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위대한 수업>을 더 위대하게 만든 사람들
폴 크루그먼, 유발 하라리, 마이클 샌델이 모두 출연한 한국의 프로그램. 이제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앞다퉈 출연하려는 프로그램이 있다.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의 제작진을 만났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에스콰이어(이하 생략) 박혜민 PD는 인터뷰 마치고 귀국한 지 18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인터뷰를 위해 달려와주셨다고요.
박혜민(이하 ‘박’) 괜찮습니다.(웃음) 그래도 석학들이 주로 OECD 국가들에 거주해서 그렇게 고생스럽지는 않아요.
세 분 다 전 세계를 뛰어다니고 계시죠. 가장 최근에는 어떤 출연자를 만나고 오셨나요?
박 영국 런던 근교에서 제임스 다이슨을 찍고 돌아온 길입니다. 청소기를 만드는 다이슨이라는 회사의 창업자인데요. 시즌 3에서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허성호(이하 ‘허’) 시즌 1부터 계속 미국 담당이었어요. 가장 최근에는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상을 2018년에 수상한 폴 로머 그리고 뉴욕대 경제학과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 이렇게 세 분을 찍고 돌아왔네요.
이주희(이하 ‘이’) 저는 얼마 전 한국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태양의 서커스> CEO인 다니엘 라마르가 내한 공연을 앞두고 한국을 잠시 찾았을 때 촬영했거든요. 타이밍도 좋았지만, 제작비 절감에도 도움이 됐죠.(웃음)
시즌 1·2까지는 섭외에 다소 난항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시즌 2까지 함께했던 최현선 PD가 <PD저널>에 기고한 글을 보니 섭외가 안 되면 비서나 회사 관계자, 그마저도 안 되면 트위터에 멘션을 보내고 지인에게까지 메시지를 보냈다고요.
허 그 시절의 이야기는 이제 프로그램 초창기의 추억으로 남았고요.(웃음) 당시에는 팬데믹이었기 때문에 자가격리 등 제한이 많았어요. 한 번 해외에 나갔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을 찍고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었죠. 또 신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 이름값이 있는 분을 출연시키고 나면 방송 자체의 홍보 효과가 크다는 장점도 있고, 다음 출연자를 섭외하는 데도 아주 큰 도움이 돼요. 석학들도 사람이라 그들끼리도 ‘누가 출연했다더라, 누가 나왔다더라’ 하며 신경을 꽤 쓰기 때문이죠.(웃음) 초창기에는 대단히 어렵게 섭외를 했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당시 모셨던 분들이 프로그램의 레벨을 높여주셨어요. 덕분에 지금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진행하는 편입니다.
인터넷에 제작진이 섭외를 할 때 “안 오시게요? 폴 크루그먼도 오는데?”라고 물어보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 어느 정도는 진짜였군요.
허 시즌 1·2 때는 실제로 그런 식으로 제안한 적도 있었죠. 시즌 3을 준비하면서는 전혀 없었어요. 내년 초쯤 되면 방송된 출연자만 100명이 넘거든요. 석학들 사이에 저희를 알고 계신 분들도 생겨서 노벨상 누구 섭외했다고 저희 입으로 말하기 약간 민망하기도 하더라고요.(웃음)
섭외한 적 없는 석학들이 <위대한 수업>을 알고 있었다고요?
허 이번 시즌에 출연해주신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에게 연락을 했더니, 이미 프로그램을 알고 있었고 연락을 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교육 전문 방송사가 있는 나라가 세계에 유례가 없다 보니 그 부분이 석학들의 흥미를 끈 게 아닐까 싶어요. 보통은 NHK e처럼, 큰 방송사 내부에 교육 채널이 따로 존재하거든요. 또 EBS가 영리를 목적으로 한 방송사가 아니고, 모두의 교육을 위한 채널이라는 점도 석학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인이었다고 봅니다.
많은 것이 변했군요. 초반에 ‘맨땅에 헤딩’했던 에피소드가 궁금하네요.
허 대학생 때의 짧은 인연 덕분에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일인데요.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재학 당시 은사였던 구민교 교수님이 “미국에서 내 은사님이 오시는데, 배드민턴을 잘 치신다. 네가 함께 배드민턴을 쳐드려라”고 하신 거예요. 그분이 바로 지금도 한국 정부에 무역에 관한 자문을 해주는 비노드 아가왈 교수님이었어요. 당시에는 영어도 잘 못하면서 아가왈 교수님 모시고 배드민턴도 치고, 외교부에 가셔야 한다기에 모셔다드리고, 또 한국 과자도 추천해달라기에 골라드렸죠. 이후로는 완전히 잊고 지냈거든요.(웃음) 그렇게 13년이 흐른 뒤, 제가 <위대한 수업> 시즌 1을 맡게 된 겁니다. 서울대로 적을 옮긴 구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했더니 그때 얘기를 꺼내시더라고요. 아가왈 교수님께 연락드려 보겠다고요. 놀랍게도 아가왈 교수님도 저를 기억하고 계셨더라고요. 배드민턴 덕분인지, 과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금방 연락이 닿았어요.
그래서 아가왈 교수가 시즌 3에 출연하게 된 건가요?
허 아, 오늘이 아가왈 교수님 방송하는 날이죠. 하지만 출연이 정해진 건 한참 나중이었고, 당시에는 다른 선물을 받았습니다. 일단 그분의 인맥으로 섭외에도 큰 도움을 주셨고, 무엇보다도 저희의 섭외 레터 원형을 만들어주셨거든요. 제가 쓴 섭외 레터를 구 교수님이 첨삭해주셨는데, 아가왈 교수님이 또 한 번 완전히 뜯어고쳐주신 거예요. 당시 아가왈 교수님이 고쳐주신 레터는 아직도 쓰고 있어요. 한 번쯤 읽어볼 만은 하게끔, 사실상 새로 써주셨죠.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허 우리 정서는 굉장히 겸손하잖아요. 몇 푼 안 되는 출연료 얘기는 겸연쩍으니 뒤로 빼고요. 그런데 아가왈 교수님의 수정본에서는 얼마 안 되더라도 출연료가 얼마인지 전면에 배치하고, 겸손한 표현은 죄다 지워졌더라고요. 또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찾아내서 언급한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절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15년 전에 모 세미나에서 당신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하면서요. 열어보기도 전에, 혹은 열어보자마자 쓰레기통으로 보낼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메일 쓰기 방식을 알려주신 거죠.
작은 인연이 운명적인 일을 만들어냈네요.
허 감사한 점은 또 있어요. 아가왈 교수님이 섭외에 나서주시니 석학들의 출연료가 낮아졌어요. 레터를 누가 최종적으로 보냈는지가 출연료에 영향을 주거든요. 이른바 ‘지인 찬스’죠. 덕분에 저희야 좋았습니다.(웃음)
섭외도 섭외지만, 그 이후 과정도 쉽지 않을 듯해요. 강의는 석학들이 한다고 해도 그들이 평생 공부한 내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주제 선정부터 편집까지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박 맞아요. 다음 주에는 마사 누스바움을 만나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거든요. 원래 인간성, 인간의 윤리에 대해 연구하시는 분인데, 최근에는 동물권으로까지 연구 범위를 확장했어요. 그래서 그분이 기존에 쓴 인간 관련 논문도 보고, 동물권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있는데 솔직히 그 분량이 상당해요. 저 같은 시청자들, 그러니까 평소에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해서도 대중의 관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쉽게 설명하려면 또 이해를 해야 하겠죠. 그 딜레마가 참 어렵습니다.(웃음)
이 강의 주제를 정하는 과정도 굉장히 길어요. 석학이 원하는 주제라고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저희도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 좋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주제여야 하니까요. 주제가 맞더라도 석학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저희가 담고 싶은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고요. 조율 과정에서 지난한 커뮤니케이션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석학의 주장에 대해 공부를 하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태양의 서커스> CEO 다니엘 라마르와의 촬영이 정말 편했습니다. 학술용어를 안 쓰니까요.(웃음)
시즌 1에서는 정말 유명한 석학들을 모았는데, 시즌 3에서는 다니엘 라마르처럼 쇼비즈니스 업계의 인물로도 영역을 넓혔어요. 섭외할 연사 선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이 13가지 분야로 나눠 리스트업을 하는데, 저희 제작진 외에도 프로그램 자문위원들이 있어요. 같은 조건으로 자문위원회에서도 추천을 받죠. 그렇게 모은 인물들을 적합도에 맞게 순위를 정하고, 순서에 따라 어떤 결격사유가 있는지 크로스 체크를 합니다. 망언을 한 적이 있다든가, 탈세를 했다든가 하는 부분이요. 교육방송 출연자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으면 절대 안 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선정이 상당히 엄격한 편입니다. 일단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교양이 될 만한 이야기를 가진 분들을 우선적으로 모시고 싶어요. 교양이라고 하면 얼마나 넓은가요. 앞으로도 저희가 다루는 영역은 더 확장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석학 선정에, 섭외에, 강의 내용을 공부하고 주제 관련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출장 가서 촬영 후 편집까지…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박 촬영은 하루면 다 찍을 수 있고 딱 하루 분량의 편집만 하면 되기 때문에 후반 작업은 품이 좀 적게 들어가는 편이에요.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는 50분 분량일 경우 몇 달을 촬영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위대한 수업>은 촬영이나 편집에 대한 품은 적게 들어가죠. 다만 그 전에 섭외하고 공부하는 것이 힘들지만요.(웃음)
이 시즌 1·2를 찍을 때에는 후반 작업에서도 어려움을 겪긴 했어요. 지금은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이기 때문에 저희가 직접 괴로움을 겪는 일은 없죠.(웃음)
허 옛날과 비교했을 때 출장지의 프로덕션에서 함께하는 스태프 숫자나 제작 규모 자체가 대폭 줄었어요. 제작 과정이 상당히 효율적으로 바뀌었거든요. 시즌을 거듭할수록 노하우를 갖춰나가는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노하우도 있지만, 비용에 대한 부담도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한몫했을 것 같아요. 특히 해외 촬영이 잦고 출연료 대부분이 달러로 들어가는 만큼 제작에서 환율의 영향이 크지 않나요?
허 그렇죠. 저희가 원화보다 달러를 더 많이 쓰는 프로그램이라 환율에 굉장히 민감해요. 시즌 1 때만 해도 환율이 1200원을 넘지 않았는데, 시즌 2 때는 1500원 직전까지 갔죠. 그때 상당히 암담했어요. 지금은 1300원에서 1350원 정도로 잡고 예산을 집행한 상태예요. 물론 제작진을 갈아 넣고 있기도 하지만.(웃음) 그래도 옛날에 비해서는 시스템 자체가 상당히 효율성이 좋아져서 높아진 환율을 상쇄하고 있어요. 또 저희 제작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출연진 출연료거든요. 시즌 1에서는 유명한 석학들, 시즌 2에서는 다양한 강연자들로 채워봤으니 이제부터는 ‘강의력 좋고 비교적 저렴한 출연자’를 섭외하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시즌 10까지 가려면 지금보다 더높은 효율성을 추구해야 할 테니까요. 섭외할 때는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저희가 교육 전문 방송이라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어필하고요. 이렇게 제작 환경 그리고 출연료에서 효율성을 제법 달성한 상황이라, 다행히 지금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위대한 수업>의 제작비가 이슈가 되기도 했죠.
허 시즌 3까지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라는 기관에서 국비의 일부를 지원받아 제작했어요. 그런데 내년부터는 알 수 없는 상황이고요. 저희도 자생력을 가지고 시즌 4를 준비해야 하는데, 꽤 힘든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즌 10까지 가셔야 하니까요.
허 네. 희망 사항이지만….(웃음)
섭외에 성공했다는 게 반드시 콘텐츠로 연결되지는 않죠. 혹시 찍으러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더니 퇴짜를 맞거나 한 경험도 있나요?
이 있었죠.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내가 촬영 당일 나타나지 않아도 위약금을 물지 않는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된 적도 있어요.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당일에 컨디션이 안 좋거나, 하기 싫어졌거나 등의 이유를 들 수 있겠죠. 가끔씩 이런 식으로 엎어지는 일이 생겨요. 그러니까 약속이 돼 있어도 100% 믿지는 않죠.
허 주희 선배님이 말씀하신 사례처럼 ‘하기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 하게 되신 경우도 있어요. 아무래도 석학들은 고령자이다 보니 건강상의 이유로 계약까지 맺었는데 강의를 차마 진행하지 못하신 분들도 계시거든요. 매 시즌 있어요. 그런데 건강상의 이유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죠. 그래서 제작은 방송보다 미리미리 해야만 해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하니까요.
그런 식으로 미리 준비한 것치고는 상당히 시의적절한 시기에 방영되는 것 같아요. 저출생이나 인공지능과 관련한 내용이야 워낙 큰 이슈지만, 아까 얘기한 아가왈 교수의 강의는 무역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하필 13개월 만에 수출이 반등해 무역이 화두가 된 이번 주에 편성되었더라고요.(웃음)
허 그게 그렇게 되나요?(웃음) 무역이든, 저출생이든, 인공지능이든 다 언제나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해서 준비한 내용이에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죠. 세상 시류에 맞춰 기획은 하지만, 워낙 변수가 많다 보니 저희가 계획한 대로 해서 실현된 적은 없었네요.
수신료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는 반응이 많아요.
허 감사한 칭찬이죠. 저 역시 EBS의 많은 콘텐츠 중 <위대한 수업>이 그래도 수신료의 가치를 잘 구현한 프로그램들 중 하나는 될 거라고 생각해요.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요.
겸손하시네요.
허 EBS에 좋은 프로그램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래도 저희 프로그램이 개중 하나는 될 거라고 본 건, ‘공영방송사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모델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시청자들에게 수신료는 굉장히 내기 아까운 돈이잖아요. 그런데 저희 프로그램 관련해서 ‘EBS에 수신료를 몰아주세요’ ‘EBS에 간다면 내 수신료가 아깝지 않아요’ 같은 댓글이 있더라고요. 시청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감히 높은 점수를 부여해봅니다.
<위대한 수업>을 통해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은가요?
이 교양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교양이 지루하지 않다는 사실을 더 많은 분께 전달하고 싶어요. 하버드 석좌교수 같은 사람만 논할 수 있는 게 교양이 아니니까요. 작은 교양이 쌓여 삶을 굉장히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지식’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온 것 같은데, 지식이란 그렇게 어려운 존재여선 안 되거든요. 교양과 지식이 우리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걸 시청자들이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그렇게 만들려고 앞으로도 노력할 테고요.
앞으로라면… 시즌 10까지요?
허 음… 그럴 수 있기를.(웃음)

<위대한 수업> 촬영 중인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 하워드 가드너 교수.
Credit
- EDITOR 김현유
- PHOTOGRAPHER 조혜진
- PHOTO EBS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박인선
JEWELLERY
#부쉐론, #다미아니, #티파니, #타사키, #프레드, #그라프, #발렌티노가라바니, #까르띠에, #쇼파드, #루이비통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에스콰이어의 최신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