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스맨파> 리더 8명은 입을 모아 '진짜 춤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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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스맨파> 리더 8명은 입을 모아 '진짜 춤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춤의 혈전을 벌인 <스트릿 맨 파이터> 여덟이 다시 모였다. 어쩌면 진짜 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성윤 BY 오성윤 2022.12.19
 
(오천) 후드, 팬츠 모두 돌체앤가바나. (드기) 넥 워머, 블랙 재킷, 팬츠, 슈즈 모두 돌체앤가바나. (영제이) 스타디움 재킷, 화이트 상의, 쇼츠, 레깅스, 슈즈 모두 돌체앤가바나. (백구영) 하트 니트, 블랙 팬츠, 슈즈,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바타) 아우터, 티셔츠, 데님 팬츠, 슈즈 모두 돌체앤가바나. (트릭스) 아우터, 블랙 데님, 슈즈 모두 돌체앤가바나. (제이락) 블랙 재킷, 티셔츠, 쇼츠, 레깅스, 화이트 슈즈 모두 돌체앤가바나. (테드) 베스트, 로고 니트, 데님 점프슈트, 슈즈, 이어링 모두 돌체앤가바나.

(오천) 후드, 팬츠 모두 돌체앤가바나. (드기) 넥 워머, 블랙 재킷, 팬츠, 슈즈 모두 돌체앤가바나. (영제이) 스타디움 재킷, 화이트 상의, 쇼츠, 레깅스, 슈즈 모두 돌체앤가바나. (백구영) 하트 니트, 블랙 팬츠, 슈즈,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바타) 아우터, 티셔츠, 데님 팬츠, 슈즈 모두 돌체앤가바나. (트릭스) 아우터, 블랙 데님, 슈즈 모두 돌체앤가바나. (제이락) 블랙 재킷, 티셔츠, 쇼츠, 레깅스, 화이트 슈즈 모두 돌체앤가바나. (테드) 베스트, 로고 니트, 데님 점프슈트, 슈즈, 이어링 모두 돌체앤가바나.

재킷, 스커트, 화이트 팬츠,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재킷, 스커트, 화이트 팬츠,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EO-DDAE
테드
 
평소에는 좀 조용한 편인 것 같더라고요.
네. 팀원들이나 친구들이랑 있으면 그래도 조용한 편은 아닌데, 낯을 좀 가려요.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불편해한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상대방이 저에 대해 잘 모를 테니까 조심하는 거죠. 이런 인터뷰 경우에도 오히려 춤추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기도 하고요. 할 때는 괜찮은데 끝나고 나면 많이 지쳐요. 기가 빨린다고 해야 하나.
킹키, 콴즈 같은 분들을 팀원으로 두신 분이 인터뷰 정도로 기가 빨린다니, 신기하네요.
킹키 형도 저랑 비슷해요. 낯가림이 심하고 이런 인터뷰를 힘들어해요. 말을 제일 잘하는 친구는 콴즈고요. 걔는 말을 함으로써 기를 얻는 것 같고, 저나 킹키 형은 말을 좀 많이 하고 나면 충전이 필요하죠.(웃음) 무대 위에서는 다 쏟아내고 평소에는 좀 조용하고. 킹키 형이랑 저랑 덕이가 MBTI도 똑같아요. INFP.
어때가 INFP가 절반인 팀이었다니 놀라움의 연속이네요. 테드는 제가 생각하는 그 영화에서 따온 이름이 맞으려나요?
맞아요. 〈19 곰 테드〉. 테드라는 캐릭터를 보면 겉모습은 되게 귀엽고 아기 같은데 하는 건 말 그대로 딱 ‘19금’이잖아요. 저도 평소에는 이런 분위기인데 춤만 추면 반전이 있다고 해서 붙은 거죠. 외양도 좀 곰 같기도 하고.
굉장히 날렵하신데요. 아까 화보 촬영장에서 처음 뵀을 때 얼굴도 너무 작아서 놀랐어요.
살을 좀 뺐어요. 방송 보니까 뺄 수밖에 없더라고요.(웃음) 저는 평균 체형인데 저희 팀에 마른 친구들이 많다 보니까 감량을 좀 해야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겠다 싶어서, 한약을 먹었습니다.
(웃음) 솔직한 말이네요. 한약을 먹었다.
(몸을 앞으로 숙이며) 나름 노력한…. 노력하는 느낌 아닌가요? “팀을 위해 한약을 먹었다.” 별로면 그냥 다이어트를 했다고 써주셔도 되고요.(웃음) 제가 또 굶으면서 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저는 먹으면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스맨파〉를 보면서 테드 씨가 한 ‘행복’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오래 남았어요. 뮤즈 미션 셀프캠 때 ‘내일 어떻게 공연 하실 거냐’ 물으니까 이렇게 답했죠. “행복하게.”
그런 말을 했었나요, 제가?(웃음) 워낙 그런 성격인 것 같아요. 남이 저한테 하는 실수는 비교적 잘 받아들이는 편인데, 제가 남에게 실수했다 싶으면 그날 집에 가서 잠을 못 자거든요. 다 같이 힘든 상황인데 리더라는 사람이 멤버들을 더 힘들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상황이 생기는 게 싫어서 저희는 애초에 서로 상처를 주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별로다’라는 표현을 절대 하지 않기로. 저희끼리 뭉쳐 있지 않으면 〈스맨파〉에 나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때가 추는 춤을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적절할지도 궁금했어요. 출전 팀들을 소개하는 〈비 더 스맨파〉에서는 ‘걸리시’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본편에서는 ‘젠더리스’라고 한 것 같고, 또 ‘코레오 재즈’라는 표현도 나왔어요.
저희 안무 자체가 미국 LA에서 들어온 문화인데요. 문제는 한국의 특성이 꼭 그런 걸 규정하고 정리하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걸리시’라든가 ‘젠더리스’라든가 하는 단어가 나오는 건데, 사실 LA에는 그런 표현이 없어요. 그냥 ‘테드가 짠 안무’ ‘킹키가 짠 안무’인 거예요. 코레오를 하는 사람들인데 음악을 듣는 취향, 음악을 듣는 귀가 좀 다를 뿐인 거죠. 다들 좋아하는 옷이 다르고 음식 취향이 다르듯이 좋아하는 음악도 다르잖아요. 저희는 남자들이 잘 선택하지 않았던 음악을 많이 듣고, 성별에 대한 구분 없이 춤을 출 뿐인 거예요.
특정한 장르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편견을 강화하는 시선인 거군요.
실제로 해외에는 ‘걸리시’라는 장르도 존재하지 않거든요. ‘매니시’라는 장르가 없는 것처럼. 그런데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웨이브를 하면 갑자기 여자 춤이 되어버리는 거죠. 저희가 많이 보면서 롤 모델로 삼은 건 해외 팝 가수들의 백업댄서들이 추는 방식이었어요. 비욘세라거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제니퍼 로페즈… 그런 분들의 댄서들을 보면 무용이랑 재즈에 기반을 두고 춤을 춘 분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정리하면, 저희는 그냥 코레오를 하는 사람들인데 재즈나 펑크 재즈 기반의 노래를 좋아하니까 ‘펑크 재즈’ 정도로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어때가 〈스맨파〉에 출전한 건 우승이 목표가 아니라 무대를 많이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 했어요.
네. 솔직히 저희 춤에 대한 선입견이 댄서들 사이에서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남성 댄서가 우리 안무를 하기 싫어했고, 본인들이 할 수 없는 춤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춤에는 남자 여자 구분이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우리 같은 장르를 하는 댄서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간 거였어요.
팀 소개 때 원밀리언의 최영준 씨는 어때의 영상을 처음 보고 “나는 이런 거 불편해서 못 보겠다”고 했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뮤즈 미션 때는 어때의 무대를 보고 웃으면서 거의 탄식을 했어요. “와, 너무 잘해!” 하면서. 그 장면에서 저한테도 찌릿한 느낌이 있었어요. 어때가 하고 있는 일이 단순히 멋지고 재미있는 경연 프로그램보다 더 큰일이구나 싶어서.
(웃음) 그래서 저도 그날 무대에서 울었죠. 힘들었지만 우리가 이렇게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격스러웠고, 우리 춤이 뭐라고 함께 해주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너무 감동적이었고요. 제가 무대에서 운 게 그때가 난생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저한테도 〈스맨파〉가 참 신기한 경험으로 남아 있어요.
 
아우터, 톱, 팬츠, 슈즈 모두 돌체앤가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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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E KINGZ
트릭스
 
오늘 촬영 장소가 좀 특이한데, ‘트릭스TV(트릭스의 유튜브 채널)’ 촬영은 안 하시나요?
그러면 좋았을 텐데요. 뭘 만들려면 유튜브 채널 제작진들이랑 미리 소통을해야 해서요. 그분들도 바쁘시니까.
그렇군요. 저는 ‘귀엽지 않음?ㅋㅋㅋㅋㅋㅋ’ 영상(트릭스 버전의 ‘쌔삥’ 안무 첫 공개 당시를 본인이 직접 올린 영상)을 보면서 좀 유연하게 운영되는 채널인 줄 알았어요.
그때까지는 좀 프리하게 했어요. 최근에 제작진들과 함께하게 됐죠. 좀 체계적으로 운영하려고. 그런데 또 반응을 보니까 그 영상(‘귀엽지 않음?ㅋㅋㅋㅋㅋㅋ’)처럼 제가 직접 편집해서 올리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아재 감성이라고. 그래서 앞으로도 좀 섞어서 하려고요. 체계적으로 올리기도 하고, 그러다 제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그냥 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아재 느낌보다 채널이 가진 태도에서 트릭스라는 사람의 인간적 매력이 잘 묻어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게 ‘기분이 째져’(트릭스의 앙증맞은 안무 때문에 밈이 된 ‘쌔삥’의 파트)의 덕이 큰 것 같아요. 크럼프라는 장르가 좀 세 보이기도 하고 제가 타투도 많잖아요. 배틀을 할 때면 제가 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1화 나갔을 때는 좀 안 좋게 보신 분들도 있더라고요. ‘저 친구는 왜 저렇게 자뻑이 심하냐’ ‘예의 없어 보인다’ 하고. 그런데 두 번째 미션에서 그런 안무를 하니까 한 방이 있었던 거죠. 반전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쟤는 챔피언인데도 자기 걸 내려놓고 저렇게 하는구나’ 생각도 했을 것 같고요.
이 얘기를 어떻게 완곡하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프라임킹즈가 〈스맨파〉의 첫 탈락 팀이었잖아요.
아,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당시에는 아무래도 힘들었겠죠.
그렇죠.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죠. 무엇보다 스포일러를 하면 안 되니까요. 다들 “잘하고 있어요?” 묻는데 이미 탈락한 지 3주 지났는데도 계속 하고 있는 척해야 하고. 탈락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다들 “〈스맨파〉 촬영 때문에 힘들죠?” 그러고.(웃음)
(웃음) 트릭스 씨의 탈락 당시 코멘트도 좀 한 맺힌 듯한 내용이긴 했어요.
여러 감정이 몰아쳤어요. 슬프고, 아쉽고,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사실 방송에는 안 나왔는데 제가 무대 뒤로 잠깐 나가기도 했거든요. 아예 멘털이 나가버려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이자’ 다 같이 다짐하고 나갔는데도 그랬어요.
지금 다시 소감을 말한다면 좀 다른 얘기를 하게 되겠죠?
그렇죠. 방송을 보면서 ‘이렇게 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하고 피드백이 됐으니까요. 감정적인 부분도 이제 다 나았고, 많은 분이 멋있다고 응원도 해주셨고. 〈스맨파〉는 저희에게 진짜 큰 경험이었어요. 최정상 안무 팀들을 보면서 그들이 어떻게 디렉팅을 하고,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습득을 하고, 어떻게 퍼포밍을 하는지 배울 수 있었잖아요. 그래서 탈락할 때도 우리 팀이 떨어지는 게 아쉬운 것보다, 이분들의 춤을 더 못 본다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크럼프라는 장르를 알리는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 춤에 대해 좀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매력적인 문화가 뒷받침되어 있는 줄은 몰랐으니까요.
굉장히 매력적인 춤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사실 크럼프가 1990년대 후반에 인종차별로 인한 흑인 폭동 때 만들어진 춤이거든요. 그래서 다른 스트리트 댄스 장르들과는 다르게 음악에 딱딱 떨어지지 않는 측면이 있어요. 그것보다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자유를 위한 춤’인 거예요. 언뜻 보면 ‘분노의 춤’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사실 자유, 투지, 분노, 여러 가지 자기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춤이고, 그래서 ‘필링 댄스’라고 부르기도 해요.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해볼 수 있는 춤이기도 하고요. 저는 크럼프를 출 때마다 항상 죽을 것 같거든요. 제 자신과 계속 싸우는 거죠. 그 쾌감이 좋아서 크럼프를 못 놓는 것도 있어요. 나와의 싸움에서 계속 한계를 넘게 되니까.
트릭스와 프라임킹즈는 이미 세계 최정상이고, 〈스맨파〉 전까지는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들어왔잖아요.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요?
사실 제가 프라임킹즈로 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실행에 옮긴 건 많지 않아요. 늘 여러 사정이 생겨서. 그런데 이제는 많은 분이 응원해주시니까 그걸 풀어보고 싶어요. 일단 지금 생각하는 건 삼일절, 광복절, 크리스마스 이런 기념일에 맞춰서 콘셉트 비디오를 만드는 거예요. 크럼핑으로. 그리고 제 개인적인 목표는 내년 세계대회에 나가는 거고요.
세계대회에는 계속 참가하는군요.
사실 제가 내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 체력적인 요인도 있고, 워낙 부상도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에 함께 술을 마시던 지인이 그러더라고요. “그냥 계속하면 안 돼요? 트릭스가 계속해야 진짜 멋있을 것 같아요.” 그때 소름이 돋았어요. ‘그러게, 나는 왜 이걸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 왜 내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하는 걸 한 번만 하려고 했지?’ 그래서 지금은 또 고민 중이에요. 가능성을 열어두는 거죠. 어쨌든 지금 목표는 내년 세계대회에 다시 도전하는 겁니다.
 
후드 티, 팬츠, 슈즈, 링,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후드 티, 팬츠, 슈즈, 링,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BANK TWO BROTHERS
제이락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스맨파〉에서 뱅크 투 브라더스(이하 뱅크투)는 유독 다른 바이브를 뽐냈어요. ‘우리는 평화를 사랑해’ 같은 분위기였죠.
(웃음) 그렇게 보인 건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일단 저희 팀이 원래 그래요. 힙합이 자유로운 걸 추구하는 장르라 더 그런 걸 수도 있어요.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예요. 저희는 촬영 직전까지도 출연 확정이 나지 않았어요. 8개 팀 중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셈이에요. 그러다 보니 초반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타게 됐죠.
힙합이라는 커다란 문화 안에서 뱅크투가 추구하는 힙합은 어떤 모습인가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힙합을 추구해요. 어둡고 무거운 것 말고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팀이 되려고 해요. 무거운 건 저희랑 맞지 않아요.
메가 크루 미션 때 다른 힙합 댄서들과 뭉쳐서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게 의미 깊다는 말을 했어요. 뒤집어 말하면 힙합 신이 잘 뭉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려요.
이게 좀 ‘라떼’ 이야기라 조심스럽긴 한데, 힙합 댄스 신이 변화를 몇 번 겪었어요. 처음엔 특정한 몇몇 팀이 군림하던 시기가 있었죠. 그걸 깨려고 한 게 제 또래 친구들이었어요. 결국 군림하던 팀은 사라지고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하는 시대가 왔죠. 근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그렇게 전부 개인주의가 되고 나니까 다시 뭉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물론 예전에 뭉치던 것과 지금 뭉치는 건 분위기가 완전 달라요. 왜 사람도 억지로 모아놓는 거랑 자발적으로 모이는 거랑 마음가짐부터 다르잖아요. 요새 다른 신 댄서들이 저희를 부러워한다고 들었어요. 결국 자기 자랑이긴 하지만, 그래서 저는 힙합이 정말 좋습니다.(웃음)
힙합 사랑 잘 알겠습니다.(웃음) 처음 힙합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지는데요?
자유로움 때문이죠. 어제도 공연을 했는데 무대가 끝나고 발레리나 한 분이 “발레는 정해진 박자와 동작, 표현이 정확히 있는데 힙합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보여요. 그럼 도대체 연습을 어떻게 하나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길에서도 하고 공원에서도 합니다. 개개인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무브가 전부 연습이자 무기이거든요”라고 답해드렸죠. 사실 저도 학생 때 저스트절크처럼 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스타일의 춤을 배운 적이 있어요. 스파르타식으로 배워서 그런지 나중엔 춤이 싫어지더라고요. 그때 프리스타일 힙합을 접했고 눈이 번쩍 뜨였어요.
잠시 춤을 그만둔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비보잉도 하고 코레오도 하고 힙합도 하고 이것저것 다 했죠. 그러다 서른 살쯤 갑자기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20년 가까이 춤을 췄는데 이룬 것도 없어 보이고 막막하고 막 그런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아쳤어요. 결국 춤을 그만둬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무작정 여행을 떠났어요. 전 세계를 6개월 정도 정처 없이 떠돌았죠. 그렇게 정말 밑바닥을 찍고 나니까 다시 정신이 들었어요. 마음을 다잡는 데 명상이 큰 도움이 됐고요.
배틀 하기 전 싱잉볼을 두드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기믹인가 싶을 정도로요.
(웃음) 평소에도 연습하기 전이나 후에 되도록이면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요. 여행할 때 처음 명상을 접했는데 이게 힙합이랑 은근 잘 어울리는 부분이 있거든요. 자유롭게 끼를 발산한 만큼 차분한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스맨파〉에서 처음으로 안무 시안을 짜봤다고 했어요. 혹시 기회가 생긴다면 안무를 만들어서 함께 무대를 꾸며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글쎄요, 처음 받는 질문이라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한데… 1990년대 데뷔했는데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가 떠오르네요. 비나 이효리 같은 분들이요. 예전 노래랑 안무를 가져와서 요즘 스타일로 살짝 손보면 굉장히 멋있을 것 같아요. 저희가 잘하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만약 〈스맨파〉 시즌 2가 열린다면 다시 나갈 건가요?
무조건 나가죠.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솔직히 예전엔 방송에서 춤추는 걸 좀 부정적으로 본 적도 있어요. 진짜 춤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근데 〈스맨파〉를 겪어보고 나니 이건 방송이라기보다 하나의 새로운 씬 같아요. 서바이벌이라는 포맷이 분명 스트레스를 주긴 하지만 또 거기서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있거든요. 이런 게 ‘방송의 맛’인가 봐요.(웃음)
 
옐로 톱,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옐로 톱,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MBITIOUS
오천
 
엠비셔스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글쎄요, 저도 궁금한데요.(웃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직 없어요. 〈비 엠비셔스〉랑 〈스맨파〉를 연달아 하면서 다들 고생 많이 했죠. 그만큼 빨리 친해졌고요. 다들 재능 있는 친구들이라 뭘 해도 빛을 발할 거예요.
오래전부터 합을 맞춰온 다른 팀과 달리 엠비셔스는 오디션을 통해 뽑힌 팀이죠. 팀 색깔을 만들어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약간 삐걱거리는 게 매력이죠. 굳이 표현하자면, 스트리트와 코레오의 비율이 7대3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멤버들이 서로서로 양보를 많이 했어요. 리더로서 제가 처음 취했던 태도 역시 배려였고요. 리더가 될 때도 저는 맡고 싶지 않았어요. 부담스러운 자리인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근데 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형이 해야죠”라고 해서 피할 구석이 없었어요.
방송 출연을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해요. 오천은 방송에 나오지 않아도 이미 ‘댄서들의 댄서’로 불리고 있었으니까요.
춤을 시작한 지 15년 정도 됐어요. (전라도)광주에서 ‘빛고을 댄서스’라는 팀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 행사나 공연을 하려고 할 때 자꾸 벽에 부딪히더라고요. 배틀에서 수십 번 우승한 경력은 댄서나 관계자들한테만 유효하지 일반인들에겐 그저 먼 나라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죠. 오죽하면 가족들조차 “넌 언제 방송에 나오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방송 출연을 결심했던 것 같아요. “힘들더라도 한번 도전해봤으면 좋겠어”라고 응원해준 빛고을 멤버들에게도 정말 고마워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배틀 대회 이력이 화려해요. 비결이 있나요?
처음엔 독기였어요. 고향이 곡성이거든요. 춤은 광주에서 배웠고요. 서울에 와보니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일부러 텃세를 부리거나 배척을 했던 건 아닌데 그냥 저한테 너무 낯선 환경이었어요. 대회에 가도 덩그러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죠. 그래서 춤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지더라도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는데 그게 먹혔던 것 같아요.
고향이 곡성인 줄 몰랐어요.
곡성군 옥과면 설옥리입니다. 하루에 버스 네 번 지나가는 정말 시골이었어요. 전체 가구가 70가구도 안 됐죠. 하루는 TV를 켰는데 예능 프로그램에서 ‘댄스 신고식’ 같은 걸 하더라고요.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무작정 따라 했어요. 그 후로 광주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춤을 배웠고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광주로 거주지를 옮겼죠.
타 지역에서 서울로 올라온 댄서는 많지만, 오천처럼 꾸준히 원래 살던 곳에 애착을 가진 경우는 드물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거창한 이유는 없고요. 제가 겪은 고민이나 시행착오를 동생들은 좀 덜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려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반드시 서울로 가지 않더라도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빛고을을 주축으로 열리는 ‘라인업’이라는 힙합 댄스 페스티벌을 발전시켜 지역 축제로 자리 잡게 한다면 오히려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오는 일도 가능하다고 봐요. 그렇게 되길 바라고요.
BTS 제이홉과 인연이 있다는 건 뭐예요?
(웃음) 아 그건 정말 별거 아니에요. 인연이라고 하기에도 좀 민망한데 예전에 배틀을 한 적이 있어요. BTS로 데뷔하기 한참 전 이야기예요. 선배들이 제이홉을 엄청 칭찬하길래 괜히 마음속으로 ‘쟤는 내가 이긴다’ 같은 질투를 했었어요. 그 후 한참을 못 보다가 MAMA 어워즈에서 마주쳤는데 저를 기억하고 먼저 인사를 하더라고요. 너무 좋았습니다.
〈스맨파〉 이후 들은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요?
“드디어 우리가 추는 춤이 방송에 나갔다”라는 말이요. 그동안 춤을 주제로 한 방송도 여럿 있었고 음악 프로그램도 많았지만, 진짜 스트리트나 힙합 댄서들이 추는 춤이 제대로 방송에 소개된 적은 거의 없었거든요. 〈스맨파〉를 통해 비로소 우리가 어떤 춤을 추고 어떤 사람인지 알릴 수 있어서 뿌듯해요. 앞으로도 춤으로 좋은 영향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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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춤의 혈전을 벌인 〈스맨파〉리더 8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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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ASHION EDITOR 최아름
    FEATURES EDITOR 오성윤/박호준
    PHOTOGRAPHER 박현구
    STYLIST 신상철
    HAIR 박희승/장윤나
    MAKEUP 김신영/안세영
    ASSISTANT 신유림/신동윤/유승현/송채연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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