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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용산 미군기지의 역사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후암동과 해방촌.
오래된 일본식 적산가옥, 역사를 품은 계단과 시장 그리고 오래된 골목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느리지만 천천히 변화해 온 서울의 여러 풍경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 글에서는 여러 시간의 층위에 현재의 감각이 덧입혀진 후암동과 해방촌의 공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후암동과 해방촌 코스 추천
동선: 숙대입구역 → 녹사평역
추천 시간: 반나절 코스 (날이 더우니 뙤약볕을 피해 3시 이후로 출발하는 것을 추천)
추천 포인트: 카페 · 전시 · 독립서점 · 먹거리 · 산책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동네
분위기: 오랜 역사를 품은 골목과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이 공존하는 남산 아랫자락의 풍경
추천 코스: 킷테 → 언뎁트 → 지월장 → 샤워 → 스토리지북앤필름 로터리점 → 후암동 108 계단 → 신흥시장 → 상히읗 → 와일드덕칸틴 → 찰리스 그로서리
적산가옥의 내부 구조를 보존하고 있는 카페 ‘킷테’의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개인 업무로 인해 한남동에서 한 달 남짓 머무는 동안, 잠시 쉬고 싶은 날이면 무작정 후암동과 해방촌으로 향했다. 공사 현장과 인파로 가득한 한남동 골목을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닿는 동네였다.
후암동과 해방촌은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이상할 만큼 느린 정취가 있는 동네이다. 가파르게 경사진 골목 사이로 오래된 주택이 남아 있고, 새로 생긴 작은 상점들이 여전히 오랜 일상의 풍경 속에 스며 있다.
처음에는 그저 조용한 동네라고 생각했지만, 몇 번이고 골목을 걷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해방촌은 왜 ‘해방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미군기지를 둘러싼 언덕 아래에는 어떤 역사가 남아 있을까.
그 질문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서, 이곳이 단순한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서울의 근현대사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동네라는 것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다.
같은 지형, 다른 시간의 결
후암동과 해방촌 일대 풍경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후암동과 해방촌 일대 풍경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후암동과 해방촌은 모두 남산 남쪽 사면에 붙어 있는 동네다. 하지만 비슷한 지형과 달리, 두 동네 간의 형성 과정은 꽤 다르다.
후암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도성 밖 남서쪽, 성저십리에 속했던 지역으로 본래는 전생서(가축 사육 관청)가 자리하던 농촌 지대였다. 개항 이후 경인철도 남대문역이 들어서고, 러일전쟁 이후 용산 일대에 일본군 병영이 조성되면서 후암동은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된 지역 중 하나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남산 아래 ‘두텁바위’ 전설에서 유래한 ‘삼판통’이라 불리며 일본인 주거지로 급격히 개발되었다. 용산역과 일본군 주둔지에 인접했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일본인 상인과 군속, 정치인과 금융인 등 유력 인사들이 거주하게 되었고, 1920년대 이후에는 고급 서양식 주택 양식인 ‘문화주택’이 대거 들어서면서 대표적인 일본인 고급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
광복 이후에는 일본인들이 남긴 적산가옥을 중심으로 피난민과 실향민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복합적인 시간과 흔적을 품은 주거지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후 미군이 일본군 시설을 이어 사용하면서 후암동은 이태원, 해방촌과 함께 외국인과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이어지면서 현재까지 적산가옥과 해방 이후 건축물들이 혼재된 독특한 도시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해방촌은 광복 이후 피난민과 실향민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에는 광복 후에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해방동으로 불리었으나 대개 해방촌으로 불리었다. 이처럼 해방촌은 한국의 근현대 이주민의 역사가 있는 지역이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후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군 주둔, 광복 후 미군정의 관할과 월남민의 정착, 산업화 시대의 농촌에서 상경한 이주민 정착, 이주 노동자와 외국인 유입 등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빠르게 어우러지며 형성된 마을인 것이다.
후암동과 해방촌은 같은 남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의 결이 남아 있다. 우리는 종종 새로 생긴 핫플레이스의 소식을 따라 동네를 방문하지만, 그 골목에서는 어떤 시간을 지나왔고 어떤 시대의 흔적 위에 지금의 풍경이 만들어졌는지 돌아보는 일은 많지 않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색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후암동과 해방촌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걸어볼 수 있는 동선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후암동 산책은 카페인 ‘킷테’와 ‘언뎁트’에서 시작했다.
적산가옥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카페 언뎁트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적산가옥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킷테의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적산가옥을 개조해 운영 중인 두 공간은 오래된 일본식 목조 구조와 좁은 복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적산가옥의 구조가 온전히 남아 있는 사례가 많지 않은 만큼, 당시의 일본식 가옥 구조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언뎁트에서는 ‘타계서울’ 소품샵과 함께 운영되고 있으니 함께 둘러보길 바란다.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는 지월장의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는 지월장의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지월장은 후암동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근대 문화주택’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고급 주택의 형태를 비교적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과거에는 서선식산철도주식회사 상무였던 니시지마 신조(西島新藏)의 별장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옛 구조와 분위기를 유지한 채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다.
참고로 ‘문화주택’이란 일제강점기 일본과 서구의 생활 양식을 반영해 지어진 근대식 고급 주택을 의미한다. 당시의 문화주택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근대적 생활 방식과 부를 상징하는 건축 양식이기도 했다.
후암동 일대는 용산 일본군 주둔지와 용산역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 상인과 군속, 관료들이 거주하는 고급 주거지로 빠르게 개발되었고, 지월장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On Entertainment 연예(演藝)》
《 On Entertainment 연예(演藝)》 전시 전경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 On Entertainment 연예(演藝)》 전시 전경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남 화연, 은 재필, 양 미라 만
2026. 5. 8. – 6. 21.
13:00 – 19:00 / 월, 화 휴무
무료 관람
지월장에서 해방촌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샤워는 2023년 설립된 신생 갤러리이다. 오래된 동네의 고요한 정취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감각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2026년 5월 기준으로 진행 중인 전시를 함께 소개한다. 후암동을 방문한다면 꼭 한 번 들러보기를 바란다.
스토리지북앤필름 로터리점에 들러 책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인 만큼 다양한 행사도 자주 열리는 듯 하니, 여러 행사의 일정에 맞춰 함께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후암동 108 계단의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후암동 108 계단의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후암동 108 계단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 경성호국신사의 진입로로 조성된 계단이다. 해방 이후로 신사는 철거되었지만 계단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지금은 해방촌과 후암동을 잇는 상징적인 장소이자 서울미래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특히 광복 이후 피난민들이 남산 자락에 정착하며 형성된 해방촌의 역사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이어지는 108 계단을 오르다 보면, 단순한 이동 경로를 넘어 이 동네에 축적된 시간과 역사의 흐름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신흥시장의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신흥시장의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후암동 108 계단을 지나 해방촌 신흥시장에 도착하면 동네의 분위기는 또 한 번 달라진다. 오래된 시장 구조 사이로 작은 가게와 바, 상점들이 분주하게 들어서 있지만, 조금만 바깥으로 나가면 여전히 피난민과 이주민들의 삶이 남아 있다.
낡은 간판과 좁은 골목, 층층이 이어진 가파른 구조 속에서 해방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Tartare》
상히읗 갤러리의 외관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원민영 개인전
2026. 5. 14. – 6. 13.
11:00 – 18:00 / 일, 월 휴무
무료 관람
해방촌신흥시장을 둘러본 뒤, 녹사평역 방향으로 언덕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상히읗 갤러리를 방문할 수 있다. 이 글을 작성하는 기준으로 아직 전시가 준비 중이었으나, 5월 14일부터 새로운 전시가 시작될 예정이니, 꼭 들러 보기를 바란다.
해방촌 초입에 위치한 와일드덕칸틴의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해방촌 초입에 위치한 찰리스 그로서리의 모습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위의 언급한 곳들을 하나둘씩 둘러보고 나면, 저녁 시간대가 되어 슬슬 배가 고파질 것이다. 해방촌 초입에 위치한 와일드덕칸틴에 들러 내추럴와인을 한잔 하거나, 해외 식료품점인 찰리스 그로서리에 들러 해외 간식거리와 함께 와인과 한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좋다.
글을 마치며
해방촌과 후암동을 거닐다 보면 마주치는 풍경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해방촌과 후암동을 거닐다 보면 마주치는 풍경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새롭게 떠오르는 공간과 ‘핫플’을 따라 주말마다 어딘가로 향하지만, 정작 우리가 방문하는 동네에 어떤 시간과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지 들여다보는 일은 드문 듯 하다. 먹거리와 볼거리 등 콘텐츠가 빠르게 소비되는 흐름 안에서, 막상 오래된 골목과 건물, 그 자리를 지나온 사람들의 흔적은 쉽게 지나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네의 역사와 흐름, 그 위에 겹쳐진 시간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익숙했던 풍경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오래된 계단 하나, 낡은 건물의 벽돌 하나에도 지금의 서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는 일보다, 내가 발 딛고 선 곳이 어떤 시간을 지나 현재까지 오게 되었는지 관심을 갖고서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그 순간,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새로운 풍경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 다시 보기 >
1.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
후암동은 일본식 적산가옥과 근대문화주택의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킷테와 언뎁트 같은 카페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식 목재 건축 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2. 용산 미군기지와 함께 변화한 동네
광복 이후 일본군 시설을 용산 미군기지가 이어 사용하게 되면서, 후암동과 해방촌에는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의 흐름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지금의 이국적인 풍경과 독특한 동네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3. 피난민과 실향민이 만든 언덕 마을
해방촌은 광복 이후 피난민과 실향민이 남산 자락에 정착하며 빠르게 형성된 마을이다.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삶의 터전이 지금의 골목 풍경으로 이어진다.
4.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오래된 골목
신흥시장과 후암동 108 계단 주변에는 오래된 계단과 좁은 골목, 시장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서울 속에서도 이곳은 과거의 풍경을 느릿하게 붙잡고 있다.
5. 오래된 구조 위에 생겨난 새로운 문화
최근 후암동과 해방촌에는 신흥 갤러리와 독립서점, 작은 상점들이 들어서며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처럼 오래된 건물과 현재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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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영, #플레어유, #김남길, #손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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