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가 칭찬이 아닌 저주인 이유
자기소개서에 당당하게 써 왔던 그 단어는 사실 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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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는 매우 강력한 자살의 예측 변수다. 100년 전통의 매거진 <뉴요커>에 실린 ‘완벽주의의 고통’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그렇다. 기사가 인용한 심리학자 고든 플렛과 폴 휴이트에 따르면 심지어 극심한 우울증 등의 다른 변수들을 보상한 뒤에도 그렇다.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은 최근에 본 것 중 가장 잔인하다. “(완벽주의자들은) 자살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궁극의 실패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완벽주의자들은 완벽하게 자살한다. 그러나 그 자살의 양상은 다르다. 2018년 스물여덟의 나이로 자살한 한 청년은 중국계 스타트업에서 3년 반을 일한 뒤 이직을 꿈꾸다가 몇 번의 낙방을 맛보며 구직 공고에 올라온 모든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결국 지원 자체를 그만두더니 어느 날 목숨을 끊었다. 그의 가족은 그가 완벽주의 때문에 자살했다고 말한다. 한편 2004년에 목숨을 끊은 아칸소주의 심장외과 의사 조너선 웹은 주변 사람들의 단점을 나열한 다섯 장짜리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심장외과 분야에서 스타 의사였던 그는 “세상은 아직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을 남겼다. 플렛과 휴이트가 구분한 완벽주의의 범주에 따르면 조너선은 다른 사람들의 불완전함을 비난하는 ‘타인지향형 완벽주의자’다. 구직 공고에 올라온 모든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강박을 이기지 못한 청년은 자신에게 엄격한 완벽함을 요구하는 자아지향형 완벽주의자다. 그러나 세상에는 한 종류의 완벽주의가 더 있다. 바로 이 사회가 나에게 완벽을 요구한다고 여기는 ‘사회규범형 완벽주의자’(socially prescribed perfectionism)다. 지금 옆을 돌아보니 내 책상 주변에는 ‘자아지향형’ 완벽주의자가 잔뜩이다. 교열을 세 번이나 보고도 최종 대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는 우리 친애하는 에디터들. 그리고 우리는 타인지향형 완벽주의자이기도 하다. 나는 얼마 전 아는 동생이 ‘꺾쇠’를 꺾새라고 쓴 걸 보고 며칠이나 잠자리에 들 때마다 말해줄지 말지를 고민했더랬다. 이 타인지향형 완벽주의의 특징이 내로남불이라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남의 오자를 지적하는 걸 즐기지만, 회사의 모든 에디터 중 오타를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을 꼽자면 아마 내가 1등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면접 때 자랑스럽게 “저는 완벽주의자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 뽑지 말아야 한다. 그가 자아지향형이라면 자신이 내야 할 결과물이 혹시라도 완벽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제논의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아킬레우스처럼 느리게 일할 것이고, 타인지향형 완벽주의자라면 남들 욕을 하느라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허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규범형 완벽주의자의 예를 더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자체가 규범형 완벽주의 사회니까. 완벽주의라는 강렬한 예측 변수에 따라 사회 자살의 길로 달려가고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출산율을 살펴보길 바란다. 지금이라도 완벽주의를 칭찬이 아닌 경고로 받아들이고 완벽주의라는 귀신을 떨쳐내기 위해 몸부림을 쳐보자.
Credit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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