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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 수첩> PD가 희대의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
‘현실판 오징어 게임’이라 불리며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피지컬: 100>의 ‘프런트맨’을 만났다. MBC 다큐팀 소속인 장호기 PD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은둔형 관종.’ 무엇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가 배어 있지만, 또 한편 그 기저에는 열망이 그득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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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100>이 이렇게 호응을 얻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상상은 했죠. 다들 꿈은 많이 꾸잖아요.(웃음) 넷플릭스에서 제작하게 됐으니 반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렇게까지 많이 봐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희가 한국 시장도 중요하지만 국내 유명인을 잘 모르는 해외에서도 보기 좋도록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려한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유효했다고 생각했죠. (온라인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피지컬: 100>은 2월 8일 기준 넷플릭스 TV 쇼 부문 순위에서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피지컬: 100>은 아주 간단한 질문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죠. ‘완벽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
제가 운동을 좋아해요. 또 군 복무를 특공대에서 했는데, 그런 데에 가보면 몸으로는 어디 가서 안 밀린다는 사람들이 많이 오거든요. 유도 선수, 축구 선수, 트레이너, 보디빌더…. 그래서 서로 자존심 싸움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뭔가 가르쳐주기도 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죠. 힘들었지만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그러다 최근에 그런 측면이 현재의 시류와 버무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코로나 이슈 이후에 건강, 운동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고 보디 프로필 같은 유행도 생겼으니까요.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다니는 헬스장에 ‘베스트 바디 챌린지’ 이런 게 있는 걸 보고 좀 구체화됐고요. 성별, 나이 구분 없이 등수대로 사진이 쫙 걸려 있으니까 궁금하더라고요. ‘대체 이걸 어떤 기준으로 매긴 걸까’ 하고요.
저는 <피지컬: 100>이 몸을 다루는 방식에서 격세지감을 느꼈어요. 획일화된 ‘멋진 몸’ ‘힘 센 몸’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몸의 복합적인 기능을 말하고자 한 것 같아서요.
사실 저도 한동안은 ‘강력한 피지컬’이라는 키워드에 꽂혀 있었어요. 그러다가 ‘강력하다’는 게 너무 구시대적인 것 아닌가, 하나의 방향성만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완벽한 피지컬’로 고쳤죠. 그렇게 하고 보니 근육질의 거대한 남성만이 아닌 여러 형태의 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확장된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몸에 대한 달라진 관점을 다루고, 몸에 대한 여러 편견에 부딪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고요.
세 번째 퀘스트였던 1.5t 배끌기 미션에서 조진형 & 추성훈 팀이 대기실에 서 있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면에서는 감탄이 나오기도 했어요. 거구의 스트롱맨 대회 선수부터 야생동물 같은 몸의 격투기 선수, 날렵한 복싱 선수, 체구가 굉장히 작은 스턴트 배우, 마르고 길쭉한 백인 야구 선수까지, 정말 다양한 몸이 뒤섞여 있었잖아요.
그게 제가 진짜 바랐던 모습이거든요. 그냥 딱 봐도 강해 보이는 사람들을 잔뜩 모아놓는 게 아니라 다양한 피지컬이 모여 있는, 마치 ‘작은 지구’처럼 보이는 모습이요. 저희가 제시하는 퀘스트들에 대해 출연자들이 여러 요소를 고민하기 시작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런 어떤 종류의 밸런스를 가진 집합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저도 ‘이거 재미있다’ ‘내가 봐도 재미있다’ 했죠.
그래도 남녀 혼성이라는 조건을 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거기에 맞춰 형평성이 있도록 게임을 다 설계하고 하나하나 첨예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했을 테니까요.
고민을 많이 했죠. 처음 기획할 때는 남성편, 여성편, 혼성편 이렇게 나눠서 해볼까도 했는데, 키워드가 전환되면서 정리가 되더라고요. ‘완벽한 피지컬을 찾아 탐구해본다고 해놓고 여성을 제외하는 게 말이 돼?’ 그때 마침 제가 레슬링 선수 장은실 씨가 남자 선수와 스파링하는 영상을 보게 되면서, 혼성도 충분히 얘기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기도 했고요.
남자들만 모여서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이렇게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았겠죠. 치열하게 고민한 만큼 훨씬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불편하게 보는 분들도 있죠. 남성과 여성의 몸에서 오는 유불리에 대한 이해나 시각에 따라 그럴 수도 있잖아요. 저희는 성별 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기조 아래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방영 이후 몇 가지 논란이 있었거든요. 해당 사안에 대한, 몸에 대한 시선은 워낙 다양해서 제가 하나로 포용해서 말하기가 쉽지 않아요. 어쨌든 우리는 기획 의도로 돌아가서, 그것들이 그저 ‘완벽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서 나오는 장면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진행한 거죠.
논란을 부를 거라는 게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편집을 안 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도 있었어요.
저희가 사람들을 초대해 함부로 상황을 발생시키고 무리하게 반응을 촬영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프로들을 모셔서 대등한 조건에서 경기를 치르도록 하는 거고, 그분들도 그런 측면에 동의한 상태에서 정말 다들 최선을 다했고, 이후에도 서로 응원하며 좋은 분위기로 끝났던 거죠. 그런 경기를 두고 논란이 될 것 같으니까 우리가 선제적으로 편집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생각해볼 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우리가 생각해왔던 ‘남성성’ ‘여성성’에 대해 좀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
저는 <피지컬: 100>이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은 촬영이라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 퀘스트인 공 뺏기 게임만 해도 그렇게 단순한 경기를 연달아 보여주면 지루할 수 있을 텐데, 전혀 안 그랬잖아요. 상황을 재미있는 구도로 보여주고 디테일을 짚어주는 능력이 뛰어났어요.
제가 어쨌든 다큐멘터리 팀에 있잖아요.(장호기 PD는 MBC 다큐팀 소속이다.) MBC가 <남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부터 시작해 자연 다큐에 나름의 노하우가 있고요. 야생에서 곰이나 펭귄, 수달, 고라니… 온갖 동물을 특수 카메라로 찍는 작업도 많이 했죠. 그런 노하우를 그대로 적용하니까 근육의 움직임이나 표정 같은 것도 잘 포착되더라고요.
하하하. 윤성빈 씨의 놀라운 신체 반응속도를 담아낸 명장면도 그런 ‘동물을 찍는 노하우’에서 나온 거군요.
저희는 이게 단순한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인지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헷갈리는 그런 시청각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촬영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죠. 물론 쉽지는 않았어요. 세트가 거의 축구장 규모였는데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않게 촬영을 해야 했고, 어디로 가서 어떻게 넘어질지 모르니까 카메라를 세팅해두는 위치도 특정하기가 어려웠고…. 하다못해 토르소를 깨는 장면조차 쉽지 않았죠. 정말 다들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들로 그걸 깨서.(웃음) 촬영감독님들이 고생 많으셨어요.
엔딩 크레디트 분량만 봐도 이게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라는 걸 느낄 수 있더라고요.
정말 많은 분이 참여해주셨죠. 제가 너무 감사해서, 음악 중에 제일 신경을 많이 쓴 곡도 엔딩 크레디트 곡이었어요. 꼭 좀 끝까지 봐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연자만 100분에 동반 스태프들, 연출팀, 작가팀, 카메라팀, 안전팀, 세트팀, 미술팀, 소품팀, 의상팀… 다 합치니까 한 300명 정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 정도 스케일로 제작을 하는 건 저는 물론이고, 아마 국내를 통틀어서도 흔치 않은 일이었을 거예요.
MBC 다큐팀 소속으로 <PD수첩>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같은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주로 하시던 분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것도 많은 사람이 신기해할 부분 같아요.
저도 그렇지만 제 또래 PD들은 다들 그런 열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속해 있는 매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플랫폼과 서비스에서 콘텐츠를 펼치고 싶다는. 그래서 저는 <PD수첩> 발령 나기 오래전부터 그런 준비를 해왔고, 주장했고, 기획했고, 그러다 이제 ‘MBC는 지상파를 소유한 글로벌 콘텐츠 그룹으로 가야 한다’는 MBC 사장의 의지와 만나게 된 거죠. 그래서 <피지컬: 100> 기획을 내면서 OTT와 함께 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엄청나게 힘든 설득 끝에 넷플릭스 측에 제안을 하게 된 거예요. 아마 제가 넷플릭스에 제안을 해도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 허락해준 것 같기도 한데…. (웃음) 아무튼 제작 과정도 쉽지는 않았어요. 정말 힘들었죠. 저희는 어쨌든 편성표를 채워야 하고 공영방송에서 일한다는 의무를 진 사람들인데 그 인력이나 인프라를 빼서 MBC에 송출되지도 않을 콘텐츠에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피지컬: 100>은 장호기 PD의 변신일까요, 확장일까요, 외전일까요?
제가 PD 면접 볼 때마다 한 말이 있어요. ‘저는 인간에 대한 콘텐츠는 뭐든 다 해보고 싶다’고요. 사실 그때도 제가 그렇게 웃음을 유발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능은 못 하겠지 했는데, 다큐도 하고 사회 비판도 하고 다양한 생방송도 하다 보니 이번에는 좀 많은 사람이 재미있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문법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교양이라든지 예능이라든지 그런 장르의 구분이 이미 오래전에 무의미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구분을 파괴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계속 시도해보고 싶어요.
브런치(카카오에서 제공하는 블로그 서비스)도 운영하고 계시더라고요. 글도 쓰지만 일러스트도 직접 그리시는 것 같았고.
꽤 오래전에 한 건데요. 일러스트는 제가 그린 것도 있고 아내가 그린 것도 있어요. 당시에 제가 취재를 위해 그냥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아무나 만나기 쉽지 않은, 굉장히 좋은 인사이트를 갖고 계신 분들이었어요. 그런 분들 몇 시간 인터뷰했는데 방송에는 20초, 30초 나가니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축적해보고자 시작했죠.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방송하면서 있었던 일을 정리하기도 하고, 또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라는 포맷의 한계에서 제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림이나 웹툰 형식으로 그려보기도 했고요. 일종의 갈증을 표출하는 장이었던 거죠.
그걸 하나하나 보면서 참 재미난 분이라고 느꼈어요.
주변에서 저한테 그래요. 은둔형 관종이라고. 동굴에 숨어서 누군가 자기를 찾아와주길 바라는 사람 같다고요.(웃음)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오래 하면서 저절로 이렇게 된 것 같긴 한데요. 웃으면 안 되고, 늘 정중해야 하고, 고소 고발 고려해서 항상 조심해야 하니까. 그런데 또 속에서는 언제나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던 거죠.
장호기 PD의 궁극적인 목표는 뭘까요?
웹툰 작가가 꿈이에요, 저.
(웃음) 한 사람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톤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게 정말 신기하네요. <피지컬: 100>은 국내 콘텐츠 제작 환경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만한 프로그램인데, 혹 후배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해줄 만한 조언이 있을까요?
제가 태호 선배나 나영석 PD 같은 사람도 아닌데 조언이나 팁을 던진다고 하면 지탄받을 것 같고요.(웃음) 그냥 제 경험에서 말하자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에서 도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해야 하는 곳에서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그게 이기적인 게 아니라, 회사에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나간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일이잖아요. 이제 그런 시대가 됐다고 생각해요.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김성룡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최지훈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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