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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집을 거니는 듯한 감흥을 선사하는 세계의 가옥 박물관들

주인이 이미 떠나고 없는,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가 사는 양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는, 아름다운 저택을 거니는 감흥에 대하여.

프로필 by 오성윤 2023.02.11
12월 아침의 가회동에서는 꼭 설날 아침 같은 정취가 풍겼다. 휘발유 냄새 섞인 차가운 공기라든가, 낯설면서도 어딘지 그리운 느낌이 나는 골목 풍경이라든가. 행선지가 백인제가옥인 탓도 있었을 것이다. 북촌박물관 뒤편으로, 한옥들로 그득한 오르막길을 지나 큰 돌담이 나오면 그 오른쪽 한구석이 백인제가옥의 입구다.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가 잠시 주춤거리자 학예사가 나와 기다렸던 손님을 대하듯 맞이했다. 그녀를 따라 중문으로 들어서자 펼쳐진 건 방문자를 감싸듯 ㄷ자 모양으로 늘어선 안채 건물이었다. 그 외관은 언뜻 전형적인 한옥인 듯 독특한 면이 있었다. 틈틈이 서양식 벽돌이 섞여 있었고, 한지 대신 유리가 들어간 창호문에는 고풍스러운 문양의 섀시가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학예사는 먼저 신발을 벗고 들어섰다. 내려다보니 학예사가 벗어놓은 신발은 삼선 슬리퍼였고, 그 옆에 놓인 항아리에는 목제 구둣주걱 두 개가 꽂혀 있었다. 문화재이기에 예의 바른 손님처럼 조심히 들어서려 했지만 한 발씩 들여놓을 때마다 대청마루에서는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백인제가옥은 여러 측면에서 특별한 집이다. 대중에 개방된 서울의 전통가옥 중 가장 큰 공간이고(윤보선 가옥이 가장 크지만 후손들이 기거하고 있어 일반인이 관람할 수 없다), 한옥을 기반으로 근대적 변화를 수용한 독특한 양식을 띠고 있으며, 무엇보다 ‘생가’의 의미가 지극히 옅다. 서울백병원 설립자 백인제 선생의 이름을 갖고 있으나, 그의 업적을 기려 터를 보존했다기보다 건축물의 가치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되고 난 후 해당 가옥의 마지막 소유주였던 백인제 선생의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 쪽이 더 정확하다. 백인제가옥을 둘러볼 때 느낄 수 있는 감흥이 원서동 고희동가옥이나 계동 배렴가옥에서의 감흥과 다른 것은 이런 차이점들이 응축된 결과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백인제가옥은 왜 이렇게 시대가 혼재되어 있느냐고. 어떤 건 조선시대 때 있었을 법한 가구인데, 또 어떤 건 너무 현대적인 가구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 가옥은 만들어진 당시인 1913년부터 1970년대까지 계속 사람들이 살았던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특정한 시대를 표현하기보다 한옥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거예요.” 함께 사랑채를 돌아볼 때, 김성룡 학예장이 설명했다.
백인제가옥 Seoul, Korea -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개화기 한옥 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한옥. 서울역사박물관 산하 분관으로, 특정 인물을 기리거나 특정 시대를 박제하기보다 ‘시대에 따른 공간의 변화’에 주목하는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덕분에 영화 <암살>부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까지 다양한 시대상의 작품에 배경으로 쓰이기도 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가옥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관람 해설 예약이 필요하다.

백인제가옥 Seoul, Korea -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개화기 한옥 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한옥. 서울역사박물관 산하 분관으로, 특정 인물을 기리거나 특정 시대를 박제하기보다 ‘시대에 따른 공간의 변화’에 주목하는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덕분에 영화 <암살>부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까지 다양한 시대상의 작품에 배경으로 쓰이기도 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가옥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관람 해설 예약이 필요하다.

백인제가옥 Seoul, Korea

백인제가옥 Seoul, Korea

백인제가옥을 처음 지은 것은 이완용의 외조카이자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다. 친일파였던 그는 일본 관리들을 초대할 일이 많았고, 한국 중부지방 한옥을 기본으로 서양과 일본의 건축 요소를 다채롭게 받아들여 집을 설계했다. 특히 사랑채는 건축에 식견이 없는 누구라도 확연히 기묘함을 느낄 만하다. 그나마 익숙한 한옥 구조인 안채 대청마루에서 좁고 기다란 일본식 복도로 연결되어, 어느 순간 눈앞에 개화기 목조주택의 응접실 같은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안채에는 벽장과 다락이 나란히 조성되어 있기도 하고, 사랑채 한편에서는 다다미가 깔린 다락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독특한 내력은 학예사들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줬던 것 같다. 안방 툇간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자개 장식 머릿장과 미드센추리풍 코너장이라거나, 꼭 백자를 ‘폴리곤화’한 것처럼 생긴 십이각 화병이라거나. 아무래도 그런 걸 다른 유적지에서 본 기억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쯤에서 주지할 사실이 있다. 이 기사는 한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에 대한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안채의 사방탁자에 놓인 십이각 화병에 대한 것이다. 유적지를 떠돌다 그런 물건을 마주했을 때 찾아오는 묘한 감각에 대한 이야기. 미국 주 및 지역 역사 협회(AASLH)의 운영부장 베타니 호킨스는 ‘가옥 박물관이 방문자들로 하여금 마치 집에 온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저는 우리들이 역사에 대한 사명과 엄격한 컬렉팅 정책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적 주택을 얼어붙게 했고 결과적으로 방문자와 장소 사이의 연결점에 장벽을 건설했다고 믿습니다.” 그녀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이런 것들이다. 시설이 해당 건물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역사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연구를 할 것. 시대를 혼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방문자가 과거와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건물에서 살았던 모든 인물을 이야기에 포함시킬 것. 그 건물이 가진 역사의 어두운 부분도 스스럼 없이 드러낼 것. 흥미로운 건, 백인제가옥의 김성룡 학예장은 AASLH나 베타니 호킨스의 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아주 흡사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백인제가옥에는 백인제 박사를 소개하는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궁극적으로 이 시설이 전통 한옥이 근대로 넘어오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시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후로 다양한 가족들이 살면서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예를 들어 저 유리문도 원래 한상룡이 처음 지었을 때는 전통 한지를 썼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중간에 불이 한 번 났었고, 보수하는 과정에서 전부 유리로 갈아 끼운 거예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화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인 거죠.”
존 소안 박물관 London, UK - 18세기 영국의 유명 건축가였던 존 소안의 저택. 3개 건물을 사들여 직접 재건축하고 내부를 꾸몄으며, 사후에 박물관으로 쓰이도록 하는 조치도 본인이 직접 했다. 존 소안은 광적인 수집가로, 이집트 파라오의 석관부터 현대 건축물 모형에 이르기까지 3만 점에 달하는 귀중품을 만날 수 있다. 유언대로 그의 사망 시점 그대로 무엇 하나 바꾸지 않고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예약이 필요 없고 입장도 무료지만 시설 관리를 위해 방문객 수를 제한한다. ⓒ Gareth Gardner / Sir John Soane’s Museum

존 소안 박물관 London, UK - 18세기 영국의 유명 건축가였던 존 소안의 저택. 3개 건물을 사들여 직접 재건축하고 내부를 꾸몄으며, 사후에 박물관으로 쓰이도록 하는 조치도 본인이 직접 했다. 존 소안은 광적인 수집가로, 이집트 파라오의 석관부터 현대 건축물 모형에 이르기까지 3만 점에 달하는 귀중품을 만날 수 있다. 유언대로 그의 사망 시점 그대로 무엇 하나 바꾸지 않고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예약이 필요 없고 입장도 무료지만 시설 관리를 위해 방문객 수를 제한한다. ⓒ Gareth Gardner / Sir John Soane’s Museum

존 소안 박물관 London, UK ⓒ Gareth Gardner / Sir John Soane’s Museum

존 소안 박물관 London, UK ⓒ Gareth Gardner / Sir John Soane’s Museum

베타니 호킨스는 AASLH 이전에 오클랜드 맨션이라는 시설에서 일했다. 오클랜드는 남북전쟁의 중요 무대고, 그녀는 일하는 내내 늘 그곳이 해당 키워드에 경도되어 박제된 것이 안타까웠다는데, 2022년 초에 다시 방문하고서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천장에는 그곳에 살았던 마지막 가족의 후손이 기증한 유리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고, 그 집을 거친 다양한 시대의 가족들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장벽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글을 쓴 것은 그때 느낀 묘한 감각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시대의 혼재만이 오래된 집과 방문객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방편일까? 런던의 존 소안 박물관 같은 곳이 좋은 반례다. 이 저택의 주인이었던 존 소안은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로열 아카데미의 건축학 교수까지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며, 영국은행까지 건축한 위인이다. 하지만 존 소안 박물관 역시 ‘생가’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곳이 박물관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존 소안 본인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진귀한 물건들을 사들인 컬렉터였고, 자신이 죽으면 집을 박물관으로 헌납하는 대신 본인 사망 당시 배치된 그대로 영구히 보존할 것을 주문했다. 탄생 비화도 독특하지만 박물관 내부는 더하다. 그의 집은 3개 주택이 붙은 형태지만 그래도 그의 방대한 컬렉션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3만 점에 달하는 수집품이 선반과 벽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림 작품을 더 많이 수납하고 감상하기 위해 고안한 문처럼 여닫을 수 있는 ‘레이어 벽’이나 그리스 석상을 냉장고 마그넷처럼 다닥다닥 붙여놓은 난간에 이르면 황홀해해야 할지 그로테스크하게 여겨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그가 용도에 맞게 고쳐낸 집 안 곳곳의 디테일은 또 어떻고. 그야말로 호기심의 방, ‘분더카머(wunderkammer)’라 할 만하다. 다양한 시대상과 인간 군상이 한데 뒤엉킨 저택만큼이나, 그렇듯 한 사람의 지극히 개별적인 취향을 총망라한 저택도 오묘한 감흥을 선사한다.
프릭 컬렉션 New York, USA - 미국의 전설적 사업가 헨리 프릭의 맨션을 개조해 만든 갤러리. 30세 때 이미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던 헨리 프릭은 13세기부터 19세기 작품까지 폭넓고 방대한 미술품을 수집했다. 하지만 실상 소장품보다 유명한 건 로마네스크 양식의 실내 정원 ‘가든 코트’다. 2021년부터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가 매디슨 애비뉴의 마르셀 브로이어에서 소장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공간은 2024년 다시 개관할 예정이다. ⓒ Michael Bodycomb / The Frick Collection

프릭 컬렉션 New York, USA - 미국의 전설적 사업가 헨리 프릭의 맨션을 개조해 만든 갤러리. 30세 때 이미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던 헨리 프릭은 13세기부터 19세기 작품까지 폭넓고 방대한 미술품을 수집했다. 하지만 실상 소장품보다 유명한 건 로마네스크 양식의 실내 정원 ‘가든 코트’다. 2021년부터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가 매디슨 애비뉴의 마르셀 브로이어에서 소장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공간은 2024년 다시 개관할 예정이다. ⓒ Michael Bodycomb / The Frick Collection

오스트리아의 갤러리 W&K는 그저 공간의 힘만으로 그런 경험이 가능하다고 믿기도 한다. 이들은 18세기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대저택 팰리스 쇤보른 바티야니(Palais Schonborn-Batthyany) 일부 구역을 빌려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을 열었는데, 그 이유가 ‘해당 공간에 배어 있는 영속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였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해당 저택의 주요 용도는 쇤보른 가문의 가구와 미술품 컬렉션을 저장해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1만8000여 개의 당시 미술품은 전쟁으로 소실되거나 판매되어 이미 모두 사라졌지만 W&K 갤러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가 이 공간에 남았다고 생각했다. “갤러리 입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유연하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중립적이고 다양하게 적응할 수 있는 화이트 공간이 유리하죠. 그래서 W&K에서는 그런 공간도 운영하고 있고요. 반면에 이 공간에서는 세심하게 앙상블을 맞춘 전시를 열고, 3~4개월 동안 지속해요.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하는데,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흥미진진하죠. 헤리티지와 모던 아트가 만나 독특한 대화를 만들어내거든요.” W&K 갤러리의 큐레이터 아이린 메코벡의 설명이었다. 그녀는 다음 전시를 준비 중이라 미술품이 아직 설치 중인 갤러리에 흔쾌히 이국의 잡지 에디터를 초대했고, 심지어 ‘천천히 둘러보라’며 나가버렸다. 바로크 시대의 기운과 현대미술 작품이 이상한 대화를 나눈다는 표현이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꽤나 적절한 묘사였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그 안을 거니는 동안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점점 희미해지고 오직 감각에 인지를 맡기게 되었으니까. 그것이 그녀가 말한 영속성과 동일한 개념인지는 몰라도, 놀라운 일이었다. 세상에 이런 종류의 에고 트립이 가능한 갤러리가 있다니.
W&K 팰리스 Wien, Austria - 오스트리아의 갤러리 W&K에서 연 전시 공간. 1699년부터 1706년까지 지어진 대저택 팰리스 쇤보른 바티야니에 위치해 있는데, 갤러리 운영은 화이트 큐브에 가깝게 재단장된 공간에서 하며, 당대 바로크 양식을 고스란히 살린 전시실에서는 3~4개월 지속되는 현대미술 전시를 연다. 같은 건물 내에서 바로크 클래식 콘서트홀인 비너 바로크 오케스트라도 만날 수 있다. ⓒ W&K- Wienerroither&Kohlbacher, Vienna, Austria

W&K 팰리스 Wien, Austria - 오스트리아의 갤러리 W&K에서 연 전시 공간. 1699년부터 1706년까지 지어진 대저택 팰리스 쇤보른 바티야니에 위치해 있는데, 갤러리 운영은 화이트 큐브에 가깝게 재단장된 공간에서 하며, 당대 바로크 양식을 고스란히 살린 전시실에서는 3~4개월 지속되는 현대미술 전시를 연다. 같은 건물 내에서 바로크 클래식 콘서트홀인 비너 바로크 오케스트라도 만날 수 있다. ⓒ W&K- Wienerroither&Kohlbacher, Vienna, Austria

국제박물관협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뮤지엄 인터내셔널>의 2001년 발표 논문 ‘역사적 가옥 박물관(Historic house museums)’에 따르면, 셰리 부처 영한스라는 저술가는 일찍이 가옥 박물관을 크게 세 종류로 구분했다. 역사 속의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포착하는 ‘다큐멘터리 가옥 박물관’, 특정 삶의 방식을 대변하는 ‘대표성 성격의 가옥 박물관’, 말 그대로 역사와 별 관련 없는 개인적 컬렉션을 아우르는 ‘미학적 가옥 박물관’. 하지만 논문의 저자인 로잔나 파보니는 이 중 마지막 항목의 분류를 회의했는데, ‘가옥 박물관은 무결성을 추구함으로 인해 사회적, 정치적 중요 지점에 대한 기념비’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학적 가옥 박물관’은 가옥 박물관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저 ‘미학적 가옥’일 뿐. 맞는 말이다. 우리는 점점 많은 것이 테마 파크가 되는 시류에 저항하고 박물관과 미술관 같은 공간의 완고함을 지켜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다소 불경하게도, 그녀의 말에서 어떤 종류의 철없는 반가움을 느끼기도 했다. ‘미학적 가옥 박물관’이 아니라 ‘미학적 가옥’일 뿐이라는 말에서. 세상에는 우리가 아무런 학구적 자세 없이 돌아볼 수 있는, 잘 관리된, 그저 아름다운 가옥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에 부합하는 전 세계의 가옥 박물관 중 몇 공간을 이 지면에 소개한다. 사진으로나마, 이 막연한 남의 집들이 안기는 감동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뮤제오 델 로만티시스모 Madrid, Spain - 낭만주의 시대 상류 부르주아의 일상과 풍습을 재현한 박물관. 1779년에 지어진 후 다양한 인물의 저택으로 활용되다 왕립 관광 위원회의 본부가 되었다. 스페인은 오래된 가옥을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데에 익숙한 나라로, 박물관은 무려 1924년에 개관했다. 자연히 오랜 세월 여러 번의 복원을 거쳤으나 특유의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는 평을 받는다. ⓒ Javier Rodriguez Barrera / Museo Nacional del Romanticismo

뮤제오 델 로만티시스모 Madrid, Spain - 낭만주의 시대 상류 부르주아의 일상과 풍습을 재현한 박물관. 1779년에 지어진 후 다양한 인물의 저택으로 활용되다 왕립 관광 위원회의 본부가 되었다. 스페인은 오래된 가옥을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데에 익숙한 나라로, 박물관은 무려 1924년에 개관했다. 자연히 오랜 세월 여러 번의 복원을 거쳤으나 특유의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는 평을 받는다. ⓒ Javier Rodriguez Barrera / Museo Nacional del Romanticismo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박기훈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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