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우리는 소설을 읽는가
소설을 읽지 않은 당신은 소설을 읽은 당신을 절대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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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문학계 모두의 기쁨이었다. 받을 만한 작가가 예상 못 한 타이밍에 수상했다는 심정적인 벅참 외에도 잠시 풍요의 시대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교보문고 집계 기준으로, 수상에 힘입어 2024년 소설 판매량은 2023년보다 35.7% 늘었다. 특히 한국 소설 판매량이 늘었다. 예스24에 따르면 전년 대비 2024년엔 103.7% 증가했고, 2025년 9월까지는 2024년보다 46.9% 늘었다. 2025년 인터넷 서점 3사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중 절반가량이 한국 문학이었다. 업계인을 설레게 하는 멋진 수치지만 함정도 있다. 2025년 성인 독서율은 38.5%로 사상 최저이기 때문이다. 2023년 조사와 비교해 4.5%포인트 낮아진 값이다. 출판계 불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므로 말하면 입만 아프다. 업계 체감 온도도 그리 따뜻하지 않다. 주변 관계자들은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다고 호소한다. 물론 좋은 작품이지만 안목 있는 유명인의 호명에 힘입은 소설들이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반면 첫 출간 시 제작하는 물량인 초판 부수는 대형 출판사에서도 점차 보수적으로 잡는 추세고, 그렇게 책정된 1500부 정도의 1쇄를 소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잦다. 월간 약 1200종의 문학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중 대다수의 책들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공들여 만든 책이 주목받지 못하고 사장될 때 창작자만큼이나 관련 실무자의 아쉬움도 크다.
그러나 섣불리 비관하기엔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 적지 않다. 먼저 신진 작가의 주목도가 높아졌다. 유명인이 언급해 처음 주목받았든 인플루언서의 리액션 영상으로 역주행했든, 신진 작가의 소설이 오랜 기간 잘 팔릴 수 있는 이유는 입소문 이후에도 판매가 이어질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소설 분야 셀러는 기성 유명 작가의 신작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 이리저리 고심하여 콘셉트를 꾸려보고 카피를 고안해도 ‘작가 OOO의 N 번째 신작!’이라는 간명한 헤드라인을 이길 수 없다. 기존 데이터가 확보된 작가의 저서는 정석대로 만드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판매량을 기대할 수 있다. 효율과 안정, 필수불가결하지만 기획자를 나태하게 만들 수도 있는 무서운 기준이다. 신진 작가의 주목도 상승으로 우리에게는 모험할 기회가 생겼다.
가장 고무적이라고 판단하는 지점 중 하나는 젊은 독자가 유입되었다는 점이다. 2025년 19세에서 29세 사이 청년층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75.3%로 2023년보다 0.8%포인트 상승했다. 문학 독자는 시장과 함께 사이좋게 늙어가고 있었다. 공력이 오랜 독자는 귀하고 충실한 고객이었으나 좁고 깊어 편집자와 마케터가 어떻게 짓까불든 살 책은 사고 안 살 책은 영영 사지 않았다. 취향이 훌륭하며 명확했다는 소리다. 타깃을 세분화해 페르소나를 만들고, 콘셉팅을 하고, 브랜딩도 해보고…. 출판계는 이전에도 그런 시도를 성실히 해왔지만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이것은 별수 없이 젊은 독자들의 관심과 닿아 있다.
2026년 핀터레스트가 예측한 패션 트렌드가 포엣코어(poetcore)라던데, 그 전에 텍스트힙이 있었다. 업계인들이 묘한 수치심 혹은 민망함을 장착하고 말할 수밖에 없는 요망한 용어. 국내에 이 표현이 유입된 것은 2024년 초다. 켄달 제너가 휴가 때 읽은 책이 아마존에서 24시간 만에 매진되었다는 뉴스를 스치듯 들었을 때 과연 한국에는 이 유행이 언제 도착할까, 아니 도착하기나 할까 마음 졸이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맞물려 아이돌과 배우에게서 시작된 뜨뜻미지근한 독서 온풍은 인플루언서와 일반 독자들의 독서 브이로그나 다양한 숏폼 콘텐츠로 분화되면서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독서용품의 인기도 상당하다. 온라인 쇼핑몰 지그재그에 따르면, ‘북커버’의 검색량이 28배 증가했고 ‘북마크’와 ‘책갈피’ 검색량도 각각 1500%, 396% 증가했다고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전부터 이미 오프라인 팝업스토어가 유행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역대 최고의 인파가 몰렸다. 문학의 수치적 호황에는 실은 많은 원인이 겹쳐 있었다. 마치 우연처럼 보이는 현상의 실체는 필연의 연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십대의 하루 평균 숏폼 이용 시간은 63분으로, 전 연령 평균 이용 시간과의 격차가 가장 커지고 있었다. 젠지들은 텍스트와 가까워질 수 없다고 다른 세대가 못 박을 즈음 ‘텍스트힙’이 등장했다. 눈 밝은 이들이 지적했듯, AI를 필두로 한 인공적인 것들에 지치고 질린 사람들이 아날로그, 곧 인간이 만든 것으로 돌아가려는 흐름이 시작됐다. 텍스트힙은 그런 문화적 양상과 맞물린 자연스러운 결과다. 아날로그 시대를 직접 경험해 본 적 없는 세대에게서 오히려 두드러지는 현상이라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AI 도구를 능동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블로그에 하루를 기록하고 필름 카메라로 일상을 포착하며 다꾸(다이어리 꾸미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배경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아예 옛 영화가 재개봉한다. 필사 모임이나 낭독회처럼 오프라인 모임에 대한 수요도 상당하다. <급류>나 <모순>처럼 정통적이라 할 만한 서사에 유독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사십대이며 편집 경력 1n년인 내가 여태 경험해 온 출판 시장과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한 때다. 젊은 세대와 대중까지 포괄한 넓어진 ‘독자’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책을 읽을까. 언제나 난제였지만 이제 조금 더 어려워졌다. 출판인들에게 이것은 부담이면서 기회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현상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그 흐름에 반응한 독자들이 실제로 책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일이다. 몇 년 사이 독서 이유가 달라졌다는 점은 그래서 유의미하다. ‘책 읽는 것이 재미있어서’가 20.3%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2019년, 2021년 조사에서 ‘지식과 정보 습득’이, 2023년 조사에서는 ‘마음의 성장(위로)’이 1순위였다는 것과 비교하면 분명한 변화다. 책이 효용의 도구이기보다 즐거움의 매체로 다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물을 수 있다. 소설만이,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을까. 분명 있다. 소설은 한 인간의 내면을 임시로 빌려 보는 장치다. 우리는 소설 속에서 타인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 채 따라가고, 끝내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도 독서를 하는 동안은 인물의 곁에서 맴돌고, 가끔은 독서를 끝낸 뒤에도 한참 혹은 평생 그의 내면을 나의 내면의 일부로 흡수한 상태로 기꺼이 머문다. 내게는 학생 때 읽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가 그랬다. 타인의 시선이 한 사람의 내면을 얼마나 손쉽게 잠식하는지, 별다른 고민 없이 순간순간 던지는 남의 말에 목을 매는 일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그 소설을 통해 체감했다. 아주 짧은 소설 속 이름 없는 화가는 내 감각의 일부가 되었다. 살아가며 바깥의 기준에 나를 내맡길 뻔할 때면 내 안 어딘가에 있는 그를 떠올린다. 요즘 독자들이 소설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판단이 너무 빠르고 쉬워진 지금, 유보하고 유예하며 이해하고 이해받길 바라기 때문인지도.
출판인 정체성을 잠시 벗어던지고 개인으로서 생각해 보면 소설의 즐거움이 음악이나 영화가 줄 수 있는 즐거움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콘텐츠는 넘치니 우리는 여러 재미 가운데 ‘나와 맞는 것’을 찾으려 헤맬 뿐이다. 그럼에도 굳이 소설에 시간을 내어주기를 권하는 이유는 감정을 더 정밀하게 짚어낼 수 있는 언어를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설명되지 않는 불안, 미묘한 수치심, 애정과 염오가 뒤엉킨 관계…. 소설은 그 감정을 해소해 주진 않지만, 적어도 이름 붙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때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을 끝내 설명하려 들기보다, 그 설명되지 않음을 오래 견디게 한다.
한때 인공지능의 딥러닝이 인간 뇌의 신경망 구조와 닮았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 특징과 규칙을 일일이 지정하지 않아도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학습하는 방식이 인간의 인지와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 지점에서 인간의 앎이 무엇인지 더 분명해지기도 한다. 인간은 단지 많은 사례를 축적하는 방식으로만 세계를 이해하지 않는다. 몸과 시간, 관계와 감정을 통과하며 언어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을 익힌다. 소설은 바로 그 설명 불가능한 앎을 훈련하는 가장 오래된 형식이다.
최근 한 북토크에서 먹고살기 힘들수록 사람들이 예술의 효용을 묻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은 문학이 쓸모없기 때문에 모든 억압에서 자유롭다고 이야기했다. 10년 넘게 문학을 만들고 팔아온 나는 이 글을 쓰며 그 말씀을 문득 잊고 쓸모로 뭇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사람들이 책을, 소설을 읽으면 좋겠다. 그러나 하라고 해서 다 한다면 세상에 안 될 게 없지. 그러니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다. 번역가 황석희는, AI가 AI를 사용하는 황석희를 이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이에 착안해 말하면 소설을 읽지 않는 당신은 소설을 읽는 당신을 이길 수 없다. 소설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그것만은 확실하다.
이민희는 교보문고 문학출판팀에서 책을 만든다. 유튜브 ‘짧말오읽’에서 책 이야기를 한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이민희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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