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비엔날레의 화제작 류성실의 ‘만 가지 꿈’
꿈에 나올 것만 같은 인물들이 지옥에서 들려주는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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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실, ‘만 가지 꿈’, 2026, 산업용 시저리프트, 플라스틱 더미, 팬모터, 사운드, 조명, 혼합재료. 2026 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 커미션 작품으로 현재 부산현대미술관에 설치되어 있다. 전시는 11월 1일까지.
숙소가 있는 부산 영도에서 2026 부산비엔날레의 메인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으로 이동하는 길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입구까지 뛰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이미 흠뻑 젖었다. 그 정도 비에 우산은 이쑤시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날 부산현대미술관이 있는 사하구에는 121.5㎜의 비가 쏟아졌다. 그런 비를 뚫고 전시실에 들어가자 어디선가 합창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발길을 옮기는데, 교회 의자가 깔린 예배당이 나왔고, 그 앞에 설치된 시저리프트 3대 위에 인간의 신체보다 거대한 인형들이 눈빛을 번뜩이며(박자에 맞춰 눈에 조명이 들어온다) 노래하고 있었다. 아마도 미라인 듯 검은 낯빛을 띤 인형, 백인으로 보이는 인형,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인형. 총 12명의 기괴한 인형들이 노래를 부를 때면, 그들의 입에 붙은 금색 수술들이 물을 뿜으며 유영하는 오징어 다리처럼 징그럽게 나풀거렸다.
나는 내가 악몽을 꾸는 줄만 알았다. “들으라! 들으라! 들으라! 우리의 꿈은 만 가지나 되네!” “그의 이름 서쪽. 하지만 별명은 만 가지! 때로는 자유, 때로는 약속, 때로는 디즈니, 버버리, 아우디.” 인형은 노래했다.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오는 미래, 자유였다가 디즈니와 아우디가 되는 것. 민주주의의 탈을 쓴 리버럴이지만 가끔은 리퍼블리컨이기도 한 그 무엇을 믿는다고 노래했다. 절이 바뀌면서 가사의 화자가 바뀐다. 아이들의 꿈은 아흔다섯 노인의 꿈으로, 또 소녀의 꿈으로 바뀐다. 아흔다섯의 몸뚱이지만, 신의 부르심을 받은 노인은 지팡이를 들고 청계천을 따라 광화문 광장으로 향한다. 그런 노랫말이 직접 나오지는 않았지만, 합창을 들으며 그런 광경을 떠올렸다. “온몸이 가렵고 뜨거운” 소녀는 할머니가 엄마에게 시키고 엄마가 다시 딸에게 미룬 500년의 숙제를 남겨두고 담대하게 꿈을 설계한다. 만 가지나 되는 꿈을.
매주 일요일, 우리 집에서 가까운 광화문 광장에는 몇 년째 빨간 모자를 쓰고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드는 노인들이 찬송가와 군가를 번갈아 부르며 이승만을 찬양하고 트럼프를 섬기는 중이다. 소설가 성해나는 자신의 단편 ‘스무드’에서 재미교포 ‘듀이’를 그 안에 던져 넣고 그가 겪는 오인의 과정을 그린다. 휴대전화 배터리도 없이 광화문 광장에서 길을 잃은 듀이의 앞에 빨간 모자를 쓴 노인들이 나타나 성조기와 ‘타이극기’가 포개진 배지를 달아주고, 등을 토닥이며 말한다. “당신도 열사예요.” 류성실의 부산비엔날레 커미션 작품 ‘만 가지 꿈’은 성해나가 보여주는 서사의 공포를 신도석에 앉은 당신의 몸에 옮겨놓는다. 최근 들리는 재밌는 뉴스가 있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성조기와 트럼프 등신대에 이어 이스라엘 국기를 들기 시작했다는 것. 보우소나루는 가톨릭 신자지만, 2016년 요단강에 들어가 오순절 교회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바 있다. 텔아비브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공약한 그의 집회에서 이제는 복음주의 종말론이 외치는 시온주의의 깃발이 나부낀다. 광화문의 노인도 브라질의 지지자도 실은 같은 시계를 보고 있다. 틱, 톡, 틱, 톡. 류성실의 종말론적 작품 앞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무언가를 믿고 싶어졌다. 내일은 오랜만에 MBTI 테스트를 다시 해봐야겠다. 늘 E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I가 나왔으면 좋겠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 부산비엔날레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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