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기디언 아파의 이미지가 확장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가나의 새로운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 기디언 아파를 만났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4.08
Nudes on the Coas t 202 4 oil and acrylic on canvas 120 x 100 cm ⓒ Gideon Appah , Courtesy of Pace Gall ery

Nudes on the Coas t 202 4 oil and acrylic on canvas 120 x 100 cm ⓒ Gideon Appah , Courtesy of Pace Gall ery

지난 3월 21일부터 페이스 서울에서 가나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회화 작가 기디언 아파(Gideon Appah)의 전시 <The Play of Thought>가 열리고 있다. 신화적이고, 주술적이며, 유토피아적이고, 추상적인 그의 구상 작품들을 보고,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당신의 그림에 대해 ‘유토피아적’이라고 표현한 글을 봤습니다. 그 표현도 물론 이해되고, 또 전 신화적이라고도 느꼈어요.
보통은 작업 안에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구현하려고 하지요. 제가 회화에서 구현하고 싶은 아름다움은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가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장소가 어디고, 어떤 시간에 속하는지 말할 수 없는 장면과 풍경들이죠. 그러니까, 그것들은 현실의 재현이 아닙니다. ‘유토피아적’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선명한 색상 때문에 나온 표현 같아요. 또 제 작품에는 내용을 뒤트는 제가 ‘트위스트’라 부르는 요소들이 들어가 있지요. 어떤 오브제나 인물 혹은 동작들에 대해 의미를 되묻게 되는 요소들이지요. 그건 색상일 수도, 수트 같은 외적인 코드일 수도 있지요. 혹은 헐벗은 모습들이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생각해 보니 그런 요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타임라인 밖의 이미지로 보이기도 하는데, ‘신화적’인 분위기는 아마도 그래서 나온 표현 같습니다.
'Will You Ever be Here Again?', 2023, oil and acrylic on canvas, 240x220 cm.

'Will You Ever be Here Again?', 2023, oil and acrylic on canvas, 240x220 cm.

좀 더 이야기적인 면으로 풀어보자면, ‘Remember Our Stars’ 등의 작품을 보면 작가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인물들의 표상이 등장하는 것 같다고 느꼈거든요. 당시의 문화가 작가의 바이블이고 그걸 그린 이 그림들은 그런 의미에서 신화적이라고 생각한 거죠.
아까 얘기한 것과 좀 겹치는 부분이 있네요. 제 그림에는 수트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들은 제가 가나의 1960~70년대 신문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며 시작한 시리즈에 나옵니다. 어떤 작품에는 그렇게 수트를 입은 사람들이 4~5명 이상 줄지어 등장하기도 하죠. 이런 외부의 자료에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서 저의 작품 세계에 그들을 도입하고 그들이 포함된 장면을 새롭게 창출하지요. 기자님이 언급한 ‘Remember Our Stars’ 역시 비슷한 맥락이지요. 그 그림의 배경에는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 작품에서 계속되어서 조금 더 정제된 형태가 지금의 작품들이죠.
제가 잘 모르는 아프리카의 누아르 영화 같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제 그림에는 가나 시네마에서 받은 영향들이 많이 드러나 있긴 하죠. 예를 들면 여기 이 'Roxy 2'(2020-21) 이라는 작품에 등장한 록시라는 간판은 가나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록시 극장의 것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1960~70년대 사진들에서 가져온 장면 중 하나죠. 제가 참고로 한 이 장면의 시기엔 가나 전역에 극장이 4개 밖에 없었고, 비디오테이프는 발명되기 전이었고, TV도 보급되기 전이었죠. 이런 록시 같은 극장이나 오페라 극장은 마치 요새 사람들이 쇼핑몰에 가서 시간을 보내듯 여가를 즐기는 공간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는 아직 이 극장의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 찾는 곳이 되었지만요.
'Nudes on the Coast', 2024, oil and acrylic on canvas, 120x100 cm.

'Nudes on the Coast', 2024, oil and acrylic on canvas, 120x100 cm.

어떤 인물이나 사물들은 꽤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또 어떤 인물이나 사물들은 매우 추상화된 형태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전경과 후경 같기도 하고 현실과 비현실 같기도 한 인상을 줍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종종 보이는 파란색으로 묘사된 인물들의 경우엔 특정한 인종이 아닌 보편적인 사람으로 묘사하고 싶었어요. 그런 인물들을 그릴 때는 터키시 블루, 로열 블루, 딥 로열 블루 등의 파란색을 사용합니다. 그것들로 톤의 차이를 만들어 내지요. 지금 전시 중인 페이스 서울의 3층에 있는 ‘The Surfer’라는 작품을 예로 들면, 이 그림은 현실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죠. 사실 제 작업실은 바다랑 가까워서 바다에 나가서 파도가 밀려오는 장면을 직접 보고 돌아와 그릴 수 있지요. 그러나 여기 이 그림에 있는 수평선과, 바다, 넘실거리는 파도, 그리고 서프보드는 제가 본 그대로가 아녜요. 이 그림에는 모래사장도 잘 보이지 않고, 인물이 비친 환영처럼 묘사되어 있죠. 제가 그리는 건 현실의 재현이 아니니까요.
어떤 점에서 당신의 작품들이 추상화되어 가고 있다고 느꼈던 이유입니다.
맞는 말이에요. 제가 작업에서 종종 시도하는 것 중 하나가 인물이나 사물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거든요.

당신의 작품 목록들과 지금 이곳에 전시된 신작들을 보면서 제 안에 남은 이미지가 당신의 첫 미국 전시 제목과 같더군요. 였지요.
사실 제목을 짓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정말 중요한 일일 것 같습니다. 제목을 짓기 위해서는 마치 제가 시인인 것처럼 생각해야 하고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제 작품의 내러티브에 맞아야 하지요. 흥미로운 단어들을 보면 휴대전화의 노트 앱에 적어두기도 하고, 가끔 생각나는 걸 문장으로 써두기도 하지요. 때로는 그런 노트에서 작품이 시작되기도 해요. 예를 들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문장을 써둔 적이 있는데 나중에 그 문장에서 출발하는 작품이 나왔지요.(아마도 ‘Will You Ever be Here Again?’인 것으로 보인다) 방금 언급된 전시는 2~3년 간의 작업을 모아 미국에서 연 첫 전시였죠. 당시에 제 작품들을 보면서 하나로 묶을 단어들을 연상하다가 착안한 제목이었어요.
'The Surfer', 202 3, oil on canvas, 240x300cm overall.

'The Surfer', 202 3, oil on canvas, 240x300cm overall.

이건 실은 학예사분들께 여쭤야 하는 질문이긴 합니다만, 아티스트의 자기 인식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가나의 미술계에는 지금 어떤 흐름이 있고, 그 흐름 속에서 당신은 어디에 위치하는지 궁금합니다.
확실히 지금 가나의 새로운 세대에겐 ‘흐름’이라고 부를 만한 게 있어요. 많은 아티스트들이 ‘페인팅’을 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초상이나 구상 작업이 많지요. 소재로는 흑인 혹은 흑인 문화 전반과 관련한 것들이 많고요. 물론 이 흐름 안에도 다양성은 존재합니다. 또 이들 중 다수가 다양한 이미지들을 자신의 안에서 합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영감의 근원들을 확장하는 작업이죠. 전 수도인 아크라의 중심이 아닌 외곽에 살고 있는데, 이들이 많이 다루는 소재는 이제 흑인인 인물 혹은 흑인 문화와 관련된 것들을 다루고 있고요. 물론 이 흐름 안에도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미지를 합치는 작업을 하고 있고 작품에 있어서 영감을 받는 근원들이 이 작가들 안에서도 좀 더 다양하게 확장되는 상황입니다. 전 수도인 아크라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살면서, 바다가 인접한 주변의 환경, 인물, 개인의 경험, 20세기 중반부의 여러 문화적 자산을 참조하며 작업하지요. 저 역시 이 새로운 세대에 속하는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 세대 안에서도 모두가 개별적으로 존재해요. 그 점이 중요합니다.

Credit

  • COURTESY OF PAC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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