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귀촌을 꿈꾸는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귀향은 고향으로, 귀농은 농업으로, 귀촌은 시골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세 단어에는 ‘도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다. 1960년대 발생한 이농(離農) 현상을 뒤집어 이도(離都)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도시를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 이도를 지속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물었다.

프로필 by 박호준 2023.07.04
 
제빙창고를 재사용해 만든 스페이스 미조.

제빙창고를 재사용해 만든 스페이스 미조.

전시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돌창고.

전시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돌창고.

자연경관을 해치치 않는 앵강봉 전망대.

자연경관을 해치치 않는 앵강봉 전망대.


[ 돌창고 ] 
엄밀히 말하면 돌창고 앞에 있는 옛 농산물 창고가 카페다. 돌창고는 문화 공간으로 쓰이는데 8월 15일까진 남해의 돌을 주제로 한 <돌돌돌>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계절에 따라 소소한 이벤트가 열리곤 하는데, 예를 들면 카페 옆 작은 텃밭에서 수확한 옥수수를 함께 나누어 먹는 식이다. 커피를 마셔도 좋지만 미숫가루와 쑥개떡이 별미다. 또는 남해 시금치를 사용해 만든 ‘이파리빵’에 레몬유자 에이드를 들이켜는 것도 방법이다. 카페 한편이 편집숍으로 꾸며져 있고, 거기에 작가가 빚은 공예품과 생활자기, 남해와 관련된 상품, 직접 작업한 출판물을 비치했다.
인스타그램: dolchanggo  /  주소: 경남 남해군 삼동면 봉화로 538-1 

 
 “도시가 좋아. 이렇게 좋은 줄 알았으면 진작에 옮길 걸 그랬어.” 1933년에 태어나 약 70년간 경상남도 남해군에 살았지만 현재는 진주시에 거주 중인 박용수 할아버지의 말이다. 그는 도시를 선호하는 이유로 가까운 병원과 복지시설을 꼽았다. 고작 일곱 살인 박시우 어린이도 이렇게 말했다. “시골은 재미없어. 서울에 살고 싶어.” 지극히 개인적인 사례를 적었지만,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시·군·구가 118개나 된다. 이를 지도로 나타내면 국토의 3분의 2 이상이 위험 지역이다.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특히 남해군은 소멸 고위험에 속한다. 1992년 7만3714명이던 남해 인구는 꾸준히 하락해 현재는 4만1298명밖에 되지 않는다. 1960년대에 13만 명이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반세기 만에 인구가 4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셈이다. 체감상 서울에서 부산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남해로 촬영을 떠난다고 했을 때 포토그래퍼는 이렇게 말했다. “설마 당일치기는 아니지?”  
그런 남해군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청개구리 같은 사람이 있다. 경남 하동 출신인 헤테로토피아의 최승용 대표다. “제가 학생일 때 주위 어른들은 무조건 서울로 가야 성공한다고 말했어요. 젊은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오기라도 하면 실패한 인생처럼 여겨질 정도였죠. 제 생각은 달랐어요. 서울로 올라가 대학원에서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한 건 지방으로 돌아오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었죠.” 호시탐탐 도시 탈출을 꿈꾸던 그를 남해군으로 끌어들인 건 돌창고였다. 20세기 초반, 곡식을 보관하기 위해 돌창고가 남해 곳곳에 지어졌으나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줄고 최신 설비의 창고가 생기면서 점차 쓸모를 잃었다. 하지만 최 대표의 눈에는 돌창고야말로 도시 탈출의 동아줄이었다. 그는 돌창고가 지닌 잠재력에 승부를 걸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문화공간 돌창고’의 시작이었다.
“아직 성공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른 것 같아요.” 성공적인 정착의 비결을 묻자 그가 내놓은 답이다. 그러나 1975년 남해대교 옆에 만들어졌던 ‘남해각’을 전시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1986년 건축한 미조항의 냉동창고를 문화복합공간 ‘스페이스 미조’로 탈바꿈시켰으며 남해군의 요청에 따라 경관을 저해하는 타워형 전망대가 아닌 ‘벙커형’ 전망대 ‘앵강봉’을 기획한 그가 성공을 하지 않았다면 누가 성공을 했다는 말인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있어야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겨우 직원 6명 채용했는데, 아직 한참 모자라죠. 더 많은 고용 창출을 이루어내야 해요.” 그는 남해 특산물인 마늘, 멸치, 시금치를 이용한 간편식 개발과 해외 유통을 준비하고 있다.
옆 나라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인구감소화 노령화, 지방 소멸과 같은 사회문제에 직면했는데 나름의 해결책을 선보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야마나시현의 ‘후지요시다’ 마을이다. 후지요시다는 후지산 아래에 위치한 소도시로 섬유를 이용한 산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하지만 여느 지방 소도시와 마찬가지로 노동인구가 줄고 섬유 트렌드를 따가가지 못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는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도쿄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후지요시다로 내려와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201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 마을을 자주 방문해요. 거긴 헤테로토피아 같은 규모의 회사가 다섯 개 정도 있어요. 서로 경쟁과 협력을 하면서 마을을 키워나가는 거죠.” 최 대표의 말이다. 그와 함께 일하는 스기하라 유타가 바로 후지요시다에 활기를 불어넣은 도쿄 출신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묵직한 조언 하나를 남겼다. “어떤 종류의 귀촌을 하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건 중요해요. 저에겐 그게 카페였고요. 카페가 잘되지 않았다면 지역문화인프라 구축을 위한 기획이나 남해 보호수 프로젝트 같은 걸 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초반에 힘들었나 봐요. 하하.” 군산에 거주하는 송수민 씨의 말이다. 그녀는 여행으로 군산에 왔다가 눌러앉은 ‘맨땅에 헤딩’한 케이스다. 대도시에 살 땐 느끼지 못했던 이웃 주민 간의 끈끈한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이유였다. 몇 달간 안양과 군산을 오가던 그녀는 결국 군산으로 이사를 결심했지만 일자리가 문제였다. 그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가 조권능 대표다. 2010년 초반부터 군산을 무대로 로컬 비즈니스를 전개해오던 그는 ‘럭키마켓’이라는 펍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송수민 씨를 아르바이트로 고용한 것이다. 현재 그녀는 조권능 대표가 운영하는 주식회사 ‘지방’에 입사해 군산을 무대로 각종 프로젝트와 공간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 술익는 마을 ]
명절에 자주 보게 되는 백화수복이라는 술이 있다. 몰랐겠지만 군산에서 생산하는 술이다. 여기에 착안해 술익는 마을은 ‘흑화양조’를 준비 중이다. 어떤 맛이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 맛이 좋을 테다. 술은 누구와 어디서 마시는지도 중요한데, 술익는 마을은 술을 매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시로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수 요조와 함께 술을 마시며 술에 대한 글을 쓰고 나누는 식으로 말이다. 직접 술을 빚어보는 체험도 가능하며 군산을 소개하는 전시도 열리고 있다.
인스타그램: soolma_gunsan  /  주소: 전북 군산시 구영2길 44

 
 
재미있는 사실은 송수민 씨의 여동생과 여동생의 남자 친구 그리고 남자 친구의 사촌 동생까지 군산으로 이주했다는 점이다. “군산에 산 지 3년 정도 됐는데 이만하면 성공적인 정착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성공 귀촌’에 대한 조언으로 점진적 이주를 꼽았다. “한 번에 점프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울에 살다가 갑자기 산속으로 가는 건 실패할 확률만 높이는 꼴이죠.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한 달 살기’ 프로그램 같은 것에 지원해서라도 충분히 미리 살아볼 수 있거든요.”
춘천의 외진 산속에 ‘자발적 고립’을 주제로 ‘썸원스페이지 숲’ 북스테이를 운영하는 손영일 대표도 입을 모았다. 그는 싸이월드에서 UI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퇴사 후 북스테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충분한 적응 기간을 거쳤다. “고향인 춘천에 오기 전 강화도에서 먼저 5년간 북스테이를 운영했어요. 퇴사 전부터 알던 곳인데 원래 주인이었던 분이 대신 운영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길래 덥석 물었죠.” 5년간 경험을 쌓은 뒤에도 곧바로 썸원스페이지 숲을 차린 건 아니다. 춘천 시내에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또 4년 동안 춘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피며 기반을 다졌다. 그러니까 도합 9년을 준비한 셈이다.
“자신도 이런 종류의 숙박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투숙객들이 종종 계세요. 그럴 때마다 저는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돌이켜보고 그걸 공간에 풀어놓으라고 말해줘요. 그러면 자연스레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공간에 모여들게 되거든요. 그걸로 충분하죠.” 손 대표의 말이다. 그 예로 썸원스페이지 숲의 전매특허 아이템인 방명록이 있다.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사람들이 텔레비전도 없는 방에 머물며 손 글씨로 찬찬히 써 내려간 일기 같은 방명록이 숙소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남긴 방명록을 보면서 웃고 우는 사람이 많아요.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위로를 받는 거죠.” 요샌 동네 카페에서도 티셔츠나 모자 같은 아이템을 팔지만 썸원스페이지 숲은 그럴 계획이 없다. 그는 씨익 웃으며 “원체 멀티에 약해요. 강연이나 저서 작업을 고사하는 것도 그래서고요. 트렌드를 따르기보단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묵묵히 하려고요.” 자발적 고립을 주제로 하는 북스테이 운영자다운 말이다.
 
  

[ 밭멍 ]
불멍, 물멍, 숲멍 다음은 밭멍인 듯하다. 밭을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겠지만, 밭멍이 가꾸는 밭은 일반적인 밭과 다르다. 나뭇잎 형태를 본떠 만든 밭에서 다양한 작물이 나란히 자라기 때문이다. ‘밭멍 스테이’를 한다면 그 밭에서 재배한 채소로 만든 건강한 시골 아침 밥상을 맛볼 수 있다. 조금 더 길게 밭에 머무르고 싶다면 주말을 끼고 진행하는 2박 3일짜리 짧은 워크숍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학 시절 하루 종일 고추만 따던 고된 ‘농활’이 아닌, 버려지거나 잊혀가는 것들을 재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지속 가능하고 유익한 농활 체험이다. 밭이 보이지 않는 밤엔 불멍을 즐기면 그만이다.
인스타그램: battmung.log  /  주소: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태백산로 2498-9

 
 
남해와 군산과 춘천의 사례에서 얻은 성공의 비결 세 가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고 둘째, 이주하기 전 충분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셋째,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돌아보는 것이다. 귀촌 후 강원도 영월에서 ‘밭멍’을 운영하는 김지현 대표가 들려준 비결도 다르지 않다. 참고로 밭멍은 지속 가능한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 전 세계의 다양한 선례를 연구하고 공유할 뿐만 아니라 실험적인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는 공동체다. 제로 웨이스트 농업에 관심이 있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밭멍 프렌즈’를 모집해 일종의 ‘농촌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반농반X’라는 말이 있어요. 시오미 나오키라는 일본인 생태운동가가 쓴 책에서 비롯된 개념이죠. 반농반X라는 건, 삶의 반은 농사를 짓고 나머지 반은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하며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해요.” 책에 따르면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이후에 주목받게 된 ‘워케이션’ 또는 ‘디지털 노마드’ 같은 개념을 이미 20년 전부터 주장해왔다. 흔히 ‘시골은 텃세가 있어서 정착이 어렵다’는 말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있는 곳이 있겠죠.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덜컥 이주하기 전에 미리 살아보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저는 최소 1년 정도는 그런 시간을 갖는 게 좋다고 봐요.” 이어서 그녀는 “각종 지원 정책이 많아지면서 도피하듯 지방으로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마 성공하기 어려울 겁니다”라고 말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는 격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 썸원스페이지 숲 ] 
지난 2년 동안 썸원스페이지 숲을 가장 많이 찾은 직업은? 1위는 퇴사자, 2위는 간호사, 3위는 교사였다. 마케터와 스타트업 기획자, 기자가 그 뒤를 잇는다. 재방문객도 30%가 넘는다. 다시 말하면 관계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발적 고립이 특효약일 수 있다는 소리다. 공용 공간인 ‘숲속의 서재’엔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책이 꽂혀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숙소 근처의 녹음을 거닐며 오디를 따 먹거나 쏟아지는 별을 한가롭게 누워 바라보는 잔잔한 즐거움이 멋이다. 숙소가 아니라 ‘아는 동생 집’처럼 느끼도록 편안한 인테리어를 지향한다.  
인스타그램: someonespage_forest  /  주소: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삼포길 155

 
 
앞선 세 가지 원칙 외에 취재를 하며 발견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들은 항상 ‘함께’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헤테로토피아 최승용 대표는 “처음엔 돌창고를 서울에 있는 멋진 것들을 남해에 가져와 전파하는 용도로 사용했어요. 밴드를 초청하고 신진 아티스트 전시를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때의 돌창고에는 로컬이 없었던 겁니다. 어느 순간 ‘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로 남해라는 지역이 가진 특색을 아카이빙하기 시작했어요. 900여 개의 남해 전통 민요를 아카이빙하고 남해의 집밥 레시피를 책으로 엮으면서요.” 군산의 조권능 대표도 비슷하다. “군산 출신이지만 홍대 근처에 몇 년 산 적이 있어요.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 ‘군산의 홍대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F&B 사업을 시작했죠.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로컬 문화에 대한 목마름이 생기더라고요. 지금 군산의 양조장과 협력해 새로운 술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썸원스페이지 숲의 손 대표 역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그들이 남겨놓은 짧은 손 편지가 쌓여 지금의 썸숲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운영자이긴 하지만, 여긴 함께 꾸려나가는 곳이에요.”
밭멍 프렌즈를 모집하는 글 하단에는 ‘현대사회보다 더 바쁜 농경사회’라고 적혀 있다. 시골을 둘러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해가 뜨기 전 꼭두새벽에 이미 농사일을 끝내고 낮에는 휴식을 갖는 농경사회의 루틴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러니 빡빡한 회사 생활과 복잡한 인간관계를 뒤로하고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무른 마음가짐으론 농사를 짓건 카페를 열건 펜션을 운영하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 옛날 부모님 세대가 학업을 위해 이농(離農)할 때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이도(離都)’를 해야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투숙객이 자발적으로 남기고 간 방명록.

투숙객이 자발적으로 남기고 간 방명록.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GRAPHER 조혜진
  • PHOTO 술익는 마을/밭멍/썸원스페이지 숲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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