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살아났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도널드 트럼프가 살아났다

ESQUIRE BY ESQUIRE 2023.08.29
 

DONALD TRUMP 

지난해 11월 15일,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의 팜비치 마라라고의 리조트에서 미국 제4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웃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웃었다. 재밌지 않은가? 일단 생각해보라. 대통령이 된 후에도 세금을 써가며 마라라고 리조트를 찾은 트럼프다. 미국인들의 눈앞에서 세금으로 재산을 증식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출마 선언을 하다니. 경선이라도 통과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역시 나는 멍청이였다. 이후 트럼프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포르노 배우인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허시 머니(성관계를 입막음하는 대가)’를 주고, 이를 자신의 회사 회계 장부에 허위 기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죄명으로 따지면 기업 문서 조작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사실로 밝혀져도 경범죄 정도로 넘어갈 사안이다. 문제는 돈을 지불한 과정이다. 그의 변호사 코언이 대니얼스에게 입막음 돈을 일단 지급하고 트럼트가 10개월에 걸쳐 본인의 신탁 계좌와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 코언에게 수표로 전달해 변제하며 이를 기업 장부에 ‘법률 자문료’로 기록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범죄가 여러 차례 일어났다는 점이다. 한 건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혼외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도어맨의 입을 막기 위해, 또 다른 한 건은 트럼프와 불륜을 저지른 여성의 입을 막기 위해 지불되었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 외에 2020년 대선 결과 전복 모의, 선거 개입 등의 혐의로 총 네 차례 기소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경선 레이스에서 약 50%의 지지율을 보이며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다. 그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스트래터지스트 더그 헤이는 “사실 도널드 트럼프에 맞서서 변화를 만들어낸 다른 공화당 후보는 한 명도 없어요”라며 이렇게 말했다. “기소를 당하면 당할수록 ‘시스템은 썩어빠졌고 도널드 트럼프에게만 이중 잣대를 들이민다’는 트럼프의 논리만 강화되는 꼴이기 때문이죠.”

오늘 밤도 “나처럼 지적인 사람도 기후변화는 믿지 않는다”라던 트럼프의 말을 떠올려본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재선되어도 미국이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는 망할 수도 있겠다. 최근 가장 재밌는 건 미국 진보 매체들의 태도 변화다. 아주 오래전 〈허핑턴 포스트〉에서 일할 때 내 업무 중 하나는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등에 올라온 뉴스를 체크하는 일이었고, 어느 날 아주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동생 격인 〈복스〉의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모든 썸네일이 트럼프로 도배되어 있었다. 〈워싱턴 포스트〉도, 〈뉴욕 타임스〉도 마찬가지였다. 이 페이지의 일러스트처럼 악마화된 트럼프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아마 너무 싫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이들은 깨달았다. 트럼프에 대한 자신들의 혐오가 트럼프의 지지층을 더욱 뭉치게 했다는 사실을.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미국의 진보 매체에 들어가봤다. 이제 그들은 프런트 페이지에 여러 장의 트럼프 썸네일을 전시하지 않는다. 트럼프를 향한 혐오를 전시하지 않아야 이긴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터이다. 기소하면 기소할수록, 혐오하면 혐오할수록 살아나는 남자의 다음 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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