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당신이 러닝화를 살 수 없는 이유

왜 돈을 주겠다는 데도 러닝화는 늘 품귀인지 자세히 알아보자.

프로필 by 박세회 2026.04.28

얼마 전 한 잡지사 에디터로부터 '러닝화는 대체 왜 충분히 안 만드는 것이냐'라는 불만을 들었다. 사건은 이렇다. 그 에디터는 최근 러닝을 시작한 60대 어머니를 모시고 한 대형 백화점을 찾아 적당한 러닝화를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돌아다녔다. 그가 찾던 것은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안정화와 쿠션화 종류였다. 각 브랜드의 숍과 여러 브랜드가 있는 편집숍을 포함해 다섯 개 매장을 돌아다녀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말했다. “아니 제가 찾는 신발들이 무슨 최상급 레이싱화도 아니고, 리미티드 에디션도 아닌데, 대체 왜 없는지 이해가 안 돼요. 수요가 있으면 만드는 족족 팔릴 텐데, 돈을 벌기 싫은 걸까요?” 러닝 아카데미에서 일하며 수많은 러닝 브랜드들과 함께 일하는 나로서도 궁금하다. 누가 봐도 국내 ‘달리기’의 인기는 후끈후끈하다. 국내 러닝 시장이 이렇게 커졌는데, 왜 내가 신고 싶은 러닝화를 구할 수 없는 것일까?

시장이 크다. 여기서부터 오해가 있다. 브랜드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브랜드는 신발을 딱 팔릴 만큼 만들어서 다 파는 게 제일 좋다. 그러려면 수요를 예측해야 하는데, 한국처럼 가파르게 성장한 시장의 수요를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글로벌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만큼 중요한 시장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나라 러닝 시장 규모를 먼저 추정해보자.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의 <패션 소비 현황 요약 보고서>¹에 따르면 작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내 소비자의 신발 구매액은 12조 3118억원이며, 이 중 운동화가 4조 6506억원(37.8%)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연간 국내 운동화 시장 규모가 4조원대인 가운데, 업계에서는 패션 스니커즈를 포함한 전체 운동화에서 러닝화 비중을 최소 25%로 본다. 이를 근거로 연간 국내 러닝화 시장 규모는 약 1조원 정도로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러닝이 인기인 중국과 비교해보자. 각국의 시장 규모는 결국 인구를 따라간다. 중국의 러닝화 시장은 일부 자료에서 최대 14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미국은 이보다도 크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미국 러닝화 시장 규모는 연간 약 200억 달러(한화 약 27조원)에 달하며, 세계 최대 단일 러닝화 시장으로 꼽힌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러닝화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에서, 한국은 약 1조원 규모로 세계 시장에서 대략 10위권 수준으로 평가된다. 결코 작지 않은 규모지만, 브랜드의 글로벌 생산·배분 전략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입장에선 어쩌면 거품일지도 모르는 한국 시장에 쿼터를 배당했다가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피자는 그리 커지지 않았는데, 나눠 먹는 친구들은 더 늘었다. 20년 전 20대 후반이었던 내가 러닝화를 사던 러닝 전문점은 서울에 딱 두 군데였다. 하지만 이제 러너스클럽, 플릿러너, 굿러너컴퍼니, 온유어마크, 레이스먼트 등이 있다. 굿러너컴퍼니는 더현대서울에 입점했고, 이제 지방에도 지점을 운영 중이다. 러닝화를 많이 취급하는 무신사 킥스, 에스마켓의 ‘S.O.W’ 등까지 포함하면 러닝화 판매 채널은 엄청나게 많아졌다. 피자는 레귤러에서 고작 라지 사이즈로 커졌는데, 나눠 먹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각자 먹는 피자 사이즈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이즈가 작아지니 원하는 토핑이 올라가지 않은 피자라도 일단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한 러닝 전문점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올해 연초부터 완판되는 러닝화가 거의 없어요. 러닝 붐의 피크는 작년 9월에 찍고 완만하게 내려가는 것 같고요. 시장은 크지 않은데 너무 과하게 해석한 브랜드 관계자들 덕분에 물량이 과잉 공급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어요.” 영업에서는 전년도 주문 데이터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신규로 러닝화를 수입하는 회사에서는 전년도가 없으니 수요 예측을 잘못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회사에서 러닝화를 수주하는 과정은 정해진 비용을 들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고기를 사면 생선을 살 돈이 모자랄 수 있다. 그런데 가족들이 전부 생선만 먹겠다고 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즉 총예산 중 지나치게 큰 금액을 안 팔리는 러닝화 수주에 사용해 버리면, 러너들은 먹고 싶은 생선을 먹을 수가 없다.

최상급 러닝화 완판에는 러너들의 ‘장비발’도 한몫하고 있다. 이건 대한민국의 특징이기도 하다. 자전거, 캠핑 등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언제나 해당 카테고리의 프리미엄 브랜드와 하이엔드 제품이 승승장구한다. 러닝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아식스라면 메타스피드, 나이키라면 알파 플라이, 아디다스라면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시리즈만 찾는다. 농담이 아니다. 트랙에 가서 뛰는 사람들 신발을 유심히 보면 십중팔구 이 신발들을 신고 있다. 국내에 2019년부터 거주 중인 한 일본인 러너는 “일본의 경우도 대회에서는 레이싱화를 신는 사람이 다수이기는 하나, 조깅에 적합한 러닝화, 기타 훈련용 러닝화 등을 신을 사람들도 많다”라며 “그런데 한국에서는 트랙이나 하천변을 천천히 달리면서도 레이싱화를 신는 경우가 많더라. 대회가 아닌 평상 시에 비싼 레이싱화를 신는 한국 러너들은 레이싱화를 신어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보이지 않은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아까 그 에디터에게 무슨 신발을 사려 했느냐고 물었더니 ‘안정화라면 아식스의 젤카야노, 쿠션화라면 호카의 본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두 신발 모두 해당 카테고리에서 가장 비싼 신발들이다. 늘 ‘최고’를 찾는 한국사람의 성향 탓에 한두가지 모델로 소비가 집중되는 경향이 이 ‘러닝화 품귀 현상’의 이면이다.

러닝화 재판매 시장 역시 문제를 가속화하는 중이다. 지난해 8월 ‘러닝 탭’을 신설한 크림에 따르면 이후 6개월간 직전 6개월 대비 러닝과 관련한 검색량이 741%, 거래량은 61% 증가했다고 한다. 실제로 크림에서 ‘아식스 메타스피드’를 검색해보면 매물들이 빼곡하게 나온다. 이 매물들이 정말 메타스피드 사이즈를 잘못 판단하고 구매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러닝화를 거래하는 플랫폼이 크림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만간 우리가 원하는 러닝화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러닝의 열기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2030세대가 열광했던 스포츠로는 과거에 로드 사이클, 골프, 테니스 정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스포츠들의 수요 폭발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하이킹과 러닝은 조금 다르다. 골프, 테니스와는 달리 운동 장소를 예약할 필요가 없고, 심지어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고도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필드에 나가고도 인스타에 사진 한 장 올리지 않는 골린이는 좀처럼 없지만, SNS와 상관없이 러닝을 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게다가 거주 장소에서 또 회사 근처에서도 자신 만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은 러닝의 최대 장점이다. 러닝의 인기가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해외 브랜드들의 쿼터 배당은 시장의 안정적인 규모에 맞게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 브랜드들은 한국 러닝 시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스위스의 스포츠 브랜드 온은 지난해 11월 여의도 더현대 서울과 잠실 롯데월드몰에 국내 첫 직영 매장을 론칭한 데 이어 한남동에 첫 독립형 로드숍을 열었으며, 심지어 부산에 온의 최상급인 라이트스프레이 모델을 생산하는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푸마는 한국 러너들의 발볼이 넓다는 점을 고려해 작년에 주력 러닝화인 디비에이트 나이트로 4(Deviate Nitro 4)를 와이드 버전으로 출시했다. 예전에 일상 러닝화에 색상만 한국인 취향에 따라서 변경하는 SMU(Special Make Up)와 비교하면 한발 나아간 것이다.

경제학자 티보르 스키톱스키(Tibor Scitovsky)는 ‘즐거움은 욕망이 불완전하고 간헐적으로만 충족될 때 생성된다’고 말했다. 나는 절지동물인 지네가 아니지만, 100켤레 넘는 러닝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도 아직도 신제품 러닝화를 보면 신어보고 싶고 사고 싶다. 달리기는 동기부여가 무척 중요하고, 러닝화 구매는 확실한 동기부여 방법 중 하나라며 늘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 달리면서 나에게 적당한 페이스(pace)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종종 나만을 위한 러닝화를 만나면 나에게 완벽한 케이던스(분당 걸음수)와 최상의 페이스가 찾아진다. 즉 나를 위한 러닝화를 찾는 것은 동기 부여와 기록을 위해 너무도 중요한 일이라고 오늘도 자기 최면을 걸어본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나처럼 최면을 걸어보기를 바란다. 그래야 피자가 커지고, 피자가 계속 커져야 언젠가는 페퍼로니를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김형식은 엘리트 국가대표 출신 지도자가 이끄는 전문 러닝 커뮤니티 런콥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형식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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