 그렇다면 해외에는 엘리트스포츠와 생활스포츠 사이의 갈등이 없을까? 줌 인터뷰로 얘기를 나누던 탁민혁 교수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잠시만요. 한국 체육계가 갖고 있는 프레임대로 생각하면 답을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좀 있는데, 이 답변을 하려면 먼저 그 상식부터 깨야 할 것 같아요.” 그가 보기에는, 가운데 아귀를 맞춰주면 잘 돌아갈 두 태엽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헛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 보수 정권일수록 엘리트스포츠로 조금 더 기울고, 진보 정권일수록 생활스포츠에 힘을 쏟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국가별로 양상과 정도가 조금씩 달라요. 한국의 경우는 과거 독재정권이 엘리트스포츠와 국제 대회의 성적을 강조하던 것에 대한 반발로 386들이 대안 스포츠나 학교에서의 스포츠 참여율을 높이는 정책 기조를 갖고 나왔죠. 그런데 그게 엘리트스포츠를 지탱하는 기존 제도들, 그러니까 대학입학 특혜라거나 병역면제, 연금제도, 선수촌 같은 것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면서 갈등이 심화된 거죠.” 한국의 스포츠계에 정치적 성격과 반목이 유독 심하다는 뜻이었다. 그는 해외 국가들의 경우 ‘보수는 엘리트스포츠, 진보는 생활스포츠’라는 단편적 시선으로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엘리트스포츠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좌우 없이 보편적인 자세가 되었죠. 스포츠 군비경쟁이라고 하잖아요. 다만 그 소수에 대한 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보적 내러티브를 만들고 실제로 기여한다는 게 한국과의 차이점이에요. 영연방 국가들뿐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나라들도 마찬가지예요. ‘올림픽 메달이 국민 통합에 기여한다’. 그냥 들으면 보수적인 얘기 같지만 이민자가 많은 다문화 환경에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선수들의 스포츠 참여를 보장하고, 활약을 선전하면 실제로 통합 효과가 있는 거죠. 노르웨이의 핸드볼처럼 엘리트 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들의 스포츠’로 종목을 브랜드화하고 보급을 늘린 경우도 있고요. 공공자원의 지원을 받는 만큼 생활스포츠 저변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고민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엘리트스포츠나 생활스포츠를 강조하는 데 있어 더 이상 정치적 성향은 없다고 봐요. 그런데 한국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죠.  엘리트스포츠지론자들은 궁지에 몰릴수록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만이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생활스포츠지론자들도 실효성과 설득력이 있는 대안보다는 개혁론 자체만 발달을 시켜온 것 같고요.”
 
 "계속 그렇게 흘러간다고 하면 이제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겠죠. ‘그렇게 해서 만드는 메달이 무슨 의미가 있지?’ 하고.” 
 
김기범 기자와 탁민혁 교수 모두 엘리트스포츠에 대한 정책적 소홀이 성적 저하를 불러왔다는 주장에 반박했다. (김기범 기자는 ‘도대체 어떤 부분을 등한시했다는 거냐’며 헛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뜻을 같이한 견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국내 생활스포츠 기조의 솔루션으로 제시된 ‘한국형 스포츠클럽 육성 사업’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동일했다. 한국형 스포츠클럽 육성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체육과학연구원이 유럽의 스포츠클럽 모델을 국내에 정착시키겠다는 취지로 2005년 시작해 작년 여름 ‘스포츠클럽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진 사업이다. 학교 체육부와 스포츠 동아리로 양분되어 있는 국내 스포츠 환경에서 재정 및 자원 지원을 통해 새로운 성격의 스포츠 조직을 양성하겠다는 것으로, 쉽게 말해 전국 곳곳에 시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공공 단체 성격의 스포츠클럽들을 만든다는 것이다. 모범사례로 꼽히는 독일의 경우 전국에 약 11만 개의 스포츠클럽이 있으며 전체 인구의 35%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클럽들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체육회와 종목별 경기연맹의 회원 단체이며, 수준별 리그 대회 등을 통해 독일올림픽체육회가 국가대표 선발과 각종 국제 대회 출전을 총괄한다. “독일 같은 경우에는 아주 어릴 때, 그게 운동인지 뭔지도 모를 때부터 스포츠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기술 같은 게 늘면 대회에도 한번 나가보고, 그러다가 얘가 좀 잘하는 것 같으면 전문적으로 테스트하고 교육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죠. 체력 측정이나 유전자 검사를 비롯해 여러 테스트를 해보고, 그 결과가 좋으면 집중 관리 대상이 돼요.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처럼 그때부터 밥 먹고 운동만 하게 하는 게 아니라 다시 그 애가 운동하던 클럽으로 보내요. 그렇게 공부도 시키고, 운동도 더 가르치고, 대회도 내보내고, 다른 클럽에 내보내서 다른 지도도 받아보게 하고. 국가대표가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요. 위계질서가 아주 잘 잡혀 있죠.” 전 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원으로 한국형 스포츠클럽 육성 사업을 디자인했던 충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남상우 교수의 설명이다. 이렇게 듣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시스템이 한국에도 고스란히 자리 잡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물론 단숨에 그런 문화까지 이식하지는 못했다. 김기범 기자는 국내 입시 현실과 보편적 인식에 부딪혀 애초에 의도했던 형태, ‘통합형’ 클럽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고, 탁민혁 교수 역시 ‘청소년 스포츠를 학교 관료제에 전적으로 위탁해온’ 국내 환경에 시민 사회가 자발적으로 이끌어가는 문화인 독일식 스포츠클럽을 이식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재미있는 건, 해당 사업을 디자인한 남상우 교수 역시 아쉬운 부분들을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굳이 묻지 않았는데도. “국내에서 국가대표나 우수 선수가 나오는 경로는 학교 운동부뿐이에요. 독점 모델인 거죠. 선수 입장에서는 한번 들어가면 가혹행위가 있어도, 본인과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참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되면 선수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되고, 학교 입장에서도 대안이 생기면 경쟁적으로 시스템도 발전시키고, 그렇게 시장도 커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의도치 않은 결과가 있었죠. 학교 입장에서 ‘그래, 저기서 전문 선수를 키우니 학교 운동부는 없애도 되겠네’ 하고 폐부를 시킨다든지. 반대로 ‘공공스포츠클럽’의 문제는 훌륭한 지도자가 유입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연봉도 높지 않고, 무엇보다 이 플랫폼이 아직 좀 불안해 보이니까요.” 자평하기로도 시행과 결과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은 정책이라는 뜻. 다만 그가 원하는 건 최소한 사람들이 이 정책의 기조를 좀 더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학교 운동부도, 스포츠 동호회도 다 스포츠클럽이에요. 운동부를 영어로 해보세요. 스포츠클럽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현실적으로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를 쭉 놓고 분석해보면 스포츠에 대한 접근성, 스포츠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이점이나 혜택에 불공평이 너무 커요. 시설들이 너무 고립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니까. 그래서 해당 정책의 요점은 학교 운동부든 동호회든 모두 ‘스포츠클럽’이라는 동일 범주로 끌어들여 공공화하자는 거였어요. 접근성에 대한 불균형을 없애고 좀 더 개방적으로 운영되도록. 의도했던 대로 흐르려면 당장 인프라도 더 형성돼야 하고 지역 체육회도 좀 더 역할을 해줘야 하겠지만요.”
남상우 교수와의 인터뷰 중에 소름이 돋은 순간이 있었다. 그가 무심코 이런 말을 했을 때.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예전보다 메달을 못 따는 상황이 적어도 한 10년은 더 갈 거라고 봐요.” 단순히 이 원고의 시발점이 되었던 지인의 비관적 견해와 동일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새로웠기 때문이다. “SPLISS 모델이라는 이론을 봐도, 국제 스포츠 대회의 성적을 결정짓는 요인에는 크게 9가지 기둥이 있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깊이 따지기는 귀찮고 또 자칫하면 내부 시스템을 욕하게 되는 꼴이 되니까 그냥 손쉽게 생활스포츠 정책 탓을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국가가 엘리트스포츠에 얼마나 지원을 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확실히 달라지는 건 맞아요. 많은 연구가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은 철저히 투자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거든요. (이 대목은 탁민혁 교수의 견해와도 동일했다.) 하지만 한국이 생활스포츠에 투자하느라 엘리트스포츠에 소홀했고, 그래서 성적이 나빠졌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그렇게 흔들릴 정도로 빠져나간 게 없으니까요.(이 대목은 김기범 기자의 견해와도 동일했다.) 문제는 한국이 메달을 따는 종목이 거의 정해져 있었다는 부분이죠. 양궁, 태권도, 쇼트트랙… 그런데 이 종목들이 세계화가 됐고, 한국의 걸출한 선수들이 다른 나라의 코치로 많이 가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전력이 평준화된 거예요. 진작 메달의 다양화 전략을 취했어야 했는데, 그건 토대부터 만들고 선수 육성부터 시작해야 하는 부분이니 이미 늦은 거죠. 지금 시작해도 10년은 넘게 걸릴 일이니까.”
실제로 국내 스포츠계는 인력 문제와 비인기 종목의 존속 위기 문제를 겪고 있다. 김기범 기자는 바로 그 부분이 지금껏 해오던 것처럼 엘리트스포츠에 투자만 해서는 성적을 내는 게 불가능한 이유라고 했다. “선수가 없어요. 옛날에야 빵하고 우유 준다고 운동하고 그랬지만 이제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특히 힘든 운동, 육상, 격투기 종목 같은 경우는 다 죽어가고 있는 거죠. 여자 배구나 여자 농구 이런 종목도 뉴스 한번 찾아보세요. 후보 선수가 없어서 부상당한 선수 두 명이 경기 중에 그냥 가만히 서 있기도 하고 그래요. 거기다 이제 인구 절벽 문제가 있죠. 예전에야 자녀 서너 명 중 한 명 정도 운동 시키고 그랬지만, 지금은 가구당 자녀가 한 명 아니면 무자녀인데 그런 아이한테 운동으로 조기에 승부를 보게 하는 식의 결정을 안 하려고 하잖아요. 선수들이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건 틀림없어요.”
탁민혁 교수의 견해는 좀 달랐다. 그는 선수 자원이 줄어도 소수에 대한 막대한 투자만 있다면 마지막 단계에서의 퍼포먼스는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한국이 지금까지 넓은 저변을 바탕으로 성적을 내온 건 아니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런 결과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별개의 문제라고도 했다. “생각해봐요. 계속 그렇게 흘러간다고 하면 이제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겠죠. ‘그렇게 해서 만드는 메달이 무슨 의미가 있지?’ 하고.” 그가 앞서 말했듯, 영국 스포츠협회들은 엘리트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위 선양 외의 다양한 선순환 내러티브를 만들고 있다. 그런 활동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어째서 막대한 세금이 몇 선수의 성공에 쓰여야 하지?’ 이 원고의 첫머리에 언급된 기사들을 찾아가 댓글을 읽어봐도 알겠지만, 국내에서는 실제로 그런 여론이 고개를 드는 중인 듯하다. 남상우 교수 역시 해당 흐름을 ‘시대가 변했다’는 말로 수긍했다. “TV 앞에서 침 튀기며 자국 선수를 응원하고, 금메달 더 따면 지지율이 올라가고, 이제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국위 선양은 BTS가 더 하고 있고, 한국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는 시대이니까. 국민들 수준 자체가 높아진 거죠. 세계화라는 부분도 있어요. 국내 시청자들이 해외 프로 리그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고, 유튜브나 OTT에도 재미있는 게 너무 많고, 그래서 올림픽에 예전만큼 관심을 쏟을 수 없는 거예요. 금메달을 몇 개 따든 성적이 어떻게 됐든.” 이들의 말이 맞다면 한국 스포츠 국가대표팀은 당분간 계속 국제무대에서 고전을 할 것이고, 국민들은 점점 더 왜 그 많은 세금이 메달에 쓰여야 하는지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자연히 ‘국제 대회 성적을 위해 국가가 좀 더 힘을 써야 한다’는 엘리트스포츠지론자들의 주장도 점점 힘을 잃을 것이다. 영국처럼 생활스포츠와 연계되는 탄탄한 내러티브라도 만들어 놓았다면 모를까. 하지만 지금 바로 방향을 전환한다고 해도, 과연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지금 한국의 스포츠계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두 생각이 달랐다. 남상우 교수는 한국의 스포츠 생태계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고, 탁민혁 교수는 해오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는 경기인 세력과 체육계를 갈아엎겠다는 체육개혁 세력이 갈등하는 사이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개별 스포츠를 육성할 전문성과 인력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김기범 기자는 무엇보다 공공스포츠를 위한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사실 국내에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스포츠 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에는 세 사람 모두 “전적으로 동의”했다. 인구가 이렇게 적은 나라가 200여 개 국가가 참여하는 올림픽에서 늘 10위권 안에 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GDP 순위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견 수긍할 수도 있는 부분. 하지만 그렇게 말하자면, GDP 순위에서 10위 정도를 하는 나라가 이렇게나 생활스포츠 기반이 없다는 건 좀 창피한 일이기도 하다. 탁민혁 교수는 ‘그건 이견의 여지가 없는 얘기’라고 운을 뗐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스포츠계 바깥에서 봤을 때의 얘기라고도 했다. “실제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고 들어가보면 그것도 굉장히 복잡한 문제죠. 일단은 어떤 크기, 어떤 형태의 시설을 어디에 지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는데, 사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은 지금도 알아서 건강 챙기고 운동 하잖아요. 그걸 공급하는 시장이 존재하고. 그런데 국가가 스포츠를 발전시킨다고 할 때는 계급, 성별, 지역, 장애 정도와 같이 스포츠 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정체성 지표들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으니까….” 줌 영상 속 탁민혁 교수는 다시 한번 관자놀이를 짚었다.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 게티이미지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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