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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산부인과 의사 '공태경' 역할을 위해 안재현이 준비한 것들

안재현은 좋은 사람이다. 펜으로 꾹꾹 눌러 진심 어린 글을 쓰고,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고 싶다는 그에게는 순수한 선의가 가득했다.

프로필 by 김현유 2023.04.24
그럼 반대로 ‘이렇게 쓰지 말걸’ 싶은 것들도 있나요?
작은 토씨 같은 것들? 그 외에 딱히 그런 건 없어요. 저는 책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단어를 웬만하면 다 빼고 썼거든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쉬운 단어로 표현하려 했어요. 전달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나영석 PD가 추천사를 써줬죠. ‘사는 게 전쟁이라면 착한 마음으로 이기겠다는 그의 다짐이 좋다’고 했는데, 혹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봤나요?
아뇨. 못 봤어요.
추천사를 보자마자 그 영화가 생각났거든요. 착한 마음이 승리한다는 메시지가 있는 영화라서요. 사소한 선택으로 갈리는 여러 인생들의 다중 우주가 악의에 의해 꼬이며 벌어지는 드라마예요. 재현 씨는 혹시 배우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본 적 있어요?
저는 늘 해요.(웃음) 예전에 어떤 소설을 읽었는데, 굉장히 크게 와닿은 내용이 있어요. 언젠가 사람은 세상을 떠나게 되잖아요. 세상을 떠나면 천사의 손을 잡고 커다란 나무를 한 바퀴 돈대요. 가지마다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의 사연이 실려 있고요.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면 천사는 이 중에서 다음 삶을 선택하라고 제안해요. 고민하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택한다는 거예요. 자신의 삶이 가장 힘들었다고 느꼈지만, 돌아보니 결국 가장 좋은 길이었다고 인식하는 거죠. 그래서 다음 생이 똑같이, 다시 반복된다는 거예요. 그대로. 똑같이 반복될 삶이라면, 정말 즐겁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고 싶어요.
그럼 다른 선택을 할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배우가 될 건가요?
음, 그런데 사실 고등학생 때 꿈은 요리사였어요. 과거로 돌아가서 선택한다면 그 꿈도 생각할 것 같아요. 저는 맛있는 거 먹을 때 정말 행복하거든요. 내가 만든 요리로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재킷, 니트, 팬츠, 스니커즈, 링 모두 루이 비통.

재킷, 니트, 팬츠, 스니커즈, 링 모두 루이 비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모델이 됐잖아요. 요리사와 모델이라니 너무 다른걸요?(웃음)
고등학생 시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어요. 교통사고 때문에 6개월이나 병원에서 보내야 했는데, 심심하잖아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해서 먹고살 것인가’라는 고민을 정말 심각하게 했어요.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봤죠. ‘그래, 일단 키. 키는 커. 학벌? 음, 문제가 좀 있네. 외모는… 애매하네?’(웃음) 그렇게 종합적으로 생각했을 때 모델을 떠올린 거예요. 잡지에 얼굴이 나오는 직업이니 돈을 많이 벌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거죠.
원래 연기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군요.
모델 생활을 하다가 <별에서 온 그대> 장태유 감독님께 연락이 왔어요. 워낙 책 읽는 걸 좋아했던 터라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셨더라고요. 책 읽는 모델이 있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하셨대요. 회사에서는 한 번 인사드리면 좋겠다고 해서 갔는데, 연기 얘기를 하셔서 ‘진짜 못한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냥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죠. 그런데 정말 제가 사는 곳 근처로 약속을 잡으시더니, 저에게 드라마와 방송에 대해 정말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어른이 이 정도까지 말씀해주시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별에서 온 그대>에 합류하게 됐어요.
인생을 바꿔주셨네요.
그러네요. 맞아요. 터닝 포인트가 됐죠.
책을 쓰려면 읽기도 많이 해야 할 것 같은데, 원래부터 책을 좋아했나 봐요. 팬이나 독자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어떤 건가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요. 굉장히 자주 읽은 책 중 하나예요. 어릴 때는 멋으로 읽었어요. 나도 이런 책을 읽었다는 걸 보여주려고, 내용도 모르면서 그런 거죠. 얼마 전에 다시 읽었는데,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불안’이라는 요소 자체가 사서 걱정하는 거잖아요. 내가 겪고 있는 불행이 아닌데 미리 느끼고 있는 거죠. 책에는 내가 느끼는 불안은 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 때문에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전쟁같이 국제적인 환경부터 여러 금융 문제, 자연재해 같은 것들이 있겠죠. 우리는 그런 문제들 때문에 불안을 느낄 뿐,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으니 절대 불안을 느끼지 말고 남과 비교도 하지 말라는 내용이 실렸는데 아주 흥미로웠어요. 꼭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진짜가 나타났다!>는 거의 3년 만의 복귀작이죠. 연기에 임하는 감회가 새로웠을 텐데 어땠나요.
감사했고, 감동이었죠. 다시 주어진 일에 임할 수 있다니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어요. 책에 싣지는 못했는데,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내 일이 없으니까 정말 내일이 없는 것 같다’는 글인데, 말장난 같아서 뺐거든요. 그런데 공백기 동안 정말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글을 쓰는데도 스스로 너무 초라해지는 거예요. 그런 와중에 공태경이라는 캐릭터를 만난 건 정말 큰 기쁨이었어요. 다만 너무 행복하다 보니, 다시 부담스러워지기도 하더라고요. 무조건 잘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컸고요. 최대한 편하게 연기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힘이 좀 들어가 있어요. 잘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보여야 보는 사람들도 편안할 텐데, 더 노력해야겠죠.
공태경은 산부인과 의사고, 그중에서도 난임 클리닉 전문이라는 구체적인 설정이 있어요. 상당히 전문적인 역할이고, 또 산부인과라는 것 자체가 남성들에게는 낯선 분야잖아요.
산부인과 선생님을 따로 뵙고 여러 가지 여쭤봤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래도 남성들에게는 낯선 곳이니까요. 그런데 사실 극 중에서 직업적인 면을 보여주는 부분은 많지 않아요. 저는 태경이가 왜 이 직업을 택했을지, 그가 자라온 환경에 좀 더 포인트를 맞춰보려고 했어요. 학교생활은 어땠고, 어떤 결심으로 산부인과를 선택했을지에 대해 고민했죠.
태경이는 다양한 감정을 많이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잖아요. 가족들에겐 질렸고, 많은 것을 가졌지만 속은 공허하죠. 해석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테크닉적으로 접근해보려고 했어요. 화를 내보거나 눌러보는 식으로요. 그런데 감독님과 이야기하고, 점차 태경이를 입체적으로 만들어가다 보니 그런 테크닉보다는 캐릭터 자체를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태경이는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을 뿐, 나와 비슷하게 노멀한 30대 청년이라고 접근하는 거죠. 처음에 제가 생각한 태경이는 ‘의대를 나온 엘리트’였어요. 제가 그런 엘리트들을 만났을 때 느낀 건, 웬만해서는 크게 흥분하지 않는다는 거였고요. 그런데 극 중 태경이는 엄청나게 소리치고 격해질 때가 있거든요. 생각해보니 엘리트이기 전에 저의 또래 청년이더라고요. 제가 편견을 가지고 접했던 거죠. 그래서 그냥, 냉정함보다는 조금 더 일차원적으로 표현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으로 캐릭터에 임하기로 했어요. 그래야 시청자들도 태경이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해주실 것 같아서요.
트렌치코트, 니트, 쇼츠 모두 아미.

트렌치코트, 니트, 쇼츠 모두 아미.

무려 50부작이라 가을까지 드라마가 이어질 거고, 주연배우로서 긴 호흡을 계속 끌고 가야 할 텐데 재현 씨에게도 큰 도전이겠어요.
하루하루 열심히 할 뿐이지, 오늘에 충실히 잘 하자는 마음이에요. 오늘은 오늘의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내일은 아직 안 왔으니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듯 불안한 마음을 갖지 않기로.
배우로 활동한 지는 딱 10년이 됐어요. 그사이 책도 내고, 예능에서도 큰 활약을 했죠. 배우 안재현, 작가 안재현, 예능인 안재현, 그리고 또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고 싶나요?
타이틀에 의미를 두지는 않으려고 해요. 그냥 TV 속 모습이나, 실제로 저를 보는 분들이나 모두 ‘안재현을 보면, 또는 안재현과 있으면 참 여유롭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도 어딘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다들 바쁘고 힘들잖아요. 그런 순간순간 사람들을 여유롭게 해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재현 씨랑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눈 입장에서, 지금도 약간 그런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웃음)
나영석 PD의 추천사처럼, 착한 마음으로 이기겠다는 재현 씨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착하다기보단… 저는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이 자리에 왔거든요.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스태프들도 있고, 간접적으로 TV로 저를 지켜봐주시는 팬들이나 시청자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죠. 큰 도움을 받은 만큼 돌려드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여유를 많이 가지려고 해요. 내 자신이 여유가 없으면 베푸는 것도 힘들어지고, 스스로도 잠식돼버려서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거 있잖아요. 일행이 다 안 왔는데 음식이 미리 나왔을 때, 없는 사람 미리 챙기는 게 마음이 편하지 내가 다 먹어버리면 그거 되게 찝찝하거든요. 나도 먹고 없는 사람도 챙길 수 있는, 그런 넉넉한 사람이고 싶어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꼭 보세요. 다음 책을 위한 영감을 받게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꼭 볼게요.(웃음)

Credit

  • EDITOR 김현유
  • PHOTOGRAPHER 송시영
  • STYLIST 윤현지
  • HAIR 이정현
  • MAKEUP 이유라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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