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인간의 음악임을 증명하시오

이제 AI가 만든 음악의 특징들을 피해가기 위해 인간이 노력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6.03.25

이 칼럼은 — 정말 의심의 여지 없이 — 인간이 작성한 것이다. 단순히 대화형 인공지능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공지능 없이도 완벽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AI 시대에 음악이 나아가야 할 심층적인 통찰을 제공하며, 독자 여러분의 생각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깨달았을 것이다. 이 첫 문단은 일부러 AI처럼 쓴 글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에 그치지 않고”, “심층적인 통찰”, “새로운 지평” 등은 AI 탐지 프로그램에 돌리면 붉은 줄이 좍좍 그어지는 대표적인 AI식 표현이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요즘은 AI 카피 퍼센티지를 탐지하는 AI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몇 시간 동안 고민하며 나의 머리와 두 손으로 쓴 순수 오가닉 휴먼 텍스트를 이 프로그램에 넣어봤더니 “AI 카피율 100.0%”가 떴다. 나는 AI인가? 아니면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 게으른가? 며칠 전 한 ‘X’(구 트위터) 유저가 만해 한용운이 작성한 ‘기미독립선언서’를 프로그램에 넣어봤더니 감지율이 95.5%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AI 상투어로 낙인찍힌 표현은 아무리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더라도 의심을 산다. 이제 인간 창작자는 좋든 싫든 인공지능의 형식을 의식하면서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25년 플로리다 주립대 연구팀이 팟캐스트 1326개 에피소드에서 2210만 단어를 분석했다. AI 도구를 전혀 거치지 않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만 골라서 분석한 내용인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챗GPT 출시 이후 ‘surpass’는 140%, ‘strategically’는 88%나 늘었다. “대본 없는 영어 대화에서 나타나는 AI의 흔적”이라는 논문 제목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챗GPT가 자주 쓰는 ‘와, 너 정말 핵심을 찔렀어’라는 말투 때문에 ‘핵심을 찔렀다’라는 표현을 인간의 글에서 못 본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비단 글을 쓰는 사람만의 일인가. 나는 음악 평론가다. 음악을 듣고 그것에 대해 말하고 글을 쓰는 게 직업이다. 요즘은 내가 듣는 음악 자체가 흔들린다. 내가 창작할 때 AI의 눈치를 보듯,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도 AI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음악 산업 전체가 허둥대고 있다. 어떻게 AI가 만든 음악과 인간이 만든 음악 사이에 선을 그을 것인가. 그래미 어워드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오직 인간 창작자만이 수상 자격이 있으며, 인간 기여가 의미 있고 상당한 경우에만 AI 음악이 후보에 오를 수 있다고 규정했다. 창작 플랫폼 밴드캠프(Bandcamp)의 경우는 더욱 단호했다. 올 1월 인디의 수호자들은 “밴드캠프를 인간답게 지킵시다”라는 비장한 선언과 함께 AI에 의해 전적으로, 또는 상당 부분 생성된 음원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정책으로 음악을 삭제당한 ‘음악가’들의 주장은 사뭇 다르다. 밴드캠프로부터 차단당한 카자흐스탄의 문뱀파이어(Moonvampire)라는 밴드는 “2019년부터 음악을 해왔다”라며 “음악 작업에 AI를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과연 AI와 인간을 구분하는 선을 그을 수 있을까? 자칫 선을 지나치게 굵게 긋는 바람에 창작의 영역이 좁아지는 것은 아닐까? 창작자가 직접 선을 그으면 어떨까? 3월 4일 애플 뮤직이 음악 메타데이터에 AI 투명성 태그를 도입한 것처럼 말이다. 이제 음반사와 음악 유통업체는 AI를 사용한 아트워크, 트랙, 작곡, 뮤직비디오에 ‘이 콘텐츠에 AI가 사용되었습니다’라는 정보를 입력할 수 있다. 일종의 자율 신고 시스템이다. 선을 긋는 데 AI를 사용할 수도 있다. 애플 뮤직뿐 아니라 다른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역시 AI에 대응하는 데 열심이다. 콧대 높은 프랑스의 디저(Deezer)는 자체 AI 탐지 도구로 플랫폼 내 AI 음악을 식별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잡아낸 AI 곡이 무려 1340만 곡 이상이다. 그중에는 1970년대 사이키델릭 프롬프트를 입력한 가짜 록 밴드 벨벳 선다운(Velvet Sundown)과 공갈 네오 소울 싱어로 의심받는 시에나 로즈(Sienna Rose)도 있었다. 시에나 로즈가 이미 월 300만 명 이상의 청취자를 보유한 슈퍼스타라는 점을 생각해 보라. 심지어 셀레나 고메즈가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로즈의 음악을 태그하기까지 했으니, 공갈로만 남겨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시에나 로즈는 ‘단순한’ 공연자가 아닌 마음의 이야기꾼이다”라는 스포티파이 공식 소개 글에서처럼 AI 스타 혹은 AI 트랙들은 자신들이 AI 창작물임을 숨기지 않는다. 디저는 지난해 매일 업로드되는 음악의 39%가 AI로 만들어졌으며, 그중 85%의 음악이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수익 창출을 금지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팝스타 찰리 푸스가 AI 음악 플랫폼 모이시스(Moises)의 CMO가 됐다. 모이시스는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작곡 문외한도 그럴싸한 유튜브 히트곡을 만들어 주는 수노(Suno)나 우디오(Udio)와는 다르다. 보컬 분리, 코드 탐지, 키 변환 같은 프로듀싱 보조 도구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오늘날 전 세계 7000만 명이 사용하는 플랫폼이다. 빌보드 핫 100 차트 톱 텐 노래가 네 곡이나 있는 팝스타 찰리 푸스는 “AI가 올바르게 쓰이면 음악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탐구,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라며 벅찬 소감을 밝혔다. 초대형 음악 블로그인 '스테레오검'은 이 소식을 이렇게 전했다. “찰리 푸스는 음악 이론에 대해서는 탁월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하루에 6만 곡의 AI 창작이 쏟아지는 가운데 우리는 재빠르게 이와 같은 ‘음악 공장’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워너 뮤직 그룹이 2024년부터 이어오던 법적 투쟁을 접고 수노, 우디오와 특허 사용 계약을 맺은 것처럼 말이다.

자본가들에게 음악 창작의 주체가 인간이냐 AI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음악 산업은 AI가 있기 전부터 공장을 만들고 싶어 했다. 1920년대 브로드웨이 28번가에는 수십 개의 뮤직 퍼블리셔들과 작곡가들이 좁은 건물에 빽빽이 들어서서 하루 종일 피아노를 쳐대며 곡을 만들었다. 동시에 울리는 그들의 피아노 소리가 양철 두드리는 소리 같다고 하여 붙은 별명이 ‘틴 팬 앨리’(양철 거리)다. 느슨한 개념의 음악 공단이었던 셈이다. 음악 공장의 개념을 완성한 이후 브릴 빌딩의 창작가들, 자동차 조립 라인을 모델 삼아 히트곡을 생산한 모타운, 머니 코드에 따라 빛의 속도로 팝송을 찍어내는 스웨덴의 작곡가 그룹들이 있었다. 가깝게는 곡 하나에 십수 명의 이름이 붙는 K팝의 ‘송캠프’ 방식까지, 음악은 그동안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조립되어 재빠르게 소비되어 왔다. 메이저 레이블이 수노나 우디오와 계약할 수 있었던 것도 저작권 수호라는 숭고한 뜻보다는 그들이 늘 해오던 음악 공장의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인공지능 창작에서 찾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공장 시스템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등가라고 볼 수 없다. 그래도 공장 음악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 캐롤 킹은 브릴 빌딩의 라인 노동자였지만 그의 음악은 반세기를 넘겨서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위대한 베이시스트 제임스 제머슨은 공장제 레코딩에 세션으로 참여했지만, 독창적인 기법으로 음악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시스템 가운데서도 인간이기에 균열이 발생하고, 위대한 대중음악이 탄생했다. AI는 이 균열을 건너뛴다. 수노에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30초 만에 수백만 곡의 통계적 중간값이 나온다. 처음에는 붉은 머리의 백인 여성으로 등장했으나 이내 흑인 알앤비 싱어로 모습을 바꾼 시에나 로즈는 AI가 선택한 그 중간값이 300만 명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1940년대에 ‘사이비 개성화’(Pseudo-individualization)라는 개념을 들이밀며, 특별한 척하지만 사실은 다 공장에서 찍어내고 있는 당대의 대중문화를 비판했던 아도르노가 지금의 AI 음악 붐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역시 기계가 만들어도 되는 것’이었다며 의기양양해하지 않았을까?

아도르노가 옳았든 아니든 지금 더 긴급한 질문은 따로 있다. AI가 좋은 곡을 만드느냐 마느냐,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AI 창작물에 대한 대중의 수요는 그저 재미있는 장난감일 뿐, 자전적 서사와 개인적 트라우마, 시대의 감수성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인간 음악가들로부터 받는 감동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진짜 문제는 AI로 인한 창작관의 변화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AI 생성 음악이 플랫폼에 범람하는 가운데 알고리즘은 명확한 정체성을 가진 곡을 밀어주고, 산업은 아티스트에게 너의 진정성을 증명하라며 압박한다. 순수한 예술적 탐구가 아니라 AI로부터 자신을 차별화하라는 시장의 명령이다. 이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아티스트에게 ‘자아’를 하나의 콘텐츠, 사실상 정교한 프롬프트로 가공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된다. 나는 이런 걸 잘해, 이게 진짜 나야. 그런데 ‘이게 진짜 나야’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데도 ‘내가 이런 말을 해야 해’라고 믿는다. 요즘 음악계에서 진솔한, 투명한, 솔직한 등의 형용사가 많이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진솔하고 솔직한 음악이 자본을 이길 수 있을까? 1990년대 저항의 상징이었던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은 결국 메이저 레이블에 흡수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인디 록'이라는 새로운 마케팅 카테고리와 함께 제도권으로 편입되었다. AI 음악이 거대 자본에 편입된다면(그리고 어쩌면 이미 편입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알고 있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 ‘인간이 만든 음악’을 태그로 달아야 하지 않을까?

디저의 조사에 따르면 음악을 듣는 97%가 AI 음악과 인간 음악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3%는 구분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3%가 특별하다고 느낀다. 이 소수의 음악팬들이 느낀 차별성은 무엇이었을까. 발터 벤야민이 언급했던 오라라도 느낀 것일까? 인간이 인간의 떨림을 감지하는 비범한 능력이 그들에게는 살아 있는 것일까. 알고리즘으로 최적화할 수 없는 감각, 통계로 종합할 수 없는 음악이란 무엇일까.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감각이기도 하다. 나는 그 감각들이 오늘날 기스(Geese)의 날것 같은 연주 안에, 힙합이나 하이퍼팝 콘서트장에서 통제 불가능한 모시 핏을 불러내는 분위기 안에 살아 있다고 믿는다.

음악의 인공지능 시대를 걱정하는 당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AI가 좋은 곡을 만들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직 대부분의 AI 음악은 사기 스트리밍에 쓰이고 있을 뿐이다. 진짜 문제는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해야 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 증명 과정에서 인간성 자체가 태그가 되고, 브랜드가 되고, 상품이 되어간다는 현실이다. AI가 인간에게 ‘인간임을 증명하라’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성 자체를 상품으로 만드는 일련의 상황에 나는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칼럼을 다 쓰고 난 뒤 나는 이 글을 AI 탐지 프로그램에 넣고 돌렸다. AI 생성 확률, 0.0%. 혹여 100.0%가 떴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이 글이 내 것이라는 걸 안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안다. 음악도 그렇다. 증명할 수 없지만 아는 것. 그게 인간의 몫이다.


김도헌은 음악 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던 대중음악 평론가로,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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