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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가 20대 중 독보적인 인물인 이유

프로필 by 박세회 2022.12.23
 

LEE YOUNGJI

이영지는 재능과 매력만으로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마지막 증거다. 아주 오래전엔 강남 나이트클럽에서 잘 놀던 형 누나들이 종종 TV에 나오는 인생을 살곤 했다. 그 수많은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이름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잘생긴 오빠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청춘의 상징이 됐고, 동네에서 끼 많은 걸로 유명하던 누나가 핑클이 됐다. 이제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스타는 티타늄처럼 단단한 시스템 안에서만 만들어진다. 스타가 되려면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소속사의 문을 두드려야 하고, 몇 년이고 기숙학교에 다니듯 데뷔를 준비해야 한다. 그 처절하고 철저한 트랙을 예능으로 보여주려다 입시 결정권자가 비리를 지른 게 바로 <프로듀스 101>이 아닌가? 나는 안준영과 엠넷이 저지른 비리마저도 현실을 모사한 디테일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데뷔를 했다고 모두가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멤버들의 실력과 매력 밖에 수많은 조건이 작동한다. 대부분은 소속사의 능력이다. A&R 팀의 기획력, 마케팅 능력, 팬덤 조성 능력 등등. <에스콰이어>에서 인터뷰를 위해 수많은 아이돌을 만났다. 막상 만나보면 정말이지 눈이 부실 만큼 착하고, 순하고, 완벽한 노력형의 모범생인 경우가 많다. 왜 아니겠는가? 태어나면서부터 외모와 재능을 겸비한 사람들이 대학입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노력과 끈기로 그 모든 과정을 버텨야만 올라설 수 있는 자리니까. 김종민 씨나 하하 씨가 2022년 데뷔해서 성공적인 연예계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그 경로가 배우나 아이돌 데뷔는 절대 아닐 것이다. 배우가 되는 시스템도 공고해졌다. 아이돌 출신 혹은 소속사가 캐스팅한 20대의 어린 배우들이 하이틴 드라마나 웹 드라마 작품 몇 개에 얼굴을 비추고 반응이 좋아야 그 이력으로 프라임타임 작품 조연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이제 배우가 되기 위해 대학로 극단의 문을 두드리는 이도, 가수가 되기 위해 인디밴드를 하려는 사람도 없다. 힙합에서도 스타가 되려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멘토나 프로듀서로 활약한 사람의 레이블에 들어가 바이럴을 일으켜야 한다. 결국 이 모든 시스템이 가진 메시지는 이것이다. 아무리 너의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아무리 네가 매력적이라도, 윤종신이, 박진영이, 더콰이엇이, 박재범이, 민희진이, 김은희가 너를 선택해주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너의 재능과 매력만으론 아무것도 될 수 없다. 그것, 네가 가진 재능과 노력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며 흔하디흔한 것이다. 나는 방금 내가 호명한 이들이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다 보니 정상을 벗어난 이레귤러가 좀처럼 태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메시지를 극화한 것이 <쇼미더머니>의 그 악명 높은 마이크 선택이 아닐까? 이영지는 이 모든 걸 뚫고 슈퍼노바처럼 장렬하게 불타오르고 있다. 랩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고등래퍼> 시즌3에 출연해 우승을 거머쥔 이영지는 아이돌과 하이틴 배우를 제외하고, TV에 고정 패널로 나오는 거의 유일한 20대다. 그는 <고등래퍼>에서 우승한 뒤에도 하이어뮤직이나 일레네어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가 계약한 소속사엔 한동안 아티스트가 이영지뿐이었다. <굿걸>에서 Mnet의 장녀로 이름을 굳혔고, <차린 건 없지만>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자 30만이 넘는 채널로 키웠는가 싶더니 채널 소유자와의 갈등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그 후 그딴 채널 따윈 필요 없다는 듯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라는 새로운 채널을 차리고 그 몇 배에 달하는 200만 팔로워를 모은 사건은 마치 기성세대에게 ‘니들이 주는 마이크 따윈 필요 없어’라는 선언처럼 보였다. 유재석 씨와 그의 프로그램이 예능 유망주라며 치켜세워줬지만, 영지는 예능 황제의 간택으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신만의 매력으로 지금의 자리를 차지했다. 최근 <쇼미더머니 11>에 이영지가 출연했을 때, 그녀를 향한 비판이 있었다. ‘예능이나 하지’ ‘너 때문에 내 자리가 사라지잖아’ ‘Mnet이 설계한 우승자’ 등이다. 그러나 지난 화까지 이영지보다 더 멋진 랩을 보여준 사람이 있었나? 글쎄, 잘 모르겠다. 던말릭 정도? 이 글을 쓰는 다음 날인 12월 16일, 이영지와 던말릭의 1 대 1 퍼포먼스 대결이 있다. 지난 2020년 8월 이영지 씨를 만나 청담동 인근 스튜디오에서 화보를 찍었다. 촬영이 끝나고 2층의 쪽방에서 그녀를 인터뷰하며 “목소리 크기가 너무 궁금한데 랩 한 소절만 해주세요”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딱 두 마디를 뱉었는데, 소리를 듣고 덜컹하고 심장이 흔들렸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래층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난 그때 내가 들은 목소리와 그녀의 당당함을 믿는다. 물론 던말릭도 파이팅. 

Credit

  • EDITOR 박세회
  • ILLUSTRATOR KASIQ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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