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아남는 신조어의 조건

프로필 by 김현유 2024.03.09
 
그러니까 이 주제는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그런 단어를 실생활에서 쓰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누칼협 같은 신조어는 금방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하는 이와 “실제로 ‘누칼협’거리는 고등학생을 본 적이 있다”며 ‘엄연히 실사용되는 신조어’라고 반박하는 이 사이의 토론이 길어졌고, ‘버카충’이나 ‘안습’은 일상에서 사라진 반면, ‘신박하다’ ‘혼밥’ ‘킹받다’ 등은 꽤나 오래 사용되고 있는데, 그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매우 피처팀다운 질문으로 끝을 맺었다고 한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이에 관한 청탁이 들어왔다. 오래 살아남는 신조어의 조건이 뭐냐고? 하긴, 생각해보면 이는 한국만의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다. 애초에 신조어의 폭발적인 발달은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등 기술과 통신수단에 적응하며 나타나는 지극히 보편적인 변화, 글로벌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신조어가 가장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 386 혹은 X세대가 ‘신세대’로 분류돼 온라인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들은 ‘삐삐’로 숫자를 이용한 메시지(1004 천사, 8282 빨리빨리, 0404 영원히사랑해)를 써서 연애했고, PC 통신에서 유행하던 단어(방가방가, 초·중·고딩, 당근이지, 번개, 정모)나 기호(^^, ㅠㅠ)를 유통했으며, 휴대폰이 등장하자 특수문자, 기호를 이용한 그림 메시지를 상상해냈다. 일부 그룹에서 사용하던 은어나 속어가 일상언어로 스며드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언어 혹은 문자 생활 자체가 이처럼 단기간에 전 세대에 영향을 미친 경우는 없었다. 당시 기성세대는 우려했다. 언어가 오염되고 있다는 학자들의 성토가 이어졌고, 한글날이 되면 언론은 ‘신세대들의 한글 파괴 실태’를 특집으로 다뤘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소셜미디어가 매체의 중심이 된 지금, 언어의 변화에는 더욱 속도가 붙었다. MZ세대의 신조어는 빠르게 생성되고 확산되었다가 소멸되며, 사용 연령도 훨씬 세분화됐다.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 세대들이 만든 ‘어쩔티비 저쩔티비’라는, 논리적으로 그 연원을 파악하기도 힘든 표현을 유재석과 전현무가 사용할 정도였고, 불과 1~2년 전 유행했던 저 표현은 재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톡’이나 댓글이 중요해진 현시대의 신조어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나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처럼 문장을 짧게 줄인 단어가 가장 자주 생성된다. 비속어로 여겨지는 접두어를 일반 단어에 붙이는 것도 눈에 띈다. ‘개-’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접두사 ‘개’에 ‘정도가 심한’이라는 강조의 뜻이 있다는 점이 이용됐다. ‘개꿀’ ‘개이득’ 등은 그렇게 쉽게 퍼졌다. 그러나 사실 접두사 ‘개’는 ‘질이 떨어지는’ ‘쓸데없는’의 뜻으로 주로 쓰이므로 그 어원이 옳다고 볼 수는 없고, 비속어를 일반어로 만들어내는 데서 발생하는 쾌감으로 퍼진 경우라 봐야 할 것이다. ‘열받네’를 변형한 ‘킹받네’처럼 쾌감을 이용한 신조어들은 약간의 변형이나 방향성을 바꾸어가며 꾸준히 계승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두드러진 신조어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자음과 모음의 모양만 변형한 단어들의 탄생이다. 댕댕이(멍멍이), 띵작(명작), 네넴띤(비빔면) 등이 있다. 말을 줄이는 단순한 작업에 그치지 않고 자음과 모음을 재분해하는 방식은 소셜미디어 시대의 언어유희로 언어학적 의미를 갖추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영문을 한글로 읽는 KIN(즐)이나 알파벳을 그림화했던 OTL(좌절) 같은 옛 신조어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신조어 장수의 조건은 역시나 시대정신과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반짝 인기를 얻고 사라지는 신조어가 대다수지만, 이제껏 없던 의미를 담은 ‘혼밥’이나 ‘신박하다’처럼 세태의 현상을 포착한 단어들은 꽤 오랜 시간 사용되며 심지어 표준어와 비슷한 위치에 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사회문제나 세태를 정확하게 꼬집어내는 신선한 조합의 단어는 그 자체로 환기성을 갖추며 살아남기도 한다. 예를 들면 ‘기레기’가 있다. 이 단어가 사라지지 않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대중이 언론을 불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는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애초에 신조어란 새롭게 등장한 기술혁명에 적응하는 세대가 만들어가는 언어로, 글로벌한 현상이다. 영어권 국가들 역시 과거에는 각종 축약어나 비속어로 언어가 오염되고 있다고 우려했지만 현재는 Z세대와 알파 세대의 신조어를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또 한국의 Z·알파 세대가 틱톡을 통해 한국엔 없던 의미의 영어 신조어(OOTD, TMI)를 받아들인 것처럼, 미국인들도 자신들의 취향 그룹에 따라 외국에 단어를 흡수해 보다 글로벌한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먹방(mukbang)’이다.
긴 문장을 짧게 줄이는 경향이나, 새로운 문화와 세태를 꼬집는 신조어 역시 영어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자로 채팅을 시작하면서 나타난 고전적인 축약어 BTW(by the way, 그런데)나 ASAP(as soon as possible, 가능한 한 빨리) 등은 아주 격식을 차려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비즈니스 업무 메일에서도 자주 쓰이는 언어가 됐다. 지난 몇 년 사이에는 iykyk(If you know you know, 알사람은 알겠지만)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축약어 중에서도 표현하기 애매한 상황을 적절히 표현해내는 축약어들이 주로 사라지지 않고 긴 수명을 유지하는 편이다.
세태를 반영한 신조어는 수명이 길다. 관계성을 다루는 새로운 언어 ‘situationship, 시추에이션십’은 ‘썸’과 비슷한 단어로, 관계 정립에 부담감을 느끼는 요즘 세대의 새로운 연애 방식을 뜻한다. Z세대가 주로 사용하는데, 대체할 말이 없어 앞으로도 계속 쓰일 것 같다. 말없이 잠수를 탄다는 미국식 표현인 ‘ghosting’ 역시 같은 이유로 꾸준히 쓰인다.
한국에는 없는 미국권의 신조어 문화라면 다문화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단어들이 대중문화로 옮겨가는 경우다. 요즘은 (남자)친구에게 ‘브로(bro)’ 대신 ‘팸(fam)’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데 두 단어 모두 블랙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어 힙합 신을 통해 널리 퍼졌다. 요즘 많이 쓰이는 ‘It’s giving’(~느낌을 준다)’ ‘slay(죽인다, 쩐다)’ 역시 흑인이나 라틴계 커뮤니티에서 시작해 노래 가사로, 제목으로 이용되면서 미국 전역의 커뮤니티로 전파됐다.
이제는 Z를 넘어 알파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얼마 전 <뉴욕 타임스>는 ‘알파 세대가 당도했다’라는 헤드라인 아래 그들의 신조어에 포커스를 맞춘 기사를 실었다. 그들의 신조어는 틱톡을 통해 순식간에 퍼지고, 어원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실렸다. 기사 속 한 알파 세대 일원은 이렇게 말했다.“밀레니얼들이 이 단어를 쓰기 시작하면 저희는 절대 쓰지 않아요.” 묘하게 한국의 ‘어쩔티비, 저쩔티비’가 떠올랐다.
그래천 매컬러의 <인터넷 때문에>에 따르면, ‘hello’라는 표현은 전화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쓰이지 않던 신조어였다. 1940년대의 에티켓 관련 책에는 ‘hello’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조언이 담겨 있을 정도였으니, 아주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단어인 셈이다. 모든 편지의 서두와 끝맺음에 1000년이 넘도록 사용된 ‘Dear(친애하는)’와 ‘Sincerely(진심을 다해)’는 이메일의 등장과 더불어 ‘Hi’와 ‘Best’로 대체됐다. 우리가 더 이상 ‘귀하’를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 없듯, 언어의 변화 역시 막을 수 없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현재의 언어를 잘 정리해두는 일이 아닐지. 조만간 미래의 후손들에게는 신혜선의 <SNL> 신조어 에피소드가 ‘흥부가’나 ‘심청가’의 구절처럼 다가올지도 모르고, 그 영상 아래에는 ‘용비어천가’처럼 해제가 달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성지 글이 된다.
 
손혜영은 프리랜스 에디터로, <마리끌레르> <인스타일> 등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현재 남편, 딸과 함께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거주하고 있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손혜영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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