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노마의 영업 중단, "파인다이닝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르네 레드제피 셰프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
몇 개월 전,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칭송받는 레스토랑 중 하나인 노마가 영업 중단을 발표했다. 르네 레드제피는 말했다. “파인다이닝은 지속 불가능하다.” 노마의 영업 중단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해당 발언 이후로 시간도 꽤 흘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과연 르네 레드제피의 말뜻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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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의 ‘오션 시즌’ 메뉴 중 하나인 홍합과 메추리알.
코펜하겐의 유명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노마가 문을 닫는다는 뉴스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개중 몇 사람은 해당 뉴스에 비아냥에 가까운 댓글을 남기기도 했을 테고. 이를테면 노마의 상황과 랄프 파인즈 주연의 영화 <더 메뉴>(새로움과 결벽의 극단을 추구하다 미쳐버린 파인다이닝 셰프가 미식가를 자처하는 인간들과 자신의 추종자, 직원들을 죽이는 스릴러 영화)를 비교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일로 파인다이닝 업계는 치명상을 입었으며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이제 화석이 되어버린 이런 즐거움을 좇지 않을 것’이라는 종류의 페이스북 포스팅도 더러 올라왔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가 노마를 ‘국제적으로 유명한, 열렬한 갈구의 대상이 되는 미식의 신전들 중 하나’로 분류하며, ‘식도락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새로운 곡예, 신기한 센세이션,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프레젠테이션 방식, 식탁에 어지간해선 올라오지 않는 동식물들로 황홀하게 만들려고 영원히 노력하는 곳’이라 설명했을 때 고개를 끄덕인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반면 그냥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라고?’ 돈 많은 사람들에게 괴상한 음식을 파는 덴마크의 식당 따위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기 때문이다. 완전히 합리적인 반응이다. 나도 이해한다.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격정적인 성격의 셰프 르네 레드제피의 어머니는 주택 청소부였고, 택시를 몰던 아버지는 이젠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된 곳에서 온 무슬림 이민자였다. 그는 거의 20년 전에 코펜하겐의 옛 고래기름 창고 자리에서 노마를 개업했다. 당시 다이닝 룸은 비어 있는 게 보통이었다. 스칸디나비안 퀴진의 새로운 스타일을 빚어내려는 레드제피의 과감한 시도는 조롱도 꽤나 많이 받았지만(‘냄새 나는 고래’라는 별명이 꽤 오래 그를 따라다녔다) 결국 유럽 음식 비평가들은 점점 노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조금씩 소문이 퍼져나갔다. 결국 2010년에 어느 수상쩍은 컨소시엄이 노마를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했고, 그때부터 레드제피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타임> 표지에도 등장했다.
노마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감질나면서 또한 터무니없는 타이틀이다)’으로 네 번 더 선정되었다. 그러면서 코펜하겐의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 지역 끝자락으로 이사했고, 일본,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를 돌며 더욱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한동안은 버거 메뉴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카멜레온처럼 모습을 바꿔오던 노마는 이제 그들의 마지막 단계를 발표했다. 올봄 교토에 다녀온 노마는 덴마크에서 몇 시즌을 더 보낸 뒤 2024년에 문을 닫는다. 이후 레드제피와 노마는 지금의 장소를 음식 연구소로 바꾸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팝업을 열 예정이다.
노마의 폐점을 다룬 기사 중 일부는 노마가 거의 늘 무급 인턴들에 의존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다. 업계에서는 이 무급 인턴들을 프랑스어로 ‘스타지에르(stagiaire, 이하 ‘스타주’)’라고 부른다. 노마는 최근 이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는데, 언론 조사 때문에 서둘러 이뤄진 변화라 해도 어쨌든 옳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스타주는 오래전부터 레스토랑 세계에 존재해왔다. 코펜하겐의 언론인 리사 아벤트는 자신의 서브스택 플랫폼 ‘보르(Bord)’에 이 관행을 파헤친 글을 계속 올렸다. 2011년에는 노마 이전에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이라는 타이틀을 오래도록 독차지해왔던 스페인 엘 불리의 젊은 요리사들을 추적한 내용을 담은 책 <마법사의 제자들(The Sorcerer’s Apprentices)>를 내기도 했다. 요리 연구가 자크 페팽의 2003년 비망록 <제자(The Apprentice)>에서도 이 시스템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지금 이 자료들이 중요한 이유는, 아벤트가 보르에 썼듯이 ‘논의에서 스타주의 역사가 잘 언급되지 않는데, 그래서 마치 노마가 스타주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처럼 들릴 때가 있다. 전 세계 하이엔드 레스토랑들은 대다수 스타주에 의존하고 있고, 그들의 노동 조건은 주기적으로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스타주는 자원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자원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면, 아마 당신은 저 사람들이 제정신일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2019년에 레드제피와의 여행 이야기를 담은 책 <배고픔(Hungry)>을 만들 때 노마의 셰프이자 레드제피의 편인 토마스 프레벨이 말을 하려다 말고 마음을 먹듯이 침을 꿀꺽 삼켰던 게 기억난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에 대해 이렇게 썼다. “노마 재팬의 조개 타르트 위에는 분재 화분의 흰 파도 같아 보이는 짭짤한 물결이 올라간다. 이 타르트 하나를 만드는 데 주방 노동자들은 몇 시간 동안 핀으로 민물 조개를 까야 한다. ‘요리 하나하나마다 지나치게 많은 노동력이 들어가야 했다. 10명이 한 팀을 이뤘다. 오전에 4시간, 저녁에 4시간씩 작업했다.’ 프레벨의 말이다. 그 시간 동안 내내 조개만 깠다.” 안타깝지만 하찮고 반복적인 작업은 지금도 프로페셔널한 주방의 근간이기 때문에, 이런 작업이 종종 필요했다. 젊은 요리사들은 인맥을 쌓고 이력서를 근사하게 만드는 대가로 이를 견디곤 했다. <에스콰이어 US>가 뽑은 2020년 최고의 새 레스토랑 중 하나인 알비(Albi)의 셰프 마이클 라리디가 1월에 <워싱턴 포스트>에 들려준 바에 따르면, 그는 2011년 당시 자동차를 비롯한 본인 물건들을 팔아 1만5000달러를 마련했다. 노마에서 스타주를 하는 동안 버틸 자금이었다.
아벤트가 일깨워줬듯이, 이러한 일자리 환경은 노마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수십 년 전에 시작되었다. 2011년에 문을 닫은 엘 불리의 스타주들의 업무 시간은 길었고 주방에서 잡담은 금지였다. 아벤트는 그에 대한 대가로 그들이 “형편없는 아파트에서 잠을 잤고 보수는 정확히 제로였다. 그런데도 전 세계 젊은 요리사들은 (엘 불리의) 스타주로 지원하려고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고 썼다.
이를 알면 레드제피가 노마의 파인다이닝 모델이 “지속 불가능하다”라고 한 게 어떤 맥락인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한다. 하지만 사실 무급 인턴십은 시스템적 문제의 지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파인다이닝과 도제 모델은 굉장히 오래됐지만, 노마가 오랫동안 무급 노동자들에 의지했다는 걸 인식하면 다시 보이는 것들이 있다. 때로는 주방 인력 절반 가까이가 무급 노동자일 때도 있었다. 식용 꽃잎을 핀셋으로 집어 나비를 만든 사람이 그 일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걸 알면 나비는 덜 아름다워 보인다. 지금 이 시스템이 변하는 기로에 서 있다면, 그리고 노마의 발표가 그 변화를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틀고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아마 해체와 재고의 긴 프로세스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2015년에 <럭키 피치>에 기고한 글에서 레드제피는 자신이 예전에 과격하게 폭발했다고 인정했다. 그 1년 전에 그는 자기 자신을 바꾸고 유독한 주방 문화의 개선책을 찾으려는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미래의 파인다이닝 주방에는 더 이상 그렇게 소리 지르는 문화는 없어야 한다.” 그는 2014년에 멕시코에서 대니 보윈 셰프에게 말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여행하고 있었다. “저는 주방에서 너무나 분노하곤 했어요. 화가 나서 제정신이 아니었죠. 괴물이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젠장,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짓을 그만둬야 해.’” 작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훌루(Hulu)의 드라마 <더 베어(The Bear)>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처럼, 긴 근무 시간, 저임금, 좁은 작업장, 하찮은 작업, 날카로운 신경은 팀원들의 단결심을 키워주지 못한다.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에 있는 현재의 노마.
노마에 관한 뉴스 앞에서 당신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이런 시스템에 점점 거부감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 때문일 수 있겠다. 혹은 노마같이 이상한 음식을 내며 잘난 척하는 레스토랑에 간다는 게 바보 같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다시 말하지만 둘 중 어느 쪽이든, 나도 당신의 반응을 이해한다. 처음 노마를 접했을 때 나는 <뉴욕 타임스>의 푸드 칼럼니스트로 막 발을 내디딘 참이었다. 나도 그때는 이 모든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노마는 마치 1970년대 스칸디나비아 퍼포먼스 아트 코뮌이라도 되는 듯이 ‘뉴 노르딕’ 선언문을 갖춘 레스토랑이었다. 메뉴가 진화하면서 그들은 일부러 흰 곰팡이가 덮이게 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오리 뇌, 사슴 페니스, 삼킬 때도 꿈틀거리는 산 새우를 냈다. 이런 걸 읽으면 누구나 보통은 ‘음, 나는 사양할게’ 하고 생각하게 될 테다. 2014년 2월에 나는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뉴욕 여기저기에 생겨난 노마의 영향을 받은 레스토랑들을 일부러 피해왔노라고 털어놓았다. 나는 그런 입장을 취하고, 반항적인 자신감으로 우쭐해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르제 레드제피를 만나 커피를 마실 기회가 있었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잔소리를 퍼붓는 뚱한 스칸디나비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것으로 예상했다. 나도 모르게,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제7의 봉인>에 나오는 죽음의 사자 같은 인물을 만나러 갈 준비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레드제피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저널리스트들에겐 아니었다. 나 이전의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그랬듯, 나는 그의 카리스마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내 회의에 찬 머뭇거림을 무너뜨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달 뒤, 레드제피와 나는 함께 멕시코를 여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마치 록밴드 광팬처럼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 돌아다녔다. 나는 지금껏 총 일곱 번 노마에서 식사했다. 작년 브루클린에 잠깐 생겼던 팝업까지 치면 여덟 번, 노마 팀이 멕시코 메리다에서 만들었던 식사까지 포함하면 아홉 번이다. 나는 노마에 중독되었고, 그 감염에 몸을 맡긴 채 그냥 계속 따라갔다. 성인이 하기에는 좀 바보 같은 행동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대학 시절 그레이트풀 데드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다니는 팬들을 꼴사납다고 놀렸던 것처럼. 그 말도 틀리지 않다.
그 과정에서 돈도 꽤 썼다. 자비였다. 일단 내가 돈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밝혀야겠다. 누구라도 내 자산 상황을 본다면, 노마에서 식사하기 위해 여행을 다닌 것이 경제적으로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을 터였다. 매체 담당자들은 내 모험에 드는 비용을 내주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 내 돈으로 직접 해결해야 했다. 물론 저가 항공과 싸구려 호텔을 이용했지만 아무튼 경비는 점점 불어났다.
그래서 이제 와 그걸 후회하느냐고? 아니다. “당신의 몸은 신전이 아니다.” 셰프 앤서니 보데인이 한 말이다. “놀이공원이다. 즐겁게 놀아라.” 특히 마음껏 놀라는 말이 마음에 닿았다. 인기 있는 NFL 경기,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 티켓은 수천 달러까지 나가기도 한다. 그 모든 게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까? 적어도 내게는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선택한 합법적 마약을 얻기 위해 시장이 정한 가격을 지불한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상들의 일부는 분위기의 변화다. 분위기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반영된다. 2002년에 데이비드 보위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이것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젊은이는 늙은이를 죽여야 한다.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플랫폼을 손에 넣고 싶다면, 앞선 이들의 평판을 깎아내려야 한다. 그게 삶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음악, 영화, 패션 스타일은 계속 바뀐다. 낡은 시스템은 무너진다. 미식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에스콰이어 US>가 최근 선정한 ‘최고의 새 레스토랑’ 리스트만 봐도 알 수 있다. 말끔하고 점잔 빼는 테이스팅 메뉴는 유행이 지나는 추세고, 손에 음식을 묻혀가며 집어 먹어야 하는 캐주얼한 분위기의 칼라야(Kalaya), 다마카(Dhamaka) 같은 곳이 주목받는다. 나는 어쩌다 보니 파인다이닝의 테이스팅 메뉴와 푸드트럭 둘 다 좋아하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그건 이 세계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배드 버니(푸에르토리코의 래퍼)가 공존할 필요가 있다는 믿음이나 마찬가지다.

르네 레드제피 셰프.
평범한 음식은 신뢰할 수 있고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나는 정어리 통조림과 밥으로 이뤄진 평범한 나의 점심 식사를 무척 기대하고 있지만, 우리가 늘 그것만을 바라야 할까? 나는 노마가 특별하기 때문에 계속 노마에 갔다. 메뉴는 쉼 없이 진화했고, 갈 때마다 터무니없이 맛있는, 내가 그때까지 봐왔던 그 어떤 음식과도 닮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음식을 만났다. 노마를 모방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후에도 다른 곳에서 그와 비슷한 음식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던 발효 실험, 대부분의 사람은 먹어본 적 없는 채집한 식물 등 요리의 기반부터가 달랐기 때문이다. 노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마음을 여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몇 번이나 상기시켜주었다.
노마에서 뭔가를 먹는 게 음악 스케일에서 새로운 음을 듣는 듯한 순간들이 있었다. ‘띵-’ 평범함에 대한 짤막한 해독제였다. 상상해보라. 우리가 드라마 <더 베어>에서 보았던 세계의 이면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 라이오넬 보이스가 연기하는 시카고 페이스트리 셰프 마커스가 <노마 발효 가이드>를 보며 동화 속 도시 코펜하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아름답고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는다.
한편, 노마의 음식이 늘 괴상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댓글란을 달아오르게 한 건 늘 생소한 재료들이었다. 물론 나도 곰팡이가 슨 아스파라거스가 갑자기 너무 먹고 싶어서 자다가 벌떡 일어난 적은 없다. 하지만 노마의 섬뜩한 재료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Darling Nikki’ 한 곡으로 가수 프린스의 음악 세계를 요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마의 요리 중에는 단순한 것들도 많았다. 아웃도어 그릴에서 향이 강한 버터를 뿌려 재빨리 시어링한 신선한 랑구스틴 요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큐브 모양으로 썬 차가운 과일을 얼음 위에 올린 것으로 시작한 식사도 있었고, 숲에서 딴, 태양열을 받아 따뜻해진 베리를 수북이 담아 내놓아 마무리한 식사도 있었다.

‘사냥감과 숲’ 메뉴 중 하나인 사슴 뇌 커스터드.
그것이 지난 20년간 노마의 미션 중 하나였다. ‘무엇이 맛있다고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선입견뿐 아니라, ‘무엇이 럭셔리인가’에 대한 선입견에도 도전해온 것이다. 초고가 레스토랑이 트러플 대신 벌 애벌레를 서빙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비큐한 대구 대가리가 랍스터 꼬리보다 훨씬 낫다는 걸 발견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2018년에 <뉴욕 타임스>의 푸드 칼럼니스트 피트 웰스가 이 요리를 설명한 대목을 인용해야겠다. “대가리 전체가 아니고 얇고 날카로운 뼈에 붙은 살이 제일 많은 부분이 나온다. 양의 프렌치 랙처럼 조심스럽게 발라내, 된장을 연상케 하는 해초와 버섯 글레이즈를 발라 그릴로 구웠다. 살은 네 점, 가니시는 세 종류가 나온다. 그래서 몇 가지 선택이 가능한데, 예를 들어 볼살을 고추냉이 오일에 담그고 덴마크 불개미를 갈아 만든 톡 쏘는 맛의 페스토를 혀로 느낄 수 있다. 생선살은 부드럽고 사치스러울 정도로 맛이 풍성하며, 마지막 한 점까지 먹었을 때쯤이면 입안은 바로 단것을 먹을 준비가 된다.”
끌리지 않는가? 레스토랑들이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리던 부위로 노마가 대구 요리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매듭처럼 묶여 있던 고정된 생각들이 풀리지 않는가?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다’는 접근 방식이 오늘날의 세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뉴 노르딕은 계절을 중시하고 지역 환경에서 재배한 재료를 쓴다는 점에서 의문의 여지 없이 고결한 미션을 지향한다. 하지만 ‘유청에 적신 축축한 짚 위에 우아하게 얹은 그을린 비트’라는 설명을 읽을 때는 육즙 가득한 치즈버거를 떠올릴 때처럼 입안에 침이 고이지는 않는다.” 내가 2014년에 쓴 글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면? 세상의 어느 셰프가 당신이 그을린 비트를 너무나도 먹고 싶어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건 새로운 가능성이다.
곧 나는 또 코펜하겐행 저가 항공 티켓을 검색하게 될 것 같다. 노마가 문을 닫기 전에. 이제는 내가 그 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음식에 대한 글을 쓰는 나의 많은 동료처럼, 나 역시 테이스팅 메뉴의 거만함과 지루함에 피곤해졌나?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노마는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고, 그건 분명 드문 일이다. 당신이 거기서 식사를 할 일이 없다고 해도, 노마가 없어지고 나면 당신은 아쉬워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Credit
- WRITER JEFF GORDINIER
- PHOTO Ditte Isager/Noma
- TRANSLATOR 이원열
- ART DESIGNER 김동희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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