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요리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식 요리 비법은 모두 사실일까?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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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요리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식 요리 비법은 모두 사실일까?

어머니가 알려준 요리 비법은 모두 만고의 진리일까? TV 속 한식 명장들이 갖은 시도 끝에 터득했다는 조리법은 과연 얼마나 유효할까? 맛의 원리를 과학과 혀로 동시에 좇는 약사 겸 푸드 라이터 정재훈과 함께 우리 주방 안에 떠도는 미신들을 파헤치고 그 대안을 제시했다.

오성윤 BY 오성윤 2023.04.30
 
술로 육류나 생선류의 잡내를 없앤다?
결론부터 내고 시작하면, 잡내를 제거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향기 물질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것만 따로 제거하는 요리 기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잡내 제거 비법이라고 떠도는 대부분의 팁은 냄새 제거가 아니라 더 강한 다른 냄새를 더해 덮어버리는 것이다. 도수가 높은 술을 육류나 해산물 요리에 넣고 불을 붙이는 조리법 ‘플랑베(Flambe)’를 시전해도 선택적 잡내 제거는 불가능하다. 풍미 물질도 함께 날아간다. 맛술, 청주, 화이트 와인을 뿌려서 요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오래 끓여도 알코올의 5% 정도는 물에 섞인 채로 남는다. 짧게 익히면 10~50%, 플랑베의 경우 30~75%의 알코올이 요리에 남는다. 브랜디 같은 고도주를 활용한 플랑베는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을 자극하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혹은 요리나 디저트에 살짝 태운 냄새와 술의 향미를 더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마늘, 생강, 한약재를 넣는 것도 잡내를 덮을 뿐 제거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게 돌파구가 될 수는 있다. 식품공학자 최낙언은 잡내는 제거하려 노력하기보다 다른 향기 물질과 합하여 좋은 향으로 조화시키는 게 낫다고 설명한다. 노네날, 인돌처럼 향기가 고약한 물질을 일부러 향수 원료로 사용해 좋은 향을 강화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해산물의 비린내를 제거한다며 식초나 레몬즙을 넣는 것도 실은 냄새 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잘 녹는 형태로 만들어, 콧속으로 휘발해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일 뿐이다. 그래도 ‘잡내 제거’라는 목표에 미련이 남는다면 유튜버 과나의 요리 달인 소개 프로그램 패러디 영상 ‘[생생달인] 라면의 달인’ 편을 참고해보자. 물의 잡내를 잡겠다고 산삼가루를 넣고, 산삼의 잡내를 잡겠다고 들깻가루를 넣고, 들깨의 잡내를 잡겠다고 청주를 넣고, 청주의 잡내를 잡겠다고 맥주를 넣고, 맥주의 잡내를 잡겠다고 대추 달인 물을 넣고… 보고 있으면 ‘잡내’라는 게 대체 뭔지 아득해질 테니까. 그렇게 잡내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잡내가 안 나는 식재료만 골라 요리하는 편이 낫다. 다만 소고기에서 소고기 향, 돼지고기에서 돼지고기 향이 나는 걸 잡내라고 혼동하는 일은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 요즘 유통되는 고기에는 잡내가 없다. 존재하지 않는 걸 제거하는 데 헛심 쓰지 말자.
 

 
쌀뜨물을 활용해 더 깊은 맛을 낸다?
쌀뜨물의 99.3%는 수분이며 나머지 0.7%의 절반은 탄수화물이다. 쉽게 말해, 쌀뜨물은 연하게 탄 전분 물이다. 탕수육 소스에 전분 물을 넣으면 걸쭉해지듯, 쌀뜨물이 내는 효과도 마찬가지다. 다만 맛이 깊어진다고 하기는 어렵다. 쌀뜨물 속 전분은 이미 물에 녹은 상태로 요리에 넣고 끓이므로 마이야르 반응(아미노산과 환원당 사이의 화학반응으로 고온 가열로 인해 식재료에 특별한 풍미가 부여되는 현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좋은 말로 얘기하면 맛이 부드러워지고, 달리 말하면 오히려 풍미가 약해진다. 쌀뜨물에 비타민 B1이 풍부하다는 설도 있으나 비타민 B1은 그리 좋은 향기를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종합비타민제 알약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의 주원인이다. 쌀뜨물에서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타민 B1이 그리 많이 들어 있진 않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고기나 사골을 무한정 오래 끓인다고 국물이 더 진해지지 않는다. 그냥 물만 넣고 끓이는 방식으로 고기 속 단백질 맛의 정체, 아미노산으로 분해하기는 어렵다. 산이나 염기를 넣어줘야 가수분해가 된다. (대두단백으로 산분해 간장을 만드는 원리와 같다.) 오래 끓이면 고기나 사골의 콜라겐이 녹아 나오면서 국물이 조금 더 끈끈해질 수는 있으나 맛 자체에는 큰 영향이 없다. 전지나 사태 같은 질긴 부위의 고기를 씹을 수 있을 정도로 연하게 하기 위해 고기를 오래 끓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연하고 육즙이 풍부한 고기를 만들려면 뭉근한 불로 오래 익혀야 한다. 한식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끓이는데, 끓는 물에 오래 두면 오히려 고기가 푸석푸석해진다. 채소를 넣고 국물을 낼 경우는 더더욱 장시간 끓일 필요가 없다. 채소 속 감칠맛 성분은 물에 쉽게 녹아 나온다. 국물 맛을 시원하게 하려고 무를 넣는 경우도 많은데 무를 넣을 경우 국물의 단맛이 증가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게 좋다.
 

 
고기를 ‘재워서’ 연하게 만든다?
배즙 넣은 양념에 재워 불고기가 연하다는 둥 하는 자랑은 이제 그만 하자. 배즙을 넣는다고 식감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고기가 연해지지 않는다. 그나마 키위나 파파야 속에 든 단백질 분해효소는 그보다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것도 따로 주입하지 않는 한 2~3mm 정도로 얕게 스며들 뿐이다.
핏물을 뺀다며 고기를 물에 담가놓는 과정도 불필요하다. 우리가 고기의 핏물이라 생각하는 건 실제 피가 아니라 육즙이다. 근육 속 미오글로빈이 내는 적색 때문에 피처럼 보일 뿐이다. (갈비의 경우에는 뼈가 고기에 붙어 있어 약간의 피가 고여 있을 수는 있다.) 핏물을 뺀다고 고기를 물에 담가놓으면 다른 풍미 물질도 함께 물에 녹아 줄어든다. 물이 격렬하게 끓으면 표면에 단백질, 지방이 엉기면서 거품이 많이 생긴다. 거품이 불순물인 것은 아니고 그저 고기에서 일부 성분이 녹아 나온 것뿐이지만, 입맛에 따라 텁텁하거나 씁쓸해 불쾌하게 여길 수 있다. 맑은 국물이 좋다면 위에 떠오른 거품을 제거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애초에 거품이 덜 생기게 하고 싶다면 끓지 않을 정도로 낮은 온도에서 조리하면 된다. 온도 조절만으로도 국물 맛이 좋고 고기도 너무 퍽퍽하지 않은, 더 나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고기를 뒤집으면 육즙이 빠진다며 뒤집지 않고 기다리는 경우를 아직도 종종 본다. 고기 겉면을 아무리 시어링(강한 열로 고기 표면을 태우듯 익히는 조리법)해도 육즙이 빠져나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고기 구울 때 뒤집지 않고 그대로 두면 불판에 고기가 달라붙을 가능성이 낮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처음 가열을 시작하면 고기의 단백질이 금속과 결합해 눌어붙지만 더 익히면 그런 결합이 다시 끊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주 뒤집어줄 때 장점이 더 크다. 고기가 두꺼울수록 자주 뒤집어줘야 겉만 과하게 익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찌개 거품은 모조리 떠서 버려야 한다?
당신이 찌개에 넣은 것들은 분명 모두 식재료일 테다. 당신이 넣은 재료 속에 불순물이 없으니, 불순물이 거품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앞 단락에서 말했듯 그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떠내서 버려도 된다. 멸치를 우릴 때 멸치 대가리를 떼고 넣으라는 것도 해묵은 관습이다. 식재료 전문가 김진영은 과거 유통, 보관 중 지방이 산패한 멸치는 똥(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내장)과 대가리를 제거해야 쓴맛이 덜 났지만 요즘은 애써 대가리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과거와 달리 멸치를 바로 건조, 냉동하기 때문에 지방이 산패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통멸치를 넣고 국물을 내도 아무 문제 없다. 오히려 맛이 진해진다.
어묵, 닭고기, 달걀 등의 식재료를 미리 씻거나 데치는 것도 불필요한 관행이다. 닭고기와 달걀의 경우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살모넬라 같은 세균에 오염된 물방울이 튀어 다른 식재료나 식기, 조리도구를 오염시키면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넣기 전에 달걀을 씻어 보관하면 달걀 표면의 보호막을 제거해 달걀이 더 빨리 상하게 한다. 달걀을 씻기보다는 달걀을 만진 손을 씻는 게 더 중요하다.
어묵이나 소시지를 조리 전에 한 번 삶아 불순물이나 첨가물을 빼야 한다는 의견도 흔히 볼 수 있다. 어묵과 소시지는 그 자체로 이미 조리된 식품이다. 제거할 불순물이 없다. 어묵과 소시지를 물에 삶는다고 첨가물이 다 제거되지도 않고, 그 성분이 제거 과정을 거쳐야 할 정도로 해롭지도 않다. ‘맛없게 먹는 요리 비결’을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묵과 소시지를 데치는 일에는 관심을 끊자.
 

 
식초나 후추 같은 조미료에 ‘조미’ 외의 능력이 있다?
달걀 삶을 때 식초를 뿌려서 면을 쫄깃하게 만든다는 사람, 여름에 냉면집 가면 꼭 있다. 이미 삶아진 면 표면에 식초가 닿는다고 해서 단백질이 응고하거나 면이 더 단단해지지는 않는다. 식초는 면의 물성을 바꾼다기보다 국물의 감칠맛, 짠맛을 높여주는 효과를 낸다. 달걀 삶을 때 식초를 넣고 끓이면 껍데기가 잘 까진다는 것도 틀린 주장이다. 달걀 껍데기가 식초에 전부 녹을 때까지 담가두는 게 아닌 이상, 달걀 까는 데 식초는 별달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달걀을 스팀 또는 뜨거운 물로 익히면 흰자 단백질이 빠르게 응고해 막에 달라붙지 않는다. 끓는 물에 갑자기 달걀을 넣으면 기포에 의해 떴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다가 깨질 수도 있다. 즉 증기로 찌거나 끓는점 이하에서 삶기 시작하면 껍질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면서 삶은 달걀 껍질을 쉽게 깔 수 있다.
통후추를 그대로 넣고 조리하는 것도 잘못된 용례다. 통후추의 풍미 물질은 후추알의 표면이 아니라 중심부에 있다. 으깨거나 갈지 않은 통후추를 넣고 끓이면 매운맛만 녹아 나올 뿐 후추 향을 내는 효과는 떨어진다. 간 후추라 해도 요리 중에는 넣지 않는 것이 좋다. 조리 중에 넣으면 열에 불안정한 후추 향은 다 날아가고 매운맛, 쓴맛만 남는다. 즉 후추는 꼭 갈아서 쓰며, 요리 마지막 단계에 넣어야 한다. →
 

 
그 외의 소소한 미신들
 
Q. 물에 소금부터 넣어야 빨리 끓는다?
A. 소금을 넣는다고 물이 더 빨리 끓지는 않는다. 끓는점이 조금 높아지긴 하지만 요리 시간을 단축시키거나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힘든 정도의 미미한 차이다.
 
Q. 오징어채는 물에 미리 불려 사용해야 한다?
A. 소시지, 어묵과 마찬가지로 오징어채도 물에 불려 첨가물을 제거할 필요가 없다. 부드럽게 할 목적이라면 물을 조금 뿌려서 적셔주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Q. 밀가루는 체에 쳐서 써야 한다?
A. 요즘 밀가루는 입자가 충분히 곱다. 거품기로 저어주는 정도로도 잘 풀린다. 
 
Q. 통조림에 함께 든 액체는 따라버려야 한다?
A. 통조림 속 물이나 기름은 해로운 물질이 아니라 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짠맛의 강도를 조절하기 위해 버릴 수는 있지만 먹으면 큰일 날까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Q. 국수를 끓일 때 물의 양은 넉넉할수록 좋다?
A. 국수나 스파게티를 끓일 때 물의 양은 면이 골고루 익기에 충분한 정도면 된다. 처음 면이 익기 시작할 때 잘 저어서 떨어뜨려 놓는 정도만 해줘도 뭉치지 않는다. 
 

 
 
WHO’S THE WRITER? 
정재훈은 약사이자 푸드 라이터다. 자칭 ‘카트 끄는 잡식동물’로 미식과 새로운 음식 맛보기를 즐긴다. 저서로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 〈정재훈의 식탐〉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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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오성윤
    WRITER 정재훈
    ILLUSTRATOR 류희령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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