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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이주빈이 다른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해보는 이유

이주빈은 매해, 매 계절 마음이 흔들린다고 했다. 지난 일에 대한 아쉬움이나 출발선에 섰다는 부담이야 어쩔 수 없는 일. 아무려나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단단하고도 무심한 투로 말했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4.04.23
화이트 셔츠, 화이트 팬츠, 블랙 힐 모두 페라가모.

화이트 셔츠, 화이트 팬츠, 블랙 힐 모두 페라가모.

스튜디오 들어오실 때 인사 소리 듣고 좀 놀랐어요.
그래요? 제가 어떻게 했더라, 그냥 ‘안녕하세요’ 하지 않았나요?
‘안녕하쎄용’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장난기 그득한데 또 한 10년 차 실장님 같은 나른함도 동시에 담긴 톤으로.
(웃음) 오늘 헤어 메이크업 스태프들이랑 친하거든요. 같이 장난도 많이 치는 분들이라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나왔나 봐요.
편하게 들려서 좋았어요. 인스타그램 최근 게시물에도 ‘매일매일이 즐겁다’고 되어 있던데, 요즘 기분이 좋은가 봐요.
제가 계절을 정말 많이 타요. 사계절을 다 타는데, 특히 봄이 오는 냄새가 나면 막 설레어서 집에 가만 못 있는 성격이에요. 등산을 가든 한강을 가든, 안 되면 하루 종일 걸어 다니기라도 해야 하죠. 혼자 온몸으로 따뜻한 바람이랑 햇살 받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요즘 또 날씨가 좋아지니까 행복하더라고요.
저는 또 작품이 한창 공개되고 있는 시즌이라 기분이 좋으신 걸까 했어요.
그 부분에서는 오히려 부담도 있죠. ‘이렇게 연기 잘하는 분들 사이에서 내가 맥을 끊어버렸으면 어떡하지’ 싶고. 저도 공개 당일까지 편집본을 못 봤으니까 모르잖아요. 제가 느끼는 것과 시청자들이 느끼는 것도 완전히 다를 수 있고요. 그런 부담감이나 두려움은 항상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날씨가 좋은 건 좋은 부분인 거죠.
<눈물의 여왕> 어떻게 보고 있어요?
너무 재밌게 보고 있어요. 제가 참여하지 않은 신이 많잖아요. 그런 장면들은 대본에서 읽은 게 실제 화면에 어떻게 표현됐을지가 너무 궁금해서 챙겨 보죠. 최근에 정말 재미있게 본 게, 수철이가 할아버지 생신 잔치에서 할아버지를 닮은 만숭이 캐릭터를 공개하면서 눈치 없이 혼자 신나 하는 신이 있었잖아요. 그거 보고 너무 웃기기도 하고 ‘진짜 쟤 너무 잘한다’ 싶어서 문자도 보냈어요. 너 최고라고.
곽동연 배우에게.
네. 그 친구는 에너지나 스킬이나 임하는 태도나, 정말 제가 여러모로 배우고 싶은 사람이에요.
그 신 기억나요. 보조 출연자가 엄청나게 많은 상황에서 거의 원맨쇼처럼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대목이었는데,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무섭지는 않아요? 왜 다른 사람의 연기를 보는 것도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커서 콘텐츠를 마음 편히 못 보는 배우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어떤 얘기인지 알듯해요. 배우라면 다들 어느 정도는 그런 게 있을 것 같은데, 직업병처럼 현장에서의 상황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저건 대본에 어떻게 써 있었을까, 여기서 편집점이 잘렸겠지, 이 컷이 이 캐릭터에게 돌아간 건 어떤 이유가 있을까…. 저도 제가 출연했든 출연하지 않았든 작품을 볼 때 온전히 즐기지 못할 때가 많긴 한데, 다행히 아직은 호기심과 재미가 더 큰 것 같아요.
호기심이라면 그런 마음도 포함되나요? ‘내가 저 역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마음?
저 사실 혼자서 막 따라 해보고 그래요.
다른 배우의 연기를 따라 해본다고요?
(웃음) 네. 그 사람의 연기가 너무 좋으면 저도 한번 해보는 거죠. ‘내가 해도 저런 톤이 나올까?’ 하고. 대부분 잘 안 되지만요.
예를 들면 어떤 거요?
최근에 쇼츠에서 우연히 <오로라 공주>의 한 장면을 봤는데, 전소민 선배님 연기가 매력적이더라고요. 재벌집 딸 캐릭터가 백화점에 가서 이것저것 달라고 하는 신이었는데, 평소 예능에서 보여주셨던 이미지랑 완전 딴판으로, 정말 매력적으로 연기하시는 거예요. 멋있어서 그 대사를 몇 번 따라 해봤죠. “이거랑요. 저것도요.” 저 사실 이것저것 많이 따라 해봐요. 남자 선배님들 대사도 목소리 깔고 해보고, 사투리 대사도 해보고, 욕하는 것도 괜히 한번 따라 해보고.(웃음)
비스코스 톱 펜디.

비스코스 톱 펜디.

<눈물의 여왕>에서 주빈 씨는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느낌이 있잖아요. 천다혜가 명문가 자제인 척 재벌집 며느리로 들어간 사기꾼 캐릭터이니까. 저는 2화까지 그런 반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제 회사 선배는 ‘그럴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어딘가 쎄했다고요. 얼마만큼 드러낼 의도를 갖고 연기를 하셨을지 궁금했어요.
1화에서는 전혀 드러나면 안 됐죠. 정말 단란한 가정의 아내처럼 보이려고 했고, 2화에서부터 조금씩 힌트를 보였던 것 같아요. 3화에서는 실제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는 신(수철이 화장실에 간 사이 위스키를 들이켜는 장면)이 있었고요. 그 장면 이후로는 저도 다혜의 원래 성격을 살짝살짝 넣었어요. 작가님이 워낙 그 구분을 잘 써주셨는데,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변해야 할까 고민을 좀 했던 거죠. 너무 무 자르듯이 ‘진짜 다혜’ ‘가짜 다혜’ 이렇게 할 수는 없고, 연결이 좀 자연스러워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게 쓰일지 안 쓰일지는 모르지만 컷이 전환되거나 할 때 일단 저 혼자 그런 느낌을 넣어본 거죠.
쓰일지 안 쓰일지는 모르지만.
네. 모르지만, 일단 최대한 재료를 많이 만들어놓아야 감독님이 나중에 필요할 때 쓸 수 있잖아요. 제가 스스로 뭔가 판단해 머릿속에서 편집하지 말고 그냥 보여줄 수 있는 거, 디렉팅해주시는 거, 소통이 된 걸 최대한 최선을 다해 해놓는 거죠. 그 후는 감독님과 편집 기사님들 몫이고요. 바꿔 말하면 연기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스태프들을 믿고 기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도 그렇게 작은 디테일에까지 최선을 다했는데 반영되지 않으면 아쉬울 때가 있지 않나요? 어떤 흐름을 생각하며 연기를 했는데 흐름의 한 부분이 빠졌을 때 스스로 어색해 보이는 부분도 있을 테고요.
어쩔 수 없죠. 저는 제 캐릭터를 보지만 감독님은 전체적인 흐름과 밸런스를 보는 거잖아요. 뭐, 신인 시절에는 그러기도 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신이 있는데 그게 안 들어가면 너무 속상해하고.(웃음)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럴 만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다 이유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구석구석까지 최대한 최선을 다하지만 어떤 결과가 돌아오든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코워커(동료)네요.
일단은 그런 부분 하나하나를 너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제가 연기를 못 할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현장에서 불편한 부분이 생겨도 좀 참고 넘기는 편일까요?
글쎄요. 제가 좀 무던한 편이긴 해요. 처음으로 촬영 현장이라는 걸 겪어본 게 스물아홉, 서른 살 때였거든요. 나이도 있고 사회생활도 좀 해본 상태였으니까 뭔가 불편한 일이 생겨도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면서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럴 수도 있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다 이유가 있겠지’.
20대 때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네. 왜 어릴 때는 잘 모르잖아요. 내가 불편하고 싫은 게 먼저고, 불만도 많고. 저는 어릴 때부터 혼자 돈을 벌면서 살다 보니까 그래도 그런 관념이 좀 잡힌 게 아닐까 하는 거죠. 시간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거고, 만약 스케줄에 차질이 있으면 무조건 며칠 전에는 보고를 해야 하고. 알바 하나를 해도 제가 오픈조인데 그걸 못 하게 되면 몇 시간이라도 빨리 말해야 대신 할 애를 구할 수가 있으니까요. 모든 게 원래 그렇잖아요.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는 법이나 일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그나마 그런 경험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닐까 해요. 저희 회사에서도 저더러 ‘손이 안 간다’ ‘독립적이다’ ‘알아서 잘한다’ 그런 말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생각한 거예요. 제가 그렇게 살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물론 운 좋게도 지금껏 좋은 환경, 좋은 분들만 만났기 때문에 제가 무던할 수 있었던 부분도 클 테고요. 지금껏 겪은 현장들이 스태프, 감독님 전부 좋은 분들이셨고 저한테 잘해주셨거든요.
<멜로가 체질>의 상수처럼 윽박지르고 현장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드는 감독은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는 거군요.
예전에는 그런 분들도 있었다고 선배님들께 얘기를 듣긴 했죠. 옛날 현장은 정말 심했다고요. 그런 얘기를 듣다 보면 저는 운이 너무 좋은 거예요. 물론 때로는 누군가가 악의 없이 한 얘기에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그 감정을 오래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계속 곱씹어봐야 나만 손해잖아요.

Credit

  • PHOTOGRAPHER 최문혁
  • STYLIST 강이슬
  • HAIR 다정
  • MAKEUP 아라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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