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돔 페리뇽이 2022년의 포도로 빚은 모험의 샴페인을 맛보다
돔 페리뇽이 그해의 샴페인을 공개하는 레벨라시옹의 자리에 <에스콰이어>를 불렀다. 그 어느 해보다 놀라웠던 ‘발현’의 순간을, 그 시작이 된 2022년의 여름부터 되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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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즈카 세이류덴의 전망대에서 앵프로비사시옹 2022와 아상블라주 2022의 베이스 와인을 마시는 VIP들의 모습.
그해 7월까지 샹파뉴 지역에 있는 돔 페리뇽의 여러 포도밭들은 행복한 낙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겨울은 평년보다 건조했고, 봄은 따사로웠으며 일조량이 많았다. 포도나무는 다른 해보다 일찍 싹을 틔웠고, 심지어 늦은 5월에는 평년보다 열흘이나 빨리 꽃을 피웠다. 수확을 앞둔 2022년 8월 17일, 돔 페리뇽의 셀러 마스터 뱅상 샤프롱(Vincent Chaperon)은 부지(Bouzy)의 피노 누아 밭에 서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밭을 돌아다니며 포도를 맛보느라 혀는 이미 거의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수확을 앞둔 포도들이 드넓은 밭에 아름답게 펼쳐져 익어가고 있었다. 아니, 이미 익었다. “익었어! 내일부터 수확을 시작해야겠는데?” 그러나 좀 더 남쪽인 아이(Ay)의 사정은 달랐다. 아이의 밭들에선 보통 가장 아름다운 적포도가 생산됐다. 그러나 샤프롱이 찾았을 땐 아직 과실에서 풋내가 났고, 껍질에선 쓴맛이 올라왔다. 아이 지역에 있는 포도밭의 과실들이 먼저 익는 것이 정상이다. 뱅상과 포도밭 관리자들은 아이 지역의 수확을 3주 늦췄다. 아이 지역의 포도가 부지 지역의 포도보다 3주나 늦게 익는 일은 처음이었다. 7~8월에 이 지역을 덮친 가뭄이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이례적인 작황이었다.
아마 샤프롱은 그날 뭔가를 깨달았을 것이다. 물론 그는 매년 해왔듯 이 포도들을 가지고 훌륭한 2022년 빈티지의 돔 페리뇽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포도의 베이스 와인을 만들고 이를 섞을 때는 수많은 숫자를 고려해야 한다. 질소의 농도, 포도의 당도와 산도 등을 살펴 어떤 품종, 어느 구획의 포도들을 얼만큼 섞어 밸런스를 맞출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는 돔 페리뇽에게는 좀 더 어려운 일이다. 논빈티지 제품이 없는 돔 페리뇽은 그해의 기후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돔 페리뇽이라는 브랜드의 색을 잃지 않는 연도 표기 제품(이하 ‘빈티지’)을 생산해야 한다. 어렵지만 숫자들을 잘 살펴보면 거기엔 나름의 정답으로 가는 넓은 길이 열려 있다. 150년의 세월을 지나며 공식화된 와인메이킹의 족보가 있다.

돔 페리뇽 로제 2009의 키 비주얼. 이 이미지처럼 고혹적인 병 안에 여름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2003년의 쇼크를 떠올렸다. 2022년의 이례적인 기후와 작황이 20년 전의 그해를 떠올리게 했다. 봄에 내린 서리로 새싹들이 얼어버렸는가 하면 한여름의 열섬현상은 그전까지 샹파뉴의 와인메이커들이 경험하지 못한 극한의 환경을 만들어냈다. 1822년 이래 8월에 포도를 수확한 해는 그해가 유일했고, 수많은 빈티지 메이커들이 그해의 빈티지 생산을 포기했다. 그러나 당시 돔 페리뇽의 셀러 마스터 리처드 제프로이는 그 급격한 기후 변화의 파도 속에서도 2003년의 빈티지를 생산해냈다.
샤프롱은 2022년의 포도를 포도밭에서 직접 맛보기 전까지는 그해의 포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포도밭에 가서 포도를 맛보다 보니 멀리서는 들을 수 없었던 작은 소리가 들렸다. 토양이 가지고 있는 리듬의 다이내믹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부드러운 멜로디가 들렸다. 2003년의 제프로이가 극단적인 환경에서 자란 낯선 포도들로 처음 보는 형태의 빈티지를 만들어낸 것처럼, 2022년의 포도들은 그에게 ‘즉흥적인’ 접근을 요구했다.
그는 와인 양조 과학자인 다니엘 카르바할을 비롯한 다섯 명의 와인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그해 포도 샘플들이 가진 소리를 들으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2022년의 이야기를 담기로 했다. 돔 페리뇽 역사에서 처음으로 ‘앵프로비사시옹 2022’가 탄생한 순간이다. 샤프롱이 잘한 일 중 하나는 그간의 해답지에 나온 방식 그대로 나중에 돔 페리뇽 빈티지 2022가 될 베이스 와인 ‘아상블라주 2022’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같은 해의 포도로 마치 재즈 밴드가 재밍을 하듯 만들어낸 ‘앵프로비사시옹 2022’와 오케스트레이션의 완벽한 하모니를 추구하며 만들어낸 ‘아상블라주 2022’를 비교해보는 일은 돔 페리뇽 마니아들에겐 가슴 벅찬 이벤트가 될 것이다.
그러니 ‘앵프로비사시옹 2022’와 ‘아상블라주 2022’의 베이스 와인 맛을 보여준다며 돔 페리뇽이 교토의 한 신사에서 열리는 ‘레벨라시옹(Re`ve`lations)’에 <에스콰이어>를 초대했을 때 이미 나의 마음은 격렬히 떨리고 있었다. ‘레벨라시옹’은 돔 페리뇽이 매해 전 세계 프레스와 VIP를 초대해 새로운 샴페인을 발표하는 발현의 의식이다. 공개되는 샴페인은 돔 페리뇽 빈티지가 될 수도 있고 로제가 될 수도, 돔 페리뇽 P1이나 P2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레벨라시옹 중에 같은 해에 태어난 2개의 베이스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순간은 없었다. 돔 페리뇽의 최소 숙성 기간은 7년이다. 7년이 지난 뒤에야 그 결과물을 만나볼 수 있는 같은 해의 두 작품을, 그것도 베이스 와인(샴페인 숙성에 들어가기 전 단계의 와인) 상태로 미리 맛본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소중하고 귀한 경험이다.

2022년 9월 5일 부지의 한 포도밭에서 테이스팅 중인 뱅상 샤프롱의 모습.
우리가 탄 차량은 교토의 기온마치를 지나 약 20분 정도를 달리더니 산속에 있는 한 절 앞에 섰다. 교토 히가시야마 정상에 위치한 쇼군즈카 세이류덴은 8세기 중반 간무 천황이 교토의 건립을 명한 곳으로 교토의 기원으로 불리는 신사다. 교토 시내를 바라보는 탁 트인 전망대가 유명한데, 그날 우리가 만나야 하는 두 와인이 이 전망대 위에 펼쳐져 있었다. ‘앵프로비사시옹 2022’와 ‘아상블라주 2022’의 베이스 와인을 맛보는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자 짙푸른 하늘이 깔리기 시작하더니, 교토 시내 뒤편으로 붉은 노을을 뿌렸다. 두 와인, 그러니까 지금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돔 페리뇽의 베이스 와인들은 샴페인 숙성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줬다. 특히 앵프로비사시옹 2022의 뒤쪽 깊숙이 숨어 있던 우아한 풀숲 향 같은 고미(苦味)를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이날 레벨라시옹의 또 다른 주인공은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9였다. 건조하고 따스했으나 유달리 덥지는 않았던 여름이 2009년 빈티지의 가장 큰 특징으로 무려 12년의 셀러 숙성을 거쳐 2023년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9와 마리아주하는 디너는 요시히로 나리사와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나리사와가 맡았다. “일본 문화에는 사토야마(里山)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긴 해안선과 산림이 국토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 지형의 특징을 ‘사토야마’라고 합니다. 평지와 산이 만나는 곳을 뜻하던 이 말은 지금은 ‘자연에서 인간이 필요로 하는 필수적인 것만을 취한다’는 ‘사토야마 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되었습니다.” 요시히로 나리사와 셰프의 말이다. 이날 우유를 먹여 키운 비둘기를 살짝 구워낸 후 달콤한 간장으로 코팅하고 다시 쪄낸 요리가 나왔는데, 아마 난 그 비둘기의 식감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나리사와의 사토야마는 포도가 나는 밭의 미생물부터 마을 전체까지 생태계 전반이 와인에 담긴다는 돔 페리뇽의 철학과도 매우 닮았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이죠. 어쩌면 이번 레벨라시옹의 테마 중 하나였던 ‘물질에서 빛으로(From Matter to Light)’라는 정언 역시 비슷한 의미일 수 있겠네요.” 뱅상 샤프롱이 말했다. 사실 나는 레벨라시옹 행사 내내 그가 ‘물질에서 빛으로’를 강조하는 이유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많은 와인메이커가 가진 시적인 언어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앵프로비사시옹의 베이스 와인을 맛보고 디너 자리에서 돔 페리뇽 빈티지 로제 2009를 맛보고 나자 그가 말하는 ‘빛’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 빚은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또 다른 자연이고, 그중 하나는 돔 페리뇽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 모엣헤네시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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