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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게인> 과몰입자의 단상

프로필 by 김현유 2024.02.05
 
지난 1년간, JTBC <무명가수전 싱어게인3>만큼 우리 엄마를 몰입하게 한 프로그램은 없다. TV 조선의 트로트 시리즈를 단 한 번도 보지 않은 엄마는 대신 <싱어게인> 온라인 투표에 참여할 방법을 물어보았다. 덕분에 요즘 나의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에도 60호 김수영의 ‘백만송이 장미(심수봉)’, 소수빈의 ‘넌 쉽게 말했지만(윤상)’, 홍이삭의 ‘옛 친구에게(여행스케치)’ 등의 <싱어게인> 음원이 몇 곡 자리하고 있다. 어린 시절 ‘투니버스’ 채널에 빚을 진 93년생으로서, 74호 유정석이 부른 <쾌걸 근육맨 2세>의 오프닝곡 ‘질풍가도’의 감동도 언급하고 싶다.
트로트 오디션의 춘추전국시대였던 2020년 겨울, <싱어게인>이 처음 등장했다. <싱어게인>은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을 위한 오디션’을 자처했다. 팬데믹으로 무대를 잃은 아티스트, 혹은 대중에게 잊힌 ‘슈가맨’ 등이 기회를 찾아서 모였다. 트로트에 대한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이나 새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시청자 역시 대안을 찾았다. 주된 룰은 간단하다. 한 번이라도 앨범이나 노래를 발매한 적이 있는 ‘가수’라면 누구든 참가 대상이다. 대신 이들은 OO호라는 식으로 이름을 가리고 나와, 무명 가수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이름을 공개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단 두 가지다. 탈락자가 되거나, 본선 무대에 오르거나.
<싱어게인>은 세 시즌 연속 흥행을 이어나갔다. 8%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출연 아티스트의 유튜브 클립도 숱하게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거뒀던 가수들도 대거 출연했다. <슈퍼스타 K>(2009) 이후 지난 10여 년간 명멸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사이, <싱어게인>은 무엇으로 차별화할 수 있었을까?
우선 <싱어게인>은 상향평준화된 오디션이다. 참가자의 상당수가 이미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놓은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다양성 역시 빛난다.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절창’을 하는 보컬이 있지만, 정반대편의 캐릭터도 박수를 받는다. 시즌2에 참가한 음악 교사 겸 가수 ‘오열’이 좋은 예다. 말하듯 노래하는, 이따금 불안하게 들리는 그의 노래가 다른 오디션에서 빛을 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싱어게인>은 대중이 생소한 목소리를 반길 준비가 되어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미국 본토 느낌이 물씬 나는 R&B 뮤지션 호림도 장년층 시청자의 박수를 받지 않았나. 이곳에는 심사위원의 독설이 없다. 대가 임재범마저도 “우리도 먼저 노래했다는 것밖에는 더 내세울 게 없다”며 고개를 숙인다. 다른 심사위원의 평가도 대부분 인상 비평, 혹은 일방적인 사랑 고백에 머문다. 첫 시즌부터 쭉 유지되어온 <싱어게인>의 ‘순한 맛’ 비평은 기성 가수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동업자 정신에서 나오고 이는 훈훈하고 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매 시즌 반복되는 장면은 하나 더 있다. 실력자를 만날 때마다 ‘지금까지 어디 숨어 계시다가 나오셨냐’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심사위원의 모습이다. 의아함은 시청자의 몫이기도 하다. 저렇게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여태 우리는 몰랐을까? 그들 중 누구도 숨어 있었던 적은 없다.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첫 번째 시즌의 우승자이자 ‘30호 가수’ 이승윤은 자신의 존재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산울림)’ 무대에 앞서 “나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부분을 시청자들이 보았다면 이 무대 밖에 수많은 72호 가수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이승윤은 꾸준히 인디 신에서 활동했던 아티스트다. 그러나 신 내에서도 크게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한때 음원 수익이 172원에 불과했을 만큼 ‘방구석 음악인’의 운명을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음악을 관두기 전 마지막 기회로 삼은 <싱어게인>은 그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냈다.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결합하는 ‘얼터너티브’스러움, 경연의 정형성을 벗어난 몸짓. 그는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주인공이 되었다. 지난해 발표한 앨범 <꿈의 거처>는 그 야망의 확장판이다.
<싱어게인>에 도전한 많은 무명 가수가 이승윤의 길을 꿈꾼다. 비용을 최소화하면 정규앨범을 수백만원으로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그 수백만원을 모으기가 불가능한 환경이 어딘가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뮤지션의 앨범 제작비를 지원하는 사업에 수많은 뮤지션이 몰리는 이유다. 지원 사업에 지원한 한 인디 뮤지션은 ‘실제 밴드 사운드로 앨범을 녹음해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앨범을 제작했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유튜브에 올릴 콘텐츠를 제작하고, 정성스러운 마케팅을 통해 앨범을 알려야 한다. 애써 만든 앨범이 평론가와 리스너의 호평을 받고, 페스티벌 무대에 서고, 단독 콘서트를 흥행시키는 공식은 소수에게 허락된 일일 것이다.
이번 시즌 Top 7 진출자이자, 인디 밴드 ‘악퉁’의 보컬인 추승엽 역시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다. 20주년 콘서트를 열었는데 모객이 힘들었다”며 현실을 고백했다. 이처럼 자본과 무대가 없는 뮤지션에게 <싱어게인>은 매력적인 선택지다. 인지도와 콘텐츠 그리고 서사를 일거에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방구석 음악가’ 이승윤은 이제 단독 콘서트에 수천 명의 팬을 불러 모은다. ‘신호등’을 2021년 최고의 히트곡으로 만든 이무진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밴드 너드커넥션의 서영주도 있다. ‘요즘 누가 TV를 보느냐’는 말이 무색하게, 레거시 미디어의 힘은 막강한 것이다.
본선 진출자들은 경연에 앞서 펼쳐지는 ‘명명식’에도 큰 의미를 둔다. 자신의 이름을 공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커버곡이 아닌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싱어게인>이 종영하고 나면, ‘무명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몇 개나 될까? EBS <스페이스 공감>은 지난여름 이후로 새 녹화를 하지 않고 있다. KBS2에서 방영하는 심야 음악 프로그램 역시 예전만큼 인디 뮤지션을 자주 섭외하지 않는다. 13년 동안 양질의 영상으로 다양한 비주류 음악을 소개하던 ‘네이버 온스테이지’는 지난 11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좋은 음악은 매주 나오고 있지만, 레거시 미디어는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싱어게인>을 통해 목소리라도 알려야 한다.
이변이 없는 이상, <싱어게인>은 1년 후에 돌아올 것이다. 다음 시즌에도 ‘재야의 고수’들이 근사한 커버곡을 부를 것이고, 심사위원들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나와 엄마는 그때도 TV 앞에 앉아 최고의 무대를 논하는 과몰입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한편, <싱어게인>이 없어도 괜찮은 세상을 꿈꾼다. 촌스러운 이상이라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72호 가수들에게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 계셨느냐?’ 묻지 않고, 먼저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생태계를 상상한다. 몇 명의 스타 탄생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보탤 수 있는 몫도 있다. 우선 <싱어게인>으로 입덕한 뮤지션의 앨범을 찾아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연장에 가는 것은 더 좋을 테고 말이다.
 
이현파는 칼럼니스트이자 유튜브 <왓더뮤직>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이현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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