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YLE
part 2. 유태오의 멜랑콜리아
유태오의 눈빛에서 우리가 늘 궁금해하던 것의 정체가 멜랑콜리였다는 걸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고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직접 만나, 태오 안에서 멜랑콜리가 자리 잡은 오랜 시간에 대해 물었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핀스트라이프 울 펠트 재킷, 파유 셔츠, 핀스트라이프 울 펠트 팬츠, 실크 포켓 스퀘어 모두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레오퍼드 실크 태피터 트렌치코트, 그랑 드 뿌드르 팬츠, 페이턴트 레더 부츠, 실크 모슬린 플리츠 스카프 모두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새틴 톱, 플란넬 팬츠 모두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그러고 보니 감독도 하고 출연도 한 작품 <로그인 벨지움>에서 멜랑콜리에 대해 얘기하면서 왕가위의 <중경삼림>,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 차이밍량의 <청소년 나타>, 장윤현의 <접속> 등의 영화 얘기를 하지요. 어떤 느낌일까요?
아주 신기한 우연이 있어요. 제가 그 영화들을 언급한 건 1980~1990년대에 필름으로 찍은 멜랑콜리한 영화들을 나열하면서였거든요. ‘이제 더는 필름으로 영화를 찍지 않으니 멜랑콜리가 사라진 것 같다’라고 말하죠. 그런데 <패스트 라이브즈>를 35mm 필름으로 찍었어요. 그 영화에 나온 모든 배우 중 배우 생활 동안 필름으로 작품을 찍어본 유일한 배우가 저였어요. 전 데뷔작인 학생 단편영화를 2003년도에 16mm, 슈퍼 식스틴 필름으로 찍었거든요. 20년이 지난 뒤에 밀레니얼 세대인 셀린 송 감독이 필름이라는 과거의 테크놀로지에 매력을 느꼈고, 그 작품을 위해 저를 캐스팅했다는 점이 너무도 신기해요. 전 멜랑콜리 안에 꽤나 오래 있었거든요. 제가 멜랑콜리를 정의해보자면 그건 ‘슬픔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지금 유태오의 눈빛에서 느끼는 바로 그 느낌이네요.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에 와서는 멜랑콜리에 관해 언급할 때면 조심스러워요. 멜랑콜리를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여기는 것 같아서요. 제겐 반대로 멜랑콜리한 상태는 꽤나 긍정적인 감정이거든요. 제가 서른여섯 살이 갓 넘었을 때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감정이 바닥까지 갔을 때라 멜랑콜리한 감정이 제겐 오히려 ‘업’된 상태였던 거죠. 정말 바닥은 아예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거든요. 보통 사람들에겐 멜랑콜리가 다운이지만, 제겐 업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때는 멜랑콜리한 상태에 머물기 위해 애를 썼어요. 그 상태에 하도 오래 있다 보니 그 감성이 제게 아예 붙어 있게 된 거죠.
그게 연기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군요.
맞아요. 그런데 아주 쉽게 나오지는 않아요. 자신이 멜랑콜리한 상태가 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멜랑콜리한 감정을 느끼도록 연기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거든요. 전 그 후자를 할 수 있어요. 그게 제 장점 같아요.
알아요. 너무 알 것 같아요. 그 영화에서 해성이의 모든 눈빛이 그랬어요. 사람을 멜랑콜리하게 만드는 슬프면서도 강아지 같은 그 눈빛이 기억나요.
(웃음) 제가 수를 쓴 거죠. 그 캐릭터를 위해서, 그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서요. 전 해성을 그렇게 연기하는 게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 안에서 보편적으로 이해받을 수 있는 해성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노라(그레이스 리 분)랑 해성이 뉴욕의 공원에서 만나는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해성의 역할을 위해 참고한 배우가 둘 있어요. 양조위와 존 카제일이에요. 특히 카제일은 대배우인 메릴 스트립이 사랑에 빠진 연기자, 알 파치노가 ‘그에게서 가장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한 연기자죠. 제겐 존 카제일의 여러 인터뷰를 찾아서 만든 존 카제일 파일이 있는데, 특히 대사가 없는 신에서 뭔가로 화면을 채워야 할 때면 그 파일에 있는 존 카제일의 방식을 참고하고 있어요. 바로 그 신이 존 카제일의 방법으로 연기한 장면이에요. 그 장면에서 전 노라를 기다리며 멋쩍게 서서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죠. 그런데 거기엔 연못이 없어요. 땅바닥을 보고 한 연기였어요.
헉, 정말요? 제 기억대로라면 가방 스트랩에 두 손을 올리고 있다가 연못을 보며 머리카락을 가다듬었던 것 같은데요.
얼추 맞을 거예요. 불안과 기대로 가득 찬 상태의 해성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을 엄청 했어요. 카메라 감독님께 물었더니 발바닥 아래까지는 안 나온다고 해서 그 순간 ‘그럼 여기에 연못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한 거죠. 감독님도 일부러 저한테 살짝 옷이 잘 안 맞는 느낌을 주려고 했대요. 그래서 그 장면에서 저는 한 치수 작은 옷을 입고 있어요. 그런 디테일들이 맞물려서 그 장면의 분위기가 완성되는 거죠.
해외 이주 경험이 많은데, 혹시 <패스트 라이브즈>와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인연이라는 맥락에선 없어요. 그런데 제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요소들 때문에 제가 제 삶을 바꾸지 못하는 현실, 그럼에도 그걸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이를 악물고 칼을 갈아야 했던 경험 같은 건 제 안에 쌓여 있죠. 그런 현실을 극복하려다 보니 노력형 인간이 되어버렸고요.
<로그 인 벨지움>을 보면서 ‘나는 내가 어센틱(authentic)하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엔 이해가 안 됐어요. 표면적인 것만 보면 ‘유태오보다 어센틱한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할 만하잖아요. 그런데 방금 말한 맥락에서 생각하니 이해가 되네요.
지금 기자님이랑 저랑 ‘어센틱’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아예 다른 것 같아요.
전 지금 ‘단 하나뿐인’이라는 의미로 어센틱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유태오 같은 사람은 유태오뿐이야’라는 의미니까 ‘진본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남들이 보기에 유태오 같은 사람은 유태오라는 의미니까, 관계성 안에서 나오는 어센틱인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어센틱’하다는 의미는 내가 표현하는 나와 진짜 내가 얼마나 같은지에 대한 얘기예요.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얼마나 솔직하게 나를 표현하고 있는가의 문제인 거죠.
뭐랄까 비슷한데, ‘자기 진정성’ 같은 거군요?
여기서도 동서양적인 사고의 맥락이 부딪히는 듯하네요. 제가 혼자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뭐 하나가 좋아도, ‘이 취향은 내가 정말로 좋아해서 생긴 걸까 아니면 사회가 교육과 환경을 통해 나에게 만들어준 취향일까’를 생각하죠.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지를 계속 탐구하고 있어요.
지난번 인터뷰 때 우리 ‘소년미’에 대해 한참 얘기했잖아요. 전 그때 유태오의 눈매와 말투가 소년미의 핵심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런 생각을 아직 하고 있다는 그 마음의 상태가 소년미의 근원인 것 같아요. 솔직히 그 나이대의 다른 남자들은 온통 돈과 골프 얘기뿐일 텐데, 태오 씨는 아직도 연기론과 자아 그리고 진본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건 제 방식대로 저를 발전시키는 방법일 뿐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그것에 대해 평가하긴 힘들어요.
그렇겠죠. 어쨌든 연기 20년 차가 가까워져 오는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도 놀라워요. 정말 너무도 귀한 사람이네요.
전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다 드물죠 뭐. 모두가 다 유니크하잖아요.
이왕 나온 김에, 좀 현학적인 질문을 하나 더 해보죠. 사람은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 칼 융이 만든 ‘원형’에 대해 공부를 좀 했어요. 이게 ‘프로토타입’과는 달리 칼 융이 무의식에 잠재하는 구조를 분류해준 걸 말해요. 그런데 거기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정확하진 않지만 “일상에서 착한 사람은 진정으로 선한 게 아니라 약한 것이다”라는 말이었죠. 제게도 분명 그런 이면이 있어요. 그런 면을 심리학에서는 ‘섀도’, 정신의 맹점, 자아의 그림자라고 표현하죠. 꽤 오랜 시간 동안 제 섀도를 알기 위해 엄청나게 고민하고 글을 썼죠. 그래서 제 악한 모습들을 발견했고, 그 악한 모습을 인식하면서 그런 욕망을 참아내는 게 진정 선한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괴물이 아닌 척하는 게 선한 게 아니라 자신이 괴물이라는 걸 인식하고 컨트롤하는 게 더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거죠. 전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아요. 어릴 때 제 안에 있는 악한 모습을 못 본 척하고 선한 척하다가 그 본성이 꼬여서 나오는 바람에 탈을 겪은 적이 있거든요. 주변인들과 오해가 생기고 배우자랑 싸우고 그런 문제들이 제 추한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인정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 같아요.
아이고… 제가 해본 인터뷰 중에 가장 멜랑콜리하네요. 방금 살짝 울컥했어요. 지금 만약 <로그인 벨지움>에서 싫어한다고 얘기했던 과거의 자신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줄 것 같아요?
그냥 열심히 살라고 얘기할 것 같아요. 감싸주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게 어린 제 성격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고생이 결국 사람을 단단하게 하니까요.
니키 씨는 이런 태오 씨를 다 이해하나요?
퍼센테이지로 따지자면 한 99% 정도 저를 이해해요. 특히 제 감정을 정말 잘 이해해요. 문자 그대로 이 세상에서 저를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에요.
엄청나네요. 99%라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또 대단한 힘이죠.
아주 든든해요. 애초부터 저하고 너무도 잘 맞는 사람을 만난 게 행운이라고 해야겠죠.
뜬금없지만, 태오 씨는 언제 아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트는 상실할 때 필요해요. 모든 게 충만한 사람에게 예술은 필요 없을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방금 말한 것처럼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을 잃었을 때 아트가 필요해요. 그러니까 아트는 생존을 위해서 어쩌면 필수적인 거예요. 우리가 상실했을 때 예술이 아니면 누가 우리를 위로해줄 수 있을까요?

실크 태피터 롱 코트, 그랑 드 뿌드르 턱시도 재킷, 파유 팬츠, 페이턴트 레더 부츠 모두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울 오버사이즈 재킷, 레오퍼드 실크 태피터 셔츠, 파유 팬츠 모두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Credit
- PHOTOGRAPHER 장덕화
- STYLIST 임혜림
- HAIR 김건형
- MAKEUP 엄지
- SET STYLIST 유여정
- ASSISTANT 송정현
- 신동주
- ART DESIGNER 김대섭
CELEBRITY
#리노, #이진욱, #정채연, #박보검, #추영우, #아이딧, #비아이, #키스오브라이프, #나띠, #하늘, #옥택연, #서현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에스콰이어의 최신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