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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각본가 김보통이 '사람들에게 돌을 먹일 방법을 궁리한다'고 말한 이유
웹툰 작가이자 넷플릭스 <D.P.> 시리즈를 비롯해 여러 드라마의 각본을 집필한 각본가, 에세이스트, 영화감독,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 타이거의 대표인 김보통.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느냐는 질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돌을 먹일 방법을 궁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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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얼굴이 노출되는 건 불편하신가 봐요. 시상식이나 강연 같은 데에서는 종종 얼굴을 드러내는 걸로 봤는데요.
지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기조로 하고 있습니다. 얼굴이 공개된 경우의 100배 정도 제안을 거절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만약 얼굴을 꼭 공개해야 한다는데도 제가 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죠. 상 같은 경우는 제가 안 가면 못 받잖아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옛 직장 사람들이 알아보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 적이 있어요. 여전히 그런 이유인 걸까요?
웹툰 작가를 시작한 초기에는 그런 부분이 있었죠. (김보통은 대기업 직장을 무작정 그만두고 큰 목표 없이 집에서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내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한 만화작가의 우연한 소개로 작가가 됐다.) 어떤 조직에서 누가 나가면 남겨진 사람들 중에는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괜히 자기 처지를 비관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제가 이 분야에서 이룬 성취를 크게 여기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나가더니 결국 별 볼 일 없네’ 하는 식으로 생각할 거란 게 싫었던 부분이 있죠. 그때는 제가 이렇게 오래 작가 일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잠깐 몸담을 영역에서 얼굴을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사실 이제는 그 모든 게 큰 의미가 있지도 않고 오히려 불편한 점이 더 많아졌는데요. 콘셉트가 오래 이어져오다 보니까 타이밍을 놓친 느낌이에요. 사람들이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혼자 무슨 중대 결심을 한 것처럼 ‘짜잔 이제부터 얼굴을 드러내겠습니다’ 하는 게 더 어려운 거죠.(웃음)
김보통 작가의 성취를 낮잡을 사람이 있으려나요? 데뷔작 <아만자>로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두 번째 작품 <D.P.>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잖아요.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 타이거의 수장인 데다 에세이스트, 영화감독으로도 데뷔를 했고, 무엇보다 세계적 인기를 모은 넷플릭스 시리즈의 각본가이기도 하고요.
아니에요. 그렇게 축약하면 너무 과찬입니다. <D.P.>도 다 다른 분들이 잘해주신 거고 저는 그냥 숟가락 하나 얹은 거죠.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이 부분이 궁금했어요. 회사 스튜디오 타이거는 스튜디오 드래곤과 어떤 관계인가요?
그냥 이름만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웃음) 회사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때에 CJ E&M에서 IP(지식재산권) 기획 개발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걸 고려하면서 보니까 당시 회사 ‘스튜디오 보통’의 이름이 좀 원맨 컴퍼니 같고, 그게 확장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스튜디오 타이거를 만들고 본래 회사는 폐업 절차를 밟은 거예요. 스튜디오 드래곤이 국내에서 제일 큰 프로덕션이니까 그 근간이 되는 IP를 지향하는 회사가 되자는 의미를 담았던 거죠. 오해를 많이 사는데 CJ 계열사라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우호적으로 일을 하는 관계예요. 당시에 기획 개발했던 아이템 3개의 IP를 CJ와 저희가 공동 소유하고 있고, 지금도 스튜디오 드래곤에서 두 작품, CJ E&M에서 한 작품이 제작 과정에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일단 최근에 공개된 넷플릭스 <D.P.> 시즌2 얘기부터 해볼까요? 시즌1 종반부의 긴장을 그대로 받아서 시작하는 이례적인 구성을 택했어요. 시즌1의 포맷을 따른다거나 분위기를 소강시킨 후에 다시 쌓는다거나 하지 않고요.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했어요. 원래대로라면 이런 성격의 작품에는 동일 포맷에 계속 새로운 에피소드를 붙여나가는 게 맞겠죠. 준호와 호열이가 또 다른 누군가를 쫓고, 때 되면 호열이를 제대시키고, 다른 애 새로 붙이고, 준호도 제대시키고, 또 새로운 주인공이 나오고… <슈퍼내추럴>이나 <X파일>처럼 그냥 쭉 갈 수도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또 그게 정석이라고 생각하면, 동시에 그 기대를 깨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던 거죠. 제가 원래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가는 것보다는 무리수를 두는 걸 좋아해서, 결국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종반의 이야기도 원작 웹툰과는 아예 달라졌죠. 원작이 시스템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주인공 개인의 내면만 파괴되며 끝나는 이야기였다면, 드라마에서는 문제의식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미약하나마 변화를 일으키는 이야기가 됐어요.
그렇죠. 일단 저는 매체에 따라서 이야기는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과 만화와 영상은 다른 거니까. <D.P.> 원작은 워낙 건조한 분위기의 만화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는 결말로 가게 된 거고, 드라마에서는 조금씩 계단을 밟아 절정으로 향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변주가 나온 거죠. 저는 그게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저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에는 감독님의 판단을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작가의 역할은 판을 짜는 거죠. 한준희 감독님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저는 그걸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고민한 거고요. <D.P.>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예요. 감독이 최종 결정권자고, 저는 거기에 맞춰야 하는 거죠.
한준희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언젠가 김보통 작가가 연출을 했으면 좋겠다고, 김보통 작가의 영화를 보고 싶다고요. 그런데 1년 사이에 그게 벌써 실현됐어요.
아마 큰 생각 없이 그냥 하신 얘기일 것 같은데.(웃음) 이 정도의 얘기는 평소 저한테도 많이 하셨어요. 연출을 해본 경험이 집필에도 도움이 많이 되니까 단편이라도 꼭 연출을 한번 해보라고요. 저도 사실 그 말씀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해본 부분이 있죠. (김보통 작가는 작년 OTT 플랫폼 왓챠의 ‘김보통 프로젝트’에서 시리즈물 <사막의 왕> 각본을 집필하고 그중 한 에피소드를 직접 연출했다.) 그런데 정말로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일단 이제 무책임하게 글을 쓰지 못하겠어요. 저는 사실 버스를 굴려버린다거나 기차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장면을 그린다거나, 그냥 그런 장면이 좋을 것 같으면 썼단 말이에요. 그런데 연출을 해보고 나서야 그게 무슨 사이코패스처럼 무감각하게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해온 건지 통렬히 깨닫게 된 거죠.(웃음) 앞으로는 촬영진의 고생을 좀 더 염두에 둔 글을 쓰려고 합니다. 해보니까, 현실적인 문제로 빼고 보니 오히려 강조가 되는 부분도 보였거든요. 뭘 줄이고 뭘 빼야 하는지에 대해서 감을 좀 잡게 됐다고 생각해요.

9월 공개 예정인 <D.P.>의 후속 웹툰을 확인하고 있는 김보통 작가.

플레인 아카이브에서 나온 <D.P. 시즌1 각본집>. 김보통은 넷플릭스 시리즈 <D.P.>의 원작 웹툰을 그렸으며 시즌 1, 2의 공동각본으로도 참여했다.
<사막의 왕>은 사회를 사막화하는 돈이라는 물질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었잖아요. ‘사막의 왕’이라는 표현은 데뷔작인 <아만자> 때부터 나왔는데, 그때는 큰 병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속 희망을 잠식하는 ‘절망’이 의인화된 존재였어요.
그게 (‘사막의 왕’이) 사실 제 별명이었어요. 인간미가 너무 없다고. 사막 벌판에 앉아서 백성도 없이 혼자 왕인 사람인 것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사람 면전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꽤 냉정한 편인 것 같은데요.(웃음)
별명이라기보다는 악담이네요.(웃음) 아무튼 저는 그 말이 되게 싫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와닿았나 봐요. 왕이라고 하면 원래 영토도 있고 백성도 있어야 하는데 그냥 혼자 사막 한가운데에 앉아서 ‘내가 왕이다’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무의미한 일이 어디 있어요. 그 이미지가 저한테는 강렬하게 남아서 이렇게 반복적으로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만자>는 하루아침에 말기암 판정을 받은 20대 청년을 그린 작품이었잖아요. 주인공이 마약성 진통제를 맞을 때마다 괴물들이 사는 이상한 숲속에 떨어지는데, 그 귀엽고 평화로운 세계와 처참한 현실을 뒤섞어 제시하는 게 신선했어요.
처음 그 이야기를 생각한 게 저희 아버지 때문이었어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하실 때 모르핀을 맞으면 대부분의 시간을 주무셨거든요. 하루에 30분 정도 눈을 뜨는데, 그럴 때면 횡설수설 이상한 얘기를 해요. 우리가 모르는 사람 얘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갑자기 털실을 달래요. 털실 갖다 뭐 하려고. 아버지는 그냥 막 달라고 하다가 또 주무시는 거죠. 그럼 저랑 어머니는 앉아서 ‘아빠가 꿈속에서 털실이 필요한 무슨 모험을 하고 있나 보다’ 하는 얘기를 하고요. 사실 간병하는 게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보니까 나누게 되는 자조적인 대화에 가까웠는데요. 아버지가 마냥 고통 속을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힘드니까. 그런데 결국 그 모티브가 웹툰이 된 거죠. ‘죽음의 5단계’라는,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정리한 이론과 연결되어서.
그런 장치가 독자로 하여금 작품을 보는 게 너무 괴롭지 않도록 해주기도 하고, 또 반대로 주인공의 현실적인 슬픔과 절망에서 눈 돌리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도록 해주기도 한다고 느꼈어요.
제가 노린 것도 그 부분이었어요. 이 이야기는 결국 주인공이 죽으면서 끝나는 굉장히 잔인한 이야기인데, 그걸 처음부터 제시하면 아무도 안 볼 거잖아요. 그래서 일단 사람들이 귀엽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따라가도록 하고, 그러다가 점점 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거죠. 실제로 분위기가 점점 불길해지니까 독자들 반응도 조금씩 바뀌었는데요. 회차가 진행될수록 ‘작가님, 혹시 죽지는 않겠죠’ ‘기적이 일어나겠죠’ 하는 종류의 댓글이 늘고. 그런데 그렇다고 결말을 바꿀 수는 없잖아요. 제가 가장 배반하고 싶지 않았던 독자가 그 작품을 보고 있는 암 환자들과 환자의 가족들이었거든요. 그분들한테 허무맹랑한 판타지를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 사람은 인간 세상에서의 모험을 끝내고 새로운 여행을 떠났습니다’ 하는 일종의 설화로 끝을 낸 거예요. 그분들이 결말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렸고, 실제로 암에 걸려서 <아만자>를 보다가 연재가 끝나고 돌아가신 분들이 몇 있었는데 그분들이 ‘이제 여행을 갈 거다’ ‘두렵지 않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미국의 호스피스 센터 중에 <아만자>가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곳도 있고요. 중병 환자를 다룬 콘텐츠는 많지만 죽음을 앞둔 환자와 환자 가족을 둘러싼 정서 변화, 그 불안과 고통이 어떤 내용인지 세심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는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웹툰 <사람의 사이로>도 비슷한 장치를 통해 전개되죠. 인간 세상을 기웃거리는 귀여운 도깨비들이 주인공인데, 사실 광주 민주화 운동과 그게 우리 사회에 남긴 상흔을 다루고 있어요.
제 악취미인가 봐요.(웃음) 농담이고요. 저는 사실 그게 작가의 책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다 자기 삶이 힘들고 바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다른 이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싶어 하지 않잖아요. 저는 거기에 당의정을 씌워서 ‘이게 현실입니다’ 하고 보여주는 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D.P.>가 처음 나왔을 때 병영 문화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국방부에서 해명했던 일련의 과정처럼, 일단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게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니까요. 물론 1시간 반, 2시간 동안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게 해주는 작가도 있지만, 제가 지향하는 작가는 그런 고민을 하는 작가인 거죠.
브랜드나 특정 단체와 협업도 많이 하신 편이죠.
네. 외부에서 제안이 들어오는 건 다 하려고 해요. 그런 작업들에는 거의 다 저희 회사 작가분들이 투입되거든요. 일단은 그분들이 작업할 기회를 계속 만들어드려야 한다는 부분이 있고요. 그리고 또 독립운동가협회, 국경없는의사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 특조위, 뭐 그런 단체에서 들어오는 일은 웬만하면 다 맡으려고 하죠.
공익적인 성격의 일은.
제가 느끼는 게, 만화가 당의정을 입히기에 아주 좋은 매체인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파악하기 전에 슬쩍 다가가는 데에 유리한 부분이 있죠. <나비의 모험> 같은 경우에도 부모님들이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학습만화는 아닌데, 그렇다고 완전히 흥미 위주의 만화도 아니니까요. (<나비의 모험>은 김보통 작가가 처음 시도한 어린이 만화로, 현재 애니메이션화되어 SBS에서 방영 중이기도 하다.) 고양이의 시선을 통해서 아이들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것들, 예를 들어 ‘반려동물을 돈으로 사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엄마와 아빠 둘 다 일을 하는데 왜 엄마만 집안일을 할까’ 이런 문제의식을 짚어주는 거죠.
수익을 창출하고 조직을 성장시키면서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펼치고 변화를 도모한다는 양립이 어려워 보이는 목표들을 동시에 좇고 있네요.
물론 제가 택하는 일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적도 많이 받고, 저도 알죠. 알지만… 제가 워낙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웃음) 그래서 저희 어머니는 저랑 TV를 못 봐요. 모든 채널, 모든 프로그램에 제가 다 뭐라고 욕을 하니까요. 한번은 ‘너 이렇게 계속 구시렁댈 거면 꺼져라’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작가님은 꾸짖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어시스턴트 처우를 개선하고 공론화한다든가, 새로운 방식의 장학 지원을 계획한다든가, 작은 도서관이나 작은 현악단 같은 대안적 커뮤니티를 고민한다든가, 작품 외적으로도 개인이 일으킬 수 있는 변화를 믿고 다양한 도전을 해온 사람에 가깝죠.
시도했다가 망한 게 많죠.(웃음) 아직 못 한 것도 너무 많고요. 그렇게 말씀해주시기에는 제가 너무 더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어쩌면 망해도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정도의 일만 벌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더 많이, 더 빨리 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요즘 저라는 사람에게 물이 들어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달릴 예정입니다.
작가로 데뷔한 지 이제 10년이에요. 조직 문화를 견딜 수가 없어서 아무 계획 없이 번듯한 직장을 그만뒀고, 나중에는 돈이 없어서 식빵을 쪼개 먹으면서도 트위터에서 무보수로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면서 세월을 보냈죠. 트위터에서 알게 된 최규석 작가가 연락을 해와서 ‘돈 벌어야 할 것 아니냐’며 신생 웹툰 플랫폼을 소개해준 게 작가 데뷔에 이르렀고요. 지금은 그때의 시간을 어떻게 평가해요?
글쎄요. 맷집을 기르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막연함’을 버텨내는 시간. 그게 실제로 저한테는 도움이 많이 돼요. 실제로 당장 내일 망해서 제로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괜찮을 것 같거든요. 최저점이라는 걸 경험해봤으니까요.

스튜디오 타이거의 엠블럼을 본뜬 마스크를 쓰고 있는 김보통 작가. 스튜디오 타이거는 오리지널 IP(지식재산)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 기업으로, 김보통 작가가 이끌고 있다.
큰 실패나 큰 성공에도 초연할 수 있게 됐군요.
그냥 좀 이상한 거죠. 제가 광고제작사인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대표와 오랜 친구인데, 그 친구랑 ‘이상하다’는 얘기를 그렇게 자주 해요. 옛날의 두 사람을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아무도 우리를 믿어주지 않고, 우리 스스로도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전혀 없었고요. 그런데 이제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걔가 뉴진스랑 같이 뭘 찍었다고 영상 속에서 까불거리고 있고, 걔는 강남 회사로 출근하는 길에 <D.P.> 시즌2가 대규모 프로모션을 하는 걸 봤다고 연락을 하기도 하는 거예요. 그 친구와 가장 최근에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하는 얘기를 했을 때는 이정재 배우님과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요. 제가 “왜 자꾸 이렇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 하니까 우석이가 그래요. “우리는 어쩌면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몰라. 이러다 정신 차리면 다시 한마루 칼국수 안이고 너희 엄마 아빠가 ‘그만 자빠져 자고 빨리 서빙하라’고 혼내는 거지. 그러면 우리는 내가 애플 광고를 찍는 감독이었고 네가 넷플릭스에서 1위를 하는 드라마의 작가였던 꿈 얘기를 하는 거야.” 저희 집이 옛날에 칼국수집을 했는데, 걔가 휴가 나오면 저희 집에 와서 지내곤 했거든요. 같이 서빙도 하고.
아릿한 이야기네요.
그런데 어쩌면 그런 느낌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뭐 대단한 걸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면 <D.P.>의 시나리오 작업도 못 했을 것 같거든요. 나는 만화 그리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고사하거나, 반대로 너무 잘 쓰고 싶어서 지금까지도 초고를 쓰지 못했을 수도 있고요. 연출도 마찬가지예요. 왓챠에서 연출을 한번 해보겠냐고 했을 때 부담부터 갖고 거절했겠죠. 하지만 이게 다 꿈이라고 생각하면 뭐, 그냥 다 해볼 만한 거예요.
이 모든 게 꿈이 아니라면, 지금껏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계속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저력은 뭘까요?
저도 그게 궁금한데요.(웃음) 그래도 제가 이런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남들이 잘 못 보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거. 분명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사회적 소외계층이라든지, 1980년대에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련됐던 사람들이라든지, 아니면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의 중심인 한부모가정, 미혼모라든지, 청소년 자살자라든지, 쉼터 청소년들이라든지… <D.P.>의 탈영병도 마찬가지죠.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지점에서는 제가 좀 능숙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애당초 제가 그런 쪽에 관심을 많이 갖고 살아왔기 때문이겠죠.
아까 얘기한 ‘당의정’이 작가의 책무이자 동시에 저력이 될 수도 있는 거군요.
되게 소화하기 힘든 돌들을 찾아내는 게 제 적성에 맞는 거죠. 어떻게 하면 이 돌을 남들에게 먹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돌이요?
네, 돌멩이.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이걸 초콜릿이라 믿고 먹게 할 수 있을까?’(웃음) 사람들이 이걸 소화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돌이라는 걸 알아채는 순간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소화하는 과정 중에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이규원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김동희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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