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프로스의 진풍경인 제노비아 난파선.
이쯤에서 키프로스가 어떤 곳인지 설명이 필요하겠다. 해외에서의 위상에 비하면 국내에는 의아하리만큼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니까. 키프로스는 지중해 동부에 자리 잡은, 대충 경기도 면적쯤 되는 크기의 섬이다. 기원전부터 그리스 문화권에 속해 있었고 주민들도 그리스인의 후예를 자처하지만 위치상으로는 터키 국경에 더 가깝다. 그리고 1974년 쿠데타와 터키의 침공 이후 북쪽의 3분의 1가량은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으로 분단된 상태다. (편의상 해당 기사에서는 미승인 국가 입지의 해당 지역을 제외한 분단선 남쪽의 키프로스 지역을 ‘키프로스’로 지칭한다.) 키프로스가 관광 명소로 떠오른 건 그리스에 근간을 두면서도 너그럽게 어우러진 문화, 천혜의 자연, 그리고 그로 인해 점점 늘어가는 방문객의 호응에 맞춰 잘 발달한 관광 인프라 덕분이다. 그것들이 조화를 이뤄 ‘차로 한 시간이면 어디든 가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섬’이라는 환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유럽인들은 해안가의 일광욕에 관심이 많죠. 요즘 많이 오는 일본인들은 그보다는 잘 보존된 자연과 지속 가능한 개발 정책에 관심이 많고요. 하지만 어떤 목적을 갖고 왔든 다른 걸 즐겨보고 싶은 날이 있잖아요.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유적지 투어를 하고 싶다, 그러면 지도 앱을 켜고 차를 몰면 돼요. 와이너리나 예쁜 마을을 둘러보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되고요. 해양 스포츠, 골프, 트레킹, 사격…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도 정말 많죠.” 이튿날 저녁 식사 자리를 함께한 라르나카 관광 에이전시의 디렉터 다니엘라 테오도투의 설명이었다. “특히 겨울에는 스키도 즐길 수 있고요. 그건 정말 이런 휴양 섬에서 얻기 쉽지 않은 경험이죠.”
그렇다고 키프로스의 매력이 다양성과 편의성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해다. 그 하나하나의 선택지가 품은 깊이를 들여다봐야 정당하다. 우선 키프로스에서는 어디를 가든 해변을 만날 수 있는데, 저마다의 특색을 갖고 있어 동행과 여행 목적, 선호하는 분위기에 따라 선택하기 좋다. 가족 단위로 물놀이를 즐기기 좋은 니시 해변, 좀 더 젊은 층이 해양 스포츠와 수영을 즐기는 란다 해변, 무화과 나무가 늘어선 아름다운 산책로를 가진 프로타라스 해변, 일몰 뷰를 즐기는 현지인들로 그득한 생조지 해변…. 아이아나파 항구 인근의 해변에서는 ‘MUSAN 수중 박물관’도 만날 수 있다.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 쪽으로 200m 정도 헤엄쳐 가면 해저 10m 깊이에 설치된 조각상들을 구경할 수 있는 박물관인데, 세계에 몇 안 되는 진귀한 볼거리다. 해안 절벽에 비스듬히 선 난파선이 이색 풍경을 자아내는 ‘제노비아 난파선’ 역시 다이빙 애호가들이 일생에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 하는 다이빙 포인트로 꼽힌다. 그리스 유적은 그리스 본토나 터키 서부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지만 키프로스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은 그 관리 상태가 놀랍도록 빼어나다. ‘테세우스의 집’에서 만날 수 있는 모자이크 바닥은 2000년의 세월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생생하며, ‘쿠리온 고고학 유적지’의 원형극장은 설계에서 의도된 ‘자연 마이크 효과’가 여전히 작동해 언제 방문하든 극장 한가운데에 서서 말을 해보고 혼자 놀라움의 웃음을 터뜨리는 관광객을 볼 수 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10개의 교회나 그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비잔틴 프레스코화의 보존 상태도 역시나 놀라운 수준이며, 이맘때쯤 라르나카 소금 호수에서 휴식을 취하는 플라밍고 군집 역시 키프로스에서 꼭 봐야 하는 명물로 꼽힌다. 그리고 이렇듯 일주일 일정으로 돌아보기에도 빠듯할 만큼 즐길 거리가 많은데도, 때로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 때문에 예정에 없이 차를 멈춰 세워야 하기도 했다. “아이아나파 조각공원은 모든 예술가에게 열려 있는 박물관이에요. 이 공원 안에 내 조각을 두고 싶다, 그러면 지자체에 신청만 하면 되죠. 어디에서 온 예술가건 자리를 마련해주고, 주제도 각자 자유롭게 선정하도록 해요.” 조각공원 풍경에 차를 멈춰 세웠을 때 가이드 알렉시아가 들려준 설명이다. 그녀는 내심 ‘얼마나 볼 게 많은데 여기에서 시간을 허비하나’ 싶은 눈치이긴 했으나, 멀리서 온 관광객에게는 이국적이고도 전원적 풍광에 전위적 조각상들이 불쑥불쑥 솟아난 광경이 오랜 시간을 두고 감상할 만했다.





그래서 결론을 내놓자면, 키프로스에는 스토리, 코만다리아, 사철 아름다운 지중해 해변과 놀라운 자연, 풍부한 역사가 있고, 누구나 휴식과 모험을 할 수 있도록 잘 조성된 빼어난 호텔 시설들과 인프라가 있다. 라르나카의 바 ‘핫샷츠’에서 만난 핀란드 남자의 말에 따르면, 키프로스에는 ‘태양’도 있다. “몇 년 동안 포르투갈에서 살았는데, 겨울이면 그곳에서도 태양이 그립더라고. 그래서 아예 키프로스로 오게 됐지.” 키프로스는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답게 나이트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잘 발달해 있다. 팬시한 다이닝 바, 로큰롤 명곡들을 끊임없이 트는 뮤직펍, 가라오케 바, 라이브클럽까지 매일 밤을 새로운 경험을 하며 보낼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다. 가라오케 바의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동양인 남자를 위해 다들 응원을 보냈고, 라이브클럽의 옆자리 여자는 밴드가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자 대뜸 일어나서 함께 춤을 추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라르나카 바 핫샷츠의 핀란드 남자는 현지인들과 당구를 치는 중에도 계속 옆자리로 와서 이것저것 물었고. 그러니 키프로스에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관광 명소로 이름을 날리는 세계 수많은 곳이 더 이상 보여주지 않기로 한, 바로 그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