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도로 위의 골칫거리로 여겨졌던 전동 킥보드가 사라지고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누군가 아무렇게나 던져둔 전동 킥보드와 갑자기 튀어나와 질주하는 일명 ‘킥라니’(킥보드+고라니) 때문에 불편함을 겪는 일이 잦았던 걸 떠올려보면 꽤나 급작스러운 변화다.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새 시대의 교통수단으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던 전동 킥보드는 미비한 인프라와 제대로 된 규제가 없는 상황 그리고 일부 이용자들의 인식 부족으로 악마화되고 말았다. 다수의 분노 끝에 몇 차례의 관련법이 개정에 개정을 거듭해 통과됐다.
현재 전동 킥보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운전면허가 반드시 필요하고, 안전모 착용도 의무다. 인도에서의 주행은 금지됐고, 자전거도로가 없으면 차도에서만 탈 수 있다. 서울시는 여기에 더해, 주차 공간이 아닌 지역에 세워진 킥보드는 사설 업체가 견인할 수 있도록 했다. 어쩐지 얼마 전부터 인도에 버려진 킥보드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차도에도 킥보드는 없지 않은가? 그 많던 전동 킥보드는 대체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나갔죠.” 전동 킥보드와 전기자전거 등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 PM) 관련해서 여러 건의 취재를 진행했던 모 언론사 소속 A기자(그는 회사 규정의 문제로 익명을 요구했다)의 말이다. “외국계 공유 킥보드 업체들이 우르르 한국에서 철수했어요.” 공유 킥보드 업계 세계 1위인 ‘라임’을 비롯해 ‘윈드’ ‘뉴런모빌리티’는 얼마 전 한국을 떠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만 공유 킥보드 업체 10여 개가 폐업했다. 이유는 뻔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라임’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된 후 이용자가 67% 급감했다. 아무리 세계 1위라 해도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주 바뀌는 규제와 이용자 감소 앞에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사라진 전동 킥보드의 자리는 전기자전거가 메우고 있다. 한국스마트이모빌리티협회에 따르면 한국 내 전기자전거 판매 대수는 지난해 10만7000대를 기록했다. 2018년에 고작 2만4000여 대 팔렸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다. “아무래도 경험해본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판매량도 늘어난 것 같아요.” 삼천리자전거 홍보팀 송치정 대리의 분석이다. “공유 자전거 서비스를 통해 전기자전거를 경험해본 사람들이 많아졌잖아요. 한 번 타보니 좋은 점이 많아서 그게 구입으로까지 이어지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체력적 부담이 덜하니 출퇴근 같은 간단한 이동에 좋죠. 또 일반 자전거로는 힘든 화물 운송이나 배달 등도 쉽게 할 수 있잖아요. 요즘은 레저 용도로도 많이 이용하고요.” 일반 자전거보다 힘이 덜 드는데 운동 목적의 ‘레저’로 활용이 가능한가 싶지만, 중년 이상의 연령대에서는 운동 기능도 충분히 충당한다고 한다.
공유 킥보드 업체 ‘킥고잉’은 재빨리 움직였다. 7월부터 전기자전거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였다. “자전거 서비스를 출시한 후 신규 가입자 수가 30% 이상 증가했어요. 여름이 성수기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늘어난 건 자전거 수요층이 반응을 했다고 봅니다.” 킥고잉을 운영하는 올룰로의 김솝 대외협력실장이 말했다. “전동 킥보드 이용자와는 별개의 소비자 층을 끌어들였다고 봐요. 전동 킥보드는 20대 이용자가 52%로 가장 많고, 30대가 23% 정도였거든요. 전기자전거 이용자는 10대가 21%나 돼요. 10대가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한정적인데, 면허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응이 온 것 같아요.” 중장년층이 전기자전거를 구입할 때 10대들은 공유 서비스를 이용한다. 확실히 전동 킥보드에 비해 다양한 연령에서 이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움직이기 시작한 건 킥고잉만은 아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1년여 사이 전기자전거 서비스 지역을 10곳에서 18곳으로 늘렸고, 공유 킥보드 업체 ‘씽씽’과 ‘더스윙’도 공유 전기자전거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 ‘지바이크’는 서비스 제공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자체 전기자전거를 개발 중이다.
아직은, 규제 프리
전기자전거는 전동 킥보드에 비해 비교적 무난하게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일단 우리에게 익숙하다. 누구나 자전거를 한 번쯤은 타봤을 것이다. 전기자전거라고 타는 방법이 다르지도 않다. 운행 방법뿐만 아니라 도로교통법상으로도 자전거로 분류돼 일반 자전거와 같은 규제가 적용된다. 면허도 필요 없고, 헬멧도 쓸 필요가 없다.
다만 종류에 따라 규제 적용이 갈린다. 일반 자전거와 같은 규제가 적용되는 건 페달을 밟아야만 모터가 움직이는 파스(PAS, Pedal Assist System) 방식의 전기자전거다. 페달링을 하지 않으면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 스로틀(throttle) 방식의 전기자전거는 페달링 없이도 움직인다. 사실상 오토바이다. 때문에 스로틀 방식이 적용된 전기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원동기로 간주된다. 운전면허가 필요하고 헬멧 착용도 필수다. 현재 한국의 공유 전기자전거 업체를 통해 탈 수 있는 제품은 모두 파스 방식이다.
파스 방식과 스로틀 방식이 결합된 전기자전거도 있다. 대체로 파스 방식에 스로틀이 추가된 형태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스로틀 방식으로 쳐요. 원동기로 분류되는 거죠.” A기자의 설명이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스로틀 방식은 법적으로 속도제한이 걸려 있어서 파스 방식 최고 속력인 25km/h 이상 속도를 내진 못해요. 자전거도로 이용도 가능하죠.”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전기자전거를 보며 파스 방식과 스로틀 방식을 한눈에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한 셈이다. 실제로 일부 전기자전거 커뮤니티에서는 ‘스로틀 단속에 걸리면 페달을 밟는 척하면 된다’는 꿀팁(?)들이 공유되고 있었다. 속도제한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일반 자전거의 평균속도는 15km/h다. 전기자전거의 최고 속력은 25km/h로 일반 자전거보다 훨씬 빠르고, 전동 킥보드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전기자전거도 킥보드처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전동 킥보드나 자전거 모두 자동차와 부딪히면 사람이 분리돼 튀어 올랐다가 머리가 먼저 부딪힐 위험성이 크다. 자전거 이용자도 헬멧 착용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해당 영상에는 찬성 댓글이 다수 달렸다.
해외에서는?
한국의 전기자전거 시장이 팽창 중이라고는 하지만, 세계적인 흐름에 비하면 티끌만 한 수준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가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세계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는 2019년 212억 달러 수준에서 올해 상반기까지 273억 달러로 커졌다. 열풍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에코 프렌들리’ 트렌드와 고유가, 코로나19로 인해 대중교통을 꺼리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 기간 동안 가장 크게 성장한 국가 중 대표는 프랑스다. 프랑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40%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두고, 자동차를 폐기하고 전기자전거를 구입하는 시민들에게 한화 약 500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줄 정도로 전기자전거 이용을 장려하고 있다. 규제는 한국과 비슷하다. 프랑스에서 파스 방식의 전기자전거는 자전거도로에서만 탈 수 있으며, 최고 속력은 무조건 25km/h로 제한된다. 스로틀 방식의 전기자전거는 오토바이로 간주돼 헬멧을 반드시 착용해야 하고, 면허도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같은데, 두 가지가 더 추가된다. 관공서에 등록해 번호판을 부착해야 하며 오토바이 보험에도 필수로 가입해야 한다.
독일은 조금 여유롭다. 독일에서 파스 방식의 최고 속력은 25km/h로 제한되지만, 스로틀 방식도 최고 속력을 6km/h로 설정하면 일반 자전거로 간주해 면허나 헬멧 없이도 이용할 수 있다. 일반적인 스로틀 방식 전기자전거의 최고 속도는 45km/h로 제한된다. 원동기로 취급돼 면허 취득, 헬멧 착용, 번호판 부착 모두 필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05%를 넘으면 음주운전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전기자전거 이용 시 음주 제한을 걸어둔 흔치 않은 케이스다.
미국과 캐나다는 주별로 헬멧 착용 여부나 면허 소지 등의 규정에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나, 기본적으로 파스와 스로틀 방식 모두 최고 속력을 32km/h로 제한한다는 점은 같다. 전기자전거 시장이 세계 최대 규모라고 추산되는 중국의 경우 파스든 스로틀이든 가리지 않고 무조건 등록제로 번호판을 부착해야 한다. 최고 속력은 25km/h를 넘길 수 없으며, 면허 소지도 필수. 대만은 오는 11월부터 등록제를 시행해 번호판 부착을 의무화한다. 최근 1년 사이 관련 사고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가장 안전해 보이는 규제는 코로나19 훨씬 전부터 전기자전거를 애용해온 일본이다. 일본 자전거진흥원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자전거 10대 중 6대가 전기자전거다. 역사가 긴 만큼 관련 법도 잘 마련돼 있다. 애초에 파스 방식만 전기자전거로 인정하며, 스로틀 방식은 스쿠터로 본다. 15km/h 이상의 속력을 내면 전력이 약해지고, 24km/h를 넘으면 전원이 꺼지도록 설계된 제품만 시장에 나올 수 있다. 면허가 필요하며, 등록제로 번호판을 반드시 부착해야 한다.
대부분 속도제한에서는 한국과 큰 차이가 없으며, 법적으로 파스 방식과 스로틀 방식을 각각 자전거와 원동기로 구분하는 것 역시 흡사하다. 한국의 규제가 해외에 비해 유독 엄격하거나 느슨하지는 않은 셈이다.
가장 한국적인 규제
해외라고 전기자전거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대만의 사례처럼 전기자전거가 늘어난 만큼 사고도 증가하고 있다. 세계에서 자전거 안전이 가장 우수한 국가라고 평가받는 네덜란드조차 전기자전거 보급률과 함께 사고가 늘었다. 네덜란드 이동수단 전문 연구 단체인 페일러헤이트NL(VeiligheidNL)에 따르면 2021년 전기자전거 탑승자 부상 사고 발생률은 36%에 달했다. 2015년의 19%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네덜란드는 전기자전거의 최고 속력을 25km/h로 제한한다는 점을 빼면 사실상 아무런 규제가 없다. 하지만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나오지 않는다. 네덜란드에 20여 년간 거주한 〈더버지〉의 토머스 리커 기자는 “네덜란드 행정부는 불필요한 규제가 자전거 이용자의 등을 돌리게 만든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그가 말한 ‘불필요한 규제’는 면허 소지나 번호판 부착 등이 아니라, ‘헬멧 착용’이다. “사람들이 전기자전거를 이용해야 환경문제가 해결되기에, 규제 때문에 전기자전거를 싫어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게 네덜란드 행정부의 입장이다. 페일러헤이트NL 역시 해당 보고서를 통해 규제 대신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사고를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전동 킥보드에 대한 현행 규제가 확정됐을 때 ‘킥라니’들을 향해 조소를 보내는 사람이 다수였으나 일부 전문가들은 PM에 대한 규제 일변도를 경계했다. “어차피 모든 교통수단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죠. 그렇다고 해서 다 금지시키진 않잖아요?” 한양대학교 교통물류학과 강경우 교수의 말이다. “금지가 아니라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장려해야 맞는 거죠.” 하지만 한국인들은 네덜란드인들처럼 사고가 늘어나는 게 눈에 보인다면 마냥 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한국의 전기자전거 규제는 어디를 모델 삼아 따라가는 게 좋을까.
“특별히 적합한 모델이 있다고 보진 않아요.” 송 대리의 말이다. “전기자전거도 그렇고, PM 자체가 이제 막 일상 속으로 들어왔잖아요. 다들 시행착오를 겪고 있어요. 각 국가별, 문화별 특수성을 고려해 각각의 법규가 자리 잡혀가는 거죠. 한국도 그렇고요.” 김 실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도로 환경도 다르고, 지형적인 특성도 다르죠. 외국과의 비교는 애초에 어려운 게 정부에서 엄청나게 밀어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는 프랑스를 예시로 들었다. “활성화를 위해 지원을 해주고 덕분에 크게 성장했잖아요. 다양한 정책 연구가 뒷받침됐고요. 그런데 우리는 별다른 분석이나 연구 없이 규제부터 이뤄져요. 아쉬운 부분이죠.”
도로교통공단은 아직 전기자전거 사고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조차 집계하고 있지 않다. 전동 킥보드 사고가 증가한 만큼 전기자전거 관련 사고도 늘어났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제대로 된 통계가 없으니, 전기자전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아직까진 전동 킥보드에 비해 덜해 보인다. 그러나 전동 킥보드처럼 ‘악의 축’ 취급을 받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시장이 막 성장 중인 벌써부터 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 이미 한국은 전동 킥보드에서 한 차례 ‘규제 일변도’로 대응해 시장을 축소시킨 경험이 있다. 과연, 전기자전거는 ‘한국적인 규제’를 뚫고 새 시대의 PM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