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몸을 잘라내고 있다
|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우리가 우리의 가족과 선한 이웃을 열렬히 사랑하는 만큼 악인을 잘라내고, 배척하면 우리는 순수해질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철저히 추락시키면 순백의 천사들의 세상이 올까? 얼마 전에도 또 그전에도, 우리가 즐겨 부르던 노래의 가수가, 우리가 좋아했던 배우가, 텔레비전을 틀면 나왔던 방송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이지만, 그들이 견뎌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사회적 타살에 가깝다. 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종합병원에서 일할 때 우측 두정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환자를 본 적이 있다. 우측 두정엽에 손상을 입은 환자는 자신의 좌측 육체를 인지하지 못하곤 한다. 눈으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도저히 나의 일부처럼 인식되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는 걸을 때마다 다른 곳에 부딪혀 귀찮기 짝이 없는 자신의 왼쪽을 ‘잘라내고 싶어 했다.’
나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범죄에 대한 법적 처벌 수위가 낮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엄벌주의’에 가까운 형법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범죄자 혹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인물들을 향해 더욱 가혹한 사회적 형벌마저 가한다. 최근 몇 년간 나타나는 이와 관련된 현상들을 살펴보면, 이 현상이 단순한 감정적 반응을 넘어섬을 알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포털 사이트, 심지어 방송사 게시판까지 다양한 플랫폼에서 드러나는 집단적 배척은 마치 누군가 설계라도 한 듯 체계적이다. 다수의 개인이 마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조직처럼 특정 좌표로 몰려가 악성 댓글을 달거나, 특정 개인의 신상 정보를 퍼뜨린다. 형법적 처벌보다 이 불특정 다수의 2차 처벌이 더 가혹해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언론과 미디어는 이런 현상을 더욱 증폭시키는 데 일조한다. 최근 몇 년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유명 연예인들의 사례를 돌이켜보면, 그들을 괴롭힌 가장 큰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자극적인 언론 보도였다. 기사 제목은 선정적이고, 내용은 추측과 과장이 난무했다. SNS 활동 일거수 일투족을 비판적으로 다룬 기사가 적지 않았으며 유튜버의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하거나 연예계를 떠난 유명인들이 아르바이트하는 곳을 직접 찾아간 언론도 있었다. 당연히 그 기사 밑에는 수백 개의 개인 행동, 인성, 더 나아가서는 가족들까지 비난하는 악플로 도배가 되었다. 이러한 악성 보도와 댓글의 악순환은 한 개인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정 때문이다. 우리는 정을 한국 사회에 흐르는 유독 끈끈한 유대의 문화로 정의한다. 정을 가진 우리는 가족뿐만 아니라 직장, 친구 관계에서도 단순한 친밀감을 넘어 서로 깊이 개입하고 동일시하며,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 정신 문화의 근간을 차지하는 이 유교적 공동체 정신을 설명하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옥시토신이다. 옥시토신은 자식이나 연인 등 친애하는 대상과 접촉했을 때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이 발현하는 감정은 매력적인 이성을 보았을 때 나타나는 성욕과는 다르다. 어머니가 갓 태어난 자식을 보았을 때 극대화되는 유대의 감정에 더 가깝다. 이 호르몬은 인간에게 상대방에 대한 강한 유대, 즉 상대방을 마치 나 자신의 일부처럼 느끼게 한다.(산후 우울증 등으로 이 유대의 과정이 생략되면 어머니는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에게도 일체의 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사랑과 유대에 관여하는 옥시토신은 생물학적으로 ‘극단적 차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내 몸처럼 느껴 친밀감을 느낀다면, 내 몸처럼 느껴지지 않는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멀게 느끼게 된다. 옥시토신은 내집단(in-group)의 결속력을 높이는 동시에 외집단(out-group)에 대한 경계심과 배타성을 증가시키는 기능도 한다. 옥시토신이 크게 활성화되는 10대로 가득 찬 학교에서는 친한 친구들 사이의 우정만큼이나 친하지 않은 동료들에 대한 차별 의식도 강해진다. 집단 따돌림 등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유대가 강한 사회일수록 내부 결속은 단단하지만 이를 위협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가혹한 배척이 이루어진다. 조선시대의 형벌 중 태형(笞刑), 곤장(棍杖) 등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졌고, 유배형 역시 개인을 사회적으로 단절시키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져, 온라인에서는 ‘악플’과 ‘신상털기’로, 현실에서는 직장 내 따돌림이나 연예인의 사회적 매장으로 나타난다. 단순한 법적 처벌을 넘어 본능적으로 ‘이들이 우리를 더럽혔다’라는 감정적 응징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집단 배척에 개입하는 또 다른 호르몬은 세로토닌이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은 감정 조절과 충동 억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세로토닌 전달을 좌우하는 트랜스포터 단백질의 양은 사람들이 같은 사물이나 상황을 얼마만큼 낙관적이거나 밝게 보는지를 결정한다. 세로토닌 트랜스포터 단백질이 많을수록 낙관적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세로토닌 수용체의 활성도가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2014년 워릭(Warwick)대 프로토 교수 팀은 세로토닌의 유전적 발현 정도가 지역별·인종별로 분포가 다르게 나타남을 발견했는데, 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 등 낙천적인 국민성을 자랑하는 중남미 국가에 비해 중국·한국·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경우 세로토닌의 유전적 발현도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로토닌의 발현도가 낮을수록 비관적이고, 걱정이 많고, 불안을 자주 느낀다. <인사이드 아웃>의 불안이나 소심이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강한 내집단적 유대감을 가진 한국인의 마음에 불안이가 자리 잡고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보며 ‘언제 나에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니 빨리 이 사회에서 몰아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배척’ 버튼을 마구 누르고 있지 않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우측 두정엽에 손상을 입은 환자의 이야기로. 나와 재활의학팀은 자신의 몸이 필요 없다는 그를 한사코 말리며 치료했다. 자신의 것으로 인식되지 않지만, 피와 살로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그의 좌반신을 자르는 순간, 그의 육체는 전체적으로 죽어버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었다. 재활의학팀은 그가 아직 자신의 일부라 생각하는 오른팔을 거울에 비춰 좌측 팔처럼 인식하게 함으로써 좌측 또한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그가 기억해내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나 역시 지속적인 정신 치료와 항우울제로 그의 불안과 분노를 오랜 시간에 걸쳐 조절했다. 수 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가끔이나마 그의 좌반신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며 덜 불편해 했다. 사람의 정신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의 몸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오인할 수 있다. 자신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느끼지 못하고 차별하는 사회는 두정엽이 손상된 그 환자처럼 점차 자기 육체의 일부를 귀찮아하며 자르고 싶어 하게 될 것이다. 그다음엔? 아마 정말로 잘리게 될 것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자를 잘라내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유명 연예인을 잘라낸 다음, 그다지 나에게 도움이 안 되는 친구를 잘라내고 그다음에는 나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족들을 잘라버릴 것이다. 잘라내고, 잘라내고, 잘라내어 점차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된 후 우리는 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가혹해야 할까? 공동체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차별적인 배척과 응징만이 답은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그들을 우리의 일부로 인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잘라낸 이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여전히 존재한다. 법적 처벌을 거치지 않은 집단주의적이고 감정적인 응징은 정교한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환부를 맨손으로 생각 없이 찢어발겨 잘라놓는 것과 같이 우리 사회를 전체적으로 손상시킬 것이다.
정신분석의 거두 ‘멜라니 클라인’의 말처럼 성숙한 정신이란 양극단적 사고(all or nothing)에 머무르지 않고, 양가적 감정(ambivalence)을 수용할 수 있는 정신이다. 성숙한 사회는 우리 중 누군가를 완전히 악으로 규정하고 몰아내는 사회가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비판하더라도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잊지 않는 관대함과 낙천성을 가진 사회일 것이다.
권순재는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및 치매전문센터장을 거쳐 현재는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의 원장이다.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와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를 집필했고, AI 기반 심리검사센터인 ‘브레인맵 심리검사센터 강남점’을 운영 중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권순재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부쉐론, #다미아니, #티파니, #타사키, #프레드, #그라프, #발렌티노가라바니, #까르띠에, #쇼파드, #루이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