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페스티벌 전성시대의 권태

페스티벌은 왜 늘 그 밥에 그 나물인가.

프로필 by 박세회 2026.08.05

음악 페스티벌 팬에게 한 해의 반환점은 7월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두 달 전 아시안 팝 페스티벌과 한 달 전 있었던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이미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지금은 아마 7월의 마지막 주일 것이다. 일본 깊은 산속에서 열리는 후지 록 페스티벌은 한 주 전에 끝났을 것이다. 이제 펜타포트에 갈 시간이다.

매년 똑같은 고민이다. 며칠 전 후지 록에서 본 매시브 어택을 한국에서 또 볼 필요가 있을까, 일요일 헤드라이너 픽시스 아저씨들은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대단하다고 하니 한 번 챙길까. 일요일 밤 집에는 어떻게 돌아갈까. 셔틀버스 타볼까, 아니면 차를 가져오는 데다가 술도 안 마시지만 록 음악은 좋아하는 페스티벌의 요정 같은 친구에게 한턱 낸다고 꾀어서 억지로 끌고 가볼까? 올해는 좀 덜 더우려나?

현장에서의 경험도 늘 똑같다. 페스티벌 사이트 오픈 시간에 맞춰 잽싸게 걸어 들어가 알맞은 공간에 돗자리를 펼친다. 허허벌판에서 굴러다녔던 옛날을 생각했다가는 뜨거운 여름날 붉게 달궈진 땅바닥에 앉아 더위를 식힌다. 머천다이즈는 이미 첫날 동이 난다. 디자인은 달라진 게 없고 평소에 입고 다닐 만큼 멋지지도 않다. 올해도 음악 페스티벌 출석부에 도장을 찍는 기분으로 기분을 내기 위해 지갑을 연다. 푸드코트와 맥주 부스의 줄은 사람 하나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길다.

그래, 원래 페스티벌은 음악을 들으러 오는 곳이지. 라인업의 절반은 다른 페스티벌에서 이미 본 이름이다. 그때 그 밴드, 그때 그 음악가, 그때 그 팬들이 다른 장소에서 옷만 바꿔 입고 똑같은 무대를 즐기고 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어이!’ 구호와 일단 몸부터 들이밀고 보는 슬램 광들은 여전하다. 해가 진 후 기꺼이 한국을 찾아준 해외 헤드라이너 무대라고 크게 다를 건 없다. 모든 가사를 다 따라 부를 정도로 지독하게 예습에 철저한 광신도들이 펜스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가운데 뒷자리에서는 그들만의 축제가 시작된다. 사실 엘링 홀란과 노르웨이 월드컵 대표팀의 노 젓기 응원전은 어떤 리듬에든 털썩 주저앉아 뱃놀이를 벌이는 한국 음악 페스티벌 맨바닥에서 힌트를 얻었다 카더라.

녹초가 되어버린 몸을 이끌고 페스티벌 사이트를 빠져나온다. 붐비는 퇴장 게이트 앞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셔틀버스 예매 내역 확인 시스템이 마비되어 고성이 오간다. 가로등이 닿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서는 전일권을 구매한 관객들이 게이트를 빠져나가며 당일권을 헐값에 사려는 사람들에게 차고 있던 입장 팔찌를 ‘양도’하는 은밀한 거래가 이뤄진다. 입장 게이트 쪽도 난리다. 내일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는 아이돌 스타의 팬들과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하는 한 밴드의 팬들이 ‘자리 맡기 금지’ 정책에 반발하며 밤을 새우겠다고 아우성치는 중이다. 인파를 뚫고 간신히 도착한 숙소 1층 편의점에는 모든 캔맥주가 동이 났다. 심각하게 고민해 본다. 내가 정말 이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나? 아무리 음악을 사랑한다 해도 음악이 내게 이런 고통을 요구한다면 그건 너무한 일이 아닐까? 내일 그냥 집에 가버릴까?

“관광지에 여행 가듯이 페스티벌을 즐기는 팬들이 많아졌습니다.” 국내 최대 페스티벌 정보 커뮤니티 ‘페스티벌라이프’의 대표 김조성은 20년간 국내 음악 축제를 다니며 지금만큼의 인기를 체감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2년 전 ‘당신이 록을 사랑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했을 때만 해도 록과 밴드 음악, 페스티벌에 대한 관심은 마니아층에 머물러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밴드 팬 페이지가 생기고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며 취향이 맞는 동료를 찾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작지만 공동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모여서 팬덤을 이루더라고요. 빅 밴드 하나가 나오기보다는, 소규모 팬덤을 지닌 밴드들이 많아지며 신(scene)이 커지고 있어요.” 유튜브 13만 구독자를 보유한 록 음악 콘텐츠 크리에이터 ‘온에잇’의 운영자 박민하의 이야기대로 오늘날 페스티벌은 크고 작은 집단의 집결지다. 개인 인스타그램으로 출발해 매거진의 이름을 달고 아티스트들을 인터뷰하는 새로운 형태의 매체, 페스티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친분을 다지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재수 없게 취재 비표를 달고 현장을 돌아다니는 나 같은 음악 관계자들. “무대가 중요한 사람, 무대 뒤편에서 노는 사람, 체험이 중요한 사람 등 관객의 목표가 매우 세분되어 있어요.” 밴드 음악 관련 만화를 소개하며 인스타그램 3.5만 팔로워를 보유한 ‘바리’ 채널의 운영자이자 ‘써머타임 신데렐라’를 연재 중인 정수연 작가의 관찰이다.

사람 없는 성당처럼 휑했던 과거 페스티벌의 추억은 이젠 잊어도 될 것 같다. 내년에도 이 행사가 계속될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목소리는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문제는 페스티벌이 너무 많다는 점, 그리고 다 비슷하다는 점이다. 어떤 페스티벌을 가도 대단히 새롭거나 즐거운 경험으로 남는 경우가 드물다. 매번 동일한 장소에서 며칠 전, 몇 달 전에 봤던 밴드가 똑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이제 내겐 애써 뛰어들 만큼 많은 사랑이 남지 않았다. 심지어 페스티벌 단골로 손꼽히는 몇몇 밴드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동안 세트리스트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연주하기도 한다. 의식주의 다양성은 턱없이 부족하다. 푸드코트의 헤드라이너는 매년 ‘김말국(김치말이국수)’이다. 페스티벌이 몇십 주년이 되어 관록이 쌓였을 텐데, 올해는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이 성사되어 다를 법도 한데, 제대로 활용하는 법이 잘 없다. “공연이 많이 열리는데 그게 전부인 경우가 많아요. 적당한 곳에 앉아 하염없이 휴대폰만 보게 되죠.” 김조성 대표는 지난해 20주년을 맞은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을 맞아 관객 인터뷰와 소장품 전시 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런 색다른 행사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국내 페스티벌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밴드 붐이 왔다고 왁자지껄하는데, 현실은 이렇다. 히트곡으로만 유행을 체감하는 대중에게 록의 유행은 점진적인 신의 성장이 아니라 데이식스와 한로로 등 알고리즘을 타는 밴드들의 사건으로만 기억된다. 인스타그램 추천 게시물과 유튜브 직캠을 챙겨 보는 팬에게 페스티벌 현장은 신의 성장을 체감할 수 있는 유일한 현장이다. 시장은 커졌는데, 정작 꼭대기는 변하지 않는다. 잔나비, 실리카겔, 혁오, 검정치마, 자우림이 로테이션을 돌며 국내 페스티벌 라인업을 채운다.

빈자리를 국내 음악가로 메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페스티벌의 성패는 해외 헤드라이너로 결정된다. 얼마나 유명하고 기세가 좋은 음악가인지, 전성기가 훌쩍 지났지만 록 꼰대들이 노구를 이끌고 고개를 끄덕이며 감격할 수 있는 전설적인 밴드인지가 중요하다. 슬프게도 이 음악가들은 한국에 단독으로 올 일이 없다. 한국 팝 음악 시장은 단독으로 매시브 어택을 소화할 만큼, 그러니까 경비를 다 내고 출연료를 주고도 돈을 남길 수 있을 만큼 덩치가 크지 않다. 대부분 내한 공연은 일본 일정의 부산물이다. 한국에 오는 아티스트들의 대부분은 후지 록에 오니까, 서머소닉에 서니까, 월드 투어 일정에 일본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 김에 거마비로도 모자란 비용을 받고 한국에 겸사겸사 들러 주는 고마운 분들이다.

최근에는 지난해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을 방문한 스매싱 펌킨스의 빌리 코건처럼 자녀 세대가 케이팝에 관심이 많아서 약간의 섭외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나, 돈의 논리를 이길 수는 없다. 심지어 요즘은 일본 페스티벌조차 아티스트 섭외에 애를 먹고 있다. 비단 일본이 아니라 전 세계 페스티벌들이 다 어렵다. 단독 투어만으로 쏠쏠한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인기 음악가들에게 정해진 시간에 맞춰 세트리스트를 조절하고 무대장치도 제대로 다 활용하지 못하는 페스티벌 무대는 매력적이지 않다.

이런 속사정까지 음악 팬들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최근 몇 년간 페스티벌 관계자들을 만나면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익명의 가면을 쓴 소수 ‘페스티벌 팬’들이 활발하게 온라인에 발산하는 혐오와 선동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좀 더 유명한 가수를 데려오라며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깎아내리는 악성 댓글이 그렇게 많은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조금만 온라인 공지가 늦거나 약간의 심기를 거스르는 딱딱한 안내라고 느껴지면 무자비한 비판이 이어진다. 내가 응원하는 가수의 공연만 보고 싶은 마음에 팔찌를 교환하는 ‘분철’(그렇게 부른다)이나 양도가 오픈 채팅방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거래되는 장면은 기괴하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실무자의 증언을 옮겨본다. “접수되는 민원이 100건이면 100건 전부 당장 환불하겠다고 나오니 별수가 없어요.”

공간도 문제다. 올림픽공원, 송도달빛축제공원, 삼락생태공원을 돌고 돈다.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뷰티풀 민트 라이프는 최악의 인구 과밀 사태에 신음했다. 좁은 땅에서 한정된 베뉴를 나눠 쓰는데 관객은 늘고 축제는 더 많이 생긴다. 페스티벌 신의 베테랑들은 10년 전 풍경이 겹쳐간다고 입을 모으다. 당시에도 수많은 페스티벌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각양각색 매력으로 음악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중 지금까지 열리고 있는 행사는 극히 드물다.

탈출이 해답이 될까. 철원 고석정에서 열리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쾌적한 자연환경과 개성 있는 음악의 균형을 갖춘 축제다. 이번 칼럼을 위해 인터뷰한 관계자 중 대다수가 가장 즐거운 페스티벌 경험으로 DMZ를 꼽았다. 파라다이스 문화재단과 함께 파라다이스시티 일대에서 개최하는 아시안 팝 페스티벌, 갯벌이 펼쳐진 짱뚱어 해수욕장 일대의 더 그레이트풀 캠프, 제주 함덕 해수욕장의 무료 축제 스테핑 스톤, 숲속 일렉트로닉 언더그라운드 페스티벌 디 에어하우스도 주목받는다.

DMZ 이수정 음악 감독은 다양한 즐길 거리 가운데서도 음악과 무대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디테일을 소개했다. 첫날 전야제 무대를 무료로 개방해 축제 분위기를 만들고 관객들의 입장 시간 이후 공연 시작 시각을 여유 있게 잡아 첫 무대를 놓치지 않게 하는 타임테이블을 세팅한다.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철원 노동당사에서 열린 오전 공연을 위해서는 관객들의 편의를 위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운용했다. 결국 어떻게든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아주 기본적인 마음이 페스티벌의 성패를 가른다. 빗발치는 요구와 각자 다른 해석, 가지각색의 목적에도 결국 음악은 사람을 모은다. 나는 올해도 음악을 들으려 페스티벌에 간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김도헌은 음악 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던 대중음악 평론가로,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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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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