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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취향이 담긴 시계와 주얼리

직업도, 삶의 방식도 다른 아홉 명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워치와 주얼리.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물건에는 각자의 기억과 취향이 담겨 있습니다.

프로필 by 성하영 2026.08.17
© Yang Yoonho

© Yang Yoonho

「

키드밀리

」

래퍼

나에게도 도끼와 빈지노, 더콰이엇이 이끌던 일리네어 레코즈를 동경하며 멋진 랩 스타를 꿈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 그들은 앰비션 뮤직에 새로 입단한 래퍼들에게 기꺼이 롤렉스를 선물하기도 했다. 클래식한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그 시계를 본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도 저런 사람이, 저런 랩 스타가 되어야지. 내 사람에게 저 정도는 선물할 줄 아는 그런 사람.’ 다짐을 품고 살기를 몇 년, 나는 정말 꽤 괜찮은 래퍼가 되었고 이제는 나를 믿고 따르는 동생들도 생겼다. 내게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이었던 POV를 준비하며, 오카시와의 결의를 뜨겁게 다지기 위해 롤렉스를 샀다. 그리고 다비드 아발론에 의뢰해 다이얼 위에 다이아몬드를 풀 파베로 세팅했다. 오래가자, 이 시계처럼 멋있게, 우리 식으로.




「

윤순근

」

PR 마케팅 에이전시 태리스컴퍼니 대표

사건은 이제 막 패션에 눈뜨기 시작한 고등학생 시절부터 어머니의 보석함을 구경하는 취미가 있던 내가 성인이 되며 벌어졌다. 나이트클럽에 가서 마음껏 춤추고 마실 수 있는 그런 성인. 어머니의 보석함엔 신기한 게 많았다. 커다란 보석 반지부터 섬세하게 세공된 다이아 이어링, 스톤 네크리스가 즐비했다. 그 수많은 주얼리 가운데 내가 가장 눈여겨보았던 게 바로 이태리에서 들여왔다는 이 삼색 금 체인 주얼리 세트였다. 옐로와 화이트, 로즈 골드 피스가 줄지어 연결되어 있는데,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 움직일 때마다 섹시한 광택이 돌았다. 이런 주얼리라면 클럽 안에서 나를 가장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 같았다. 참지 못하고 이 체인 주얼리를 풀 세트로 차고 나간 어느 날, 어찌나 신나게 흔들었는지 집에 돌아와보니 이어링은 없었다. 참 많이 혼났지만 결국 어머니는 이 주얼리들을 내게 선물했다. 볼 때마다 철없는 클러버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

조세라

」

쇼 주얼리 디렉터

우리 아버지는 특이하신 분이었다. 이렇게 유별난 반지를 약혼반지로 덥석 사버리는 남자는 흔치 않으니까. 그 당시 보통의 약혼반지라 함은 깔끔한 디자인에 다이아가 한 알 세팅되어 있거나, 혹은 아예 없거나. 그게 관례였다. 엄마는 이 약혼반지를 보고 아빠와의 결혼을 결심하셨다고 했다. 꽃다발을 한 아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고. 백금에 계란처럼 반질반질한 오팔을 위아래로 세팅하고 다이아몬드로 잎사귀를 채운 아르누보풍 디자인. 지금 이런 반지는 어디서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거다. 가끔 이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아버지의 도전 정신에 대해 생각한다. 그럼 안 풀리던 디자인이 불현듯 떠오르는, 나에겐 토템 같은 반지다.




「

신예권

」

다비드 아발론 디렉터

클래식한 디자인에 커다란 다이얼, 묵직한 착용감. 까르띠에 산토스 100 XL은 내 오랜 드림 워치였다. 아직도 클라우드에 들어가면 2012년, 그러니까 중학생 때부터 모아둔 산토스 워치의 사진이 남아있을 정도다. 주얼러로 일한 지 7년, 처음 이 산토스 100주년 한정판 워치를 손에 쥐던 날 얼마나 기뻤는지. 감정의 동요가 없는 편인데도 손목을 볼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를 위한 커스텀 주얼리를 만드느라 쉴 새 없이 달려온 나를 위해 이 시계 위에 보석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화이트 다이아몬드 약 2,000개를 마이크로 파베 세팅하고, 더블 프롱으로 튼튼하게 고정했다. 여기 올라간 다이아는 모두 내가 누군가의 주얼리 위에, 또는 시계 위에 올려주고 남은 것들이다. 누군가의 꿈과 행복이 올려진 시계. 이 시계를 보면 내 모공보다도 작은 다이아를 한 알 한 알 잡고 올리기를 반복하며, 성공을 꿈꾸던 그때가 떠오른다.




「

김보아

」

빈티지드롭 대표

1990년, 엄마는 본인이 가장 예뻤던 시절에 이 목걸이를 샀다고 했다. 팔로마 피카소가 디자인한 티파니의 말라카이트 토르사드 네크리스. 사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 네크리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록색 비취가 주렁주렁 달린 게 너무 할머니 같다고 생각했다. 이 네크리스를 다시 보게 된 건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날, 엄마의 주얼리 컬렉션을 보고 자란 내가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마케터가 된 후의 일이다. 수많은 피스를 들여다보고 연구하며 그제야 이 주얼리가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건지, 엄마의 안목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깨달았다. 이제 나는 빈티지 주얼리를 발굴하고, 한국에 들여오는 일을 한다. 빈티지드롭을 브랜딩하며 고민되는 지점이 많았지만 단 한 가지는 명확했다. 선명한 초록빛의 키 컬러. 내게 하이 주얼리라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엄마의 이 목걸이는 늘 오피스의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변함없이 고고한 모습으로.




「

신재은

」

지예신 브랜드 매니저

외할머니께서는 종종 가까운 친척분이 운영하던 금속 공방에서 원하는 장신구를 주문 제작했다. 할머니는 유행을 따르기보다 오래도록 착용할 수 있는 클래식한 주얼리,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디자인을 좋아하셨다. 선명한 푸른빛의 라피스 반지, 진주가 달린 포도 브로치, 그리고 늘 착용하시던 헤링본 체인… 외할머니가 남긴 주얼리들은 지금 우리 자매가 이끄는 지예신(Jiye Shin)의 가장 개인적인 원천이 됐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영감으로 만든 우리의 주얼리를 보며 외할머니와 그녀의 신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녀가 사랑했던 변치 않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지금 우리의 컬렉션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한 사람의 기억이 되고, 세대를 넘어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는 주얼리를 만드는 일. 그게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

조기훈

」

조실버 디렉터

참 즐거운 세상이다. 조실버와 사람 조기훈을 좋아해주는 팬들이 가끔 라이브 방송이나 네이버 카페에 찾아오곤 하는데, 그중 유독 자주 놀러 오시는 분들(우리는 이분들을 간부님이라 부른다)을 위해 만든 훈장과도 같은 배지다. 너무 멋 부린 간부는 별로인 것 같아 일부러 모양은 멍청하게 생긴 아메리칸 해골을 본떴다. 실버 925를 문질러 빈티지한 질감을 만들고, 눈과 이빨은 빨간 에나멜로 대충 칠했다. 그래도 예쁜 날개를 덧붙이는 건 잊지 않았다. 마치 롤스로이스의 천사 마크나 벤틀리의 B 날개, 제네시스의 윙처럼 아름답게. 이 배지의 이름은 데드엔피스. ‘살아 있는 동안 쉬지 마라’라는 의미다. 쉬지 말고 조실버에 놀러 오라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런 나날이 반복되고 있다.




「

정백석

」

렉토 & 리지 디렉터

오랜 시간 브랜드의 디렉터로 지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무얼 위해 일하는가. 렉토를 튼튼한 브랜드로 키워낸 다음 스텝은? 그래서 준비한 게 리지였다. 좀 더 편안하고 캐주얼하게 입을 수 있는, 그러나 렉토의 애티튜드는 잃지 않은 그런 옷들을 만들겠다는 결심이었다. 하지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면서 내 몸과 마음은 누적된 피로로 지치고 병들어갔다. 몸이 두 개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까르띠에 3-체인 트리니티 네크리스는 딱 그 시기에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선물 받은 목걸이다. 충성을 뜻하는 옐로 골드와 우정을 뜻하는 화이트 골드, 사랑을 뜻하는 로즈 골드 빛 체인을 하나의 네크리스로 엮은 디자인, 지금은 나오지 않는 제품. 선물 받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 네크리스를 매일 차고 있다. 이 목걸이는 내게 위로다.




「

김민지

」

efg 프로덕션 대표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초현실적 미감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은 주얼리를 고르는 안목에도 이어진다. 심플한 디자인보다는 형태가 있는 것에, 착용하지 않아도 오브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얼리에 마음이 간다. 애니멀 주얼리를 모으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나의 첫 애니멀 주얼리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브랜드의 아주 작은 뱀 모양 이어링. 4년 전, 10 꼬르소 꼬모에서 이 주얼리를 발견한 뒤로 뱀을 향한 여정이 시작됐다. 어느 날은 부모님께서 우리 세 자매를 위한 반지를 고민 중이라고 하기에 주저 없이 불가리 세르펜티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어디에 데려다 놔도 통통 튀는 디자인과 매혹적이고 날렵한 비늘. 우리 동생들처럼 예쁜 모습이었다. 중요한 미팅이나 PT가 있는 날에는 무조건 이 세르펜티 링과 투보가스 워치를 함께 착용한다. 그럼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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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성하영
  • PHOTOGRAPHER 표영민
  • ASSISTANT 박예림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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