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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라이브 클럽은 '무입유퇴'중

라이브 클럽에서 아티스트와 관객 심지어 운영자까지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기는 쉽지 않다. 그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하고 트렌드에 까탈스러운 젠지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뭘까?

프로필 by 박호준 2023.02.27
 
도착은 했는데 입구를 찾기 쉽지 않다. 1층에 있는 법은 극히 드물고 대개는 지하나 건물 꼭대기에 위치하니까. 계단에는 앨범 재킷 혹은 공연 포스터가 빼곡하다.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둠칫거리는 음악소리가 조금씩 커진다. 덩달아 심장박동수도 빨라진다. 문에는 수많은 밴드들의 스티커가 방명록처럼 붙어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기타를 둘러매고 노래를 열창하는 어느 가수와 이를 지켜보며 한 손에는 맥주, 다른 한 손에는 휴대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심드렁하게 나초를 집어 먹으며 옆사람과 키득거리는 사람도 있다. 지금 당신은 라이브 클럽에 서 있다.
 
예리한 사람이라면 눈치챘을 지도 모른다.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손님이 너무 많아 깜빡한 것일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요즘 젠지들이 몰리는 라이브 클럽은 ‘무입유퇴’ 중이다. 임전무퇴(臨戰無退)와 비슷한 말처럼 들리지만, ‘한 번 무대에 나아가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는 결코 아니다. ‘무료입장, 유료퇴장’의 준말이다. 미리 준비된 봉투에 원하는 만큼 액수를 넣어 퇴장할 때 박스에 넣는 식이다. 어차피 돈을 내는 건 똑같은데 들어올 때 내는 것과 나갈 때 내는 게 차이가 있을까? 눈 가리고 아웅 격은 아닐까?
 
“차이가 큽니다.” 경리단길에 위치한 라이브 클럽 ‘펫사운즈’에서 만난 29세 박소연 씨의 말이다. 그녀는 “라이브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해요. 오늘 같이 온 친구들도 파리의 재즈바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졌어요”라며 라이브 클럽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가격은 중요한 요소예요. 보고 싶은 무대가 있더라도 가격이 높으면 선뜻 마음이 가지 않더라고요. 학생 때 특히 더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자율모금은 합리적이죠. 만족한 만큼 내면 되니까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오후 7시 공연을 보기 위해 5시에 입장해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한 21세 이민준 씨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마음 같아선 더 많이 내고 싶을 때도 많아요. 아직 학생이라 쉽지 않지만요.”
 
어쩔 수 없는 의심이 고개를 쳐든다. 돈을 아예 넣지 않거나 너무 적은 액수를 넣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아티스트와 운영자에게 충분한 몫이 돌아가지 않는 건 아닐까? ‘아이다호’의 강경훈 대표는 단호한 입장이다. “자율모금으로 모은 돈은 전부 아티스트에게 갑니다. 저희는 음료나 안주를 팔아 수익을 남기고요. 재미있는 사실은 입장료를 받을 때보다 자율모금을 할 때 아티스트도 저도 수익이 더 좋다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이것은 신기원이다. 소비자가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자율모금이 실은 판매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사실. 그야말로 윈-윈-윈 게임이니 경이롭지 않은가? ‘펫사운즈’ 운영자 ‘제이’의 말 역시 비슷하다.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많이 올라간 것 같아요. 3만~4만원짜리 기획공연이나 그보다 더 비싼 뮤직 페스티벌 티켓에도 사람들이 대거 몰리는 걸 보면 말이죠. 저희는 1인당 1만원을 권장 자율모금 액수로 말하고 있는데 종종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놓고 가시는 분들이 계세요. 놀랍죠.”
 
정말일까? 사실이라기엔 너무 아름다운 결과가 아닌가. 2021년부터 꾸준히 라이브 무대에 서고 있는 한 아티스트에게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자율모금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물어봤다. “자율모금이 아티스트 입장에서 긍정적인 건 맞아요.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죠. 자율모금을 하기 전엔 터무니없는 금액을 받을 때가 많았어요. 무대에 서게 해줄 테니 무료로 노래를 하라는 말도 들어본 적 있고요. 그때에 비하면 처지가 좋아졌다는 뜻입니다.” ‘데디오레디오’의 베이스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안지’는 자율모금에 대해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티켓을 팔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아요. 저희는 애초에 바이브 자체가 ‘술 먹고 재밌게 놀자’인데 그러기 위해선 문턱이 낮아야 하죠. 새로운 리스너들이 유입되는 효과도 있고요.”
 
촬영과 취재를 위해 제비다방을 찾은 날은 2월 11일 ‘경록절’이었다. 참고로 경록절은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한경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여러 아티스트들이 밤새 공연을 펼치던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홍대 3대 명절’로 손꼽히는 큰 이벤트다. 평소 하루에 한 아티스트만 무대에 오르는 제비다방이지만, 경록절을 맞아 특별히 3개 팀이 연달아 마이크를 잡았다. ‘서른 즈음에’를 작사·작곡한 강승원이 두 번째 노래를 끝냈을 때 누군가 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한경록이었다. 경록절에 참여한 곳들을 돌아다니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중이었다. 라이브 클럽이 불법이던 시절부터 홍대를 주름잡았던 그를 그냥 보낼 순 없었다. 대뜸 라이브 클럽의 요즘에 대해 물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땐 뜨거웠고 지금은 쿨하죠. 예전엔 부조리에 대한 저항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쪽이었다면, 지금은 개인이 가진 매력을 당당하게 뿜어내는 것 같아 보기 좋아요.”
 
힙한 라이브 클럽이 늘어나고 사람이 몰리는 게 오롯이 자율모금 덕이라고 볼 순 없다. 팬데믹으로 억눌려 있던 라이브 공연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자율모금이 라이브 클럽으로 향하는 허들을 낮춘 것은 맞지만, 꾸준한 인기를 위해선 라이브라는 장르의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침대에 누워서 수십만 개의 곡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시대예요. 뮤직 큐레이션 서비스도 많죠. 그래서 오히려 무엇을 듣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듣는지가 더 중요해진 시대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음질이 좋은 스피커로 듣더라도 라이브 클럽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까지 느낄 순 없으니까요.” <돈패닉서울>의 전 편집장이자 베를린, 파리 등을 돌아다니며 경험한 음악 이야기를 담은 잡지 <L!stener>의 발행인 현지혜의 말이다. 그녀는 “무입유퇴가 늘어난 건 맞아요. 한국보다 라이브 역사가 깊은 곳들을 보더라도 무입유퇴 방식이 흔해요. 딱히 할 것 없으면 밥 먹고 스타벅스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라이브 클럽이 지역 주민들에게 일상 영역처럼 소비되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우리나라도 점점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라며 라이브 클럽의 미래를 점쳤다.
 
리스너, 운영자, 아티스트 모두 라이브의 대체 불가한 매력으로 ‘에너지’를 꼽는다. “같은 시공간에서 관객과 뮤지션은 에너지를 주고받아요. 그 에너지는 분명 어떤 형태로든 음악으로 형상화되기 마련입니다.” 한경록의 말이다. 안지 역시 “라이브는 아티스트에게도 너무 소중해요. 힘을 얻거든요”라고 보탰다. 귀가 아닌 온몸으로 느껴지는 에너지 외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드러머가 공연 전에 어떤 루틴이 있는지, 보컬과 기타리스트는 언제 눈을 마주치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무대가 끝난 후 함께 맥주잔을 부딪칠 수 있는 건 보너스다. 그래도 감이 오지 않는다면 일단 가보길 권한다. 공연이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빈 봉투를 내고 나오면 그만이다. 그런다고 쫓아와 멱살 잡는 사람 없다. →

 
 
펫사운즈는 매일 인디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게 목표이지만 공연이 없을 땐 디제잉 파티를 열기도 한다.
[ 펫사운즈 /@petsoundsmusicpub ]
록과 팝을 베이스로 한다. 시작 단계부터 라이브 클럽을 염두에 두고 장소를 꾸몄다. 2014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땐 외국인 위주였지만, 요샌 내국인 비중이 더 높다. 라이브 무대가 서지 않는 날에는 하나의 주제를 잡아 디제잉 파티를 연다. 맥주, 와인, 위스키, 칵테일 등 술 종류가 다양하며 피자 맛집으로 소문이 나 피자를 먹으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다른 곳에 비해 테이블 크기도 넓은 편이라 라이브 전후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 쾌적하다. 한 층 아래에는 함께 운영하는 재즈바 ‘부기우기’도 있다.
 

라이브 클럽 문에 붙은 스티커는 역사이자 훈장과도 같다.
[ 제비다방 /@jebidabang ]
라이브 혹은 인디 신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너무나 유명한 곳이다. 홍대와 합정의 번화가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위치하는데도 공연이 있는 날이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다. 무대가 마련된 지하 1층을 1층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으며 다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커피는 물론 차 종류가 다양하다. 명성만큼이나 꽤 인지도 높은 아티스트도 자주 무대에 서는 편이다. ‘제비 온에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라이브를 관람할 수도 있다.
 

도킹 어라운드는 별도의 무대가 없다. 테이블과 플로어 모든 곳이 무대이기 때문이다.
[ 도킹 어라운드 /@docking.around ]
지난 1월, 홍대 상상마당 바로 옆에 문을 연 따끈따끈한 공간이다. 록이나 싱어송라이터 위주였던 기존의 라이브 클럽과 달리 힙합을 베이스로 한다. 낮에도 운영하지만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건 대개 밤 10시 이후다. 플로어와 테이블이 함께 있어 흥이 오르면 스탠딩으로 즐기다가 지치면 앉아 쉴 수 있다. 이미 던밀스, 노스페이스갓 등 여러 래퍼들이 왔다 갔으며, 거의 매주 새로운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다. 힙합과 밴드 음악을 섞은 ‘이모셔널’ 스타일 랩도 경험할 수 있다. 평소엔 무료입장이지만 주말 피크타임에 들어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 
 

[ 아이다호 /@cafe.idaho ]
장르 제한을 두지 않는 라이브 카페 겸 펍이다. 공간의 콘셉트가 ‘아트스페이스’로 다양한 아티스트가 어우러지는 실험적인 공간을 지향한다. 낮과 밤의 분위기가 180도 다른 것도 특징이다. 무대에 오르는 인디 뮤지션들의 앨범이나 굿즈를 구매할 수 있도록 별도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장소가 넓은 편은 아니라서 일찍 가지 않으면 서서 볼 각오를 해야 한다. 참고로 아이다호에서 라이브만큼이나 놓치지 말아야 할 건 토마토맥주다.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GRAPHER 조재진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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