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 디렉터 패트릭 리 "아트 페어는 하나의 시스템"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 패트릭 리는 아트 페어가 미술품을 사고파는 공간 이상의 역할을 해낼 것으로 믿는다. 아트 페어 역시 가치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유기적인 시스템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프로필 by ESQUIRE 2023.08.31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 패트릭 리는 아트 페어는 미술계의 컨센서스를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 패트릭 리는 아트 페어는 미술계의 컨센서스를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프리즈를 어떻게 자평하세요?
작년에 굉장히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아서 정말 기쁩니다. 참여한 갤러리들이 굉장히 좋은 작품을 많이 가지고 왔고, 방문객들도 그 사실에 만족했지요. 프리즈와 키아프 덕에 서울이라는 도시에 아트 러버들이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하고, 또 프리즈 서울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깊은 인상을 각인한 것 같아 뜻깊었습니다. 올해는 작년에 부족했던 점들을 보완해가며 준비 중인 만큼 더 좋은 행사가 될 것 같아요.
키아프와의 상성은 어땠다고 평가하나요?
키아프가 20년간 한국에서 아트를 홍보하고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깊이 존경합니다. 작년에 키아프 측에서 프리즈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주기 위해 얼마나 더 큰 힘을 집중해줬는지도 잘 알고 있고요. 올해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면서 몇 가지 프로그램을 같이 공유하며 운영할 계획이에요. 두 페어의 상성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프리즈와 키아프가 타깃으로 하는 관람객들이 일정 부분 겹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뉜다는 점입니다.
겹친다고 해서 경쟁 관계가 되는 건 아니라는 점도 있지요. 예를 들면 프리즈에 왔던 외국인 관람객이 키아프에서 작품을 살 수도 있고요.
정확하게 비슷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저희의 초청으로 휴스턴에서 온 컬렉터 중 한 분이 키아프를 방문해 키아프의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매했어요. 아시다시피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매하는 건 하나의 인연을 맺는 과정이잖아요. 그 인연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것 말고도 갤러리스트들이나 큐레이터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도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렇죠. 프리즈의 관객 중에는 해외에서 온 아티스트, 비평가, 작가, 해외 뮤지엄의 큐레이터, 아트 디렉터가 여럿 포함되어 있거든요. 아주 중요하지요. 예를 들면 갤러리현대의 1960~1970년대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해외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프리즈 런던이었어요. 아주 직접적인 건 아니지만, MoMA의 구매팀에서 그 작가들의 작품을 사게 된 게 계기였죠. 전 그런 것들이 지금 열리고 있는 1960~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전의 트리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색화가 2010년 중반에 폭발하기 전에 주목을 받은 단초 중엔 프리즈 런던에 나갔던 국제 갤러리에서 해외 뮤지엄의 큐레이터들이 그 작가들의 작품에 주목하게 된 이유도 있었고요.
하긴 코엑스 전시관도 아래위층을 같이 쓰는 데다가 그 시즌에 파티도 엄청나게 많으니 서로 만나면서 일어나는 정보 교환의 시너지 효과도 엄청나겠어요.
이 페어의 디렉터로서는 그런 값진 커넥션들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큰 역할이죠. 성공적인 아트 페어를 나누는 기준에는 물론 세일즈 피겨도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퀄리티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페어에 참가한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아티스트 들이 그런 수준 높은 인물들과 교류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야 하고요. 한 아티스트의 국내외 담당 갤러리가 다른 경우가 있는데, 프리즈와 키아프에 참가하게 되면 그런 뮤추얼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각 갤러리스트들끼리 교류가 이뤄질 수도 있겠죠. 그렇게 따지고 보면 프리즈와 키아프의 조합은 가장 이상적인 게 아닐까요?
작년에도 세계적인 아트 피플이 여럿 왔었지요.
특히 홍콩 쪽에서 방문한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엠플러스 디렉터인 정도련, 홍콩의 아트 센터 패러 사이트(Para Site)의 큐레이터들, 에이드리언 쳉이나 아르노 회장,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테이트 모던, MoMA, 구겐하임 뮤지엄 등 비영리 기관의 디렉터들이 다수 다녀갔지요. 제가 그들에게 서로 좀 친하게 지내라고 압력을 넣을 수야 없겠죠. 하지만 그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엄청 노력하긴 했어요.
한편 저는 작년에 아주 평범해 보이는 가족이 거의 프리즈를 뛰어다니다시피 하며 그림을 사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는 것 역시 이 일을 하면서 기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전 사실 프리즈 서울이 가장 핫한 컨템포러리 아트의 스냅샷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정말 기억에 남는데 작가의 이름을 적어놓지 않아 후회하는 작품이 있어요. 갤러리 벽을 잘라내고 그 한복판을 원뿔 모양으로 뚫은 거였죠.
잠시만요.(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찾으며) 혹시 피에르 위그 아닌가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지요. 이런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게 프리즈의 큰 장점입니다.
한편 지금 한국 미술계는 미술 사조로서의 단색화 이후 ‘넥스트’를 찾고 있습니다. 아트 페어는 그런 미술 양식의 트렌드에도 영향을 주지요.
프리즈나 아트 바젤 정도 규모의 아트 페어에는 수준 높은 갤러리들이 참여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그에 걸맞은 미술 평론가, 큐레이터, 아티스트들과 함께 온다는 사실이에요. 여러 갤러리들이 자신들이 데려온 사람들과 함께 모여 네트워크를 만들고 담론을 생산하지요. 아트라는 건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합의 과정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제가 뭔가를 만들고 ‘이것이 예술이다’라고 주장한다고 그게 아트가 될까요? 내가 만든 무언가를 가지고 평론가들이 그것이 왜 중요한지 얘기를 하기 시작하고, 담론이 형성되어야 예술계에서 진지한 작품으로 평가를 받게 되는 거지요. 아트 페어 혹은 비엔날레는 이렇게 담론이 형성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가 작품을 만들고 큐레이터들은 그 작품의 필연성을 설명하고, 적절한 곳에 홍보를 해서 알리고, 중요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시스템 중 하나가 바로 아트 페어입니다. 사실 단색화와 한국 아방가르드에서부터 이불, 서도호, 최정화, 양해규 그리고 이미래나 기자님이 언급했던 김희천, 류성실 등의 더 젊은 작가들로 이어지는 흐름은 이런 유기적인 합의 과정을 통해 소개되는 거지요. 서울에는 이미 20년이나 그런 시스템을 유지해온 키아프라는 아트 페어가 아주 잘 빌드업되어 있었던 터라, 프리즈가 키아프와 함께 일하게 된 것은 무척 큰 행운이지요.
방금 언급한 1990년대 작가분들을 묶어주는 이름은 아직 명확하게 규정되지는 않았다고 보는데요. 저희는 이번 호에 실린 다른 기사에서 이들을 코리안 엑스 아트라는 이름으로 묶어보려고 해요.
기자님이 쓴 기사를 꼭 읽어보고 싶네요.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에 한국에 등장한 아티스트들은 정말 성공적인 작가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탤런트를 지녔고, 슈퍼 스마트한 작가들이었죠. 한국의 미술 신을 세계에 선보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큐레이터들과 학계 쪽에서 이전 세대 아티스트들인 백남준, 이우환 등의 서로 다른 양식들과 링크업시키며 이분들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에 알려진 역사는 정말 짧습니다.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 2000년대 초만 해도 여전히 밖에 나가면 ‘북한에서 왔니 남한에서 왔니?’라는 질문을 받던 시대였고, 한국의 아티스트라고 하면 백남준 말고는 김수자 선생님 정도밖에 모르던 때였으니까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 것 중 하나가 독립공간, 대안공간, 비영리 전시공간들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어리고 재능 넘치는 아티스트들과 큐레이터들이 모여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기 때문이죠. D/P(디슬래시피), 아마도 예술공간 등의 전시공간을 돌아다닙니다. 아까 기자님과 제가 언급한 작가들은 이미 수면 위로 올라온 작가들이라 눈에 띄는 것이고, 이미 연결되어 있지만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작가를 그런 공간에서 만날 수 있죠.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프리즈 필름’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공간을 외국의 관람객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해 프리즈 때는 서울 전체가 아트 도시로 탈바꿈하지요. 프리즈 본 행사 외에 어떤 이벤트가 가장 기대되나요?
사실 작년엔 함께하자는 제안을 넣었던 여러 기관 중 거절한 경우도 있었는데, 올해는 기업, 공공기관, 사설기관, 갤러리를 가리지 않고 다들 참여 제안을 반겨서 인상 깊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기간에 리움에서 열리는 <강서경 개인전>, 일민미술관의 <이시 우드 개인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밥길과 니나 바이어의 퍼포먼스> 그리고 프리즈 필름이 정말 기대되네요. 특히 프리즈 필름은 14명의 아티스트가 14개의 비영리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입니다. 정말 훌륭한 아티스트들이에요.
경기가 좋지 않아 올해의 프리즈를 걱정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경기야 언제나 등락의 곡선을 그리는 법이죠. 다만 올해는 중국의 큰손들이 프리즈를 찾는 첫해라는 점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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