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
출근하는 데 2시간 30분이 걸린다면, 답은 이사와 퇴사 중 하나다. 나도 여러분도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김한솔)도 그런 도시에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물어봤다. 원샷한솔 씨는 어떤 도시에 살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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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일찍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도시
2022년 기준, 서울시가 발표한 장애인 콜택시 평균 대기 시간은 37분이다. 피크시간대에는 50분이 넘는다. 서울시에만 약 600대의 장애인 택시가 운영 중인데도 그렇다. 일반 택시의 평균 대기 시간인 8분과 비교하면 4배가 넘는 수치다. 문제는 장애인이 마주하는 현실은 통계 숫자보다 더욱 열악하다는 점이다. 통계에는 취소된 콜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실상은 대기가 너무 길어 포기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게 실제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주장이다. 어쩌다 운 좋게 택시가 빠르게 잡혀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다. 평소처럼 30분에서 1시간이 걸릴 줄 알고 미리 택시를 불렀는데 5분 만에 잡히는 바람에 허겁지겁 외출 준비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여기까진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이 어려운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시각장애인은 서울시가 제공하는 장애인 콜택시의 이용 대상이 아니어서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운영하는 별도의 택시를 타야 한다. 현재 운영하는 택시 대수는 고작 150여 대. 서울시에만 2만 명이 넘는 시각장애인이 이용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그나마 야간 운행을 하는 택시는 고작 8대다. “기약 없는 택시를 기다릴 바엔 지하철을 타는 편이 더 빠를 때가 많아요.” 평소 지하철을 애용하는 후천적 시각장애인 김한솔 씨의 말이다. “제가 시각장애 진단을 받았던 18년 전보단 지하철 시설이 많이 개선됐어요. 서울 시내 모든 역사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됐고 점자 안내도 많아졌으니까요. 지하철만 놓고 보면 미국이나 유럽보다 우리나라가 더 깔끔하고 시설이 좋아요. 간혹 점자에 오타가 있거나 거꾸로 쓰인 경우가 있긴 하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은 여전히 한참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야 한다. 최단 거리로 이동하는 비장애인과 달리, 엘리베이터나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선 동선이 비효율적이거나 복잡한 탓이다. 예를 들면 3번 출구로 나가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3번 출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반대편으로 나가야 하는 식이다. 잠시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평소 이용하던 에스컬레이터에 하루만 ‘수리 중’ 팻말이 걸려 있어도 미간이 찌푸려지던 걸 떠올리면 장애인들이 마주하는 이동 문제가 얼마나 불편한 상황인지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에 가야 할 땐 한 정거장 미리 내려 도보로 이동하기 일쑤다. 버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시 저상버스 보급률은 59.7%다. 10분을 기다려 버스가 왔는데 저상버스가 아니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버스는 지하철처럼 매번 정해진 위치에서 승하차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은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더라도 더듬거리며 문을 찾아야 한다. 의무적으로 장애인 지원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장애인이 탑승 및 하차 시 운전기사가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고 법으로 명시해 놓은 런던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비장애인은 참여할 수 없는 터치 투어를 즐기는 시각장애인들.
누구나 예술 작품을 즐기는
도시
멋진 걸 보면 카메라를 꺼내 들기 마련이다. 전시회도 예외는 아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모나리자’ 앞이 항상 카메라를 높이 치켜든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에겐 이런 ‘인증샷’은 큰 의미가 없다. “저에게 전시회는 조용한 복도를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음성안내가 있긴 하지만 비장애인을 위한 내용이고, 그걸 듣기 위해 미술관까지 가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고요.” 김한솔 씨의 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는 대규모 전시회의 경우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해설이나 시각장애인에 특화된 도슨트 투어를 제공하지만 가능한 날짜가 월 1회로 고정되어 있거나 특정 기간에만 참여 가능하다. 시각장애인이 시각예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터치 투어’가 좋은 예다. 헬렌 켈러도 참여했을 만큼 오래전부터 진행해온 터치 투어는 박물관에 소장된 회화, 조각 작품을 시각장애인들이 장갑도 끼지 않고 직접 만져보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작품 감상 후에는 특별한 펜과 종이를 나누어준다. “일반적인 종이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면 반대편이 눌려서 양각처럼 튀어나오는 특수 용지예요. 거기에 그림을 그리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촉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나만의 기념품이 생기는 셈이죠. 그런 전시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메트로폴리탄은 시각장애인의 전시 관람에 진심을 다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터치 투어에 직접 참가해본 김한솔 씨의 소감이다. 그들이 진정성 있는 전시 안내를 구현할 수 있었던 비결은 직원 구성에 있다. “박물관에서 저희를 맞이해준 분도 시각장애인이었어요. 덕분에 생생한 설명과 안내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접근성팀’은 기획 단계부터 장애인을 고용해 자문을 구하고 완성도를 다듬는다. 물론 청각장애인이나 치매 환자에게 맞춘 프로그램도 있다. 이러한 장치는 맨해튼에 함께 위치한 MoMA와 구겐하임 미술관도 비슷하다. 특히 구겐하임은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는 자폐성 장애인을 위해 ‘자폐를 가진 사람을 위한 가이드’를 제작해 미술관에 방문하기 전 미리 공간의 분위기를 익힐 수 있도록 했다.

비장애인은 참여할 수 없는 터치 투어를 즐기는 시각장애인들.

비장애인은 참여할 수 없는 터치 투어를 즐기는 시각장애인들.
기술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는
도시
“아는 시각장애인이 15년 전 영국에 갔었는데 밥솥이 말을 하길래 깜짝 놀랐대요. 버튼을 누를 때마다 음성안내도 나오고 취사가 완료됐다고 알려주기도 하고요. 한국에 있는 다른 시각장애인에게도 유용할 것 같아서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 알아두려고 제조사를 물었더니 ‘쿠쿠’였다고 하더라고요.” 김한솔 씨가 들려준 농담 같은 에피소드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은 1990년대에 이미 장애인 차별 금지를 법제화했으며, ‘접근성 설계 표준’을 구축해 장애인도 TV나 밥솥 같은 생활가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음성안내 기술이 비싼 장비나 높은 기술력을 요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앞서 말한 것처럼 오래전부터 개발되어 있었고 ATM 기기에는 음성안내 기능이 전부 들어가 있거든요.” 그가 15년 전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지만 서울의 길거리는 여전히 복병의 연속이다. “멀쩡하게 걸어가다 넘어지거나 부딪쳐 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알고 보니 보도 한가운데 세워둔 전동 킥보드 때문이었어요. 머릿속에 없던 장애물이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엄청 놀랐죠. 일본의 경우 정해진 구역에만 킥보드를 주차하게 하던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이어서 김한솔 씨는 키오스크에 대한 아쉬움도 꺼내놓았다. “무인 주문 시스템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시각장애인 입장에선 굉장히 난처해요. 점자도 없고 음성안내도 없을 때가 대다수거든요. 휠체어를 타는 분들 입장에서도 손이 닿지 않으니 주문이 어렵고요. 장애인 입장에서 한 번만 더 고민해줬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을 들으며 얼마 전 받았던 명함 한 장이 떠올랐다. 구글코리아 커뮤니케이션팀 이은하 매니저의 명함이었는데, 이름과 전화번호가 한글과 영어뿐만 아니라 점자로도 표시돼 있었다. “모든 구글 직원이 점자 명함을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누구나 신청할 수 있어요. 사내에 시각장애인 직원도 있고 제가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업무도 맡고 있어서 선택했죠. 솔직히 시각장애인보단 비장애인과 명함을 교환하는 일이 훨씬 많지만 사람들에게 점자의 필요성을 알리고 잠시나마 접근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한 번 더 고민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낙담하긴 이르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공공기관, 2025년 직원 100명 미만 사업주까지 단계적으로 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를 설치하도록 시행령을 적용할 방침이다. 또한 전동 킥보드 문제에 대응하고자 서울시는 2023년에 360여 곳의 전동 킥보드 전용 주차 공간을 조성하고 ‘즉석 견인 구역’을 설정해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희귀병으로 후천적 시각장애인이 된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긍정 에너지를 전파하는 중이다. 저서로는 <슬픔은 원샷, 매일이 맑음>이 있다.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 게티이미지스코리아/김한솔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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