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새벽 5시. 서울 김포공항에 있는 제주 항공의 체크인 카운터 앞은 온몸이 까만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날렵한 몸매, 탄탄한 근육, 적당한 구릿빛의 피부를 지닌 이 건강한 사람들은 나이키의 스우시 마크가 새겨진 제주 항공의 항공기를 타고 제주로 향했다. 항공기에만 스우시 마크가 새겨져 있던 게 아니다. 김포에서 제주로 가는 동안 구릿빛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전광판과 빌보드에는 나이키의 로고가 빛나고 있었다. ‘승리는 쉽게 오지 않는다(Winning Isn’t Comfortable)’라는 문구와 함께.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면, 나이키가 역대 최대 규모의 브랜드 단독 러닝 대회를 제주에서 벌여서 생겨난 사건이다. 지난 9월 초 나이키는 4명으로 이뤄진 720개 팀 2천8백8십명의 신청을 받아 이 중 남성부와 여성부 각각 35개 팀을 선정했다. 팀을 선정하는 예선 과정 자체가 러닝 크루들 사이에서 엄청난 이슈가 됐었다. 서울 이촌 한강 지구에서 열린 예선전에선 한 팀 4명이 각 800m씩을 이어 달리는 총 3천2백m 계주 기록으로 상위 남녀 70개 팀을 선정했는데, 당시 서울의 내로라하는 전통의 상위권 크루들 중에서도 떨어진 팀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정된 70개 팀에 10개의 초대팀까지 총 80개 팀 320명의 러너들이 오로지 달리기만을 위해 제주로 이동하는 대이동의 광경이 드디어 펼쳐진 것이다.
이들이 팀별로 이어 달릴 코스는 요새 가장 핫하다는 제주 대표 커피 하우스 카멜 커피를 기점으로 하는 왕복 11.1km와 왕복 9.4km의 구간을 총 두 번씩 도는 총 41km의 해변도로. 새벽 5시의 러너들은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벌써 해변도로를 달릴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하며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 멋진 경기에 초대된 미디어는 남녀 각각 1팀씩 총 8명. <에스콰이어> 역시 미디어 남성팀 중 1인으로 초대받아 이 역대급의 경기에 참여했다. 2시 30분에 시작된 경기는 한 팀 4명의 러너가 어깨에 띠를 두르고 자신의 코스를 완주한 뒤 다음 편 주자에게 건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동안 각종 마라톤 대회에는 자주 참가해 봤지만, 4명의 주자가 띠를 건네주는 방식의 장거리 계주대회는 처음이네요.” 선수 대기 존에서 옆에 있던 한 참가자가 말했다. 어깨띠를 전달하는 장거리 계주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하코네의 역전 마라톤이 유명하다. 육상부 학생들이 도쿄에서 하코네까지 271.1km에 달하는 거리를 달리며 펼치는 청춘의 드라마를 한국의 일반인 러너들과 그에 맞는 버전으로 선보인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4명의 기자로 이루어진 36번째 팀 ‘미디어 M’의 두 번째 주자로 우리 팀의 목표는 컷오프 시간인 4시간 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전국의 상위 랭커들이 치른 예선전을 통과한 70개의 순위 경쟁팀들과는 달리 우리 팀은 기록 경쟁보다 나이키 런 제주의 에너지를 직접 느끼고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참석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안전상의 이유로 시야가 어두워지고 차량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6시 30분에 ‘컷오프’를 발동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컷오프가 발동되면 칼같이 ‘수거 버스’가 뛰고 있는 러너들을 태워서 헤드쿼터로 돌아온다는 얘기에 나는 1번 주자에게 어깨띠를 건네받은 순간부터 죽을힘을 다했다. ‘수거 러너팀’이란 불명예만은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장거리 이어달리기의 특성상 자칫 길게 느껴질 수 있는 대기 시간을 지루할 틈 없이 가득 채워 준 나이키 측의 배려였다. DJ 소울스케이프의 크루인 360사운드의 대표 디제이들이 멋진 음악으로 카멜 커피 앞 코난 해변의 경관을 가득 채웠고, 점심에는 비틀즈 타코가, 마지막 주자가 달리는 저녁 5시께부터는 유용욱 바베큐 연구소의 바베큐 플래터가 서브 됐다.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팀 포토 서비스’, 코난 해변에서 동료 러너들과 ‘해변 스트레칭’, 레이스 종료 후 지친 몸을 풀기 위한 ‘스포츠 마사지 서비스’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됐다.
레이스에선 남녀 각 상위 5개 팀과 특별상 1명을 더한 41명의 러너에게 ‘발리 왕복 항공권’ 등의 부상이 수여됐다. 남녀 10개팀 4명에 1명의 특별상을 더해 41명을 맞춘 것은 40년 전통의 나이키 대표 러닝 슈즈 ‘페가수스’ 시리즈의 최신 버전인 ‘페가수스 41’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페가수스 41’은 나이키의 특허 기술인 에어 줌과 반응성이 가장 뛰어난 쿠셔닝인 리액트X 폼을 결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리액트 X 폼을 미드솔에 반영하여, 러너가 지면을 밟을 때 약 13퍼센트 가량의 에너지 리턴을 선사해 뒤꿈치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여준다. 이날 남자부 우승은 2시간 29분 25초 기록의 ‘목동 마라톤 교실 S’가 차지했으며, 여성팀 우승은 3시간 7분 33초의 ‘Why not’이 차지했다. 여성팀 ‘Why not’은 3번 주자까지 2위로 달리다 마지막 주자에서 1위로 올라서 역전의 모멘트를 선사해 갠트리를 가득 채운 다른 러너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냈다. 그러나 이날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것은 특별상을 수상한 러너였다. 특별상은 나이키 러닝 클럽 어플리케이션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뛴 러너에게 수여됐는데, 수상자의 러닝 시간은 아직 꽉 차지 않는 2024년에만 4008시간이었다. 참고로 우리는 수거되지 않았다. 내가 뛴 ‘미디어 M’의 기록은 3시간 30분 21초로 평균 페이스는 자그마치 5분 7초! 그러나 그 기록이 1번 주자인 지큐의 이재위 디렉터가 킬로미터당 4분 00초의 페이스로 11.1km를 44분 28초 만에 주파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나만의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