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JEWELRY

까르띠에부터 오데마 피게, 드 베튠까지. 가림의 미학을 담고 있는 시계 4

시침도 분침도 없이, 창으로만 시간을 읽는 시계들. 가림으로써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4개의 기쉐 워치를 소개합니다.

프로필 by 이하민 2026.04.03
가림의 미학
  • 까르띠에 탱크 아 기쉐: 2025년 프리베 컬렉션으로 돌아온, 까르띠에의 아이코닉 워치.
  • 오데마 피게 네오 프레임 점핑 아워: 1924년 점핑 아워 손목시계의 개척자가 한 세기 만에 내놓은 현대적 재해석.
  • 차펙 앤 씨 타임 점퍼: 브랜드 부활 10주년 기념작. 커버를 열면 스켈레톤 무브먼트가 드러나는 하프헌터 케이스 구조의 기쉐 워치.
  • 드 베튠 DBD 에버그린 디지털: 점핑 아워와 트리플 인라인 캘린더를 하나의 다이얼에 가로로 나열한 에버그린 컬러 20피스 한정 에디션.

시침과 분침 없이 시간을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작은 창으로 숫자만 드러내고 나머지는 전부 가리는 방식, 바로 기쉐(guichet) 워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시계는 다이얼에 표기된 시간을 핸즈로 가리켜 시간을 표시하죠. 하지만 기쉐 워치는 다이얼에 난 작은 창 아래로 디스크가 회전하며 시간을 나타냅니다. 시는 매 정시마다 숫자가 순간적으로 전환되는 점핑 아워 방식으로, 분은 디스크가 부드럽게 회전하는 드래깅 미닛 방식으로 표시됩니다. 창 안의 숫자만 읽으면 되니 오히려 직관적이죠. 다양한 정보를 쏟아내는 스마트 워치의 시대에, 보고 싶은 것만 선별해 보여주는 이들의 태도는 사뭇 결연하기까지 합니다. 단순히 핸즈를 없앤 것이 아니라, 케이스 자체가 다이얼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무브먼트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절제된 프레임 안에 가두어 설계했기 때문이죠. 가림으로써 그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4개의 시계를 소개합니다.


까르띠에 - 탱크 아 기쉐

200피스 한정 플래티넘 모델 / 이미지 출처: 까르띠에 까르띠에 프리베 탱크 아 기쉐 옐로 골드 버전 / 이미지 출처: 까르띠에 까르띠에 프리베 탱크 아 기쉐 플래티넘 버전 / 이미지 출처: 까르띠에 까르띠에 프리베 탱크 아 기쉐 핑크 골드 버전 / 이미지 출처: 까르띠에

탱크 아 기쉐의 첫 등장은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계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다이얼을 금속판으로 덮고, 두 개의 창으로만 시와 분을 표시하는 점핑 아워 방식을 채택한 이 시계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죠. 크라운을 12시 방향으로 옮겨 케이스 전체를 완벽한 직사각형에 가깝게 만든 것도 이 모델이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오랜 공백기를 거쳐 1997년 창립 150주년 기념 모델과 2005년 컬렉션 프리베 까르띠에 파리의 로즈 골드 한정판으로 두 차례 귀환했고, 2025년 워치스앤원더스에서 까르띠에 프리베 컬렉션의 9번째 주인공으로 화려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2025년 버전은 두 가지 라인으로 나뉩니다. 레귤러 라인은 12시에 시 창, 6시에 분 창을 두는 오리지널 레이아웃 그대로 계승했으며, 옐로·핑크 골드, 플래티넘 세 가지 소재로 선보였습니다. 200피스 한정으로 선보인 플래티넘 모델은 두 창의 위치를 10시와 4시 방향으로 변주했는데, 이는 1930년대 탱크 아 기쉐의 다양한 버전들에 대한 오마주라 볼 수 있죠. 두 라인 모두 이 시계만을 위해 개발한 인하우스 핸드와인딩 칼리버 9755 MC를 탑재했습니다.


오데마 피게 - 네오 프레임 점핑 아워

블랙 PVD 사파이어 크리스탈 다이얼에 두 개의 골드 프레임 창으로 시간을 나타내는 오데마 피게 네오 프레임 점핑 아워 / 이미지 출처: 오데마 피게 케이스 양 옆 가드룬 장식이 러그까지 이어지는 네오 프레임 점핑 아워의 우아한 실루엣 / 이미지 출처: 오데마 피게 사파이어 케이스백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칼리버 7122의 디테일 / 이미지 출처: 오데마 피게

오데마 피게는 점핑 아워 손목시계의 선구자입니다. 1924년부터 1950년대까지 다양한 점핑 아워를 선보인 바 있죠. 올해 새롭게 선보인 네오 프레임 점핑 아워는 그 헤리티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입니다. 영감의 원천은 1929년 출시된 모델 1271로, 기차와 선박의 공기역학적 형태에서 출발한 아르 데코 후기의 유선형 모더니즘에서 영향을 받은 디자인을 계승했죠. 가로 32.6mm, 세로 34mm의 직사각형 핑크 골드 케이스 양옆에는 각각 여덟 개의 가드룬 장식이 배치되어 러그와 케이스백까지 이어지며 유선형 실루엣을 완성합니다. 전면에는 블랙 PVD 처리한 사파이어 크리스털을 사용해 특유의 시크한 무드를 구현했으며, 일반적인 시계와 달리 12시와 6시 방향에 케이스 프레임 없이 사파이어를 그대로 노출하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이를 위해 다이얼 플레이트를 사파이어 크리스털에 접착한 뒤 케이스에 나사로 고정하는 방식을 새롭게 개발했어요. 시와 분은 골드 프레임 두 개의 창으로 표시하며, 로열 오크 점보의 칼리버 7121을 기반으로 개발된 브랜드 최초의 셀프와인딩 점핑 아워 칼리버 7122를 탑재했습니다.


차펙 앤 씨 - 타임 점퍼

하프헌터 커버를 열면 나타나는 인하우스 칼리버 10.01 / 이미지 출처: 차펙 앤 씨 소용돌이 기요셰 커버와 케이스 중앙 돔형 루페가 돋보이는 차펙 앤 씨의 타임 점퍼 / 이미지 출처: 차펙 앤 씨 시스루 케이스백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칼리버 10.01의 디테일 / 이미지 출처: 차펙 앤 씨

프랑수아 차펙은 파텍 필립의 전신인 파텍-차펙 앤 씨를 공동 창립한 워치메이커입니다. 그가 1845년 독립해 세운 동명의 시계 회사를 계승한 차펙 앤 씨가 브랜드 부활 10주년을 맞아 2025년에 선보인 기념 모델이 바로 타임 점퍼죠. 19세기 차펙 앤 씨의 회중시계에서 영감을 받은 이 시계는 비행접시를 연상시키는 케이스 실루엣과 하프헌터 커버, 브랜드 최초의 자동 점핑 아워 무브먼트를 한데 담아냈습니다. 디자인의 핵심은 기요셰 커버입니다. 메탈렘과 협업해 만든 소용돌이 형태의 3D 기요셰 패턴은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착시 효과를 내며, 커버 중앙의 돔형 루페가 아래 시 디스크를 확대해 보여주는 구조죠. 커버를 열면 인하우스 칼리버 10.01의 스켈레톤 무브먼트가 전면으로 드러납니다. 해당 무브먼트는 새롭게 개발한 칼리버 10 패밀리의 첫 번째 모델로, 24시간 점핑 아워를 두 개의 사파이어 디스크(일의 자리·십의 자리 각각)로 분리 표시하는 메커니즘이 특징이며, 분은 무브먼트 외곽의 주변부 링으로 트레일 방식으로 표시됩니다. 40.5mm 케이스, 파워 리저브 60시간. 스틸 100피스, 옐로 골드 30피스 한정입니다.


드 베튠 - DBD 에버그린 디지털

에버그린 다이얼 위 코트 드 제네브 패턴이 빛의 결을 만들어내는 드 베튠 DBD 에버그린 디지털 / 이미지 출처: 드 베튠 12시 방향에 요일·날짜·월을 가로 배열하고 6시의 점핑 아워 창과 중앙 미닛 디스크로 시간을 보여주는 DBD 에버그린 디지털 / 이미지 출처: 드 베튠

스위스의 독립시계제조사 드 베튠의 마스터 워치메이커 데니 플라지올레가 2006년 처음 구현한 DBD의 개념은 단순하면서도 급진적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아날로그 표시 대신, 아르데코 양식의 창을 통해 시간과 날짜 정보를 한 줄로 읽어내는 방식으로, 12시 방향에 요일·날짜·월을 가로로 나열하고, 6시 방향의 점핑 아워 창과 중앙의 스크롤링 미닛 디스크가 시간을 표시했죠. 2023년 두바이 워치위크에서 공개된 DBD 에버그린 디지털은 이 구조를 그레이드 5 티타늄 케이스와 에버그린 다이얼로 옷 입힌 20피스 한정 에디션입니다. 지름 42.6mm에 두께 9.4mm의 케이스는 폴리시드 그레이드 5 티타늄으로 제작했으며, 크라운은 12시 방향에 자리합니다. 끝을 향해 가늘게 모아지는 드 베튠 특유의 원뿔형 러그가 케이스 전체에 날렵한 인상을 더하고, 코트 드 제네브 패턴이 새겨진 에버그린 다이얼은 보는 각도마다 빛의 결이 달라지며 깊이감을 만들어내죠. 탑재한 무브먼트는 인하우스 핸드와인딩 칼리버 DB2044로 듀얼 배럴 구조를 적용해 5일의 넉넉한 파워리저브를 제공합니다.

Credit

  • EDITOR 손형명
  • PHOTO 각 이미지 캡션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