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놓고 과시하지 않지만 뜯어볼수록 아름다운 식물 7

드러내고 과시하지 않지만 뜯어볼수록 아름다운 식물, 평범해 보이지만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식물 7종을 모았다. 각각의 식물에 얽힌 이야기 역시 특별했다.

프로필 by 김현유 2024.03.11
 

만병초

이름에 초(草) 자가 들어가 풀이라 생각했다. 오해였다. 과거 만병초잎을 약재로 여긴 탓에, 약초의 의미를 강조해 이런 이름이 붙었을 뿐 4m까지 자라는 나무다. 꽃이 예뻐 관상용으로 키우는 사람도 많아 익숙한 식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식물 스튜디오 ‘오이타’의 만병초는 달랐다. 이런 수형의 만병초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처음 이 만병초를 심은 농장에서는 수십 년 동안 작은 포트 안에 넣어 키웠어요. 어찌 보면 방치한 셈이라 굵고 튼튼하게 자라질 못했죠. 대신 어떻게든 비집고 나와 높이 솟아올랐어요.” 최문정 대표의 말이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강한 생명력 덕분에 길쭉하고 구불거리는 독특한 형태로 자라났다는 점만으로도 귀하게 여길 만한 식물이라는 설명이었다. “160cm 이상 되는 식물은 분재라고 할 수 없지만, 이 만병초는 분재처럼 작은 화분에 담겨 자라고 있으니 분재처럼 감상할 수도 있어요. 엄연히 말하자면 분재가 아니지만, 분재라고 볼 수도 있는 그런 식물인 거죠.” 살고자 하는 의지에서 발현된 개성 있는 모양과 분재인 듯 분재가 아닌 형태까지, 특별하게 여길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청짜보 

‘짜보’는 원래 왜성종의 조그만 나무를 가리키는 말로,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본에서 온 말이다. “일본에서 관상용으로 키우는 작은 닭 품종 중에 차보(チャボ)라는 게 있어요. 거기서 유래한 단어로, 작고 천천히 자라는 식물을 짜보라고 부르게 된 거죠.” 식물숍 ‘푸르다’ 자운 대표의 설명이다. 사시사철 푸른빛을 자랑하는 청짜보의 원래 이름은 ‘연산회’로, 일본산 편백나무의 일종이다. “1년에 길어봐야 1cm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특이한 종이죠.” 자운 대표에 따르면 청짜보는 주로 분재용으로 인기가 많다. 성장 속도가 느려 특별히 가지 정리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수형을 만들어나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1년 내내 같은 모습이고, 크기가 작아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기르는 시간은 길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상품성을 갖추려면 5년 이상 시간이 걸리죠.” 외형만으로도 세월의 더께를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식물 편집숍 ‘4t’에서 마주한, 길이가 족히 30cm는 되어 보이고 줄기마저 두툼한 청짜보의 자태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청짜보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 나무가 30년 세월을 버텨왔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할 터였다. 100년의 시간을 겪은 청짜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실남천

식물 편집숍 4t를 방문하기 전 김동은 대표에게 식물 사진을 몇 개 받았다. 마치 머리카락처럼 잎을 늘어뜨리고 있는 독특한 외형의 실남천에 눈길이 갔다. 남쪽 지방이 산지인 남천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실남천이라는 식물의 존재는 처음 알았다. 남천은 추위에 강해 국내에서는 조경용으로 주로 쓰기 때문에 익숙한 식물이다. 가을에 접어들면, 작은 키에 잎이 붉게 물든 식물을 길에서 종종 마주할 수 있는데 이게 바로 남천이다. 실남천은 남천의 한 종류로, 남천과 달리 실같이 가늘고 긴 잎이 특징이다. 나뭇가지에 실오라기를 달아놓은 듯한 모양이다. “귀신같이 생겼죠?” 김 대표가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가는 가지에서 얇은 잎이 나기 때문에 특별히 가지 정리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멋진 수형이 만들어져요.” 이런 이유로 실남천은 분재에 관심을 가진 20대에게 인기가 높다. 단점이라면 성장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여러 가닥으로 가지가 뻗어나간, 40cm가량의 실남천을 키우는 데 1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한편에 놓고 지켜보고 있자니 깊은 산속, 근사하게 구부러져 자란 소나무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방 안으로 들여온 듯이 느껴졌다. 가을이 되어 잎이 붉게 물들면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할 터였다. 
 

극락조 알보 

팬데믹을 거치며 ‘몬스테라 알보’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초록색에 흰색이 섞인 독특한 잎이 ‘식테크’의 수단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알보’는 흰색을 뜻하는 라틴어로, 돌연변이로 잎에 흰색이 섞인 식물에 이 단어가 붙는다. 이제는 세계 곳곳에 몬스테라 알보만을 생산하는 농장도 있어 희소성은 많이 줄었다. 그런데 국내에서 ‘개업 선물’용으로 자주 쓰이는 식물인 극락조에도 알보가 생길 수 있을까? 새의 한 종류처럼 들리는 극락조라는 이름은 실제로 새에게서 따왔다. 극락조라는 새가 날개를 편 모습과 식물의 커다란 잎 모양이 닮았기 때문이다. 깃털이 화려한 새 극락조와 달리 식물 극락조의 잎은 전부 짙은 초록색이다. 디자이너이자 식물 수입 사업을 하는 임성윤 대표가 보유한 극락조를 제외하면 말이다. “거래처인 네덜란드 농장에서 제안이 왔어요. 흰색이 섞인 극락조가 나왔다길래 곧바로 사겠다고 했죠.” 농장 쪽에서 전해준, 흰색 극락조가 탄생할 확률은 무려 10만분의 1이라고 했다. 임 대표는 누구나 이 희귀한 식물의 아름다움을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에이프커피에 전시해두었다. “말씀드리지 않으면 잘 모르시긴 하지만, 그래도 보는 것만으로 예쁘잖아요.” 임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파키포디움 그락실리우스

보기만 해도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파키포디움은 ‘두께’를 뜻하는 그리스어 ‘pachus’와 ‘발’을 뜻하는 그리스어 ‘podion’이 합쳐진 말이다. 이름처럼 하부가 두꺼운 다육식물의 한 종으로, 마다가스카르를 중심으로 한 남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다육식물이라고 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오밀조밀한 ‘다육이’와는 사뭇 다르다. 매끈하고 거대한 몸통, 가지에 돋친 조그만 가시 그리고 나무껍질처럼 보이는 표면까지. ‘코끼리 발 나무(elephant foot tree)’라는 별명과 잘 어울린다. 다만 겉보기와 달리 조직이 단단하기보단 오히려 스펀지 같다. “물이 부족하고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이니 물을 접하는 순간 바로 빨아들여야 할 테니까요.” 괴근 식물 전문 숍 ‘고어플랜트서울’ 안봉환 대표의 설명이다. 괴근 식물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유독 안 대표의 파키포디움 그락실리우스가 특별한 이유는 뭘까. 바로 매끈하고 거대한 몸통 그 자체 때문이다. 파키포디움은 어릴수록 몸통이 가늘고 가시가 빽빽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시는 탈락하고 몸통은 부드럽게 변한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최소 80년에서 100년은 살았을 걸로 추정돼요.” 척박한 환경에서 세월을 버틴 것 자체만으로도 두고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셈이다.
 

운용동백 

‘운용’은 스스로 구불거리는 모양으로 자란 식물의 이름 앞에 붙는 단어다. 운용동백 역시 일반 동백나무처럼 곧게 자라는 대신 자연스러운 곡선을 만들며 성장한다. 매년 꽃이 피는 걸 장담할 순 없지만, 나무 자체의 모양만으로도 감상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꾸준히 식집사들의 사랑을 받는 식물이기도 하다. 오이타의 운용동백에는 조금 더 특별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얼핏 보면 평범한 바구니에 심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라탄 모양으로 만든 도자기거든요. 손으로 하나하나 결을 낸 귀한 화분으로, 이제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아 정말 세상에 몇 개 남지 않은 골동품이에요.” 최문정 대표의 말이다. 그녀는 가치 있는 물건을 수집하던 어르신들로부터 이 화분을 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어떤 식물을 담아야 좋을지 꽤 오랜 시간 고민했어요.” 정성이 깃든 오래된 화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식물은 뭐였을까? 그녀가 선택한 것은 ‘자유로운 식물’이었다. “긴 시간을 버텨온 귀한 도자기에 스스로 모양을 만들어내며 자라는 식물이라니, 생각보다 근사한 조합이었어요. 옆으로 흐르는 듯 자라는 운용동백의 가지와 화분 자체의 생김새가 잘 어우러지기도 했고요.” 최 대표는 볼 때마다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파피오페딜룸 & V3 

세간에 난초과 식물은 키우기 까다롭다는 편견이 있다. 특히 서양난이 그렇다. 물 주는 시기가 정확해야 하고, 뿌리는 촉촉이 적시되 꽃과 잎에는 물이 닿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티도 내지 않고 서서히 죽어버려 ‘식집사’를 허탈함에 빠뜨리기도 한다. 서양난이 선물용으로는 종종 팔리면서도, 직접 키우는 반려식물로는 인기가 낮은 건 그런 이유다. “약간의 번거로움만 이겨내면 50일간 개화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걸요.” 업사이클링 편집숍 ‘번화가’ 김현종 대표가 파피오페딜룸과 V3를 추천하는 이유다. 파피오페딜룸의 별명은 ‘귀부인의 슬리퍼’다. 화려한 빛깔의 꽃잎이 슬리퍼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V3는 반려식물로 자주 들이는 호접란 중에서도 꽃이 크고 반짝이는 펄감이 있어 귀한 품종이다. “자리에 두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식물로는 꽃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꽃이 피어 있는 시기는 길지 않지만, 그 기간 동안은 마음이 풍성해지죠.” 김 대표는 파피오페딜룸과 V3의 개화 시기를 더욱 빛내기 위해 양치식물인 박쥐란과 긴 풀처럼 생긴 틸란시아 준세아를 합식했다. 이를 위해 환풍 구멍이 있는 토분을 썼고, 흙이 아닌 바크와 난석에 식재했다는 설명이다. 이 정도 노력이라면 충분히 누려도 좋을 만한 호사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PHOTOGRAPHER 조혜진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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