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시대
다이아몬드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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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미약자 혹은 다수의 다이아몬드 반지나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의를 요하는 글이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스릴러물같이 느껴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새로운 산업이 얼마나 빨리 성장하고, 스스로를 먹어 치우며, 어쩌면 붕괴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줄 것이다.
‘다이아몬드 레시피’를 소개한다. 먼저 탄소로 이루어진 작은 조각(씨앗)을 가져다 체임버에 넣는다. 탄소 공급원을 포함해 다양한 양의 가스를 추가한다. 고온을 가열해 플라스마가 생성되면, 가스가 분해되며 탄소 분자가 씨앗에 달라붙는다. 성장이 시작된 것이다. 위와 같은 과정을 ‘CVD(Chemical Vapour Deposition)’라는 장치에서 몇 주에 걸쳐 반복한다. 가스를 제거한 후, 크기가 커진 씨앗을 체임버에서 꺼내 깨뜨린다. 축하한다! 당신은 지금 막 자연에서 수십억 년이 걸리는 일을 몇 주 만에 해냈다.
이러한 제조 기술은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1890년대에 앙리 무아상이 다이아몬드 만들기를 시도한 이래, 한 세기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이론과 시도가 있었다. 다이아몬드를 직접 만들겠다는 발상이 다시 생명을 얻은 건 퇴역 미군 장교인 카터 클라크가 새로운 전자 보안장치를 구입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방문했을 때였다. 모스크바에 있던 보리스 파이겔슨 박사는 클라크 장군에게 소련의 우주 프로젝트를 위해 개발된 세탁 건조기 정도 크기의 장치 설계도를 보여주었다. 그게 바로 위에서 설명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장치의 시작이다. 클라크 장군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즉시 장치 3개를 사서 미국으로 가져왔고, 이후 실험실 다이아몬드 시장의 개척자가 된 ‘제메시스 컬처드 다이아몬드’를 설립했다.
개척자들은 기존 시장에 혼란을 가져왔다. 어찌 보면 종국적으로 시장을 파괴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이아몬드의 오랜 명성은 그 희귀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묻혀 있을 법한 장소를 오랫동안 수색한 후 막대한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채굴하고 나서야 겨우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알고 있는 가장 단단한 물질이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에서 오는 신비로움도 그 명성에 한몫한다.
이런 점들 때문에,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게 된 상황은 다이아몬드의 공급량을 엄격하게 통제해 온 기존 다이아몬드산업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당연하게도 기존 업계는 실험실에서 만든 다이아몬드를 전혀 반기지 않았다. 그들은 실험실 다이아몬드를 ‘합성 다이아몬드’로 불렀다. 법원 판례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험실 다이아몬드는 큐빅이나 유리가 아니며 땅에서 캐낸 것들과 화학적으로 동일한데도 말이다. 실제로 실험실 다이아몬드와 천연 다이아몬드의 차이는 땅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밖에 없다.
4년 전까지만 해도 실험실 다이아몬드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금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실험실 다이아몬드는 이제 빠른 속도로 주류가 됐습니다.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어요.” 보석학 교육을 장려하는 단체인 국제보석협회 회장 리사 로젠의 말이다. “천연 다이아몬드 쪽 사람들 또는 채굴 다이아몬드 쪽 사람들은, 소비자가 실험실 다이아몬드가 진짜 다이아몬드인지 의구심을 품게 하고 있어요. 그래도 실험실 다이아몬드가 훨씬 더 싼 가격에 퍼지고 있는 현실을 막을 순 없을 겁니다.”
10년 전엔 실험실 다이아몬드는 땅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에 비해 10% 정도 저렴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90% 가까이 더 싸다. 미국의 실험실 배양 보석 회사 채텀의 대표 톰 채텀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기술은 50년 이상 연구되어 왔으며, 품질 좋은 실험실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비밀 기술이 쓰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기계를 사서 스위치만 켜면 되는 일이 아니에요. 수많은 물리학과 화학 지식 그리고 세밀한 절차가 있어야만 결과물이 제대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도 양질의 실험실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제조사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죠.”

중국과 인도의 대량 제조업체들이 국가보조금을 등에 업고 온라인에서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실험실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더욱 떨어졌다. 2023년에만 20%가량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가격에서 50% 정도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로 인해 미국에 있는 여러 실험실 다이아몬드 시장을 개척한 선도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통합하거나, 극적인 전환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채텀은 소수의 대형 제조업체들만 남을 때까지 이러한 과정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다시 말해, 강력한 소수 과점 기업들이 오랫동안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을 지배해 온 것처럼, 실험실 다이아몬드 시장도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실 다이아몬드 기업 WD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 이사 브리트니 루이스는 채굴 다이아몬드 업체들도 이 분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충동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채굴 다이아몬드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인 드비어스는 자체 실험실 다이아몬드 사업인 라이트박스를 론칭했다가 최근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주얼리업계 소매업체들은 한편으로 가격 하락이 수익률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인위적으로 실험실 다이아몬드 가격을 높게 형성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다이아몬드를 사려는 소비자에게 이러한 현상은 무서운 일이 아니다. 좋은 품질과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갑자기 그 어느 때보다 저렴해졌다. 오죽하면 ‘다이아몬드의 민주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커다란 보석으로 프러포즈를 하는 건 부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언뜻 듣기에는 좋은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채텀이 말했듯이,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모든 신화는 변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란 특별하고, 희귀하고, 엄청나게 비싼 것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게 다이아몬드가 가진 매력의 중요 요소가 아니었던가?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친한 친구’라던 메릴린 먼로의 노래부터, 맨손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는 슈퍼맨, 그리고 랩 문화와 보석을 걸치는 문화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다이아몬드에 부여해 온 여러 환상 중 과연 몇 가지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아야 하는 걸까?
업계 질서 확립을 위해 실험실 다이아몬드 제조업체 협의회 설립을 준비 중인 채텀은, 사실 채굴된 다이아몬드가 우리가 아는 것만큼 희귀하진 않다고 지적한다. 개수로만 따지면 에메랄드나 루비처럼 색깔이 있는 보석이 더 희귀하다. 채텀의 아버지 캐럴은 1934년에 다이아몬드 초기 제조 공정 중 하나를 개발한 인물이다.
다이아몬드와 낭만적인 사랑의 연관성, 그리고 다이아몬드를 약혼 반지에 사용하는 전통은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주입한 마케팅 캠페인의 산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문구는 1948년, 드비어스가 선보인 광고 문구다. 하지만 요즘 약혼 반지의 절반은 실험실 다이아몬드를 사용한다.
채텀은 사람들이 광산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이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한 변화라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채굴된 수십억 캐럿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존재할 겁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사고방식의 충돌입니다. 다이아몬드가 너무나 특별해서 큰돈을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람과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고 착용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대중 사이의 충돌 말이죠. 실용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한다면 다이아몬드의 미래는 실험실에 있을 겁니다.”
더 깨끗하고, 더 친환경적인 다이아몬드를 사기 위해 실험실 다이아몬드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공정에도 에너지가 사용되므로 환경적으로 완전히 건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험실 다이아몬드는 적어도 일부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자행되는 위험한 노동환경, 낮은 임금, 아동학대 등과 같은 인적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또 실험실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는 돈은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이 붙은 채굴 다이아몬드처럼 아프리카 전역의 테러나 전쟁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지도 않는다.
출처를 알 수 있고 추적이 가능하다는 것은 한동안 초기 실험실 다이아몬드 제품의 주요 판매 포인트였다. 하지만 실험실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현저하게 낮아진 상황에서 업체들은 지속가능성 기준에 대한 제3자의 인증을 받을 여력이 없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일본 기업 미키모토가 천연 심해 진주의 극단적이고 진정한 희소성에 대응하여 양식 진주라 불리는 것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한 사례 말이다. 미키모토의 소비자들은 진주의 진위를 의심하기보다는 진주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여겼다.
지난 몇 년 동안 천연 다이아몬드와 실험실 다이아몬드 세계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2018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가 실험실에서 만든 것과 땅에서 채굴한 것 모두 다이아몬드라는 판결을 내린 일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적절한 실험실 장비가 있다면 두 종류의 다이아몬드를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런던의 채굴 다이아몬드 거래업자 닐 더트슨은 그런 장비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험실 다이아몬드를 채굴 다이아몬드라고 속이는 사기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들은 채굴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이국적인 느낌과 신비로움이 어쩌면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더트슨은 “사람들이 합성 다이아몬드를 원하는 이유를 이해합니다”라고 말하며 “가성비가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합성 다이아몬드 시장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 업체들의 물량 공세로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어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이 도래할 것으로 예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시장의 미래는 이미 실험실 다이아몬드의 장점을 맛본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시 채굴 다이아몬드를 어필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사치품들은 대부분 인위적인 물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소비자가 천연이라는 요소에 대해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을 활용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십억 년이라는 시간에 담긴 우주적인 낭만을 강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쩌면 이 모든 시도를 하기에 이미 너무 늦었을 수도 있다.
더트슨은 채굴 다이아몬드의 매력은 궁극적으로는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신비함과 경이로움, 모험심을 전달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첫 다이아몬드의 시작을 실험실 다이아몬드로 하더라도 종국에는 진정성이 담긴 채굴 다이아몬드로 귀결될 것이라는 게 그의 논리 혹은 희망 사항이다.
“다이아몬드는 사치품입니다. 사치품은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긴 희소한 물건을 소유하면서 생기는 즐거운 감정을 소비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삶을 이어 나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뉴욕에서 다이아몬드업계를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폴 짐니스키의 말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를 살 수 있더라도 여전히 천연 다이아몬드를 원합니다. 실험실 다이아몬드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위해선 가격이 아닌 다른 매력을 내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독점적인 색상이나 형태를 만드는 식으로요.”
그렇다고 채굴 다이아몬드 업계가 안전하다는 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채굴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로 채굴 다이아몬드 1캐럿의 가격은 한 해 전에 비해 12% 하락했다. 이로 인해 주요 공급업체들은 가격을 안정시키고자 공급을 줄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지하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지 않는 한 천연 다이아몬드 채굴 사업이 향후 40년 내에 수익성을 상실할 것으로 전망한다. 뒤집어 말하면 천연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진정으로 희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쯤에는 실험실 다이아몬드가 다양한 품종을 등장시켜 다이아몬드라는 개념이 바뀌어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어쩌면 우리는 엉뚱한 방향의 논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WD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의 브리트니 루이스에 따르면, 실험실 다이아몬드의 미래에서 진짜 중요한 부분은 장식용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절삭이나 의료 목적으로 쓰이는 데에 있다. 또한 다이아몬드는 컴퓨터 칩에서 반도체로 쓰이는 실리콘을 대체하는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더 높은 전압과 온도를 견딜 수 있고 열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전력 소비를 낮출 수 있는 덕이다.
다이아몬드를 통해 성능이 개량된 칩들은 AI를 비롯한 다른 21세기 기술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양자 컴퓨터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험실 다이아몬드 업계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실제로 WD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는 실험실 다이아몬드가 과다한 경쟁과 가격 급락으로 상품성을 잃자 IT 기술 관련 전문가를 영입하고 연구실을 설립해 미국 국방부의 보조금을 획득해 사업을 운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몇 년 동안이나 주얼리업계와 소비자들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하버드의 물리학과 교수들과 이야기를 해야 할 처지입니다.” 루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아름다운 보석을 좋아하지만, 실험실 다이아몬드를 보는 새로운 방식이 미래에 얼마나 혁명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에는 실험실 다이아몬드의 존재가 연금술처럼 꿈만 같았다는 걸 상기하면서요. 실험실 다이아몬드의 잠재력은 이제 막 싹을 틔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손가락 위가 아니라 컴퓨터 속일지라도 다이아몬드는 앞으로도 값비싼 반짝이는 존재일 것이다. ●
Credit
- WRITER JOSH SIMS
- PHOTO 게티이미지스코리아
- TRANSLATOR 박수진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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