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50주년 팀 쿡 인터뷰, 스티브 잡스 이후 애플의 변화와 미래
아이폰은 어떻게 세상을 바꿨나. 애플의 지난 50년과 앞으로의 애플에 대해 팀 쿡과 단독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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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50주년 기념으로 팀 쿡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 이미지 출처: Florence Sullivan
저희 집에는 애플 IIe가 있었어요. 1983년 크리스마스에 부모님께서 제 형제들과 저에게 선물해 주셨죠. 거실에서 포장지를 뜯으며 드디어 애플 IIe가 생겼다고 소리치던 저희 가족의 웃음기 어린, 그리고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그리고 애플 컴퓨터도 한 대 있었죠. 아버지 사무실에 있던 투박한 왕(Wang) 워드프로세서처럼 생긴 베이지색이었는데, 물론 왕 워드프로세서보단 더 친근해 보이고 보기 좋았어요. 둥근 모서리에, 전원을 켜면 화면 한쪽 구석에 작은 휴지통이 있었죠.
한 달 뒤, 지하에서 ‘Zenith’(북미 가전제품 브랜드)로 슈퍼볼을 보던 중, 우리는 새로운 컴퓨터 ‘매킨토시’ 광고를 보게 되었어요. 그 광고는 에일리언 (1979, SF 영화)과 블레이드 러너(1982, SF 영화)를 만든 리들리 스콧(SF영화 감독)이 연출했지만, 우린 몰랐죠. 광고는 무서워 보였어요. 회색 피부에 중성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회색 죄수복을 입고, 머리를 삭발한 채로 차가운 푸른빛으로 빛나는 어두운 감방으로 일제히 행진해 들어갔어요. 파랗게 칠한 남자가 방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화면 속에서 빅 브라더(조지 오웰 소설 속 인물) 같은 목소리로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어떻게 ‘하나의 사람’이며 ‘하나의 결의’를 지니고 있는지를 말했죠. (광고 속 파란색은 당시에 압도적인 컴퓨터 브랜드 ‘IBM’을 상징했어요. IBM은 '빅 블루'라고 불리는 애플의 지워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위협적인 목소리와 영국식 억양으로 “우리는 오늘 모든 노동자가 모순된 생각에 복종하는 해충으로부터 안전하게 꽃을 피울 수 있는 ‘순수한 이념의 정원’에서 정보 정화 지침의 첫 번째 영광스러운 기념일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때! 금발 머리에 밝은 빨간색 반바지와 흰색 탱크톱을 입은 발랄한 여자가 가슴을 출렁이며 달려오면서 화면에 점점 더 가까워졌죠. 그녀는 올림픽 선수처럼 큰 망치를 들고 있었고, 진압 경찰들이 그녀를 쫓고 있었어요. 그들은 가스 마스크를 착용한 채, 그녀를 바짝 쫓아왔죠. 화면 속 거인은 씩씩대며 “우리의 적들은 말싸움에 빠져 죽을 것이고, 우리는 그 혼란을 틈타 그들을 묻어버릴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마침내 그녀는 몸을 돌려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대형 망치를 던졌어요. 그리고 하얀 섬광과 함께 화면이 산산 조각났죠.
그 광고 속에 컴퓨터는 나오지 않았어요. 마지막에 나오는 목소리가 애플 매킨토시가 1984년이 더 이상 ‘1984’처럼 느껴지지 않게 해줄 것을 약속했죠.
저는 아직도 그 광고를 기억하지만, 당시엔 어려서 그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채로운 캔디 컬러와 내장형 손잡이를 갖춘 iMac은 개인 PC를 한층 더 개인적인 존재로 바꿔놓았다 /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우리는 학교 끝나고 ‘IIe’로 단순한 게임을 했어요. 집에는 톱니 모양의 릴이 끝없이 이어진 천공지를 밀어 넣던 흑백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도 있었죠. 우리가 "컴퓨터"라고 불렀던 그 컴퓨터는 글자와 그림이 담긴 "배너"를 인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1984년 여름, 제가 처음으로 산 앨범인 'Born in the U.S.A.'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계속해서 들리던 그 시절, 저와 형은 'BRUCE SPRINGSTEIN'이라고 적힌 배너를 만들어 형의 방 벽에 걸었죠. 우리는 우리가 프린트한 그 배너를 감탄하며 바라봤어요. 그러다가 우리 중 한명이 철자 오류를 발견했죠. 그래서 그냥 새 걸로 다시 만들었어요.
고등학생 때, 여름방학 동안 조경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매킨토시 파워 북 노트북을 샀어요. 이 제품은 키보드를 위쪽으로 옮겨 힌지에 딱 붙도록 배치함으로써, 타이핑할 때 손을 올려놓을 수 있는 패드가 있는 디자인이었죠.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트랙볼을 빼내서 베어링에 낀 이물질을 청소하는 걸 좋아했어요.
1990년 후반 뉴욕: 저는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중고 레코드 가게 위층에 월 600달러를 내고 살았어요. 프리랜서 작가로서 처음 받은 월급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컴퓨터인 아이맥을 샀죠. 그 아이맥은 Fruit Roll-Up(미국의 유명 젤리) 색깔로 나왔는데, 그중 파란색을 골랐어요. 주식으로 파스타를 먹고, 바퀴벌레와 쥐를 쫓아내는 삶을 살아가며 작가가 되려고 애썼죠.
32번째 생일에 여동생이 애플의 최신 아이폰을 선물해줬어요. 직장 동료 중에 같은 제품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이제 절대 심심할 틈이 없겠네."라고 말했죠. 그가 말한 건 그와 내가 아니라, 인류 전체를 말한 거였어요.
아직도 제 서랍 어딘가에는 나노와 같은 예전 아이팟들이 있어요. 다른 모델들도 있었나? 애플 워치도 써봤어요. 아이클라우드, 애플 뮤직, 애플 TV도 쓰고 있죠. 진짜, 다 애플을 쓰고 있어요. 다 너무 좋아서 뭐라고 더 할 말이 없어요. 스티브 잡스는 정말 미쳤다고 말할 정도로 천재였죠. 오늘은 애플 창립 50주년을 맞았고, 며칠 전 저는 51살이 되었죠. 거의 동갑이네요. 그래서 이 글은 공정하다고 보기 어려운 글이 되겠네요.
한동안 회사를 떠났다가 애플의 임시 CEO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1998년 맥 월드 엑스포에서 ‘Think Different’ 캠페인에 사용된 파블로 피카소의 이미지 앞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이미지 출처:
애플 컴퓨터 회사는 1976년 4월 1일 캘리포니아 주 산타 클라라 카운티에서 두 명의 청년과 한 남성에 의해 개인 회사로 등록되었습니다. 그 주인공들은 스티븐 P. 잡스(21세, 전기 공학 및 마케팅), 스티븐 G. 워즈니악(25세, 전기 공학), 그리고 서류 작업을 돕던 로널드 G. 웨인(41세, 기계 공학 및 문서 담당)이었죠.
웨인은 2주도 채 안 되어 동료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행운을 빌어주고, 800달러의 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떠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워즈니악은 천재였고, 지금은 부자가 되었죠. 그리고 잡스는 세상을 바꿨습니다.
어쨌든, 성스러운 날인 2026년 4월 1일을 한 달 앞두고, 신자들은 창조주에게 호산나를 바치기 위해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에 모여들었습니다. 기자와 인플루언서들이 수십명이 모였고, 대부분 인플루언서였죠. 그들은 애플이 행사 공간으로 임대해서 세련되게 개조한 창고에 모여, 애플이 저 높은 곳에서 내려보낸 최신 제품의 계시를 목격하려 했습니다. 이런 모임들은 이제 하나의 의식이 되었죠. 쿠퍼티노에서, 뉴욕에서, 런던에서, 상하이에서 임원들은 열광하는 군중 앞에 서서 성찬을 집전하고, 우리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죠.
미친 천재 중 두 명, 존 레넌과오노 요코의 애플의 광고 사진 /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도금 시대에는 화물 열차들이 바로 이 건물의 거대한 내부 깊숙한 곳까지 이어진 선로를 따라 증기를 내뿜으며 달려왔습니다. 동쪽에서는 뉴욕 센트럴 철도의 열차들이, 서쪽에서는 이리 철도와 리하이 밸리 철도의 열차들이 들어왔고, 수많은 화물차가 서쪽의 여러 지점을 향해 수 톤의 물자를 실어 나르며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한때 기관차의 매연으로 뒤덮였던 이 벽돌 건물 안에서 매일 벌어졌던 일들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고, 땀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경제의 일부였죠. 오늘 아침, 그 오래된 선로의 잔해 위에는 ‘콘텐츠’라 불리는 것 위에 세워진 새로운 경제의 주체들이 대략 백 명 남짓이 서 있습니다. 이 ‘콘텐츠’라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전 세계에 즉시 전파될 수 있는 글, 영상, 사진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이 기사도 포함해서요). 그들은 애플에서 제공하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치아 푸딩과 아보카도 토스트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가 검은 무대 앞에 서게 됩니다. 젊은 사람도 있고 나이가 든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젊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후디와 값비싼 스니커즈, 그리고 울 비니를 착용했죠.
행사장에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애플 직원들만 헤드셋을 통해 대화했죠.
모두가 초조하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침내! 회사의 임원들이 미소를 띤 채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이런 프레젠테이션에 정말 능숙했죠. 처음에 몇 가지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지만, 우리는 애플의 방식을 알고 있었기에 곧 더 큰 무언가가 곧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발표했습니다: 슬림하고 밝고 가격까지 낮아서 눈길을 사로잡는 애플의 새로운 노트북 네오(Neo)였습니다. 시트러스라 불리는 노란색을 포함한 네 가지 색상으로 출시되었죠. 그 첫 이미지가 거대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 인플루언서들은 부흥회에 참석한 신도들처럼 두 손을 치켜들고, 눈을 위로 치켜뜬 채 깜빡이지도 않고 기쁨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염주도, 십자가도, 옆 사람의 손도 아니었습니다. 아이폰이었죠. 그들은 아이폰으로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었죠.
4일 전,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에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이 거대한 창고 같은 공간 안에서는, 한 시간 동안 모두가 기쁨에 차 있었죠. 임원들은 프레젠테이션은 짧게 끝내고, 그곳에 초대된 사람들을 스크린 뒤로 안내했어요. 그들은 신제품을 만지고, 타이핑해보고, 품에 안아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촬영 가능한 애플 제품들로 가득한 놀이터로 들어갔죠. 막대처럼 길게 뻗은 스탠드 위에 막대사탕처럼 꽂혀 있는 아이폰들, 다이아몬드처럼 진열된 애플 워치들, 그리고 네오 그 자체인 굉장히 힙한 다섯 가지 색상들이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짐벌(손에 들고 다니는 카메라)을 들고 다니며 삼각대를 설치했습니다. 셀카 모드로 전환하고, 숨이 가쁜 미소를 띤 채 자신의 휴대폰을 향해 말을 쏟아내며,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곧바로 팔로워에게 전했죠.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에서 화물열차를 하역하던 일자리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기 어렵겠지만,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고, 오늘 이곳에서 자사 제품을 선보인 바로 이 애플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직업이죠. 아이폰이 없었다면, 앱스토어가 없었다면, 8배 광학 수준의 줌을 갖춘 영화급 카메라가 없었다면, 셀피 모드가 없었다면, 그리고 애초에 아이폰이 존재하기 때문에만 번성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이 없었다면, 전문적인 콘텐츠 제작자도 없었을 것이고, 크리에이터 경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976년 두 명의 스티브가 애플 컴퓨터를 설립했을 때, 잡스가 내세운 목표 중 하나는 빠르고 강력한 개인 기술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죠.
오늘날 인플루언서라는 단어를 매우 특정한 방식으로 정의하는 세대에게 있어, 애플 컴퓨터를 만든 일은 결국 잡스를 ‘창작을 창조하는’ 데까지 이르게 한 것이죠.
2010년 COO시절 쿠퍼티노에서 스티브잡스와 함께 무대에 오른 팀쿡 /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애플은 분명 여전히 그의 회사입니다.” 2011년 췌장암으로 56세에 세상을 떠난 잡스가 죽기 얼마 전부터 애플의 CEO를 맡아온 팀 쿡은, 자신을 쉼 없이 몰아붙이던 전임자(스티브 잡스)에 대해 “그의 별은 너무도 밝게 타올라서, 그것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뉴욕에서 네오가 공개된 다음 날 아침, 팀 쿡은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의 50억 달러 규모의 본사 안, 탁 트인 카페 공간에 앉아 있었습니다. 몇몇 직원들이 서로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약간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서, 귀에는 에어팟을 꽂고, 노트북을 펼쳐둔 채 팔꿈치 옆에 커피를 두고 있었죠. 카페는 거대한 고리 모양 건물에 있는데, 그 건물은 막 착륙했거나, 고향 행성을 향해 막 이륙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죠. 건물 외벽은 45피트 높이로, 독일의 한 주조 공장이 맞춤형 가마를 지어서 만든 유리 패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리로 된 외벽 너머에는 잡스가 직접 고른, 가뭄에 강한 토종 참 나무들이 조깅 트레일과 잔디밭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죠.
“저는 그를 자주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50주년을 생각하던 지난 몇 달 동안, 더더욱 그랬습니다.” 팀 쿡이 말했습니다. “그가 믿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복잡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을 믿었죠. 그는 협업을 믿었습니다. 소수의 사람을 함께 두면, 그 작은 집단의 결과물은 그들 중 어떤 개인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것을.”
팀 쿡은 스티브 잡스가 죽던 날 그의 집에 있었습니다. 직원들에게, 그리고 세상에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사무실로 차를 몰고 돌아가는 동안, 그는 이상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잡스가 너무 오랫동안 아팠고,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는 약을 거부하고 대신 과일 주스로 병을 고치려 했었기 때문에, 잡스의 죽음에 전혀 충격이 없어야 했지만, 충격이 있는 게 이상하다고 느꼈죠.
“안타깝게도, 그때쯤에는 죽음이 불가피했습니다,” 팀 쿡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질병과 질병의 끝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부정하고 있었어요. 그가 다시 회복하는 것을 여러 번 지켜봐 온 저는 그가 항상 그렇게 회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제가 CEO 역할을 맡았을 때, 그가 영원히 이사회 의장으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말 그대로 불과 6주 전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돌이켜보면, 누군가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느냐’고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순간에 제 마음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았죠.
잡스는 애플이 만든 기술은 적어도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훌륭한 것을 창조하고, 그가 즐겨 말했듯이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독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1997년, 애플은 광고 대행사 TBWA/Chiat/Day와 협력하여 광고 캠페인 "Think Different"를 제작했습니다. 이 광고는 소비자들이 애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고,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죠. 잡스는 복잡한 인물이었지만, 단순함의 힘을 이해했고, 그의 광고는 단순했습니다. 대담한 아이디어로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유명한 인물들의 흑백 사진 위에 “think different”라는 문자와 애플 로고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광고 속 흑백 사진에는 잡스가 미쳤다고 말하는 존 레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리아 칼라스, 파블로 피카소, 마사 그레이엄, 밥 딜런, 짐 헨슨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등장했죠.
2025년 8월 6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연설하고 있는팀쿡. 팀 쿡은 이 행사에서 미국 제조업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아이폰과 애플 워치에 사용되는 유리를 생산해온 ‘코닝’의 유리를 24k 금 받침대에 올려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Think Different”는 훌륭한 캠페인이었습니다. 저는 잡스의 때와는 다른 ‘트럼프 행정부’라는 상황에 있는 팀 쿡에게 물었습니다. (이 대화는 뉴욕 타임스 조사에서 ‘Think Different’ 캠페인에 등장했던 인물 중 한 명인 고(故) 노동운동가 세자르 차베스가, 함께 일하던 여성들과 어린 소녀들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 몇 주 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캠페인에 등장한 인물들 가운데 딜런, 레넌, 헨슨,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전쟁과 차별, 그리고 폭력적인 치안에 맞서 적극적으로 싸운 인물들입니다. 애플은 이들을 캠페인에 활용함으로써 ‘이들이 우리가 믿고 지지하는 가치를 대표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다양한 형태의 차별, 그리고 폭력적인 치안은 트럼프 행정부의 특징이죠. 저는 팀 쿡에게 이 행정부와 함께 일하는 것이 그동안 그가 만나고, 함께 일해온 다른 대통령들과 어떻게 다른지 물었습니다.
그는 잠시 멈춘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매우 접근하기 쉽습니다.”
그의 답변은 어쩌면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칭찬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트럼프 정부와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본인의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들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결국엔 설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의견을 전달할 수 있죠. 저에게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모인 자리에 참여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현지 법률과 관습, 문화, 규제를 모두 고려하며 일을 해 나가는 것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죠. 모든 사람은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고, 모든 나라는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과 직접 마주 앉아 소통하고 참여할 때에만 그 관점을 이해할 수 있죠. 제 회의실에 들어가 보면, ‘중요한 것은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문구가 걸려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경기 장 바깥에 서서 좋고 싫음을 소리치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 목소리는 그저 바람 속으로 사라질 뿐이죠.”
저는 팀 쿡에게 애플 팬들이 트럼프의 두 번째 대통령 취임식에서 트럼프 뒤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봤을 때, 대통령 취임 기금으로 그가 100만 달러를 기부했을 때 기분 나쁘거나, 심지어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 보였죠. 그러다 어떤 질문이 떠올랐어요. 이게 우리가 아는 그 애플인가? 이것이 우리가 아는 그 팀 쿡인가?
애플 워치 앞에 서 있는 팀 쿡. 애플 워치는 그의 CEO 재임 기간 중 가장 성공적인 제품 출시 중 하나였다 /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앞서 말한 내용에 대해 나눈 대화 내용:
에스콰이어: 고객들은 한 번 생긴 인상을 오래 기억하는 편이고, 애플 고객층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고객들은 애플이 프라이드 먼스를 기념하는 것을 보고 “난 애플을 떠난다”고 말할 수도 있고, 또 어떤 고객들은 당신이 트럼프 취임식에 참석한 모습을 보고 “이게 뭐야?”라고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한 사람으로서의 당신과 당신의 가치관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팀 쿡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알고 있는 사람이고, 애플도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든, 애플의 리더로서 애플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당신은 어떤 기준과 논리로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시나요?
팀 쿡: 제 생각에는 일관된 가치관을 가져야 하고, 그 가치관을 상황이나 사람들의 변화에 따라 바꾸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과 어울리고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저는 미국의 양쪽 정당과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과 모두 이야기해 왔습니다. 저는 전 세계의 정부들과도 대화해 왔고, 그중에는 저와 매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정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접 대화하고 참여하기 전까지는 그들이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결코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영향력도 가질 수 없죠.
애플을 움직여 온 것들을 떠올려 보세요. 저는 그것이 우리가 사업을 영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믿어요.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워왔죠. 우리는 프라이버시가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인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접근성을 믿어요. 우리는 우리의 제품을 모든 사람이 사용하기를 바라죠. 만일 누군가가 시각장애인이라면, 그가 우리의 제품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나중에 처리하지 않고, 우리의 디자인 과정과 기획 과정에 포함하죠.
우리는 교육을 믿어요. 교육은 모두의 평등을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죠. 여기 있는 많은 사람이 교육 덕분에 미약했던 출발을 극복하고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요.
우리는 모든 사람을 존엄과 존중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어요. 직장 동료와의 소통 방식은 물론, 공급업체 파트너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나죠. 우리는 공급업체 파트너들에게 AI와 로보틱스를 가르치며, 그들의 삶의 가치가 향상되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환경을 믿어요. 우리는 지속가능성을 믿죠. 우리는 우리의 탄소 배출을 낮추기 위해 회사 전체가 노력해왔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애플의 수익이 상당히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탄소 배출량은 60% 감소했습니다.
세상이 변한다고 해서, 우리가 믿는 것들을 바꿔선 안 됩니다. 계속 유지해야 하죠. 그것들이 우리의 기준입니다. 가치관을 지키라는 말이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참여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여러분은 저를 어디서든 보게 될 것이고, ‘아, 그는 자신과 다른 기준을 가진 누군가 만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저는 그게 좋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지금 전 세계가 가진 문제는 극심한 양극화로, 서로 다른 견해들이 공유되거나 논의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이 그저 굳어져 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죠.
에스콰이어: 그러니까, 어떤 혼란도 없도록 말하자면: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여기 처음 왔던 날과 같은가요?
팀 쿡: 네, 물론입니다. 물론이죠. 똑같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CODA의 한 장면. 애플이 영화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첫 사례 중 하나. 한 인물이 아이폰을 들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미지 출처: CODA
팀 쿡이 1998년에 이곳에 왔던 날, 그는 38살이었고, 컴팩에서 영입된 경영의 천재였습니다. 그는 공급망, 생산 능력, 효율성, 운송에 대해 알고 있었죠.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트럼프의 관세들, 관세 위협들, 자의적인 관세 인상들, 자의적인 관세 철회들, 변덕스러운 관세들, 그리고 보복적인 관세들로 가득 찬 2026년의 세계 경제 속에서 애플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제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공급을 틀어막고 있는 전쟁까지 더해졌죠.
2025년 8월, 팀 쿡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를 만나 애플이 미국 내 제조업에 추가로 1,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애플에 부과했던 중국산 반도체 관세를 면제해 주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죠. 이로써 애플의 미국 내 제조 시설 투자 계획 총액은 6,000억 달러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여전히 30억 달러가 넘는 관세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대법원 판결로 애플은 그 돈의 일부를 환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코닝은 오랫동안 북미에서 판매되는 아이폰과 애플 워치용 유리를 생산해 왔지만, 애플은 코닝이 켄터키주 해러즈버그에 있는 자사 공장에서 전 세계 아이폰과 애플 워치의 전면 및 후면 유리를 모두 생산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애플이 총 6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의 하나로 25억 달러를 새롭게 투자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난해 여름, 애플은 미시간 주립대학교와 협력하여 디트로이트에 애플 제조 아카데미를 개설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중소기업들이 애플과 미시간 주립대학교 전문가들로부터 "제조 분야에서의 머신 러닝 및 딥 러닝, 제품 제조 산업의 자동화, 제조 데이터를 활용한 제품 품질 향상,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운영 효율화 등"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죠.
애플 창립 기념일을 앞두고, 애플은 대만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와의 파트너십을 확대하여 워싱턴 주에 있는 TSMC 공장의 미국 내 칩 생산량을 늘릴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애플이 수 세대 동안 인텔 칩에 의존해 온 것을 끝내고 자체 칩을 생산 및 소유하겠다는 목표인 '애플 실리콘' 프로젝트의 일환이며, 스티브 잡스의 꿈을 팀 쿡 CEO가 실현하도록 노력해 온 것이죠.
저는 팀 쿡에게 제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탈리안 조부모님을 둔, 2세대 미국인인 제 아버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확고한 "미국산 제품 구매" 소비자죠. 아버지는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스티브 잡스에게 미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스티브 잡스가 "미국 생산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를 아직도 자주 언급하십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좋아하지 않으셨죠.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면 아버지는 더 멀리 운전해서라도 더 비싼 값을 주고 사시는 분이니까요.
“저희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어요.” 팀 쿡이 말했죠. “아버지는 앨라배마에서 조선업에 종사하셨어요. 현장 감독 같은 분이셨죠. 전형적인 블루칼라 직종이셨습니다. 그리고 ‘미국산 구매’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그는 아버지가 해러즈버그를 좋아하셨을 거라고 말했죠. “해러즈버그는 전형적인 미국 소도시이자 기업 도시죠. 코닝이 그 지역 사회의 중심이고, 여러 세대에 걸쳐 제공되는 일자리를 보면 가슴이 벅차오를 거예요.”
팀 쿡을 비롯한 애플 경영진은 회사의 50주년을 어떻게 기념할지, 심지어 기념해야 할지조차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제50주년 때 같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애플은 과거를 돌아보는 회사가 아니며, 적어도 그런 회사로 알려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애플은 미래를 창조하는 회사죠.
그들은 50이라는 숫자가 크다고 판단하여 성대하게 기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3월 13일, 애플은 전 세계에서 음악가, 예술가, 디자이너, 사상가들을 초청하여 동시다발적인 홍보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알리샤 키스는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애플 스토어에서 깜짝 콘서트를 열었고, 팀 쿡 CEO도 직접 참석했습니다. 멈포드 앤 선즈는 런던에서 공연했고, 호주 예술가들은 애플 기술을 이용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 이미지를 투사했으며, 멕시코 배우와 영화 제작자들은 멕시코시티의 애플 스토어에서 창의성에 관해 토론했죠. 한 시각 예술가는 뭄바이의 한 매장을 멋지게 탈바꿈시켰고, K팝 그룹은 서울에서 공연했습니다.
팀 쿡은 애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의목적으로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 방문했다 / 이미지 출처: Florence Sullivan
4월 2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애플의 글로벌 마케팅 담당 수석 부사장인 그렉 "조즈" 조스위악이 제게 말했습니다. 그는 1986년부터 애플에서 일해왔고, 네오(Neo) 행사를 위해 뉴욕에 와 있었죠. 주요 제품 출시 행사, 연례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 그리고 이번 50주년 기념행사 같은 날에는 즐거운 하루를 보내겠지만, 다음 날은 그저 다음 날일 뿐입니다.
팀 쿡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우리는 안쪽 원형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그곳에는 수확 가능한 자두, 살구, 체리 나무 700그루와 잔잔한 연못이 있어 마치 영화 '애플'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번에도 직접 나무 품종을 골랐죠. 스티브 잡스는 회사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랐는데, 당시에는 온 사방에 과일나무가 널려 있었어요. 그는 이 광장이 그런 분위기이길 원했습니다.
저는 팀 쿡에게 애플의 시가총액에 관해 물었습니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2023년에 3조 달러를 돌파했고, 현재는 약 3조 7천억 달러에 달합니다. 그는 즉시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시가총액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제 관심사는 사용자들이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하는 이유죠.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쏟는다면, 충분히 많은 사람이 그것을 구매하고 싶어할 것이고, 우리는 수익을 창출하고 주주들에게도 이익을 안겨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을 다시 사업에 투자해서 이 모든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의 말을 믿지만, 그는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았죠. 단순히 그의 감미로운 앨라배마 억양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애플은 50년 동안 자체적인 창의적 과정의 리듬을 터득해 왔지만, 훌륭한 아이디어가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가 갑자기 나타날 리도 없으니까요. 애플은 크고, 어리석고, 미친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필요한 거죠.
"미친 사람들을 위하여!"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맞아요. 애플은 리사 컴퓨터, 타이탄 전기차, 큐브처럼 미친 짓을 많이 한 회사입니다. 물론 한 번도 실패가 없었다면, 그건 제대로 경험한 게 아니죠. 나는 그에게 애플에 미친 사람들이 충분히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는 “그런 아이디어는 어떤 직원에게서든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해요. 사용자들도 훌륭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죠. 하지만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냉정하게 걸러내야 합니다. 마치 땅콩버터 바르듯이 에너지를 여기저기 흩뿌릴 수는 없잖아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품질을 가진 결과물을 하나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 하나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제안에 ‘아니오’라고 답합니다. 아마 애플 회의에 갑자기 나타난다면, 거기서 벌어지는 토론들이 정말 놀라울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잠시 멈춰 서고, 다시 몇 걸음 걷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믿을 수 없어." 그는 거의 혼잣말처럼 말했죠.
이 모든 이야기는 믿기 힘들 정도로 놀랍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잡스 가족의 차고에서 회로 기판을 납땜하던 모습, 당시 혁신적이었던 그 묵직한 베이지색 애플 IIe, 매킨토시, 애플 마우스. 잡스가 회사에서 쫓겨난 후 1990년대 초 애플이 거의 잊혀졌던 시기, 그리고 1997년 그가 복귀하면서 애플이 다시 부활한 이야기까지. 99센트짜리 노래들, "나는 맥이다." "그리고 나는 PC다."(애플 광고), 더 빠른 반도체 칩, 잡스의 죽음, 애플 워치, 시리, 애플 페이, 회사 분할, 네오까지.
아, 그리고 트랙볼 기억하세요?
아이팟 셔플은요?
와, 우리 모두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시절 기억나세요?
Credit
- Editor Ryan D'Agostino
- Photo 각 이미지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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