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잠실 굿바이 청춘
청춘을 잠실에 묻은 야구 기자가 잠실 구장에 보내는 마음 편지.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어릴 적 일기장이 있다. 소소한 일들이 적혀 있다. 그날의 야구 성적도 쓰여 있다. 속상하거나, 기쁘거나, 짜증 나거나, 환호하거나. 내가 응원하는 팀의 성적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언어가 쓰여 있다. 응원 팀은 MBC 청룡이었다. 방송사가 소유한 야구단이 있어서인지 MBC 청룡 중계가 많았다. 방과 후면 TV로 야구 중계를 보기 바빴다. 8살이나 어린 동생은 옆에서 만화를 보겠다고 떼를 썼지만 꿋꿋하게 야구 중계 채널을 고수했다.
LG가 MBC 야구단을 인수하면서 자연스럽게 LG 트윈스 응원을 시작했다. MBC 청룡 소속의 선수들이 그대로 LG 트윈스로 넘어갔기 때문에 팀을 갈아탈 이유도 없었다. 그저 야구단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었으니까. 변하지 않은 것은 또 있었다. 홈구장인 잠실야구장이었다. 어릴 적 소원은 그래서 야구장에 가보는 것이었다. 제주도 시골 소녀에게 잠실야구장은 도저히 지도로 가늠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다 건너 ‘육지’라는 미지의 세계에 존재하는, TV라는 작은 창으로만 훔쳐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고3 자율학습 때는 몰래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한국시리즈 1차전 중계를 들었다. 연장 11회말 대타 김선진이 김홍집의 141번째 공을 두들겨 끝내기 홈런을 치면서 LG 트윈스는 창단 두 번째 우승의 기틀을 다졌다. 책상 밑에서 한 손을 불끈 쥐었다. 한 손은 귀에 꽂힌 이어폰을 감추고 있었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잠실야구장의 함성에 나 또한 마음이 쿵쾅거렸다. 그 뒤로 다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29년이 걸릴 줄은 몰랐지만 그때 그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대학에 들어가며 야구장과 나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이제 나와 야구 사이에는 산도, 바다도 없었다. 제주도 선배들과 함께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처음 잠실야구장에 갔다. 첫인상은 “참 넓다”였다. TV에서 볼 때는 야구장이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위 초록 잔디는 너무 예뻤다. 노을이 막 지기 직전의 야구장이 주는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천연의 빛이 만들어내는 야구의 공간이 마음 안에 박혔다. 탁 트인 시야도, 맑은 공기도 참 좋았다.
야구장은 사람 간의 간극도 좁혀줬다. 난생처음 만난 사람들인데도 다 같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무적 LG!”를 목청껏 외쳤다. 다 함께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영원한 LG, 승리의 LG”(‘서울의 찬가’ 개사) 응원가를 불렀다. 그저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이유로 3~4시간은 ‘승리’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진 동지가 됐다. 이긴다고 딱히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내가 이긴 것 같은 순간적 기분에 내 몸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아드레날린(요즘은 도파민이라고 부르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는 했다. 그럴 때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다른 것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방망이의 파열음이 좋았고, 1루수 미트에 박히는 공 소리가 좋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야구장을 찾았다. 여럿과 함께도, 혼자서도 갔다. 혼자 가면 응원석 자리 구하기도 편했다. 당시에는 지정좌석제가 아니었던 터라 그냥 들어가서 내야에 남는 빈 좌석에 앉으면 됐다. 그러곤 옆사람과 동화되어 응원 삼매경에 빠졌다. 언니가 현대 계열사에 다녀서 가끔 현대 유니콘스가 잠실야구장 원정을 올 때면 공짜 표를 주기도 했었다. 남은 표가 있으면 매표소에 있던 다른 LG 팬들에게 무료 나눔 했다.
대학 수첩 안에 야구장 표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내야석도 좋았지만 외야석도 좋았다. 맥주를 마시면서 두런두런 야구 얘기를 할 수 있어서였다. 홈런 볼이 날아오기를 바라면서 친구들과 맥주캔을 들이켰다. 다른 야구장엔 간 적이 없던 것을 보면, 잠실야구장 분위기 자체를 좋아했던 것도 같다. 학교 끝나고 지하철로 바로 갈 수도 있었고 말이다.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야구장은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2000년 4월12일. 다시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경기였다. 같은 야구장에 같은 팀이었지만, 나의 신분이 바뀌어 있었다. 대학생이 아닌 스포츠투데이 공채 1기 수습기자 신분이었다. 야구부 교육 기간에 잠실야구장 방문이 껴 있었다. 대학생 때 봤던 야구장과는 사뭇 달랐다. 출입구부터 달랐다. 정장을 입고 동기 10여 명과 함께 빨간 카펫이 깔린 중앙 출입구로 들어갔다. 기자실 바로 앞 프리미엄석에 옹기종기 앉아서 야구를 보는데 전광판에 ‘스포츠투데이 수습기자분들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까지 떴다. 그러니까 잠실야구장은 나에게 ‘기자’라고 처음 불러준 곳이다.
그 뒤부터 야구장은 나의 출입처가 됐다. TV 속 동경의 장소는 어느덧 일터가 됐다.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로 행동반경은 확장됐고, 동경은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함성의 공간은 기록의 공간이 됐다. 처음에는 더그아웃 취재를 마치면 일부러 야구장 흙이나 잔디를 밟아보고는 했다. 폭신폭신했다. 비시즌 때는 잠실야구장 내야를 천천히 걸으며 홈에서 홈으로 들어온 적도 있었다. 비가 올 때는 더그아웃에 앉아서 가만히 그라운드를 적셔가는 빗방울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 소소한, 정중동의 시간이 좋았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소위 ‘물(특종 놓치는 것)’을 먹지 않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터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잠실야구장에서 여러 일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이 나는 경기는 2004년 11월1일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9차전이다. 한국시리즈가 9차전까지 열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앞서 무승부 경기가 2차례 있었기 때문에 8차전까지 양 팀 전적이 3승3패2무인 상황에서 9차전이 열렸다.
그런데 그날, 비가 왔다. 계속 비가 와서 경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었다. 경기 후반에는 내야 흙에 물이 고여서 진흙탕이 됐는데도 경기가 이어졌다. 기자들은 중앙 관중석에 마련돼 있던 기자석에서 대피해 잠실야구장 식당에서 TV를 보면서 기사를 마감해야만 했다. 나와 선배들은 LG구단 사무실에 있는 접견실에서 모두 모여 앉아 경기 얘기를 하면서 TV를 봤다.
그라운드는 그야말로 물바다였다. 공이 위로 뜨면 빗속에 섞여 안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현대 유격수 박진만은 9회말에 평범한 내야 뜬공을 놓치기도 했다. 수중 혈투가 벌어졌으나 강우 콜드를 선언할 수는 없었다. 우승 팀을 결정하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경기는 반드시 끝나야만 했다. 10차전을 치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진흙뻘 속에 치러진 9차전은 현대 유니콘스의 승리로 돌아갔다. ‘왕조’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현대 유니콘스는 이제 없다. 잠실야구장도 현대 유니콘스처럼 올 시즌을 끝으로 사라진다. 잠실 스포츠·마이스 복합개발 사업의 하나로, 돔구장이 지어지기 때문이다. 잠실야구장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위해 지어졌다. 특히 이 대회 결승, 일본과 치른 경기에서 나온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은 한국 프로야구 흥행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이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도 이곳에서 열렸다. 수많은 영광의 순간을 남긴 잠실야구장은 이제 동대문운동장에 이어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다.
새로운 잠실 돔구장은 2032년 완공 예정이다. 그때까지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는 잠실주경기장을 임시 대체 구장으로 사용한다. 다만 관중석은 약 1만8000석 규모에 불과하다. 축구장과 육상 트랙을 개조해 사용하는 만큼 관람 환경의 불편도 예상된다. 애초 안전 문제로 1만3000석 규모가 검토됐지만, 구단 반대로 좌석을 늘렸다. 포스트시즌 등에는 추가 좌석을 운영하겠지만, 지금(2만3750석)보다 티켓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1000만 관중 시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새 돔구장은 3만5000석 규모다. 두 팀이 시즌 동안 함께 사용하는 만큼 고척 스카이돔처럼 시즌 중 대형 콘서트를 열기는 어렵다. 대신 비시즌인 11월부터 2월 사이에는 K팝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짙은 아쉬움이 마음속에 깔린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하늘이 사라진다니. 잠실야구장에서 바라보던 노을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바람의 길도 느낄 수가 없다. 햇볕 쨍쨍하던 날, 빛 반사로 도저히 기자실 앞줄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뒷줄로 도망가 기사를 작성하던 기억 또한 이제는 박제된다. 천연 잔디의 폭신함은 인조 잔디의 매끈함이 대신하겠지.
사실 처음에는 지금과 같은 개방형 야구장 건립이 추진됐다. 하지만 지하철역과 멀어지는 터라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야구단이 난색을 보였다. 원래 있던 자리에는 개방형 야구장을 지을 수가 없다. 옆에 함께 지어지는 4성급 호텔 때문이다. 밤 11시까지도 이어지는 응원 소리를 객실 손님들이 좋아할 리 없다.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처럼 개폐형 돔구장(로저스센터)도 좋으련만, 돔구장을 개폐형으로 지으려면 1000억원 이상의 추가 공사 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래서 결론이 난 게 지금의 돔구장이다. 날씨 등의 영향을 받지 않아 좋지만 그래도 확 트인 시야의 야구장이 두고두고 그리울 것 같다. 고척 스카이돔이나, 도쿄돔에 갔을 때도 갑갑한 느낌이 많았다. 갇힌 야구는, 낭만이 없다.
10대 때는 ‘동경’이었다. 대학 때는 ‘해방구’였다. 그리고, 밥벌이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그런 잠실 하늘이 곧 닫힌다. 그 전에 하늘을, 노을을, 바람을 많이 담아놔야겠다. 흙도 한 줌 퍼서 보관하고. 굿바이 잠실, 굿바이 청춘.
김양희는 <한겨레> 스포츠 팀장이다. <대충 봐도 머리에 남는 어린이 야구 상식>, <인생 뭐, 야구>, <올림픽이 끝나면 패럴림픽이 시작됩니다>를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양희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장원영, #플레어유, #김남길, #손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