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학습자의 증가, 그리고 두 개의 거울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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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학습자의 증가, 그리고 두 개의 거울

김현유 BY 김현유 2023.05.15
 
“다룸바!” 내가 건넨 인사에 학생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예상한 대로다. 나는 그가 더 당황하기를 바란다. 순식간에 몰려오는 아찔함에 빠지기를, 그 속에서 허우적대기를 바란다. 나는 다시 그 학생에게 손을 흔들며 말을 건넨다. “다룸바!” 학생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나는 계속 반복한다. “다룸바!” 내가 하는 말이 인사라는 것을 알아차린 학생은 그제야 조심스레 답한다. “다룸바.” 다음 차례.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와 이즈다 승주디.” 그리고 손을 학생 방향으로 내밀며 묻는다. “이즈 와?”
내가 구사하는 언어는 ‘툼바어’고, 나는 지금 이 언어를 가르치는 중이다. 툼바어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툼바어는 아마존강 유역 싱구(Xingu) 지역에 사는 라이투미족의 언어다. 한국어교육학 첫 수업 시간에 나는 언제나 이 툼바어를 가르친다. 한국어나 영어 설명은 하나도 섞지 않고, 오직 툼바어로만 툼바어를 가르친다. 다룸바. 와 이즈다 승주디. 이즈 와? 알로!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질적인 언어 앞에서 막막해하며 머뭇거리기는 하지만, 학생들은 이내 필사적으로 툼바어를 익히기 시작한다. 한국어나 영어와 같이 익숙한 언어로 도망칠 퇴로가 없기 때문이다. 10분도 안 돼서 학생들은 툼바어로 인사를 건네고 통성명을 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툼바어의 문법도 파악해낸다.
툼바어를 사용하는 부족의 이름이 ‘라이투미(Lie to me)’라는 점에서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툼바어는 존재하지 않는 언어, 내가 만들어낸 가짜 언어다. 내가 가짜 언어를 만들고, 그 가짜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수업까지 하는 이유는 한국어라는 언어가 외국인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얼마나 낯선 언어이고 그런 언어를 배우는 게 얼마나 막막한 것인지 느껴보라는 의미에서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어는 낯선 언어’라는 말 자체가 낯설게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 ‘케이(K)’라는 접두사가 붙은 한국 문화가 전 세계에서 유행이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들이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들에게 한국어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건 당연하다. 〈에스콰이어〉에서 “외국인 한국어 학습자에게 한국어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나요?”라며 글을 청탁한 이유도 같을 것이다.
외국인 학습자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는 몇 학기 분량의 강의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언어권에 따라,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음운, 통사, 의미, 화용 등등의 언어 층위별로 달라질 수 있는 ‘한국어를 배울 때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설명하자면 몹시 지루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대신 외국인 한국어 학습자들의 어려움보다는 한국어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을 궁금해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본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는 어떤 언어인가? 이 질문은 사실 거울 앞에서 말을 거는 것과도 같다. 이 질문의 강조점은 사실 ‘외국인’이 아닌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질문의 발화자는 대부분의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질문자가 의식하든 못 하든 이 질문에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한국어’가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는가다.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한국어는 우리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한국어를 새롭고 낯설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한국어 표기와 문법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던 주시경이 본격적으로 국어학자로서 면모를 드러내기 전에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주시경은 선교사들에게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이 아닌 것으로 설명해야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한국어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초창기 한국어 학습자는 선교사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배경의 한국어 학습자 집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한국어교육 학자들은 통상 한국어 학습자들을 ‘외국어로서 한국어 학습자’와 ‘제2 언어로서 한국어 학습자’로 구분한다. 전자는 말 그대로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이들이다. 이들은 한국에 오래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한국 사회의 일원이 아니며 떠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다. 한국 문화, 이른바 ‘케이 컬처’가 좋아서 한국어를 배우러 온 이들이 대표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외국어로서 한국어 학습자들을 ‘비장소’의 한국어 학습자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공항처럼 장소이면서도 장소가 아닌 곳, 분명 머물렀지만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곳을 비장소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들은 비장소의 한국어 학습자들이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좋아하지만 이들 학습자들에게 자신들이 있는 곳은 중요하지 않다. 유튜브에서는 한국어가 다른 언어, 특히 일본어나 중국어에 비해 월등히 우월하고 뛰어난 언어이며 그런 이유 때문에 많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내용의 콘텐츠가 범람한다. 이런 콘텐츠를 인증해주는 역할, 한국어의 아름답고 우월한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이들은 주로 외국어로서 한국어 학습자들, 즉 ‘비장소’의 학습자들이다. 주로 서양권의 학습자인 이들은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설파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분명 알고 있고 가본 적 있는 한국의 여러 장소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장소는 이렇게 ‘비장소’가 된다. 바로 한국어를 찬양하는 비장소의 한국어 학습자들이 한국인들이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거울이다. 이 거울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내가 당연히 가진 것의 가치를 재확인하며 노력 없는 뿌듯함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제2 언어로서 한국어 학습자’들은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된 사람들이다. 한국어는 그들의 첫 번째 언어가 아닌 두 번째 언어다. 이들은 익숙하지 않은 두 번째 언어인 한국어로 한국 사회의 공적 의사소통에 참여해 어떻게든 한국에서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가 이 범주에 들어가는데, 이 범주의 학습자들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한 이들로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이들은 ‘장소’의 한국어 학습자들이다. 이들의 장소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바로 그 장소다.
우리는 “외국인 한국어 학습자에게 한국어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나요?”라는 질문 속에 ‘장소의 한국어 학습자’를 포함하지 않으려 한다. 2022년 기준 한국 전체 인구의 4%를 넘을 정도로 많지만 같은 장소에 머물고 있기에 이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한국인들에게 자신과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어를 모른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사람은 한국 땅 안의 사람들이 아니라 한국 땅 밖의 사람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어가 제1 언어가 아니라 제2 언어라니. 우리가 머무는 이 장소에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있다니. 우리와 같은 ‘장소’에 머무르려면 우리와 같은 한국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어딘가 다른 발음으로 자신들이 아는 어휘를 섞어 ‘만들어진’ 이들의 한국어는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같은 장소에 머물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들의 이질적인 한국어. 한국인들에게 제2 언어로서 한국어 학습자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한국어는 일종의 문제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은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깨진 거울,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거울이다. 정부는 한국어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며 해외 한국어 보급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언론의 조명도 여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러나 이주민들을 위한 한국어교육은 여전히 ‘봉사활동’ 취급을 받는다. 정작 더 중요한 것이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노력을 들여도 뿌듯할 게 없는 외면하고 싶은 거울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 한번은 생각해보시라. 당신이 보고 싶은 거울은 어떤 것인가? 어떤 거울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질 것이다.
 
백승주는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한국어교육학과 사회언어학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책 〈미끄러지는 말들〉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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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WRITER 백승주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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