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인의 손끝에 남은 가장 소중한 워치와 주얼리
직업도, 삶의 방식도 다른 아홉 명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워치와 주얼리.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물건에는 각자의 기억과 취향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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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ng Yoonho
키드밀리
」래퍼
나에게도 도끼와 빈지노, 더콰이엇이 이끌던 일리네어 레코즈를 동경하며 멋진 랩 스타를 꿈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 그들은 앰비션 뮤직에 새로 입단한 래퍼들에게 기꺼이 롤렉스를 선물하기도 했다. 클래식한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그 시계를 본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도 저런 사람이, 저런 랩 스타가 되어야지. 내 사람에게 저 정도는 선물할 줄 아는 그런 사람.’ 다짐을 품고 살기를 몇 년, 나는 정말 꽤 괜찮은 래퍼가 되었고 이제는 나를 믿고 따르는 동생들도 생겼다. 내게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이었던 POV를 준비하며, 오카시와의 결의를 뜨겁게 다지기 위해 롤렉스를 샀다. 그리고 다비드 아발론에 의뢰해 다이얼 위에 다이아몬드를 풀 파베로 세팅했다. 오래가자, 이 시계처럼 멋있게, 우리 식으로.
윤순근
」PR 마케팅 에이전시 태리스컴퍼니 대표
사건은 이제 막 패션에 눈뜨기 시작한 고등학생 시절부터 어머니의 보석함을 구경하는 취미가 있던 내가 성인이 되며 벌어졌다. 나이트클럽에 가서 마음껏 춤추고 마실 수 있는 그런 성인. 어머니의 보석함엔 신기한 게 많았다. 커다란 보석 반지부터 섬세하게 세공된 다이아 이어링, 스톤 네크리스가 즐비했다. 그 수많은 주얼리 가운데 내가 가장 눈여겨보았던 게 바로 이태리에서 들여왔다는 이 삼색 금 체인 주얼리 세트였다. 옐로와 화이트, 로즈 골드 피스가 줄지어 연결되어 있는데,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 움직일 때마다 섹시한 광택이 돌았다. 이런 주얼리라면 클럽 안에서 나를 가장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 같았다. 참지 못하고 이 체인 주얼리를 풀 세트로 차고 나간 어느 날, 어찌나 신나게 흔들었는지 집에 돌아와보니 이어링은 없었다. 참 많이 혼났지만 결국 어머니는 이 주얼리들을 내게 선물했다. 볼 때마다 철없는 클러버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조세라
」쇼 주얼리 디렉터
우리 아버지는 특이하신 분이었다. 이렇게 유별난 반지를 약혼반지로 덥석 사버리는 남자는 흔치 않으니까. 그 당시 보통의 약혼반지라 함은 깔끔한 디자인에 다이아가 한 알 세팅되어 있거나, 혹은 아예 없거나. 그게 관례였다. 엄마는 이 약혼반지를 보고 아빠와의 결혼을 결심하셨다고 했다. 꽃다발을 한 아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고. 백금에 계란처럼 반질반질한 오팔을 위아래로 세팅하고 다이아몬드로 잎사귀를 채운 아르누보풍 디자인. 지금 이런 반지는 어디서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거다. 가끔 이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아버지의 도전 정신에 대해 생각한다. 그럼 안 풀리던 디자인이 불현듯 떠오르는, 나에겐 토템 같은 반지다.
신예권
」다비드 아발론 디렉터
클래식한 디자인에 커다란 다이얼, 묵직한 착용감. 까르띠에 산토스 100 XL은 내 오랜 드림 워치였다. 아직도 클라우드에 들어가면 2012년, 그러니까 중학생 때부터 모아둔 산토스 워치의 사진이 남아있을 정도다. 주얼러로 일한 지 7년, 처음 이 산토스 100주년 한정판 워치를 손에 쥐던 날 얼마나 기뻤는지. 감정의 동요가 없는 편인데도 손목을 볼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를 위한 커스텀 주얼리를 만드느라 쉴 새 없이 달려온 나를 위해 이 시계 위에 보석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화이트 다이아몬드 약 2,000개를 마이크로 파베 세팅하고, 더블 프롱으로 튼튼하게 고정했다. 여기 올라간 다이아는 모두 내가 누군가의 주얼리 위에, 또는 시계 위에 올려주고 남은 것들이다. 누군가의 꿈과 행복이 올려진 시계. 이 시계를 보면 내 모공보다도 작은 다이아를 한 알 한 알 잡고 올리기를 반복하며, 성공을 꿈꾸던 그때가 떠오른다.
김보아
」빈티지드롭 대표
1990년, 엄마는 본인이 가장 예뻤던 시절에 이 목걸이를 샀다고 했다. 팔로마 피카소가 디자인한 티파니의 말라카이트 토르사드 네크리스. 사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 네크리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록색 비취가 주렁주렁 달린 게 너무 할머니 같다고 생각했다. 이 네크리스를 다시 보게 된 건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날, 엄마의 주얼리 컬렉션을 보고 자란 내가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마케터가 된 후의 일이다. 수많은 피스를 들여다보고 연구하며 그제야 이 주얼리가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건지, 엄마의 안목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깨달았다. 이제 나는 빈티지 주얼리를 발굴하고, 한국에 들여오는 일을 한다. 빈티지드롭을 브랜딩하며 고민되는 지점이 많았지만 단 한 가지는 명확했다. 선명한 초록빛의 키 컬러. 내게 하이 주얼리라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엄마의 이 목걸이는 늘 오피스의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변함없이 고고한 모습으로.
신재은
」지예신 브랜드 매니저
외할머니께서는 종종 가까운 친척분이 운영하던 금속 공방에서 원하는 장신구를 주문 제작했다. 할머니는 유행을 따르기보다 오래도록 착용할 수 있는 클래식한 주얼리,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디자인을 좋아하셨다. 선명한 푸른빛의 라피스 반지, 진주가 달린 포도 브로치, 그리고 늘 착용하시던 헤링본 체인… 외할머니가 남긴 주얼리들은 지금 우리 자매가 이끄는 지예신(Jiye Shin)의 가장 개인적인 원천이 됐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영감으로 만든 우리의 주얼리를 보며 외할머니와 그녀의 신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녀가 사랑했던 변치 않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지금 우리의 컬렉션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한 사람의 기억이 되고, 세대를 넘어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는 주얼리를 만드는 일. 그게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조기훈
」조실버 디렉터
참 즐거운 세상이다. 조실버와 사람 조기훈을 좋아해주는 팬들이 가끔 라이브 방송이나 네이버 카페에 찾아오곤 하는데, 그중 유독 자주 놀러 오시는 분들(우리는 이분들을 간부님이라 부른다)을 위해 만든 훈장과도 같은 배지다. 너무 멋 부린 간부는 별로인 것 같아 일부러 모양은 멍청하게 생긴 아메리칸 해골을 본떴다. 실버 925를 문질러 빈티지한 질감을 만들고, 눈과 이빨은 빨간 에나멜로 대충 칠했다. 그래도 예쁜 날개를 덧붙이는 건 잊지 않았다. 마치 롤스로이스의 천사 마크나 벤틀리의 B 날개, 제네시스의 윙처럼 아름답게. 이 배지의 이름은 데드엔피스. ‘살아 있는 동안 쉬지 마라’라는 의미다. 쉬지 말고 조실버에 놀러 오라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런 나날이 반복되고 있다.
정백석
」렉토 & 리지 디렉터
오랜 시간 브랜드의 디렉터로 지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무얼 위해 일하는가. 렉토를 튼튼한 브랜드로 키워낸 다음 스텝은? 그래서 준비한 게 리지였다. 좀 더 편안하고 캐주얼하게 입을 수 있는, 그러나 렉토의 애티튜드는 잃지 않은 그런 옷들을 만들겠다는 결심이었다. 하지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면서 내 몸과 마음은 누적된 피로로 지치고 병들어갔다. 몸이 두 개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까르띠에 3-체인 트리니티 네크리스는 딱 그 시기에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선물 받은 목걸이다. 충성을 뜻하는 옐로 골드와 우정을 뜻하는 화이트 골드, 사랑을 뜻하는 로즈 골드 빛 체인을 하나의 네크리스로 엮은 디자인, 지금은 나오지 않는 제품. 선물 받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 네크리스를 매일 차고 있다. 이 목걸이는 내게 위로다.
김민지
」efg 프로덕션 대표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초현실적 미감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은 주얼리를 고르는 안목에도 이어진다. 심플한 디자인보다는 형태가 있는 것에, 착용하지 않아도 오브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얼리에 마음이 간다. 애니멀 주얼리를 모으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나의 첫 애니멀 주얼리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브랜드의 아주 작은 뱀 모양 이어링. 4년 전, 10 꼬르소 꼬모에서 이 주얼리를 발견한 뒤로 뱀을 향한 여정이 시작됐다. 어느 날은 부모님께서 우리 세 자매를 위한 반지를 고민 중이라고 하기에 주저 없이 불가리 세르펜티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어디에 데려다 놔도 통통 튀는 디자인과 매혹적이고 날렵한 비늘. 우리 동생들처럼 예쁜 모습이었다. 중요한 미팅이나 PT가 있는 날에는 무조건 이 세르펜티 링과 투보가스 워치를 함께 착용한다. 그럼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Credit
- EDITOR 성하영
- PHOTOGRAPHER 표영민
- ASSISTANT 박예림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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