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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 워치 디렉터 장 아르노가 펼쳐낸 루이 비통 워치메이킹의 세계

루이 비통 워치메이킹을 향한 루이 비통 워치 디렉터 장 아르노의 끝없는 레이스.

프로필 by 이하민 2026.06.09
루이 비통의 워치 디렉터 장 아르노.

루이 비통의 워치 디렉터 장 아르노.

“열다섯 살 때부터 시계를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올 블랙 태그호이어 골프 워치를 주셨는데, 그 시계가 무척 마음에 든 나머지 매일같이 손목에 차고 다녔어요. 어찌나 오래 찼는지, 나중에는 손목에 시계 로고의 자국이 생길 정도였죠.” 그로부터 8년 후인 2021년, 태그호이어 연구소와 맥라렌 레이싱, 모건 스탠리를 차례로 거친 장 아르노는 루이 비통 워치의 시계 마케팅 및 개발 디렉터로 합류했다. 그리고 이듬해 2022년, 워치 디렉터로 정식 임명되면서 단숨에 럭셔리 시계 세계의 중심부로 뛰어들었다. “저는 늘 시계업계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대학 졸업 후 몇몇 매뉴팩처 공방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루이 비통 시계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죠. 그런데 직접 접해보니 완전히 매료됐어요. ‘여기라면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형제자매인 앙투안, 델핀, 알렉상드르, 프레데릭에 이어 가업에 뛰어든 아르노가 업무를 시작했을 당시, 루이 비통 시계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물론 시계의 품질 자체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패션 워치의 영역에 머물렀다. 그저 브랜드 확장을 위한 우아한 시도에 가까웠고, 아르노는 바로 이 지점을 바꾸는 것에 사명을 다했다. “우리 스스로는 제조사라고 불렀지만 사실 진정한 의미의 제조사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입사하자마자 브랜드 전략을 뒤엎기로 결심했죠. 외부에서 구매한 무브먼트를 조립하는 방식이 아닌, 전체 공정의 85%를 자체 생산하는 방향으로요.” 아르노의 지휘 아래 시계 공방은 필요한 수준의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대부분의 과정을 자체적으로 컨트롤했다. “처음 시작할 때 제 개인 컬렉션 시계를 직접 가져와 시계 장인들과 분해했어요. 제가 기대하는 품질 수준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를 실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죠. 엄청난 방향 전환이었죠.”

정교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루이 비통의 페인팅 기법.

정교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루이 비통의 페인팅 기법.

루이 비통의 상징적인 40mm 땅부르 컬렉션.

루이 비통의 상징적인 40mm 땅부르 컬렉션.

루이 비통이 첫 번째 땅부르 시계를 출시한 것은 2002년. 당시에는 쿼츠 무브먼트를 탑재했으며 가격대도 LV 홀드올 백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티그레이티드 스틸 브레이슬릿이 적용된 모델은 1만8000파운드가 넘는다. 약 6000파운드의 땅부르 스트리트 다이버처럼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의 모델도 있지만, 그 또한 결코 낮지 않다. 그리고 2003년, 루이 비통은 새로운 땅부르를 선보이며 그동안 생산해오던 약 130개의 시계 라인을 과감히 정리했다. 대신 스포티한 땅부르와 드레시한 에스칼, 두 가지 카테고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결과 화이트 골드 소재의 땅부르 타이코 스핀 타임 에어는 무려 7만9000파운드에 달한다.

“루이 비통 워치는 약 5년 앞을 내다봅니다. 지금은 2030년을 마무리하는 단계이죠. 저는 매출이나 생산량을 늘리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그룹 안에서도 아주 작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어요. 매출을 늘리려면 더 넓은 공간으로 이전하고 시계 장인도 더 채용해야만 하지만, 우리는 정해진 수량만큼만 시계를 만들죠. 제 기준은 ‘고급 시계’를 진심으로 아끼는 컬렉터들이 루이 비통 시계를 스스로 찾고 있는가입니다. 새 시계를 사든 빈티지를 사든 그건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LV 시계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봐주는 것이죠.”

이것이 만약 제네바의 어느 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이야기지만, LVMH에선 다른 이야기이다. 최고급 비쿠냐 원단만큼이나 확실함을 중시하는 곳이기 때문. 그러나 아르노는 이렇게 말한다. “제게는 루이 비통 워치가 니치한 존재로 남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수익을 내고 있고, 현재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요. 그러나 여기서 끝은 아니죠. 요즘 저희 컬렉터들은 루이 비통 시계를 샀다는 사실 자체를 자랑스러워해요. 대부분이 ‘대체 왜 그 시계를 샀어?’라고 묻거든요. 그러면 그들은 당당하게 시계를 손목에서 풀어 마감 처리와 세세한 디테일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보여주죠. 요즘은 다들 고급 시계 하나쯤은 차고, 자신이 시계에 대해 꽤 잘 안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진짜로 아는 사람들은 결국 우리 시계를 삽니다.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2011년 루이 비통은 스위스에 위치한 라 파브리크 뒤 떵(La Fabrique du Temps)을 인수했다. 비전 있는 마스터 워치메이커 미셸 나바스와 엔리코 바르바시니가 설립한 이 시설은 본래 다니엘 로스와 제랄드 젠타의 시계를 제작하던 곳이다. 현재 라 파브리크 뒤 떵 루이 비통(La Fabrique du Temps Louis Vuitton)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곳에서 루이 비통은 시계 제조 역량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렸다. 공간은 크게 라 파브리크 데 부아티에, 라 파브리크 데 카드랑, 라 파브리크 데 무브멍 세 곳으로 나뉘며, 조각·기요셰·에나멜링·미니어처 페인팅 같은 전통 기법과 최첨단 기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선보인다. 이 변화는 20세기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던 두 명망 있는 시계 브랜드, 다니엘 로스와 제럴드 젠타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르노는 지난해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 포 인디펜던트 크리에이티브’를 개최했다. 이 상을 통해 루이 비통은 스페인의 독립 워치메이커 라울 파헤스에게 라 파브리크 뒤 떵 1년 멘토십과 함께 상금을 수여했다. 파헤스는 피벗 디텐트 이스케이프먼트를 탑재한 우아하고 미니멀한 레귤레이터 아 데탕트 RP1을 선보이며 남다른 기술력을 증명했다.

나아가 2023년, 루이 비통은 시계 장인 렉젭 레제피의 아틀리에 아크리비아 간의 협업을 성사시켜 호평을 받았다. 올해 초에는 세계 최고의 시계 장인 중 한 명으로 널리 칭송받는 핀란드 출신의 마스터 워치메이커 카리 부티라이넨과 손잡고 LVKV-02 GMR 6를 탄생시켰다. 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핸드 피니시드 타임피스로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시계로 불리며 다이얼 하나를 완성하는 데만 무려 32시간의 정밀한 수작업이 필요하다. 이 모든 행보는 아르노가 워치메이킹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LV 시계 고객층이 조금씩 달라졌어요. 우리는 이미 롤렉스나 태그호이어를 보유한 워치 애호가들을 타깃으로 삼아왔죠. 지금 저의 숙제는 사람들에게 LV가 시계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루이 비통을 아는 사람들 중 우리가 시계를 만든다는 걸 실제로 아는 비율이 얼마나 될지 정말 궁금해요. 아마 굉장히 낮은 수치이겠죠.”

라 파브리크 뒤 떵 루이 비통에서 제작되는 루이 비통 타임피스.

라 파브리크 뒤 떵 루이 비통에서 제작되는 루이 비통 타임피스.

땅부르 시계의 기반이 되어준 초기 스케치 모습.

땅부르 시계의 기반이 되어준 초기 스케치 모습.

아르노의 행보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그가 누리는 창의적인 자유다. 오로지 시계 제조에만 전념하는 전통적인 브랜드였다면 아마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루이 비통이 만일 역사 깊은 시계 제조사였다면 그의 선택은 훨씬 제약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해본 적이 없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니엘 로스를 예로 들어볼게요. 순수한 시계 브랜드잖아요. 만약 제가 다니엘 로스로 인티그레이티드 스틸 스포츠 워치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브랜드를 망치는 거예요. 전혀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그런 자유는 애초에 없을 겁니다. 모든 결정에 훨씬 더 신중할 수밖에 없어요. 과감한 시도 하나가 브랜드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으니까요.” 럭셔리 업계가 현대 소비자들의 빠른 흐름을 따라잡는 데 고전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가격은 치솟고, 품질과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으며, LVMH도 그 여파에서 예외가 아니니까. 소비자들은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로고를 전면에 내세운 제품보다는 장인정신을 중심에 두는 곳으로 서서히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맞아요, 럭셔리의 위기입니다. 하지만 장인정신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단지 우리가 그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고,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루이 비통 워치에 처음 합류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아주 단순한 원칙 하나를 정하는 것이었어요. 시계 장인 한 명이 하나의 시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담해서 만드는 것이죠. 운영상 비효율적인 부분도 많지만, 만약 컬렉터가 우리 시계를 구매한 후 언젠가 공방을 방문한다면, 자신의 시계를 만든 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이죠.”

AI와 스마트폰, 갈수록 똑똑해지는 현대의 일상 속에서 손목시계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언제든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아르노가 루이 비통에서 만들고 있는 럭셔리한 타임피스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시계는 시대를 초월하는 물건입니다. 세대를 넘어 오래도록 지속되니까요. 저는 매일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에 대해 아무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정반대죠. 2~3년마다 바꿔야 한다는 것도 솔직히 굉장히 짜증스럽고요. 시계는 휴대폰 같은 도구가 아니에요. 경이로운 공학이고,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는 아름다운 물건입니다.”

“저는 여덟 살 아이와도 같아요. 비행기, 자동차, 시계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모두 다 수집하지 않지만, 시계는 수집해요. 보관하고 관리하기에 훨씬 실용적이고, 비용도 덜 들기 때문이죠. 저는 기계적인 것이라면 무엇이든 매료됩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기계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컴퓨터 없이도 물건이 어떻게 스스로 움직이고 작동하는지에 굉장히 관심이 많죠.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계는 정말 마법 같아요. 아트 디렉터가 시계를 스케치한 이후부터 제품이 론칭을 앞두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굉장히 수학적이에요.”

아르노는 태그호이어에 대한 남다른 애정뿐 아니라 F.P. 주른 같은 소규모 독립 브랜드에 대한 관심도 거침없이 드러낸다. 물론 파텍 필립도 빠지지 않는다(1950년대에 제작된 파텍 월드 타임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계로 꼽는다.) 반대로 자신이 절대 선택하지 않을 시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데 망설임이 없다.

“시계에서 비율이 맞지 않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민감해요. 2000년대 중반에 출시됐다가 이미 단종된 루이 비통 땅부르를 보면 알 수 있죠. 크로노그래프가 센터에 너무 바짝 붙어 있어요. 디자이너가 이 불균형한 비율을 어떻게든 숨기려 했던 거죠. 원래는 중간 아래 정도에 위치해야 해요. 센터에 저렇게 붙어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저는 꽤 확실한 편이죠. 제가 만약 시계업계에 있지 않았더라면 포뮬러 원에 한번 도전했을 것 같아요. 말 그대로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는 거잖아요. 아주 명확하고 단순한 세계죠. 제 머릿속은 항상 예스 아니면 노, 흑 아니면 백으로만 돌아가거든요. 포뮬러 원은 그런 저의 성격에 딱 맞아요.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의 세계이니까요. 저는 항상 팀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공방 운영 방식은 포뮬러 원처럼 해야 한다고요. 모든 것이 완벽하고, 효율적이고, 하나로 정렬되어 있어야 한다고요. 하지만 나사 하나하나를 손으로 직접 연마하는 18세기 시계 장인처럼 행동해야 하죠.” 그가 시계업계에서 보낸 첫 5년 동안 얻은 교훈은 이렇다. “팀원들이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도록 설득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지를 과소평가했어요. 반면 경영진을 설득하는 건 비교적 수월했죠. 몇 번의 회의로 결정이 났으니까요. 하지만 파리 팀 전체를 완전히 같은 방향으로 이끄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어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그리고 시간을 두고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모두가 정확히 이해하는 데 꼬박 6개월이 걸렸어요. 때로는 비즈니스에서 수학적인 사고가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매우 인간적이어야 하니까요.” 아르노는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루이 비통의 워치 파트를 이끌고 있다.

Credit

  • EDITOR TEO VAN DEN BROE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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