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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 만난 드리스 반 노튼, 패션 그 너머의 이야기

베네치아 산 폴로 지구에서 새롭게 문을 연 드리스 반 노튼 재단. 200여 점의 작품으로 시작한 첫 전시와 함께, 브랜드를 넘어 창작과 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프로필 by 박민진 2026.07.24
ⓒ Richard Stipl

ⓒ Richard Stipl

애초에 저는 평온한 삶을 원치 않았던 게 분명해요.

최근 몇 주간 베네치아의 산 폴로지구는 드리스 반 노튼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는 이곳에서 문화계 인사와 비엔날레 참여 작가, 예술가 그리고 수많은 방문객을 만났다. 이러한 일상은 사실 2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그는 1986년 설립한 자신의 브랜드를 이끌고 있었고, 2018년 푸이그 그룹에 매각한 이후에도 파리에서 벨기에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이제 그의 중심은 베네치아의 팔라초 피사니 모레타에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파트너 파트리코 반겔루웨(Patrick Vangheluwe)와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을 설립하면서 부터다.

재단의 개관전 <The Only True Protest Is Beauty>에는 사진, 유리 공예, 아상블라주, 가구, 주얼리, 오브제 등 작품 200여 점이 전시된다. 그중에는 의상도 있지만 드리스 반 노튼의 컬렉션은 포함하지 않았다. 재단은 앞으로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교육 프로그램, 음악과 미식 프로젝트까지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 패션은 30여 벌의 의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공동 큐레이터는 전설적인 리테일러인 헤르트 브륄로트(Geert Bruloot). 그는 올해 앤트워프 패션 박물관(MoMu)에서 벨기에 패션의 전설이 된 ‘앤트워프 식스’의 전시를 기획한 인물이기도 하다. 드리스 반 노튼 역시 그 신화의 주역이다. 어느덧 40년, 129번의 쇼를 마친 그는 이제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방식으로 다음 챕터를 써 내려가고 있다.



ⓒ Richard Stipl

ⓒ Richard Stipl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 리에르(Lier)의 집에서 정원과 꽃을 가꾸며 조용하게 은퇴 생활을 보내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네요.

디자이너로서 은퇴한다는 것은 ‘내 삶이 종착역에 다다랐다’는 기분을 줄 것 같아 두려웠어요. 그건 곧 끝을 의미하니까요. 게다가 저는 성격이 급해요. 10월에 리모델링을 위해 이전을 해야 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재단을 시작하고 싶었죠. 이미 제게는 충분한 에너지가 있다고 느꼈고, 그 가능성을 직접 시험해볼 기회가 필요했거든요.

무엇을 시험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장인정신은 자수부터 패턴 메이킹에 이르기까지 제 브랜드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이제는 내가 되돌려주어야 할 때다. 사람들을 연결하고 젊은 세대와 함께 일하자’라고요. 앤트워프의 제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직원들의 평균연령이 30세 미만이었거든요. 저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건 마치 올리브를 먹는 것과 같아요. 첫 알은 지독하지만 두 번째는 나쁘지 않고, 세 번째 알을 먹을 때쯤엔 완전히 중독되어 버리니까요.

올리브와 예술에 중독되신 거군요.

그리고 아름다움에도요.

화려한 무대가 그리운 것은 아닌가요?

제 커리어 내내 무대 위에 서 있었으니 이제는 기꺼이 무대 뒤를 택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재단 이름을 ‘피사니 모레타 재단’으로 할까 고민했어요. 제 이름을 내건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래서 전시에는 제 컬렉션을 포함하지 않았어요. 미래에는 또 모를 일이지만요.

오늘날의 드리스 반 노튼은 어떤 사람인가요?

가능한 한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동 큐레이터를 맡았지만 가을에는 음악 페스티벌을 개최할 예정이에요. 본질은 같아요. 다양한 재능과 분야를 연결하는 것이죠. 클래식 음악이 흐르다 10분 뒤에 포크 음악이나 오래된 베네치아 가곡이 나오면 왜 안 되나요? 전문 연주자와 악기를 배우는 아이가 같은 무대에 서도 좋지 않을까요? 제게 중요한 건 사람들이 품고 있는, 거의 광적이라 할 만큼 뜨거운 열정이에요.

패션이라는 틀이 좁게 느껴진 적은 없었나요?

전혀요. 패션은 결코 디자이너 혼자 만드는 일이 아니에요. 그 이면에는 장인의 손이 있고 사진가, 영상 감독, 조명 디자이너, 사운드 디렉터가 함께하죠. 그리고 예순이 되면서 패션 이외에도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벨기에에 재단을 세울까 생각했고 이후에는 이탈리아 로마나 피렌체를 고려했어요. 사실 베네치아는 너무 당연한 선택 같아 망설였죠. 클리셰 가득한 도시 같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와 보니 시장과 골목, 베네치아 사람들의 진짜 삶을 발견한 순간 알게 됐어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라는 걸요.

베네치아가 취약한 수중 도시라는 점에는 동의하시겠죠? 물에 잠길 위험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잠길 위험도 있죠.(웃음) 하지만 그것 또한 베네치아라는 도시가 품어온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도시가 여러 층위의 문화를 함께 품고 있다는 점이 좋아요. 오래된 귀족문화부터 국제 공동체, 그리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온 다양한 활동이 공존하죠. 요즘은 동네 사람들이 제게 자연스레 전화를 걸어 “오늘 볼까?” 하고 묻곤 해요. 어떠한 가식도, 계산도 없죠.

하지만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의 공간은 상당히 웅장한데요.

티에폴로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건물이지만 동시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품고 있어요. 처음에는 중립적인 전시 공간을 원했는데, 작품과 공간이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됐죠. 그래서 전시장 일부는 조도를 평소의 5% 미만 수준까지 낮췄어요. 섬세한 아카이브 의상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몇몇 벽화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면서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한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게 한계는 창의성에 불을 붙이는 불씨입니다. 사람은 한계를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기도 하죠. 모든 게 가능해지면 오히려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마찬가지로 패션도 모든 걸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에요. 옷은 착용과 세탁이 가능해야 하고, 최고 가격선이 정해져 있어야 하죠. 회사를 건강하게 경영해야 하고 컬렉션을 납기에 맞춰 납품해야 하니까요. 어떤 시즌에는 자수를 전혀 넣고 싶지 않았지만 인도의 자수 공방 장인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수천 개의 자수 피스를 주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책임감이죠. 자유는 늘 상대적인 법입니다.

재단을 운영하려면 시간과 비용은 물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텐데 지금 당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예술과 장인정신, 컬렉터블 디자인(Collectible Design)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문제를 외면할 생각은 없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밖에서는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거대한 비즈니스가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재단은 현재 푸이그와의 3년 파트너십을 비롯한 여러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고 새로운 협업도 계속 모색하고 있어요. 하지만 청년들이 후원금에 의존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구축해 주는 것이 중요하죠. 많은 이들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니까요. 예를 들어, 도자 조각을 만드는 카오리 쿠리하라(Kaori Kurihara)는 조수를 두지 않아요. 모든 작품이 본인의 직관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죠. 하지만 갤러리라면 더 많은 작품을 요구하겠죠.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구매자의 인식을 바꾸는 일입니다. 한 사람이 한 작품을 만드는 데 한 달을 쏟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그 가격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와 조부모 세대 역시 설득해야 합니다. 젊은 세대가 컴퓨터공학뿐 아니라 예술과 공예를 통해서도 충분히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요.

리하르트 스티플 작품 옆에 선 드리스 반 노튼. <The Only True Protest Is Beauty>는 베네치아 팔라초 피사니 모레타에서 열리는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의 첫 전시로, 10월 4일까지 이어진다. ⓒ Richard Stipl

리하르트 스티플 작품 옆에 선 드리스 반 노튼. <The Only True Protest Is Beauty>는 베네치아 팔라초 피사니 모레타에서 열리는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의 첫 전시로, 10월 4일까지 이어진다. ⓒ Richard Stipl

그래서 23세의 젊은 작가 조제프 아르주마노프(Joseph Arzoumanov)의 작품에 그토록 깊은 관심을 보이신 건가요?

그의 작품 중 로봇 체스판은 23명의 장인이 세밀한 작업을 더해 완성했는데, 실제 게임은 인공지능이 진행합니다. 이 작품은 단지 <왕좌의 게임>을 보며 자란 젊은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 조부모까지 3대 모두가 같은 기계 앞에서 함께 발걸음을 멈추고 작품에 똑같이 매료되는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예술과 공예 사이에는 위계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피카소가 도자기 하나를 만들면 그것은 예술이죠. 그런데 같은 도자기를 400점 만들고 그중 399점을 그의 공방에서 채색했다면 이것 또한 공예가 되는 걸까요?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요? 오늘날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인간의 창작과 디지털 지능의 관계입니다. 로봇공학, 3D 프린팅, 레이저 기술은 모두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도구예요. 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죠. 인간은 작업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방식을 바꾸고, 다듬었을 때 작품이 오히려 망가질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멈출 줄도 알죠. 하지만 컴퓨터는 끝까지 계속 작업을 이어갑니다.

첫 번째 전시는 재단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종의 명함이겠군요.

그렇다고 하나의 정해진 서사를 제시하는 전시는 아닙니다. 작가들은 제 호기심이나 우연한 인연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에요. 저는 갤러리 중심의 폐쇄적인 구조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물건도 함께 전시했고, 실제로 관람객이 앉을 수 있는 의자도 놓았죠.

그런데 몇몇 작가의 작품은 비교적 많은 비중으로 소개했습니다. 더 많은 작가를 초대해 각자의 작품을 조금씩 보여주는 방식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한 명의 작가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얼굴에 더 끌립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공간에서는 방 전체를 압도하고, 다른 공간에서는 하나의 디테일처럼 기능하기도 하니까요. 헨트 항구에서 나온 폐자재로 작업하는 페터 부겐하우트(Peter Buggenhout)를 예를 들어보죠. 1층 입구에는 거대한 회색 괴물 같은 작업이 놓여있지만 2층으로 올라가면 컬러풀한 아상블라주 작품이 크리스티앙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의 화려한 드레스 바로 옆에 나란히 놓여 있어요.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형태와 질감 같은 시각적 요소만은 아닙니다. 트라우마, 연약함, 공허 같은 더 깊은 주제로 이어져요. ‘인간은 결국 쇠퇴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메시지가 흐르다가도, 브루노 아마디(Bruno Amadi)가 만든 유리 나비가 등장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줘요. 플랑드르 정물화에서처럼 영혼이 영원을 향해 날아오르는 상징이죠.

ⓒ Vaclav Cigler

ⓒ Vaclav Cigler

그렇다면 모든 것이 아름다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질문을 던질 뿐 정답을 내리진 않아요. 누군가에겐 다소 거만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이곳을 나서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죠. 그리고 아름다움이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추함’은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이 문제는 부겐하우트와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는 처음에 이곳에서 전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에게 불편함, 나아가 혐오감까지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안에서 힘을 봅니다. 심지어 낭만이 느껴져요. 어쩌면 그가 가진 아름다움은 늘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스스로가 혐오라는 감정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죠.

전시 제목은 저항 가요의 대부 필 옥스(Phil Ochs)의 구절을 인용하셨더군요.

“이토록 추한 시대에 유일하고 진정한 저항은 아름다움이다(In such ugly times, the only true protest is beauty).” 세상은 탐욕으로 가득 차 있고, 아름다움은 그 반대편에 서 있기에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 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외면할 여유가 없습니다.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하지만, 슬픔 속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가자 지구에서 활동하는 신진 디자이너 아이함 하산(Ayham Hassan)이 말한 것처럼 말이죠.

아름다움은 때로 버거운 것이기도 한가요?

무게가 될 수도 있죠. 하지만 반드시 투쟁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단순한 순간에도 존재하죠.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대운하의 물결이 천장에 비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이 재단이야말로 당신이 남기고 싶은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유산을 논하기엔 전 아직 너무 젊어요.(웃음) 이제 막 시작했는걸요. 우선 우리가 가진 경제적, 문화적 가능성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 지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 나설 거예요.

ⓒ Richard Stipl

ⓒ Richard Sti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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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ASHION EDITOR Nil Piras
  • FEATURES EDITOR Margherita Malaguti
  • PHOTOGRAPHER Marco Cella
  • PRODUCTION Giorgia Affinito
  • PHOTO ASSISTANT Giulia Bottiani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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