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정성일은 <더 글로리>의 하도영이라는 캐릭터가, 그리고 정성일이라는 배우가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라고 했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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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정성일은 <더 글로리>의 하도영이라는 캐릭터가, 그리고 정성일이라는 배우가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라고 했다

<더 글로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정성일은 말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지만 동시에 행복한 것은 행복한 것, 지금 이 성취와 영광의 시간은 누구의 것도 아닌 꼭 자신의 것이라고도 했다.

오성윤 BY 오성윤 2023.02.10
 
블랙 재킷 알렉산더 맥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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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친절하시네요.
아, 그런가요?
네. 촬영하는 동안 저도 포토그래퍼도 찍으면서 계속 영감이 샘솟아서 이것저것 가능할지 여쭸는데, 난처한 기색 한 번 안 하셨잖아요. 담배를 피워달라고 하든, 춤을 춰달라고 하든, 머리를 완전히 헝클어뜨려달라고 하든요.
저도 워낙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서요. 여러 가지 권해주셔서 잘 나올 수 있으면 해봐야죠. 어떻게 보면 당연한 부분이고요. 다 일인데.
당연한 부분이군요. 딱히 친절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까탈스럽지는 않아서요.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뭐든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화를 내기도 해요?
그럼요. 화를 내죠. 예의나 기본, 그런 부분에는 제가 좀 예민하거든요. 오늘 같은 경우는 시안을 전달해주실 때부터 미리 어떤 걸 해보고 싶다고 세세히 말씀해주셨잖아요. 그런데 기본적인 부분이 지켜지지 않고 선을 넘는 분위기라면 저도 마냥 좋게 받아들이지는 않죠. 만약 누군가 자신이 직급이 더 높다고 해서 초면에 반말을 한다. 그러면 저는 똑같이 대해야 직성이 풀려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재킷, 실크 셔츠, 팬츠, 슈즈, 네크리스, 브레이슬릿, 링 모두 돌체앤가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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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좋아하시잖아요. 게임이 안 풀리는 경우는 어떨까요? 예를 들어 골프를 치는데 당연히 넣어야 할 퍼팅마다 절묘하게 비껴간다거나.
(웃음) 그럴 때는 그냥 웃어요. “아오~” 하면서. 어쨌든 골프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자고 치는 거잖아요. 물론 그렇게 출발했지만 잘 안 풀리면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죠. 그럼 저는 그런 사람들과는 같이 치기가 좀 꺼려지더라고요. 제가 운동에 대한 승부욕은 있지만 뭐든 좀 재미있게 하려는 편이에요. 일이건 운동이건 사람을 만나건 이왕이면 다 같이 웃으면 좋겠다는 주의죠. 같이 웃다 보면 일도 재미있게 하게 되잖아요. 살다 보면 스트레스받을 일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그런 데서까지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잖아요.
타고난 성격이 그런 걸까요, 아니면 세월을 거치며 변한 걸까요?
좀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일에 욕심이 많다 보니 마음처럼 안 되면 화도 났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즐기면서 했던 것들이 더 효율적인 것 같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깨닫게 되니까 항상 밝은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고,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생기니까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밝은 사람이고 싶다' 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고요. 같이 일하고, 같이 다니는 사람들과는 이왕이면 함께 매일매일 웃으면 좋겠어요.
배우의 예민함과 치열함, 높은 기준점이 결과물에 끼치는 좋은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장단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을 생각해보면 예민하고 치열한 만큼 분명히 조금 더 깊이 팠던 부분은 있어요. 하지만 깊은 대신 그만큼 좀 딱딱했달까요. 지금은 그때만큼 깊지는 않더라도 좀 넓게 보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죠.
얼굴에서도 그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성일 씨 옛날 사진을 보면서 생김새는 그대로인데 인상이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맞아요. 잘 늙은 것 같아요 저는. 나이를 잘 먹어가는 것 같아요.
우와. 방금 묘한 감동이 있었어요. 제가 ‘나는 나이를 잘 먹어가는 것 같다'고 말하는 어른을 처음 보나 봐요.
(웃음) 그래요?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더 불안해지기 쉽잖아요.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내게 남은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저는 오히려 젊었을 때가 더 불안했어요. 어쨌든 잘돼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 빨리 성공하고 싶었고요.
젊었을 때는 워낙 스스로를 몰아붙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셨을 것 같고요.
네.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 있었죠. (정성일은 할머니 손에 컸으며, 할머니가 쓰러진 후로는 누나와 함께 봉양과 살림을 도맡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 그런데 30대 중반을 지나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겼던 것 같아요. 불안한 순간이야 늘 있었지만, 뭐랄까 ‘내가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구나' ‘그렇다면 기회가 왔을 때 내가 더 편하게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달까요. 가장 큰 기점은 무엇보다 결혼이었고요. 다들 그래요. 제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로 굉장히 유해졌다고요.
어릴 때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다고 했죠?
네. 무엇보다 연기를 잘하고 싶었어요. 잘하고 싶으니까 연기 잘하는 형님들에게 물었죠. 어떻게 해야 연기를 잘할 수 있느냐고. “나이가 들다 보면 경험이 쌓이고, 어느 날 네가 그냥 느끼는 날이 올 거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빨리 나이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고….(웃음) 참 순진했죠.
만약 후배가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정성일은 어떻게 답할까요?
와… (질문이) 진짜 어렵다. 사실 저는 아직도 형들한테 묻거든요. 연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연기가 정말 갈수록 어려워요. 그래서 저도 공연하면서 계속 공부하고, 연기 잘하는 사람을 계속 봐요. 만약 젊은 후배가 묻는다면 저는 가감 없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겠어. 나한테도 끝도 없고 답도 없는 질문인 것 같아.”
 
재킷, 팬츠 모두 발렌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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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셔츠, 팬츠, 슈즈 모두 발렌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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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이라는 배우는 노력파인가요?
네, 철저히. 저는 제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좀 일찍 깨달았던 것 같아요. 외모가 엄청 뛰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살아남으려면 실력을 쌓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좀 슬픈 말일지 몰라도, 연기는 노력과 실력이 꼭 비례하는 분야는 아니잖아요.
저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제 고향이 대구인데, 사투리도 노력해서 고쳤거든요. 연기도 내가 노력한 만큼 분명히 느는 것 같고요. 시간이 지나고 돌아봐도 ‘내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한 만큼 분명히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물론 어떤 말씀인지는 알아요. 타고난 사람들이 있죠. 구교환 씨 같은 배우. 물론 전공까지 하면서 연기 공부를 하신 걸로 알지만 연기를 보면 정말 ‘날것'처럼 하잖아요. 그런 천재 같은 배우들이 있긴 한데, 저랑은 좀 거리가 멀죠.
‘나와는 다른 천재들' 얘기를 하시면서 그렇게 웃는 게 인상 깊네요. 안타까워하긴커녕 오히려 행복해 보여서요.
(웃음) 저는 연기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신기해요. ‘어떻게 저런 걸 저렇게 표현하지' 싶고, ‘저렇게 하는 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걸 느끼게 하는구나' 계속 배우게 되기도 하잖아요. 자극이 되죠. 신선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단순히, 제가 연기 잘하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더 글로리〉 파트1 공개 후에 송혜교 씨 연기를 보고 바로 송혜교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고도 했죠. ‘대박이다, 너' 그랬다고 했던가요?
‘미쳤다, 너.’(웃음) 그랬죠. 그런데 〈더 글로리〉는 배우들이 정말 다들 대단해요. 왜 작품 보신 분들이 어디 한 군데 구멍이 없다고 얘기해주시잖아요. 정말 그래요. 혜란이 누나(염혜란 배우)는 대학로 공연할 때부터 워낙 유명했지만 이번에 보면서 ‘이 누나는 도대체 뭐지'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웃겼다 울렸다 하지' 또 새삼 놀라웠고. 지연이(임지연 배우)도 너무 잘했고. 제가 직접 못 만난 배우들 중에도 연기를 정말 잘한 분들이 많았죠. 다들 치열하게 준비해오고 현장에서 그 이상을 내놓고 가니까 현장이 그야말로 전쟁터였어요.
그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행복하게 웃고 계셨군요. ‘와, 미쳤다' 하면서.
맞아요. ‘와’ 하고 있었죠. 제 거 보면서는 ‘아….’ 이러고, 또 다른 사람들 보면서 ‘와' 하고.(웃음)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사실 하도영이라는 캐릭터와 정성일이라는 배우는 〈더 글로리〉 파트1에서 가장 주목받은 사람들이죠.
저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작가님이 너무 잘 써주셨고 감독님이 잘 찍어주셨던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스태프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어딜 가든 스태프들이 정말 고생이 많아요.
하도영의 경우는 대본으로 처음 접했을 때 정말 어려운 캐릭터였을 것 같다고 느꼈어요. 타인에게 냉담하고 모든 게 자기중심인 사람 같다가도 아내와 딸에게는 또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고, 한없이 꼿꼿한 사람 같다가도 한순간의 호기심에 마음을 쏟아버리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 모든 걸 말이 되도록 납득시키고 매력적으로 보여준 배우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어요. 일단 ‘나이스한 개새끼’라는 게 어떤 건지 선뜻 다가오지 않았죠. 그래서 감독님과 얘기도 정말 많이 했고. 그러다 어떤 장면을 읽으면서 명확하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비 오는 날 하도영이 운전기사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선물 받은 고가 와인을 기사더러 그냥 당신 갖고 가라고 하고, 기사가 부담스러워하니까 ‘뭐가 문제냐'며 말을 함부로 하는. ‘이게 바로 나이스한 개새끼야' 하고 작가님이 아예 써놓으셨던 거죠.
본인 나름대로 타인에 대한 호의와 합리성을 갖고 있지만, 그 모든 게 강한 특권의식 위에 자리 잡은 인물이라는 걸 효과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죠.
특권의식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좋은 사람이고, 어떻게 보면 개새끼고. 그런 양면성이 공존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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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오성윤
    PHOTOGRAPHER 김형상
    STYLIST 이영표
    HAIR & MAKEUP 장해인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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