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난간 사이로 드리운 햇살이 거실을 환하게 비추는 것도 의도된 설계의 결과다.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중정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탁 트인 공간이 주는 개방감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집 안에선 하기 어려운 바비큐나 물놀이를 중정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축주 김현호 씨는 중정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거실 천장을 높게 만들고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거실에 앉아서도 잘 보이도록 배치한 것이다. 의도는 명확하다. “어차피 만들어야 하는 계단인 건 맞지만, 공들여 짓는 내 집인 만큼 어느 곳 하나 허투루 만들고 싶지 않았죠. 계단을 거실로 끌어들인 덕분에 위층과 아래층이 단절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자러 올라가는 아이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식이죠.” 개방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건축가는 계단의 난간을 강화유리로 만들 것을 제안했으나 김현호 씨는 봉으로 만드는 쪽을 택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어요. 유리로 하면 보기엔 더 멋질 수 있지만, 아이들이 깨기라도 하면 다칠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난간 사이로 ‘달걀 낙하 실험’ 같은 것들을 할 수 있어 재미있기도 하고요.” 계단 말고도 숨은 매력은 하나 더 있다. 옥상에 꾸민 작은 정원이다. “식물을 좋아하는 아내의 취향을 반영해 설계에는 없던 공간을 만들었는데 완성도가 높아 만족스러워요.” 맑은 날엔 옥상 정원을 벗 삼아 재충전 시간을 보내는 게 부부의 소소한 낙이다.
옥상에 오르면 남양주의 우거진 녹음이 액자 속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시작은 다락방이었다. 다락방을 만들기 위해선 지붕을 높여야 했고, 지붕을 높였더니 거실 위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원목으로 만든 약 1.5m 길이의 실링팬을 장착할 수 있었다. “에어컨을 굳이 틀지 않아도 창문을 열고 팬을 틀어놓으면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시원해요. 층고가 높으면 냉난방 효율이 떨어질 수 있는데, 팬이 공기 순환을 돕는 역할을 하거든요.” 남양주 토박이인 건축주 윤용재 씨의 말이다. 그는 높은 천장에 어울리는 팬을 찾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했다고 귀띔했다. “거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푸른 창밖 풍경과 느긋하게 돌아가는 팬을 멍하니 바라보며 취하는 휴식이 아주 달콤해요. 아내도 마찬가지고요.” 집을 지을 때 얼마나 여러 번 고심했는지는 다락방과 거실이 단절되지 않도록 2층 벽의 일부를 투명한 유리로 뚫어놓은 부분에서 엿볼 수 있다. 언젠가 아이가 생겼을 때 다락방에서 노는 자녀를 거실과 주방에서도 보이도록 한 것이다. 윤용재 씨는 커다란 창문으로 별을 보며 잠들고 싶을 때도 종종 다락방을 찾는다. “부지 특성상 건폐율(대지면적 대비 건축면적의 비율)이 20%밖에 되질 않아요. 집을 더 넓게 짓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죠. 대신 집 주변 여유 공간이 많아 답답하지 않죠.” 여담이지만, 지난겨울 눈이 많이 내려 마을 언덕을 넘어가지 못한 동네 주민들이 차를 윤용재 씨 집 마당에 두고 간 적도 있다.
수영장 덕에 김보연 씨 집은 지인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다. 심지어 그녀가 기르는 강아지들조차 수영을 즐긴다.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을 묻는 질문에 건축주 김보연 씨는 꽤 오랫동안 대답을 망설였다. 그녀가 주저한 까닭은 소개하고 싶은 장소가 여러 곳이라 딱 한 군데만 꼽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호주에서 8년 정도 살았어요. 한국에 돌아와 아파트에 들어갔는데 답답하더라고요. 내 집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았고요. 그래서 집을 짓자고 마음먹게 됐죠.” 그녀의 취향이 짙게 밴 곳은 1.5m 깊이의 수영장과 외벽 한쪽에 포인트로 들어간 금속 벽돌 그리고 집 안 곳곳에 보이는 아치 스타일 디자인이다. 호주에서 누렸던 넓은 바다와 강렬한 햇살에서 영감을 받아 언제든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수영장을 만들고 햇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일렁이는 금속 벽돌을 외벽에 적용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지나갈 때마다 유려한 디자인에 감탄하곤 했어요. 언젠가 집을 꾸민다면 곡선을 활용하겠다고 생각했죠.” 은은한 조명이 부드러운 아치를 그리는 사진 속 장소는 2층 거실 앞 복도다. 아래서 위로 빛을 뿜어 반사광을 이용하는 간접조명으로 곡선의 미를 한껏 돋보이게 유도했다. “자동차도 일부러 폭스바겐 비틀을 탔었어요. 둥근 디자인이 좋아서요. 둥근 천장과 벽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그녀는 울산 판지항 근처에 ‘라 메르 판지’라는 대형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 역시 집과 마찬가지로 둥근 디테일이 그득하다. “카페를 먼저 지었는데 만족스러워서 같은 건축사무소를 통해 이 집을 지었어요. 두 번째 작업이라 그런지 말하지 않아도 제 취향을 잘 반영해줘서 과정이 수월했죠.”
시종일관 활동적이던 아이가 그림방에 앉아 40분 가량 그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일 때 서 교수는 뿌듯함을 느낀다.
“어떤 공간이 멋있어지는 건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 표현될 때입니다.” 호서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을 가르치는 서민범 교수가 ‘그림방’을 최애 장소로 꼽은 이유다. 그림방은 원래 정원으로 쓰고자 했던 곳이다. 벽면과 천장을 두꺼운 투명 플라스틱으로 덮은 1평 남짓한 그림방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사방에 가득하다. 아이가 벽지에 낙서라도 할까 싶어 전전긍긍하기 일쑤인 다른 가정과 대조적이다. “신당동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테라스와 나선형 계단 아래 숨은 다락방도 좋아하지만, 저에겐 그림방이 가장 특별해요. 그림에 몰두한 아이의 모습, 점점 발전하는 그림 솜씨, 그걸 보고 감탄하는 저와 아내의 행복한 순간들이 그림방에 담겨 있거든요.” 투명한 벽을 가득 채운 그림 외에도 서 교수가 꼽는 소중한 추억은 하나 더 있다. 누수를 막기 위해 그림방의 벽과 벽 사이를 채운 실리콘이다. 업체에 시공을 맡길 수도 있었지만, 그는 딸과 함께 손으로 실리콘을 펴 바르는 쪽을 택했다. “실리콘을 손으로 만지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거든요. 겉보기에 깔끔한 맛은 없지만 내가 사는 집의 일부분을 직접 만들어나가는 재미를 아이와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그는 언젠가 아이들이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림방을 온전히 유지할 생각이다.
갤러리라고 해도 믿을 법한 구조다. 수많은 집을 다녀본 건축 전문 포토그래퍼조차 독특하다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단독주택의 매력 중 하나는 아파트에 비해 천장 높이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매력을 한껏 강조한 집이 부산 수영구에 있다. “건축사무소에선 이 집을 빛의 우물(Light hollow)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여기 아래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우물 정(井) 자 모양을 발견할 수 있죠.” 서울에 살다가 집을 지으며 부산으로 이주한 건축주 정슬기 씨의 말이다. 총 4층으로 구성된 집은 가운데가 뚫린 나선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난간을 유리로 만들어 개방감이 뛰어난 게 특징이다. “빛을 많이 끌어들이고 싶었어요. 천장뿐만 아니라 벽면에도 창을 낸 이유죠. 저도 그렇지만 아내가 특히 2층 거실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길 즐겨요.” 큰 목소리를 내야만 위층에 있는 사람을 부를 수 있는 보통 단독주택과 달리, 가운데가 뚫려 있어 다른 층에 있어도 의사소통이 수월하다. 방마다 드리운 블라인드를 젖혀 올리자 저 멀리 광안리의 높은 빌딩들이 보인다. “하필 오늘 비가 와서 아쉽네요. 아파트와 달리 날씨에 따라 집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도 저희 집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날이 맑은 날에는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화이트 톤 인테리어와 어우러져 한결 밝은 느낌을 낸다고 이야기한다. 주거 목적이 아닌 사무실이나 카페로 용도를 변경해도 손색없을 것 같다는 말에 정슬기 씨는 “탁 트인 구조가 장점이죠.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프라이빗에 대한 요구가 덜하지만, 커갈수록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게 되겠죠. 어떤 식으로 바꾸어나가야 할지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