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프로필 by 김현유 2024.02.13
 
친구가 앱으로 물건을 시켰다고 했다. 구매 목록을 보니 12종의 곡물을 담을 수 있는 플라스틱 통과 야광 시계 밴드 3개 그리고 콧대 교정기 같은 어이없는 물건들이 가득했는데 총 결제 금액은 2만원 수준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그가 제품을 주문한 곳이 어디인지 대충 눈치챌 수 있다.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 또는 테무(Temu)일 것이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전자상거래를 전문적으로 취재하고 있으면서도 1년 전까지 두 서비스에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한국의 이커머스 시장은 이미 쿠팡과 네이버로 정리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 오만함을 비웃듯 그해 3월,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한국 대표는 한국 시장에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며 배우 마동석을 광고 모델로 내세우고 한국 진출을 본격화했다. 늦여름 한국에 상륙한 테무는 ‘최대 90% 할인’을 언급하며 이목을 끌었다. 결과는 굉장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지난해 1~11월 기준, 한국에서 사용자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앱 1, 2위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두 앱의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2023년 11월 기준 707만 명, 354만 명에 달했다. 연말 유통업계에서 ‘중국 앱의 무서운 성장세’ ‘중국 쇼핑몰의 공습’ 같은 제목의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이유다.
여기서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과연 중국 직구 쇼핑몰은 우리에게 낯선 곳이었을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중국발 이커머스를 사용하는 동안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서 파는 상품이 묘하게 눈에 익다는 것을 말이다. 어디서 봤을까? 아마 쿠팡이나 네이버에서 같은 제품을 검색했다가 봤을 확률이 높다. 상세 페이지에 올라온 사진마저 똑같은 경우도 있으니까.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눈에 중국발 이커머스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전 세계 곳곳에는 중국발 이커머스를 통해 들어온 상품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으니 말이다.
중국 상품이 인터넷을 통해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지는 대략 25년쯤 되었다. 1999년, 한 중국인은 ‘인터넷’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동료 17명과 함께 9000만원을 들여 중국 공장에서 나온 물건을 해외에 판매할 수 있게 지원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 유명한 알리바바 그룹 마윈의 이야기다. 알리바바 그룹의 성공 이후, 중국에는 공장 재고를 직접 가지고 있다가 해외로 보내주는 업체들이 속속 등장했다. 최대한 저렴한 상품을 찾던 전 세계 소매업자들은 이들의 손을 잡고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상품을 수입했다. 미국의 인터넷 종합 쇼핑몰인 아마존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중국 제조업체들에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들이 직접 해외에 상품을 팔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국 판매자를 직접 흡수한 것이다.
202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페24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의 서비스 덕분에 온라인 쇼핑몰 창업은 매우 간단해졌다. 인터넷의 발달로 초보 사업자들은 물건을 구하기도 쉬워졌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온라인 사업의 문이 열리면서 ‘대셀러의 시대’가 펼쳐졌다. 초보 셀러들은 처음 상품을 확보할 때, 대개 ‘드롭시핑(dropshipping)’에 관심을 가진다. 재고 없이 주문을 받고 중간 단계 도매상을 통해 주문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용어가 낯설어서 그렇지 간단히 말해 ‘구매대행’이다. 구매대행 단계를 넘어선 셀러는 직접 사입에 나서는데, 이때 대부분의 셀러들이 만나게 되는 곳이 중국의 도매 사이트였다.
가장 유명한 도매 사이트 중 한 곳이 바로 ‘1688 닷컴’이다. 오래전부터 한국 온라인 쇼핑몰 사업자들 사이 사입처 1, 2위를 다툰 곳이기도 하다. 1688 외에 중국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물건을 떼오는 이들도 종종 있다. 흥미로운 건, 1688이 알리바바의 중국 내수용 도매 사이트이며 타오바오 역시 알리바바의 쇼핑몰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의 일상에 부쩍 가까워진 알리익스프레스 역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알리바바 그룹의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이전까지 국내 셀러들에게 물건을 팔던 중국 도매 사이트의 판매자들이 이제는 알리익스프레스를 통해 직접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팔게 된 것이다. 한국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볼 수 있는 상품들을 알리익스프레스에서도 볼 수 있는 이유다. 즉 국내 오픈마켓에서 의류, 가전,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는 셀러 대부분이 알리바바에 기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이커머스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던 것이다.
국내 판매자들과 같은 제품을 파는데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성장이 가파른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가격이 큰 메리트이겠으나, 여태까지 해외 사이트에서의 직접 구매를 가로막은 가장 큰 원인은 ‘속도’였다. ‘로켓배송’이니 ‘하루배송’이니 하는 이름 아래 24시간도 안 돼 물건이 도착하는 한국에서, 2주가 넘는 시간이 소요되는 직구의 장벽은 높았다. 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그 상식을 깼다. 알리 스스로가 자랑스러워하는 ‘5일 이내 배송’, 테무 또한 ‘평균 7일 배송’을 보장하고 있다. 일정 금액 이상 주문 시 무료로 배송을 해주거나, 반품을 무료로 할 수 있게 해주는 등 파격적인 서비스도 내세우고 있다. 이러니 반찬통이 필요할 때, 디지털 워치의 밴드를 바꾸고 싶을 때 우리의 손길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발 이커머스는 만능이 아니다.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가장 큰 건 ‘짝퉁’이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취재를 갔다가 출석한 레이 장 대표가 곤란해하던 모습을 목격했다. 알리익스프레스에 각종 짝퉁 의류뿐만 아니라 ‘가짜 국회의원 배지’까지 판매 중이라는 사실을 지적받았기 때문이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실질적 조치가 필요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 한기정 위원장에게 알리익스프레스를 불공정행위와 전자상거래법 위반으로 조사해달라고 요청했고, 레이 장 대표는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국내외를 막론한 패션 브랜드 기업 다수는 알리익스프레스에 상품을 공급하지 않지만, 알리에서는 관련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부 가짜인 것이다. 브랜드 패션 상품 구매를 위해서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를 꺼야 하는 이유다.
가전이나 디지털 상품의 경우에는 안전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직구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상품 중 한국 국가통합인증(KC) 마크가 없는 경우가 많아 안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법적 허점 때문인데, 한국 사업자가 해외에서 물건을 수입하려면 KC 마크를 받아야만 하지만 개인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직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발 이커머스가 저렴한 가격과 빨라진 속도를 앞세우고는 있으나, 그래도 여전히 빈 곳이 많다는 이야기다. 기업들이 자체 모니터링 활동을 진행해 가품 근절이나 안전성 확인 등 소비자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국내 이커머스나 온라인 쇼핑몰보다 모자란 점이 분명 있다.
그러나 각종 논란에도 중국발 이커머스의 영향력은 분명히 커지고 있다. 저가 공산품을 휩쓸고 있는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가 중국 상품을 떼오는 국내 셀러들의 자리를 좁히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 브랜드 상품이 아닌, 보세 의류를 판매하는 쇼핑몰도 마찬가지다. 국내 셀러들의 중간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아 훨씬 저렴하고, 일반 직구보다 배송 소요 시간도 짧다. 저가 상품에서는 소비자들이 중국발 이커머스를 외면할 이유가 없다. 이전까지 중국 도매 사이트에 기대왔던 국내 온라인 쇼핑몰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보이지 않게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던 중국발 이커머스는 이제 우리의 눈앞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국내 이커머스만큼 파이를 늘릴 것인지, 아니면 각종 부정적 이슈로 지금만큼의 성장세를 잃게 될지는 지나봐야 알 일이다.
 
성아인은 IT 전문지 <바이라인네트워크>의 기자다. 전자상거래와 플랫폼 분야를 취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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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성아인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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