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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비싼 블루 다이아몬드는 얼마일까? 경매장의 기록과 숨겨진 이야기

희소성과 가치가 교차하는 하이 주얼리 경매의 세계.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부터 치열한 경쟁의 순간, 그리고 베일에 싸인 컬렉터들의 이야기까지 살펴봅니다.

프로필 by 박민진 2026.08.18
세계에서 가장 비싼 블루 다이아몬드로 알려진 오펜하이머 블루. 2016년 5월 스위스 제네바 크리스티 경매에서 5683만7000스위스프랑(한화 약 685억원)에 낙찰되며 당시 보석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블루 다이아몬드로 알려진 오펜하이머 블루. 2016년 5월 스위스 제네바 크리스티 경매에서 5683만7000스위스프랑(한화 약 685억원)에 낙찰되며 당시 보석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주얼리 경매

2018년 가을, 제네바 소더비 경매장에 두 세기 넘게 자취를 감추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천연 진주 펜던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내에 감돌던 팽팽한 정적도 잠시, 객석과 전화선 양쪽에서 호가가 치솟으며 추정가 상한선 200만 달러는 순식간에 무의미해졌다. 탕, 탕. 낙찰봉이 내려왔을 때 전광판에 찍힌 숫자는 3640만 스위스프랑, 당시 한화로 약 408억원에 달했다. 추정가를 열여덟 배나 웃도는 이 진주의 새 주인은 하이디 호르텐. 오스트리아의 전설적인 컬렉터였다.

5년 뒤, 이 이름은 정반대의 사연으로 다시 회자된다. 2022년 6월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반세기에 걸쳐 수집한 700점의 하이 주얼리가 이듬해 크리스티 제네바 경매에 출품된 것이다. 그중 최고가 후보로 꼽힌 것이 ‘선라이즈 루비’였다. 2015년 호르텐이 3042만 달러에 낙찰받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루비로 기록됐던 스톤이다. 그러나 2023년 5월의 낙찰가는 8년 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60만 달러에 그치고 말았다. 경매를 보름 앞두고 <뉴욕 타임스>가 호르텐의 작고한 남편이 나치에 부역한 이력을 대서특필한 탓이었다.

호르텐의 손을 거쳐 간 두 젬스톤의 희비를 가른 건 중량이나 투명도 같은 물리적 조건이 아니었다. 본질은 서사였다. 하나는 정략결혼으로 프랑스에 건너와 단두대에서 생을 마친 왕비의 유품이라는 내력 덕에 추정가의 열여덟 배에 낙찰됐고, 다른 하나는 컬렉션에 얽힌 오명 탓에 8년 전 가격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물론 이런 극적인 내력을 지닌 피스는 드물다. 경매는 본질적으로 2차 시장이다. 상속 정리나 급한 유동성 확보 같은 사정으로 나온 출품작 대부분은특별한 사연 없이 새 주인을 찾아갈 뿐이다. 그런데도 구매자가 낙찰가의 4분의 1에 달하는 수수료를 더 지불하면서까지 이 시장을 찾는 이유는 크리스티와 소더비라는 공신력에 있다. 주얼리 시장은 진품 여부, 산지, 가공 이력까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정보 격차가 크다. 경매사는 바로 이 비대칭을 메우는 중개자다. 서사와 산지의 정통성, 브랜드 가치가 어떻게 가격으로 치환되는지도 이 신뢰 구조에서 출발한다.


2026년 5월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매그니피슨트 주얼스 경매 현장.

2026년 5월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매그니피슨트 주얼스 경매 현장.

가격의 문법

고가의 하이 주얼리가 경매 도록에 오르기까지는 꽤 까다로운 단계를 밟는다. 컬렉터나 유산 상속인이 소더비, 크리스티 같은 경매사에 소장품을 위탁하면, 전문가들이 먼저 사진과 자료로 메이커와 프로버넌스(소장 이력), 상태를 살펴 출품작을 선별한다. 이 관문을 통과한 물건에만 경매사는 거래 예상가인 추정가와 함께 위탁자가 부담할 판매 수수료율을 제안한다. 대개 낙찰가의 10퍼센트 안팎이다. 조건에 합의하면 본격적인 검증과 리포트 확인 절차가 이어진다. 특히 루비나 사파이어는 산지와 열처리 여부가 가치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스위스의 귀블린(Gübelin)과 SSEF, 미국의 AGL 같은 권위 있는 기관의 감별 리포트에 ‘비가열’이나 ‘버마산’이라는 소견이 명시되면, 스톤의 거래가는 평범한 스톤의 몇 배 이상으로 치솟는다. 최고가 라인인 매그니피슨트 주얼스 경매에서는 이러한 글로벌 명성의 리포트 없이는 출품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초고가 스톤일수록 감별 기관을 달리한 서너 장의 리포트가 훈장처럼 나란히 붙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절차가 응찰자의 판단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경매사는 그 판단에 필요한 근거를 빠짐없이 갖춰 신뢰를 제공할 따름이다.

감별을 마친 주얼리는 도록에 실려 홍콩, 런던, 제네바 등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전시장에서 예비 응찰자들과 만난다. 도록에 실린 사진이 아무리 선명해도, 눈앞에서 실제 광채와 색의 깊이를 확인하는 과정은 생략할 수 없다. 이때 도록의 행간을 읽어내는 안목도 필요하다. 경매사가 제시하는 추정가는 더 많은 사람의 소유욕을 자극하려고 일부러 시장가보다 낮게 책정한 유인책에 가깝다. 실제로 2026년 5월 크리스티 홍콩 매그니피슨트 주얼스 경매는 낙찰가가 추정가 하한선을 129% 웃돌며 마감됐다. 이 경매의 최고가 낙찰작은 비취 구슬 61개를 꿴 목걸이로, 약 391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만약 문구 중에 ‘in the style of Cartier’ 같은 표현이 섞여 있다면, 까르띠에 스타일로 제작된 디자인이라는 뜻. 경매사가 정품 보증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완곡한 표시다. 이름난 브랜드의 각인은 분명 가치를 배가하는 요인이지만, 그 이름값 탓에 위조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각인 하나에 현혹되지 말고 세공의 완성도와 출처 서류를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다.

경매 당일, 시작가는 대개 추정가보다 낮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출발선이 낮아야 ‘어쩌면 나도’ 하는 기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응찰자들의 미묘한 마음을 움직여 판을 키우는 것, 경매장이 시작가를 낮게 잡는 진짜 이유다. 객석과 전화선 너머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 장내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처음 마음먹었던 마지노선은 이미 훌쩍 넘긴 지 오래인데도, 옆자리 경쟁자가 패들을 들면 나도 모르게 다시 손이 올라간다. 낮게 시작한 그 출발선이 어느새 판단의 기준점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심리적 요인 외에도, 낙찰가에는 수수료라는 실질적 부담이 더해진다. 금액에 따라 차등 부과되는 구매 수수료는 초고가 피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거래에서 25%를 웃돈다. 여기에 국내로 들여올 때 발생하는 관세와 부가세, 운송비와 보험료까지 더해지면 최종 비용은 크게 불어난다. 뉴욕 경매장에서 5만 달러에 낙찰받은 반지가 한국 공항을 통과할 때쯤이면 8만 달러를 훌쩍 넘기는 식이다.


베일에 싸인 큰손들

경매장에 들어서면 장내를 감싸는 특유의 엄숙하고 차분한 공기에 압도되기 쉽다. 누구나 꿈꾸는 컬러 다이아몬드 차례가 오면, 객석 곳곳에서 노련한 딜러들이 조용히 응찰 패들을 든다. 상당수가 다이아몬드 업계에 오래 몸담아 온 이들이다. 하지만 최고가 피스일수록 승부는 전화선에서 결정된다. 큰손들은 이미 사전 전시에서 실물을 꼼꼼히 살핀 터라, 굳이 현장에 나올 필요 없이 경매사 직원을 통해 숫자만 전달한다. 최종 낙찰가는 붐비는 응찰석이 아니라, 그 은밀한 통화 속에서 결정된다.

경매를 주도하는 큰손들의 배경과 세대도 빠르게 재편되는 중이다. 오랜 기간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며 호가를 주도했던 중국계 컬렉터와 중동의 왕족들 틈으로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금융이나 테크 업계에서 젊은 나이에 부를 일군 30~40대 신흥 컬렉터들이다. 디지털 응찰이 자리를 잡으면서, 제네바나 뉴욕행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최상급 스톤을 매입하는 큰손이 부쩍 늘었다. 다만 실물 확인 과정까지 생략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프리뷰 일정에 맞춰 직접 살피거나, 여의치 않으면 신뢰할 만한 대리인을 보내 검증을 마친 뒤 전화선 너머로 호가를 부를 뿐이다. 이런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시장분석기관 아트택틱(ArtTactic)의 자료를 종합하면, 하이 주얼리가 럭셔리 경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년 전 13% 안팎에서 최근 20% 가까이로 올라섰다. 같은 기간 아시아계 응찰자는 한 해 만에 22% 넘게 증가했다. 실제로 2026년 5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는 밀레니얼과 Z세대가 신규 구매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2018년 제네바 소더비 경매장에 등장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천연 진주 펜던트. 오스트리아 컬렉터 하이디 호르텐이 약 408억원에 낙찰받았다.

2018년 제네바 소더비 경매장에 등장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천연 진주 펜던트. 오스트리아 컬렉터 하이디 호르텐이 약 408억원에 낙찰받았다.

2023년 소더비 뉴욕에서 약 514억원에 낙찰된 55.22캐럿 루비 에스트렐라 드 푸라.

2023년 소더비 뉴욕에서 약 514억원에 낙찰된 55.22캐럿 루비 에스트렐라 드 푸라.


서사의 두 얼굴

그렇다면 주얼리에 담긴 서사가 어떻게 경매장의 흐름을 바꾸고 가격을 움직이는지 마리 앙투아네트의 진주부터 다시 들여다보자. 2018년,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얼리가 공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홍콩 소더비 프리뷰장으로 향했다. 흰 장갑을 낀 직원이 조심스럽게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진주를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완벽한 물방울 모양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살짝 찌그러진 서양배 모양이었다. 프랑스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브뤼셀과 빈을 거쳐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금고에 머물기까지, 22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온 진주였다. 그 오랜 풍파가 무색하게 표면에는 스크래치 하나 없었고, 은은한 광택만이 감돌았다. 몇 주 뒤, 제네바에서 열린 경매 당일, 호가가 1000만 스위스프랑을 돌파하자 객석에서는 더 이상 패들이 올라오지 않았다. 런던과 뉴욕, 홍콩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전화 응찰자들만이 숨 막히는 심리전을 이어갔다. 15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흐른 뒤 마침내 낙찰봉이 내려왔다. 추정가 100만~200만 달러가 무색한 3640만 스위스프랑, 천연 진주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단두대로 향하던 비운의 왕비가 친정 오스트리아로 미리 보내 놓은 역사의 파편, 지울 수 없는 서사의 무게가 응찰자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 집념의 낙찰자가 바로 도입부에서 언급한 하이디 호르텐이다.

하지만 주얼리가 지닌 서사가 언제나 가치를 상승시키는 프리미엄이 되지는 않는다. 서사의 이면이 드러나면 오히려 낙찰가가 떨어질 수도 있다. 2015년 세계 최고가를 기록했다가 8년 뒤 절반 가격에 다시 낙찰된 선라이즈 루비가 그런 경우다. 나는 크리스티 전시에서 그 반지를 직접 살펴볼 수 있었다. 자연광 아래 루비는 피처럼 짙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표면에 미세한 스크래치가 눈에 띄었다. 경도 9에 달하는 단단한 루비에 이런 자국들이 남을 정도라면, 소장자가 금고에만 두지 않고 일상에서 다이아몬드와 함께 자주 착용했다는 뜻이다. 이름난 컬렉터가 오래 소장했다는 내력은 대개 프리미엄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컬렉션에서는 오히려 짐이 됐다.

문제는 호르텐 가문의 과거였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하이디의 남편 헬무트 호르텐은 나치 정권 시절 유대인 소유의 점포와 백화점을 헐값에 넘겨받아 자산을 불렸다. 헬무트는 1987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 루비를 구입한 건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대중이 문제 삼은 것은 구매 시점이 아니라 그 자금의 뿌리였다. 화려한 주얼리 왕국의 밑천이 유대인에게서 강탈한 재산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관심과 열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글로벌 주얼리 산업의 큰 축을 이루는 유대계 딜러들이 일제히 응찰 거부를 선언했고, 경매 중단 요구가 빗발쳤다. 핵심 바이어들이 발길을 돌린 경매장에서 선라이즈 루비는 8년 전 낙찰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60만 달러에 간신히 거래됐다. 스톤의 물성은 8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야기가 달라졌을 뿐이다.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62억원에 낙찰된 티파니의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 최상급 브라질산 파라이바 투르말린을 세팅했다.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62억원에 낙찰된 티파니의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 최상급 브라질산 파라이바 투르말린을 세팅했다.

산지 권력의 이동

그뿐만이 아니다. 2015년부터 유지해 온 선라이즈 루비의 ‘세계에서 가장 비싼 루비’ 기록마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호르텐 경매가 끝난 지 한 달 만에 소더비 뉴욕에서 모잠비크산 55.22캐럿짜리 루비 ‘에스트렐라 드 푸라(푸라의 별)’가 3480만 달러에 낙찰되며 유색 보석 역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다. 시장에는 이 기록적인 낙찰가보다 스톤의 산지가 훨씬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오랜 세월 미얀마(버마)는 최고급 루비의 성지로 통했고, ‘피전 블러드’ 컬러는 업계에서 거의 버마산 루비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명성을 떨치던 미얀마 광산들은 군부 통치기 인권유린 논란으로 서방의 수입 제재를 받았고, 오랜 채굴로 매장량마저 바닥을 보였다. 공급이 막히자 보석상들이 대안으로 아프리카를 주목했고, 그 빈자리를 모잠비크가 빠르게 채워 나갔다. 에스트렐라 드 푸라는 크기에서 버마 루비를 압도했고, 선명한 컬러 또한 뒤지지 않았다. 이 루비 한 점으로 유색 보석의 권력 지형이 크게 요동쳤다.

산지에 이어 컬렉터들이 주목하는 젬스톤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천연 진주를 5대 보석으로 불러왔다. 여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희귀 스톤들의 몸값이 최근 무서운 기세로 뛰고 있다. 그 선두 주자가 파라이바 투르말린이다. 1989년 브라질 파라이바주에서 처음 발견된 이 스톤은 구리 성분이 빚어내는 특유의 네온 블루빛으로 전 세계 컬렉터들을 매료시켰다. 최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는 최상급 브라질산 파라이바 투르말린이 세팅된 티파니 목걸이가 추정가의 10배를 웃도는 422만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캐럿당으로 환산하면 31만 달러, 최상급 사파이어나 에메랄드의 몸값을 넘보는 숫자다.

한때 루비의 모조품 정도로 천대받던 레드 스피넬 역시 미얀마와 탄자니아산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컬렉터층을 형성하며 시세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특히 탄자니아 마헹게산 스피넬은 투명한 출처와 독보적인 네온 발색 덕분에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떠올랐다. 광원의 종류에 따라 초록색과 붉은색을 오가는 알렉산드라이트 또한 소더비 뉴욕에서 역대 최고가에 거래되며, 유색 보석 시장의 저변이 넓어지는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매에서 새로운 산지가 부각되는 건 결국 기존 광산이 폐광하거나 고갈된 결과다. 2020년 11월, 전 세계 핑크 다이아몬드의 90%를 책임지던 호주 아가일 광산이 37년 만에 공식적으로 폐광했다. 미얀마 루비는 쿠데타 이후 서방의 제재와 내전이 겹치면서 국제시장에 풀리는 물량 자체가 급감했다. 사파이어의 대명사로 군림하던 카슈미르는 이미 오래전에 광맥이 바닥나 지금은 2차 시장에서 가끔씩 거래될 뿐이다. 천연 다이아몬드 원석 생산량도 줄었다. 2017년 약 1억5000만 캐럿으로 정점을 찍은 뒤, 최근에는 1억~1억2000만 캐럿 안팎이다. 한 세기 동안 다이아몬드 시장을 지배해 온 드비어스조차 천연석 공급이 이미 정점을 지났다고 진단할 정도다. 새로운 거대 광산이 발견될 확률은 희박하고, 남은 광맥마저 갈수록 더 깊어져 채굴 비용이 늘어난다.

공급이 줄어들수록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스톤의 가치는 견고해진다. 경매장을 거쳐 개인의 금고로 들어간 스톤은 좀처럼 시장에 돌아오지 않고, 어렵사리 다시 경매에 부쳐질 때마다 낙찰가에는 프리미엄이 더해진다. 서사도, 산지도, 브랜드의 이름도 ‘다시는 똑같은 것을 구할 수 없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한다. 전광판의 모든 숫자는 바로 이 희소성에서 비롯된다.


각인이 완성하는 가치

하이 주얼리 시장에서 최정상 브랜드의 각인은 스톤에 부가가치를 더한다. 똑같은 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라 하더라도 밴드 안쪽에 까르띠에나 반클리프 아펠의 각인이 새겨지면 가격표의 숫자가 달라진다. 스톤 자체의 가치에 메종이 쌓아온 역사와 디자인 유산이 더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시대적 가치까지 겹치면 상승세는 한층 두드러진다. 벨 에포크 시대(19세기 말~20세기 초)와 1920~1930년대 아르데코의 독창적인 피스들은 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인정받는다. 까르띠에의 ‘뚜띠 프루티’나 티파니 쟌 슐럼버제의 ‘버드 온 어 락’처럼 브랜드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된 디자인은 브랜드가 없는 피스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낙찰되는 경우가 많다. 한 시대의 미감과 공방의 기술이 응축된 예술품으로 거래되는 셈이다.

자본이 이름과 희소성으로 몰리는 데는 냉정한 경제적 계산이 따른다. 경기가 흔들리면 사치품 시장부터 무너진다고들 하지만, 하이 주얼리 경매는 오히려 불안정한 국면마다 정반대로 움직여 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한복판에서 블루 다이아몬드가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인플레이션의 여파와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직후에도 제네바와 홍콩의 주얼리 경매는 추정가를 가볍게 웃돌며 마감됐다. 비결은 주얼리가 지닌 독보적인 물성에 있다. 루비와 사파이어는 2000℃에 이르는 열에도 결정 구조가 무너지지 않고, 금과 플래티넘은 산화하지 않으며, 부동산과 달리 보유세도 부과되지 않는다. 계좌가 동결되거나 국경을 넘기조차 어려워지는 순간, 자산가들이 가장 먼저 챙기는 건 압축된 가치와 은밀한 휴대성을 겸비한 이런 자산이다.

시장의 실질적인 수익률 역시 이러한 흐름을 증명한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기업 나이트 프랭크의 럭셔리 투자 지수를 보면, 주얼리는 위스키나 와인처럼 급등락을 반복하지 않는다. 대신 변동성이 낮고, 완만하게 우상향하는 궤적을 그린다. 지난 2024년 한 해 동안 2.3%, 최근 10년간은 무려 33.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최상급 스톤에서는 상승세가 한층 뚜렷해진다. 그라프의 로런스 그라프 회장은 같은 50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세 번이나 매입했다. 2005년 크리스티 뉴욕에서 420만 달러에 매입했던 스톤을 7년 뒤 다시 되찾아올 때, 그는 두 배에 가까운 837만 달러를 지불했다. “이 다이아몬드를 소유하는 것이 벌써 세 번째”라던 그의 말처럼, 최상급 시장에서는 가치가 검증된 스톤을 확보하기 위해 이전 소장자가 더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 재매입에 뛰어들기도 한다.

경매장의 낙찰가는 결국 스톤 고유의 물성 위에 서사와 산지, 브랜드라는 무형의 가치가 얹어질 때 정점에 달한다. 중량이나 컬러 같은 물리적 조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프리미엄의 영역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진주가 220년의 풍파를 지나고도 고유의 빛을 잃지 않았듯, 물성을 넘어선 희소성의 가치 역시 다음 주인에게 온전히 전해진다.


Credit

  • WRITER 윤성원
  • PHOTO Sotheby's / Christie's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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