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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직장에서의 정신적 부하 증상들 6

작년 말 국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한민국 직장인 5명 중 1명은 지난 2주 안에 적어도 한 번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엠브레인퍼블릭, 2023.12). 그렇다면 5명 중 4명은 완벽한 직장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걸까? 80%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봐도 되는 걸까?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직장에서의 정신적 부하 증상들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권순재가 설명했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4.04.03
충분히 잘 자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데도 매일 아침 일어나 회사 갈 준비를 하는 게 너무 괴로워요.
정신에도 신체처럼 ‘체력’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마음이 편안하다’는 상태일 때 우리는 우리의 머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상상과는 달리, 우리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여기는 ‘편안하고’ ‘침착하고’ ‘의연한’ 상태는 머리가 쉬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여러 영역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뇌의 가장 앞부분인 전전두엽에서 우리의 뇌는 우울, 걱정, 불안 등 우리의 정신을 힘들게 하는 위기 신호들을 조절하고 우리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합니다. 삶의 여러 불합리와 유한성에 맞서서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게 해줍니다. 뇌간에서 시작되어 변연계를 거쳐 대뇌피질까지 구석구석 뻗어 있는 세로토닌 회로의 세로토닌 체계는 전전두엽이 이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시스템은 정신적 측면의 ‘근육’과도 같은 양상을 보입니다. 세로토닌과 전두엽 시스템의 활동성이 충분한 상태에서 우리는 모든 근심과 공포를 내려놓고 자신의 의지대로 하루를 보내지만, 이러한 전전두엽과 세로토닌의 시스템이 과도하게 사용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삶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버겁고, 벅차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삶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죠. 이럴 땐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의외로 그 해결법도 근육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쥐가 난 상태에 대한 해결법과 같습니다. 충분한 휴식, 영양 그리고 근육을 혹사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는 즐거운 활동들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간단한 논리를 반대로 알고 있기도 하더군요. ‘근성’ ‘열정’으로 버티면 결국 넘어서게 된다고요. 꼭 기억하세요. 아프면 쉬거나 병원에 가야 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면 환자입니다.


분명히 오늘 할 일을 다 끝냈는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요.
회사는 성과를 내고 그 결과에 스스로 책임 져야 하는 곳이기에, 우리는 회사에서 평소보다 긴장하고 특별히 조심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이미 다 꼼꼼히 마무리했음에도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충동에 휩싸이게 되죠. 보통은 한두 번 확인하고 안심할 수 있지만, 우리의 뇌가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소모한 상태라면 뇌가 필요한 정보와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런 경우 우리는 ‘강박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머릿속 ‘팩트’만으로는 불안감이 조절되지 않는 상태죠. 원치 않는 불안이 유발되고, 불안한 생각이 자꾸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침습적 사고’가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가 자주 반복될 경우 일부는 강박장애로 진행되어, 스스로는 원하지 않는데도 같은 것을 계속 재확인하거나 무언가를 청소하려 드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지금 머리로는 이미 일을 다 끝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다면 어쩌면 당신도 ‘강박사고’의 덫에 걸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스스로를 ‘꼼꼼하다’ ‘열정적이다’ 하며 합리화할 수도 있을 테고요. 의사로서 조언하자면, 보통 강박에서 비롯된 행동은 일시적으로 안심을 주고 일처리를 도와주는 측면이 있지만 크게 보면 결국 일을 지연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감정이 아니라 머리를 믿고 과감히 발걸음을 떼는 겁니다. 이성과 감정이 부딪힐 때는 부디 이성을 따르세요.

경력과 직급은 쌓여가는데, 무엇을 선택해도 확신이 없고 망설임만 느는 것 같아요.
애매함. 인간을 지치게 하는 가장 보편적인 상황 조건입니다. 우리는 불행하거나 우울한 사람들의 인생이 잘못된 선택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험한 길과 안정된 길 중에서 험한 길을, 안전으로 이어지는 길과 위험으로 이어지는 길 중에서 위험으로 이어지는 길을 골랐을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우울증 환자들의 인생 경로를 들어보면 이분들이 실제로 남들보다 딱히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이들은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아무 결정도 못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선택’이란 사실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A를 고르면 그 선택에 따르는 문제를 감수해야 하며, B를 고르면 A를 골라서 생긴 문제는 피할 수 있지만 이번엔 B 나름대로의 문제를 감수해야 하는, ‘차악을 고르는 선택’의 향연이 인생이죠. 즉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큰 부하를 줍니다.
어떤 사업가는 아주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모든 가능성을 다 따져봐도 무엇이 더 좋은지 판단을 내릴 수 없을 때는 결국 ‘동전 던지기’에 그 선택을 맡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운에 맡기는 결정 방식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했던 이유는 그가 한 번 결정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다음 선택의 시간까지 우직하게 밀고 나갔기 때문이라고 했죠. 이 사업가에게는 있고 당신에게는 없는 것은 뭘까요? 그것은 바로 ‘혹시라도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이를 받아들일 용기’입니다. 다른 말로, ‘마음의 여유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업무일엔 아무리 바빠도 쌩쌩하다가 연휴나 휴가만 시작되면 몸이 아파요.
코르티솔은 흔히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우리 몸의 호르몬 전체를 관장하는 시상하부와 그 아래의 뇌하수체 그리고 신장 위의 부신, 이렇게 세 축에 의하여 최종적으로는 부신에서 분비됩니다. 코르티솔이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실제로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코르티솔은 혈압을 유지하고, 저장된 에너지를 혈당으로 바꿔 혈당을 올리고,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억제하여 염증반응을 약화시킵니다.(이것을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이 다양한 질환에서 염증반응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스테로이드제’입니다.)
우리가 중요한 일을 앞두거나 그 일을 실제로 처리하느라 긴장을 할 때 우리는 정신이 맑아지고 배도 고프지 않으며 소변도 마렵지 않게 됩니다. 코르티솔 분비가 증진되어 나타나는 일반적인 반응이죠. 그러나 만약 이러한 코르티솔의 분비가 일시적이지 않고 만성적으로 이어질 경우, 우리의 면역기능은 저하를 일으키게 됩니다.
휴가처럼 한 번에 긴장을 확 푸는 경우 기존의 코르티솔 분비가 한 번에 낮아지면서 그동안 억제되었던 통증이나 염증이 한 번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코르티솔 분비가 올라가면 추후의 염증반응에 더 취약해지는 경우가 많죠. 중요한 프로젝트가 끝난 후 갑자기 사람이 몸살에 걸리거나, 사업을 다 정리하고 나서 쉬려고 했던 노년의 사업가가 갑자기 사망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만약 평소에는 잘 아프지도 않고 정력적으로 일을 하며 신체 자원을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휴가 때 앓아눕는 일이 많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실제로는 뒷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일에 신체 자원을 아낌없이 소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에 너무 긴장하고 무리해서 벼락치기를 하지 않고 여러 번에 나눠서 조금씩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부러 교감신경을 낮추기 위해 명상이나 요가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휴가를 병원에서 보내기 싫다면 평소에 긴장을 푸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출근길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엘리베이터를 탈 때 저도 모르게 자꾸 사고가 나는 상상을 하게 돼요.
앞의 설명에서 이어지지만 우리를 스트레스에 대항하게 하는 코르티솔은 아침 시간, 특히 깨어난 직후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분비됩니다. 즉 아침은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시간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일까요? 공황장애의 증상인 공황발작은 꼭 출근길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증의 가장 심각한 증상인 ‘죽음’에 대한 몰입도 주로 아침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요.
나는 사고가 나는 상상을 한다고만 했지, 죽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요? “인생은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사이의 갈등 상태”라고 한 저명한 정신분석가 클라인의 말대로 인간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기보다는 우리를 저 아래에서 끊임없이 잡아당기는 중력과도 같은 개념입니다. 처음에는 순간 죽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다음에는 먼저 죽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다가, 그다음에는 뭔가 사고가 나서 죽더라도 삶이 별로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죠. 그리고 출퇴근길에 자꾸 사고가 나는 상상을 하는 것은 비록 아주아주 초기지만 죽음에 대한 본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출퇴근길에 사고가 나는 상상을 자주 하는 것은 자살에 대해 느끼는 유혹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방문을 권유합니다. 부디 당신을 아래에서 잡아당기는 그 손길을, 전문가와 함께 뿌리치시길 바랍니다.

너무 지친 것 같아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도, 차일피일 미루고 사직서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직장에서의 고충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니, 저럴 힘이 있으면 그만두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뇌과학의 견지에서는 그런 사건들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뇌는 종종 고통에 적응하기 위해 일종의 감정성을 없애버립니다. 그래서인지 번아웃을 호소하는 환자들 중에서 상당수는 ‘괴로움’보다는 ‘무감각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죠. 일을 계속하면 죽을 것 같은데 관성을 깰 수 없으니 감정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정신의 대부분은 관성으로 이루어집니다. 의외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내리는 결정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어떤 유형의 행동을 하면 이러한 행동은 우리의 운동 영역과 뇌의 심부, 즉 동물적 본능을 담당하는 부분인 기저핵 부분에 새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계기가 없는 한 늘 자신이 해오던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설령 그것이 나에게 고통과 불행을 유발하더라도요. 낯선 천국보다 익숙한 지옥을 선택하는 뇌의 어리석은 특징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뭔가 바꾸어야 한다고 인지하면서도 뇌의 이러한 특성으로 바꿀 엄두를 내지 못할 때 우리의 뇌는 고통을 유발합니다.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등의 고통이 그것입니다. 이 정도의 고통은 있어야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통을 말하고,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며,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정신적 고통이란 우리 스스로에게 ‘이대로는 안 돼’ 혹은 ‘무언가 바뀌어야 해’라고 외치는 부르짖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울장애는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게 해 우리를 위기에서 구하기도 합니다. 공황발작으로 심장 검진을 받게 해 심장에 다가올 위기를 막기도 하죠.
그러니 부디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 바랍니다. 때로는 망설임으로, 때로는 불안으로, 우울로, 통증으로 마음은 우리에게 늘 외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라고 말이죠. 부디 그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길 바랍니다. 부디 지금 당신이 가장 사랑받고 싶고, 가장 잘 보이고 싶고, 가장 도와주고 싶은 바로 그 사람처럼, 스스로를 꼭 그렇게 돌보시길 바랍니다.

Credit

  • ILLUSTRATOR 우연식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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